자료사진. (이미지출처=픽사베이, 편집=김재훈기자)
자료사진. (이미지출처=픽사베이, 편집=김재훈기자)

제주특별자치도교육청(교육감 이석문)에서 낯 부끄러운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일주일 만에 중등 체육교사 임용시험 합격자 명단 번복 사고가 잇따라 일어난 것. 이 같은 일이 일어난 배경과 제주도 교육행정에 대한 불신, 중등 체육교사 시험의 문제점, 개선 방안 등을 세 차례에 걸쳐 짚어본다.<편집자 주>

“뭘 물어봐도 대답은 항상 ‘담당자가 아니어서 모른다’, ‘확인해줄 수 없다’, ‘일단 기다려라’ 뿐이었어요. 하나라도 있는 그대로, 제대로 얘기해줬다면 이렇게까지 안 됐죠.”

지난 14일 이주원(관련 기사 “다시는 제주도에 지원 않겠다” 체육교사 실기시험 과정도 ‘총체적 난국‘)씨는 아침 비행기를 타고 제주까지 내려와 교육청을 찾았지만 그가 원하는 답을 들을 수 없었다. 이씨는 합격자 명단 번복 사태로 논란이 일고 있는 2020년도 제주 체육교사 임용시험 응시생이다. 

이씨는 실기평가 당일 갑작스러운 일정 변경의 이유와 두 차례에 걸친 합격자 번복이 공고되는 과정에서 들었던 의문에 대해 질문했다. 이씨뿐만 아니라 대부분 응시생이 공감하는 내용이었다. 

그는 2차 변경 공고가 있었던 지난 13일 전화를 걸어 물었지만 교육청 관계자는 “직접 와야 알려줄 수 있다”고 답했다. 이에 다음 날 교원인사과를 찾아갔지만 관계자는 “감사 중이기도 하고 담당자가 없어서 알려줄 수 없다. 또 담당자가 오더라도 확인해줄 수 있는 부분인지 알 수 없다”는 답답한 설명만 반복했다.

이씨는 이날 제주도교육청 교원인사과 관계자의 황당한 태도에 언짢았지만 어느 정도 예상했던 부분이라고 설명했다. 1차 변경 공고가 있고 나서부터 지금까지 보여준 대응 방식과 크게 다를 바 없다는 것이다. 

#“누가 봐도 문제가 있다는 걸 한눈에 알 수 있어”

이씨는 도교육청의 ‘모르쇠·숨기기·늑장’ 대응이 이번 사태를 키웠다고 지적했다. 조금이라도 미심쩍었던 부분까지도 ‘더 심각한 문제를 덮으려고 그런 게 아닐까’하는 생각이 들었다고 토로했다. 교육청이 해명한 부분에 대해서도 믿기 어려운 상황이 된 것이다. 

지난 7일 오전 10시쯤 임용시험 합격자 공고를 본 응시생 대부분은 점수가 이상한 점을 곧바로 눈치챌 수 있었다. 점수표에 실기평가 점수는 나와 있지만 비고란에 ‘과락’이라고 표시됐기 때문이다. 

이씨는 “과락이 뜨려면 ‘0’점이어야 하는데 실기평가 점수가 있는데도 과락으로 표시됐다는 건 뭔가가 잘못됐다는 것”이라며 “누가 봐도 점수에 문제가 있다는 걸 한눈에 알 수 있다”고 설명했다. 

또 실기평가 점수(200점 중 30점 배당)가 누락되면서 합격선이 유난히 낮아졌으나 그 누구도 문제 삼지 않았다. 이에 대해 오승식 도교육청 교육국장은 제주도의회 교육위원회 현안 업무 보고에서 “검토 당시 체육 과목이 특성상 다른 과목에 비해 필기점수 등이 낮은 경향이 있어 그렇게 이해하고 결재했다”고 답하기도 했다.

지난 14일 이주원씨(가명)가 제주도교육청의 중등 체육교사 실기시험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김재훈 기자)
지난 14일 이주원씨(가명)가 제주도교육청의 중등 체육교사 실기시험 내용을 설명하고 있다. (사진=김재훈 기자)

#“합격자 공고일 오전부터 점수 문의 했으나…”

점수가 잘못됐다는 걸 눈치챈 응시생들은 처음 합격자 공고가 난 직후인 10시20분쯤부터 문의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교육청이 지난 10일 발표한 바에 따르면 교원인사과는 오후 1시가 넘어서 응시생의 연락을 받고 이 문제를 인지했다. 약 세 시간의 시차가 있다. 

교육청 관계자는 “합격자를 발표하는 날은 원래 점수 문의 전화가 많이 오는 날”이라며 체육을 포함한 전 시험 과목에 대한 문의를 일일이 검토해 답하기엔 어려움이 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한눈에 봐도 알 수 있는 문제’를 여러 차례 문의 전화를 받고서야 인지했다는 건 이해하기 어려운 대목이다. 

당시 이씨 역시 교육청에 전화를 걸어 “점수를 제대로 계산하면 합격자와 불합격자가 바뀔 수도 있는 건 아니냐”며 물었지만 관계자는 “절대 그럴 일 없다”고 답했다.  

#미술·음악은 문제없는데 체육만 오류?

같은 날 오후 5시쯤 합격자가 뒤바뀌는 일이 일어났고 교육청은 주말이 지나고 10일 관련 기자회견을 열어 사태 원인을 설명했다. 점수를 입력하는 직원이 실기점수를 이름이 유사한 다른 항목에 넣는 바람에 총합산 점수에서 해당 점수가 누락됐다고 설명했다. 이 점수를 제대로 입력하니 합격자 8명 중 응시생 A씨가 합격에서 불합격으로, B씨가 불합격에서 합격으로 바뀌었다. 

