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7일 제주 서귀포시 해군기지 정문 인근에서 반대 활동가 2명이 펼침막을 들고 서 있다. (사진=독자 제공)
지난 7일 제주 서귀포시 해군기지 정문 인근에서 반대 활동가 2명이 펼침막을 들고 서 있다. (사진=독자 제공)

“구럼비야 봄 잠 잘 잔(‘잤니’의 제주어)?”

지난 7일 오후 3시쯤 서귀포시 제주해군기지 정문에서 구럼비에게 안부를 묻는 노란 펼침막이 나부꼈다. 

구럼비는 제주도 서귀포시 대천동 앞 바닷가를 따라 용암으로 만들어진 넓고 평평한 바위다. 길이는 약 1.2㎞, 너비는 150m에 이르는 거대한 바위였으나 지난 2012년 해군기지가 들어서면서 폭파돼 사라졌다. 

이날은 구럼비 발파 바위가 작업이 일어난 지 딱 8년째 되는 날이었다.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했던 강정마을 주민들과 시민사회 단체는 매년 3월7일이 되면 구럼비를 기억하는 행사를 열었지만 올해는 코로나19 사태로 취소했다. 

지금은 사라진 강정마을 구럼비 너럭바위지대. (사진=제주투데이DB)
지금은 사라진 강정마을 구럼비 너럭바위지대. (사진=제주투데이DB)

그러자 구럼비가 해군기지 아래 묻혔듯 사람들 기억 속에서도 묻힐까 걱정했던 몇몇 활동가들이 펼침막을 들고 나섰다. 활동가 A씨에 따르면 이들은 지난달 14일부터 해군 측에 “3월7일  당일 잠깐이라도 구럼비 바위가 있었던 곳에 갈 수 있게 해달라”고 수차례 요청했다. 

기억 행사를 열지 못하는 대신 지금의 구럼비 영상을 찍고 ‘생명과 평화’를 위한 기도를 하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해군 측에선 안보 등의 이유로 이를 거절했다. 

이에 A씨를 비롯해 활동가 4명은 지난 7일 오후 2시쯤 해군기지를 찾아가 다시 한번 들여보내 달라고 요청했고 거절당하자 멧부리 인근 철조망을 끊고 이들 중 2명이 부대 내로 침입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10일 해군에 따르면 활동가 2명은 발견되기까지 한 시간 반가량 “군사기지 없는 평화의 섬”, “구럼비야 봄 잠 잘 잔”이 적힌 펼침막을 들고 지금 남아있는 구럼비 바위 주변을 돌아다닌 것으로 알려졌다. 

A씨는 “해군기지 건설 문제가 다 끝났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기지 밑에 아직 구럼비가 숨 쉬고 있다는 것을 알리고 싶었다”며 “구럼비 바위가 지금은 어마어마하게 커다란 건물 아래 숨죽이고 있지만 다시 일어나기를 간절히 바라고 있다”고 호소했다. 

이어 “우리가 지난 10년간 싸우고 있는 이유는 ‘평화의 섬’으로 지정된 제주도가 정말 분쟁이 없는 평화의 모습을 회복하기를 바라기 때문”이라며 “우리도 그만 싸울 수 있는 그 날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고 덧붙였다. 

이날 제주해군기지 앞에서는 구럼비를 기억하는 다양한 문화제가 펼쳐졌다.@제주투데이
지난 2017년 5월 제주해군기지 앞에서 열린 구럼비 기억 문화제. (사진=제주투데이DB)

 

한편 지난 7일 해군 측은 불법 침입을 한 활동가 2명이 수년간 기지 건설에 반대 활동을 해온 데다 지난달부터 수차례 방문 요청을 했기 때문에 얼굴을 잘 알고 있는 터라 당시 현장에선 이들에 대해 퇴거 조치만 했다고 밝혔다. 

이 사건은 지난 9일 해군기지 경계 시설이 허술하다는 데 초점이 맞춰져 대대적으로 언론에 보도됐다. 이에 대해 A씨는 “(해군 측의)제재를 예상하면서도 구럼비를 기억하고 또 우리가 싸우는 이유를 알리기 위해 (부대 내로)들어갔지만 정작 그 이유엔 다들 관심이 없는 것 같아 안타깝다”고 토로했다.

현재 해군은 활동가 4명에 대해 군형법상 ‘군용시설 손괴죄’와 군용물 등 범죄에 관한 특별 조치법 상 ‘군용시설 침입죄’ 혐의 등을 적용해 서귀포경찰서에 고소장을 제출한 상황이다. 

해군제주기지전대는 “그동안 민군 상생과 화합을 위해서 지속적으로 노력해왔으나 이 같은 불법 행위가 발생한 데 대해 강한 유감을 표한다”며 “오는 11일까지 합동참모본부와 작전사령부와 함께 부대 경계 시스템 전반에 대해서 정밀 진단을 실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또 A씨 등의 출입을 통제한 것과 관련해서 10일 해군 측은 “최근 코로나19 예방 차원에서 군인들의 외박 및 외출 등 외부와의 접촉을 최소화하고 있는 상황에서 민간인 A씨 등의 부대 출입을 통제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해군의 조치와 관련해 A씨는 “함께 부대 내에 들어갔던 활동가 B씨의 대답으로 대신하겠다“며 “7일 당시 해군이 저희에게 '군사보호구역에 무단침입한 것은 불법'이라고 하자 B씨는 '불법을 저지른 사람들은 아름답고 거룩한 구럼비 파위를 깨뜨리고 시멘트로 매장해 해군기지를 지은 당신들'이라고 답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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