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남 칼럼] ‘봄이로되 봄 같지 않은 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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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남 칼럼] ‘봄이로되 봄 같지 않은 봄‘
  • 김덕남 주필
  • 승인 2020.03.22 2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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협잡과 야합의 ‘정치 바이러스’가 만들어 내는 현상

춘분(20일)이 지나면서 바람이 부드럽고 상큼해졌다. 병아리 솜털처럼 햇볕은 포근하다.

완연한 봄기운이 대지를 살랑거리고 있다. 개나리 진달래 벚꽃 등 각종 봄꽃들도 꽃망울 터뜨리며 꽃 향을 뿜어내고 있다.

절기상으로는 분명 봄이다. 피부에 와 닿는 느낌도 따스하고 간지러운 봄기운이다.

그러나 이처럼 봄이 왔는데도 봄 같지가 않다. 계절은 봄인데 사람들의 마음은 여전히 차가운 겨울이다. 혹독한 ‘동토(凍土)의 봄’을 경험하고 있다.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 그렇다. ‘봄이 와도 봄 같지 않은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이른바 ‘코로나 19’라는 괴질이 세상을 덮치며 사람의 목숨을 앗아가고 있기 때문이다.

‘코로나 19’는 사람의 생명을 숙주로 하는 얼굴 없는 ‘죽음의 포식자’다.

22일0시 현재 ‘코로나 19’가 발생한 나라는 186개국이다. 이들 나라에서 29만6천67명의 확진자가 나왔다. 사망자는 1만2천747명이나 된다.

이중 한국의 확진자는 8897명이다. 여기서 안타깝게도 104명이 아까운 목숨을 잃었다.

지구촌 전체가 불안과 공포 속에 ‘코로나 19’와 사투를 벌이는 이유다. 그야말로 전쟁 상황이다.

얼굴 없는 적과 ‘세계 제3차 대전을 치르는 것’이라 말하는 이들도 있다.

‘코로나 19’는 사람의 목숨만이 아니고 세계경제까지 말아먹고 있다. 세계경제를 폭망 시키는 ‘대 공항 쓰나미’다.

물론 한국 경제도 세계 경제 시스템에 편입되어 있다. 그 쓰나미가 언제 어떤 형태로 한국 경제를 말아먹을지 알 수 없다.

그렇지 않아도 한국 경제는 이미 끝 모르는 추락이었다. 날개 없이 추락하고 있었다. 여기에 ‘코로나19’가 덮친 것이다. 한 치 앞도 내다 볼 수 없는 비상상황이다.

비정규직 영세업자 소상공인 등이 당장 굶어 죽을 판이다. 이처럼 위기에 처한 사회 경제적 약자들을 구제하기 위해서는 현실적이고 실효적인 처방이 시급하다. 약방문만이 아니다. 당장 호흡기를 달고 링거를 꽂아야 할 판이다.

이 뿐만이 아니다. 저 소득층과 중소기업 수혈과 함께 항공 해운 등 물류 인프라를 담당하는 기간산업, 에너지 안보와 직결된 전략산업, 자동차나 유통산업 역시 위기의 절벽에 매달려 있다. 언제 추락할지 조마조마 하다.

이들 주력 산업이 무너지면 소상공인이나 중소기업도 동반 추락 할 수 밖에 없다. 이는 사회적 취약계층의 생존과도 연동되어 있다.

‘코로나 19’가 가져다준 총체적 국가재난 위기라 할 수 있다.

그만큼 정부나 사회 각계각층을 망라한 온 국민이 함께 힘을 모아 위기를 극복해야 할 이유가 큰 것이다. 절체절명의 순간인 것이다.

물론 지금까지 ‘코로나 19’ 극복을 위한 민관의 피땀 흘린 노력은 돋보였다. 눈물겨운 일이었다.

세계의 전문가들이 한국의 ‘코로나 19’ 대처 능력에 좋은 평가를 보내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가 않다.

광범위한 ‘코로나 19’ 방역 체계, 어느 선진국보다도 우수한 의료 인력과 시스템, 자발적 의료 지원, 폭발적으로 이뤄지는 전 국민 지원 릴레이와 국민적 위생 안전 수칙 이행 등은 감히 세계가 쉽게 넘볼 수 없는 한국적 에너지다.

그래서 ‘코로나 19’위기와 국가 경제 추락 상황 등 국가 재난 극복을 위한 이 같은 국민적 저력이 계속되기를 소망하는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정치영역이다. 최근 정치권이 보여주고 있는 협잡과 야합과 이전투구는 함께 견디어 내야 할 국민적 에너지를 좀먹는 바이러스로 작용하고 있다. ‘코로나 정치’라 불러 마땅한 일이다.

‘4.15 총선’을 앞두고 벌어지고 있는 이합집산과 치졸하고 더러운 비례의석 확보 꼼수는 그야말로 ‘삶은 소대가리도 웃을 촌극’이나 다름없다.

원인제공자는 집권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하 민주당)이다. 민주당은 지난해 선거법 개정안을 밀어붙여 소위 ’준 연동형 비례제‘를 만들었다.