이를 두고 이씨는 “실기평가가 있는 음악과 미술도 점수가 누락됐어야 하는 것 아니냐”며 “왜 다른 두 과목은 잘 입력됐고 유독 체육만 잘못 입력했다는 건 납득이 가지 않았다”고 말했다. 교육청은 특정 감사를 통해 이 부분도 확인했지만 다른 과목 실기평가 점수는 정상적으로 입력됐다고 설명했다. 

당시 이 같은 의문을 가진 응시생들은 실기평가 종목별(육상·수영·구기·체조 등) 점수 공개를 요구했지만 거절당했다. 이날 기자회견장을 찾았던 한 응시생은 “교육청에선 관련 법령에 따라 채점표를 공개할 수 없다고 해 여기까지 왔다”고 호소했지만 ‘실기평가 종목별 점수 공개는 불가하다’는 답만 듣고 돌아가야 했다. 

제주도교육청 전경(왼쪽)과 지난 13일 홈페이지에 올라온 교육감 사과문. (사진=제주투데이DB)
제주도교육청 전경(왼쪽)과 지난 13일 홈페이지에 올라온 교육감 사과문. (사진=제주투데이DB)

#2차 변경 공고 나자 수많은 의혹 쏟아져

“1차 변경 공고가 났을 때 기분이 굉장히 나쁘긴 했어요. 그래도 마음을 다잡고 올해 공부 계획을 세우고 있는데 2차 변경 공고가 났다는 거예요. 이것도 다른 친구한테 먼저 들었는데 다른 응시생들도 뉴스를 보고 알게 됐다고 하더라구요. 왜 이런 일을 당사자인 응시생들에게 직접 알려주지 않는 건지 도무지 이해가 안 갑니다.”

1차 변경 공고 시점부터 응시생들은 서로 간 점수를 공개하기 시작했다. 교육청의 해명이 명쾌하지 않아 자기들끼리 이해해보려는 노력이었다. 그 과정에서 ‘제주는 원래 지역 출신을 선호한다’, ‘실기점수가 부당하게 매겨졌다’ 등 다양한 의혹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 와중에 지난 13일 합격자 명단 2차 변경 공고가 났다. B씨가 다시 불합격으로, 응시생 C씨가 합격으로 바뀌었다. 그러자 이씨를 포함해 다수의 응시생은 ‘더 이상 교육청을 믿지 못하겠다’며 거세게 항의했고 이씨는 제주까지 찾아오게 됐다. 한 응시생은 국민신문고 등에 민원을 넣기도 했다. 

공고 당일 기자회견을 열었던 교육청의 해명은 1차 공고 때와 마찬가지로 납득하기 어려운 수준이었다. 교육청에 따르면 감사를 통해 엑셀 시트에 있는 숫자를 점수 입력 시스템인 나이스(NEIS)로 옮기는 과정에서 실기평가 5종목 중 4종목만 합산된 오류를 발견했다. 누락된 구기 선택 1종목을 제대로 더하니 총점과 함께 합격자 1명도 뒤바뀌게 된 것. 

지난 25일 이석문 제주도교육감이 교육청 기자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제주특별자치도교육청 제공)
지난 25일 이석문 제주도교육감이 교육청 기자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제주특별자치도교육청 제공)

#교육청, 문제 덮으려다 사태 키워

일주일도 채 지나지 않은 기간에 두 차례에 걸쳐 합격자가 뒤바뀌는 초유의 사태를 두고 지역사회 비난 여론이 빗발치자 교육청은 실기평가 종목별 점수를 공개하기 시작했다. 당초 교육청은 관련 법령에 따라 채점표를 절대 공개할 수 없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씨에 따르면 응시생들은 재차 변경된 합격자 명단을 보고서 미심쩍은 측면이 있다고 제기하고 있다. 이씨는 “합격자 중 B씨와 C씨가 뒤바뀌려면 B씨의 구기선택 점수가 1점대여야 하는데 보통 아무리 못해도 2점 미만의 점수를 받기 어렵다”며 “일부 응시생들의 점수만 누락됐던 게 아니었나 하는 추측이 나온다”고 말했다.

교육청 관계자가 서울에 사는 응시생 B씨를 찾아가 “제주지역에 다시 응시한다면 개인적으로 도움을 주겠다”고 말한 사실이 밝혀지며 구설수에 오르기도 했다. 

이씨는 교육청이 애초에 점수 입력 오류를 발견했을 때 모든 과정을 응시생과 지역사회에 투명하게 공개했다면 이처럼 불신이 크지 않았을 거라고 안타까워했다. 문제점을 덮으려다 보니 결국 이런 상황까지 끌고 왔다는 것. 

이씨는 “응시생들이 물어보지 않았다면 합격자 변경 없이 그대로 넘어갔을 거라고 생각하니 더 화가 난다”며 “이런 일이 생기니 지난 시험 결과까지도 믿지 못하겠다는 말들이 나온다”고 말했다. 

결국 제주도교육청의 ‘모르쇠·숨기기·늑장’ 대응의 결과는 제주특별자치도감사위원회의 감사로까지 이어졌다. 지난 25일 이석문 교육감은 기자회견을 열어 감사 범위를 지난 10년간 교육 공무원 임용 시스템 전반으로 확대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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