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멍가게를 하드라도 글은 계속 써야 합니다."

아주 오래 전의 이야기이다. 현길언 선생님이 자신을 추천해 주신 이범선 선생님으로부터 들은 격려의 말이었다라고 쓴 글을 어떤 기사에서 읽은 적이 있었다.

현길언 선생님이 3월 10일 돌아가셔서 발인은 13일이라고 한다. 현길언 선생님은 이범선 선생님이 추천하신 마지막 제자이시다. 작년까지 선생님은 말기 암 속에서도 이범선 선생님 말씀대로 치열한 작가 정신으로 마지막까지 펜을 놓지 않으셨다.
어제(11일) 오전에 오사카에 사는 오사카 오현고등학교 총동창 전 회장 현경언 씨로부터 현길언 선생님이 돌아가셨다는 부고를 이메일로 받았다. 그는 현길언 선생님의 동생이시다. 또 오후에는 한승철 오사카 오현고등학교 총동창회 회장으로부터 작가 현길언 씨 별세라는 신문기사를 보내왔다.
몇년 전, 현길언 선생님은 오현고등학교 총동창회 초청으로 오사카강연이 있었다. 필자는 당시 시간을 낼 수 없어서 강연을 들을 수 없었다. 일부러 오사카까지 오셔서 강연을 하는데 참석 못해서 대단히 죄송스럽습니다라고 메일을 보냈더니 괜찮다면서, 언제 다시 만나자고 한 것이 마지막이었다.
현길언 선생님을 처음 뵈온 것은 약 25여년 전 오사카에서였다. 갑자기 전화가 와서 만나고 싶다고 했다.
민족학교 건국학교를 방문하고 나서 만나고 싶은데 어디로 가면 되느냐고 물으셨다. 그러면 알기 쉽게  쓰루하시(鶴橋)역에 오셔서 전화하면 마중 간다고 했다.
현길언 선생님한테서 전화가 왔다. 약속대로 학교에 와서 전화하고 있다고 한다. 약속대로라면 학교가 아니라 쓰루하시역에서 전화를 해야 했다. 학교가 아니라 쓰루하시역에 오셔서 전화 다시 하십시오라고 말했더니 말대로 학교 와서 전화하고 있다고 하셨다.
몇 차례 학교가 아니고 쓰루하시역에서 전화하시라는 공방이 계속되었다. 그러다가 문득 필자가 생각했다. 아, 그렇구나! 한자' 쓰루하시(鶴橋)'는 일본어 발음이고 한국어 발음은 학교(鶴橋)였다. 필자는 이것을 설명하고 선생님께 사과하고 만났었다. 지금도 이 에피소드는 한국에서 오는 문인들에게 쓰루하시를 안내하면서 소개하여 모두 통쾌하게 웃곤 한다.
그후, 선생님께서는 쓰신 책을 종종 보내 주셨다. 필자는 책은 커녕 작품도 별로 안 써서 보내 드릴 것이 없어서 그때마다 죄송스러웠다. 현길언 선생님이 제주 출신이어서 자주 못 뵈어도 가까움을 느꼈다는 점도 있었지만 그것보다도 이범선 선생님과의 관계에서 필자는 더욱 친근감을 느꼈었다.
지금은 문예지에 1회 추천으로 문단에 등단하지만 전에는 어느 문예지도 2회 추천제였다. 현길언 선생님은 이범선 선생님으로부터 2회 추천을 받은 마지막 문단 제자이셨다. 필자는 이범선 선생님으로부터 1회 추천을 받고 현대문학에 작품을 게재했다. 그후 이범선 선생님이 돌아가셨기 때문에 2회 추천을 받을 수 없었다.
문단 유복자가 된 필자는 김동리 선생님으로부터 2회 추천을 받을 수 있었다. 이러한 인연으로 필자는 현길언 선생님에 대해서 문단 선배라는 다른 친근감을 느끼곤 했었다.
이범선 선생님의 주옥 같은 여러 단편소설 속에 대표작 <오발탄>이 있다. 문제작으로 김진규, 최무룡 주연으로 영화화도 되었지만 북한 찬양의 내용이 있다고 당국으로부터 당시 상영 중지가 된 적도 있었다.
6.25로 서울로 피난 온 가정을 그린 소설이다. 지금도 마음 울리는 소설이다. 이 소설과 현길언 선생님의 4.3소설들은 언제나 오버랩된다.
현길언 선생님은 제주 출신 작가로서의 숙명과 사명처럼 4.3 소설을 많이 썼고 작가로서만이 아니고 학자적 측면에서도 4.3을 끝끼지 조명하셨다. 정치색 강한 흑백 논쟁 속에 4.3은 아직도' 미완의 장'으로서 흔들리고 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도 현길언 선생님은 자신의 신념을 버리지 않으셨다.
왼쪽 눈으로 보든, 오른 쪽 눈으로 보든 한쪽 눈만을 갖고 보면 시각은 흐려지고 편향을 갖고 일방적으로 한쪽으로 흐르고 만다. 그래서 "두 눈을 뜨고 똑 바로 보라"는 말이 지극히 보편적인 경고의 일상적 언어로서 무게를 갖고 존재하고 있다.
'두 눈을 뜨고 똑 바로 보라"는 시각 속에 4.3의 진실 속에 담겨진 엄청난 피해와 희생을 휴머니즘으로 승화 시키면서 일생을 마치 현길언 선생님을 진심으로 추모하면서 명복을 비는 바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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