이 과정에서 제1야당을 배제해 버렸다. 선거법 협상에서 당연히 거쳐야 할 제1야당과의 논의를 거치지 않았다.

그러면서 민주당은 군소야당들을 꼬드겨 ‘4+1’이라는 ‘듣보잡(듣도보도 못한 잡탕 조직)을 만들어 짬짜미로 선거법을 개정해 버렸던 것이었다.

당시 많은 전문가들이 문제점을 지적했다. 향후 나타날 부작용까지 제기했었다. 그러나 무시해 버렸다. 민주당이 특정 목적(공수처법) 을 달성하기 위해 불법적 행태를 서슴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해서 태어난 ‘연동형 비례제’가 총선을 앞두고 누더기가 되어 버린 것이다.

여든 야든 비례전문의 위성 정당을 만들어 복잡하고 치졸한 대결 구도를 확산시키고 있기 때문이다.

민주당은 미래통합당(이하 통합당)의 비례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 창당을 온갖 험한 소리로 비난하다가 최근 비례전문 위성 정당을 만들었다.

‘욕하면서 배운다’는 속담 그대로다. 반성은 없었다. 체면도 없었다. 참으로 뻔뻔하고 후안무치한 정치행태가 아닐 수 없다.

이 과정에서 온갖 협잡과 꼼수가 동원됐다. 선동과 거짓말과 변명은 예사였다. 상대에게 책임 돌리기 역시 억지스러웠다.

이 때문에 ‘준 연동형 비례제’는 누더기 걸레가 되어버렸다. 민주당이 온갖 탈 불법을 동원하여 만들어 놓고는 앞장서서 이를 누거기로 구겨버린 꼴이다.

그래서 ‘4.15 총선’ 20여일을 앞둔 정치판은 그야말로 ‘목불인견(目不忍見)의 개판’이라는 비난을 자초하고 있는 것이다.

민주당의 위성 비례정당 ‘더불어 시민당’은 소위 ‘조국사태’때 ‘조국 수호 집회’를 주도했던 ‘개싸움 국민운동 본부(개국본)’가 주축인 ‘시민을 위하여’를 모태로 창당됐다.

이로서 ‘조국전법무장관’이 ‘4.15 총선 쟁점‘으로 부상할 공산이 커졌다.

여기에다 ‘조국 전 장관 자녀 입시비리에 연루된 혐의’로 기소된 최강욱 전 청와대 비서관도 정봉주 전의원․손혜원 무소속 의원이 주도하는 비례정당 ‘열린 민주당’에 참여했다. ‘조국 쟁점’의 뇌관이 될 수 있는 시그널이다.

20일 현재 선거관리 위원회에 등록된 우리나라 정당 수는 모두 47개로 알려지고 있다. 창당을 위해 등록한 단체(창당준비위원회)도 31개나 된다.

‘가자 00당’, ‘억울한 당’ 등 별의별 정당이름도 수두룩하다.

이들이 창당돼 총선에 합류 할 경우 78개 정당이 총선 투표지에 인쇄될 수 있다. 투표용지 길이만 1미터를 넘을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웃어야 할지, 울어야 할지 난감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상황을 ‘희극적 비극 상황’이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정치(政治)란 무엇인가. 한자 풀이만을 상정할 때, 정(政)은 ‘바르게(正)일을 하는 것’이라 한다. 치(治)는 ‘건물에 물이 넘치지 않게 조절하는 것’이라는 해석도 있다.

‘정치는 물이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게 다스려 바르게 한다는 것’이라는 뜻일 게다.

엄밀한 의미에서 ‘정치는 다른 사람을 지배하거나 다스리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바르게 다스리고 이를 다른 사람을 위해 행사하는 것’이라는 주장도 있다.

현대적 해석으로도 ‘정치는 리더가 국민들의 이해관계 대립을 조정하고 국가 정책과 목적을 실현하는 것’이라는 설명이 있다. 지배가 아니라 조정과 조율이 정치 본령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우리가 경험하는 정치는 자기이익을 위해 거짓말하고 협잡과 야합으로 경쟁자를 짓밟는 힘의 논리가 작용하는 영역으로 볼 수밖에 없다.

지금 추태를 부리고 있는 여야 정치권의 총선 후보자 공천 과정이나 비례 위성 정당 창당 야바위만 봐도 그러하다.

봄이 왔는데도 봄을 느끼지 못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 것이다.

영국의 경제학자 콜린 클락크는 일찍이 “정치꾼은 다음 선거만 생각하고 정치가는 다음 세대를 생각한다‘고 정의 한 바 있다.

프랑스 대통령을 지냈던 조르주 퐁피두의 정치 어록도 있다.

“정치가는 나라를 위해 자신을 바치는 사람을 말하고 정치꾼은 자신을 위해 나라를 이용하는 사람”이라고.

한국에는 진정한 정치인이 있는가. 아니면 자기이익만을 위해 권력을 이용하는 정치꾼만 있는가.

오는 ‘4.15 총선’에서 나라를 망하게 하는 ‘정치꾼’을 골라내 퇴출시키는 국민적 역량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야 ‘코로나 19’로 얼어붙은 마음을 스스로 조금이라도 달랠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얼어붙었던 마음에 봄을 느끼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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