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라산 중산간의 오름을 시작으로
봄의 전령사들은 언 땅을 뚫고 일찍 기지개를 켠다.
공기가 느슨해지고 바람이 머무는 곳
잠시 머물다 설레임만 남기고 봄바람 타고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리는 봄꽃들
앙상한 나무 아래 언덕에도, 굼부리에도, 계곡에도, 돌 틈에도, 켜켜이 쌓인 낙엽 위로
어김없이 찾아와 주는 마음씨 고운 작고 여린 꽃들은
오르기 전에는 알 수 없는 들꽃 세상
봄의 기운을 볼어 넣으며 새로운 풍경으로 길을 안내한다.
한 걸음, 한 발짝 그냥 스치기엔
너무나 많은 아름다운 이야기를 품고 있는 봄의 굼부리
이 시기가 되면 찾게 되는 왕이메는 문을 활짝 열었다.
오름 능선 따라 가는 길에는 황금접시 '세복수초'가 꽃길을 만들고
간밤의 추위를 견디고 움츠린 모습
보송보송 솜털을 달고 이제 막 기지개 켜는 '새끼노루귀'의 앙증스런 모습에
가다 서기를 반복하며 한참을 들여다 본다.
바람도 멈춘 굼부리 카페
봄비 소식에 구름을 머금은 흐린 날씨
초록잎을 만들기 전이라 앙상한 나무는 삭막하고 쓸쓸하게 보이지만
이제 곧 펼쳐질 '세복수초 피는 굼부리'의 설렘을 잠시 숨겨두었다.
앙상한 나무 아래 거대한 굼부리 바닥은
황금빛 융단을 깔아 놓은 듯 초록 치마에 샛노란 저고리로 갈아 입은 '세복수초'가
아름다운 자태를 드러내며 마법같은 풍경을 그려내고
끝이 보이지 않는 황금물결 꽃길을 걷게 한다.
꾸미지 않아도 자연이 묻어나는 아름다운 시간이 멈춰 버린 듯
경이로움에 자연스레 마음의 문을 연다.
오고생이 곱앙이신(고스란히 숨어있는)
자연을 머금은 맑고 푸른 기운이 가득한 곳
햇빛이 들면 드는 대로, 바람이 불면 부는 대로, 비가 내리면 내리는 대로
이곳은 그 자체가 숨 쉬는 축복의 땅 '지상의 낙원'이다.
봄 기운으로 가득 찬 굼부리는
지천에 피어 난 세복수초에 가려 보이지 않던 키 작은 꽃들
자세히 보아야 더 아름다운 작은 들꽃들은 이름을 불러주면 환하게 웃어준다.
하얀 치맛자락을 살랑거리며
차가운 바닥을 수놓는 변산아씨 '변산바람꽃'
허리를 꼿꼿이 세우고 부끄럼 타는 '개구리발톱'
작지만 품위 있는 모습이 별을 닮은 노란별 '중의무릇'
종달새의 아름다운 노랫소리가 들리는 듯 조잘대는 '현호색'
타원형의 주름진 잎이 우아하지만 독을 품은 '뱍새'
움츠린 모습이 고양이 눈을 닮은 '산괭이눈'
허리를 구부리고 무릎을 꿇여야만이 눈에 들어오는 아이들이 대견스럽다.
일찍 봄 기운이 감도는 원형 굼부리
꽃은 부지런히 계절을 전해주고 굼부리에 숨어 있던 봄은 절정으로 향한다.
봄이 속삭인다.
이제 곧 초록으로 희망을 불어넣을 거라고...
나뭇잎을 적시기 시작한 봄비
아직은 차가운 바람이 머무는 숲길이지만
봄비를 기다렸다는 듯이 하얀 솜털을 달고 기지개 켜는 '새끼노루귀'
겨울을 깨우고 찬란한 봄을 기다리는 너~
봄의 두근거림이 느껴진다.
통바람이 부는 쑥쑥 자라 쑥대낭 길~
세월의 숲이 느껴지는 걷기만 해도 힐링이 되는 수직의 정원 '삼나무'
따뜻한 미소, 오랜 시선으로 머물다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