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저항할 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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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저항할 권리
  • 제주투데이
  • 승인 2020.03.29 21:45
  • 댓글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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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정 평화운동가 송강호와 류복희의 일에 부쳐
-엄문희 평화활동가

탄원서 하나를 급히 썼습니다. 연대 서명을 받을 시간은 고작 하루에 지나지 않았습니다. 강정 평화활동가인 송강호와 류복희씨가 지난 3월 7일에 강정 해군기지 공사로 폭파된 구럼비 8주기 되던 날에 해군기지 영내에 조금 남은 구럼비에 다녀온 일로 영장실질심사를 받게 되었던 것입니다. 

강정마을에 들어선 제주 해군기지는 그 절차에서 많은 사회적 물음을 일으켰습니다. 무엇보다 민주주의와 정의 실현의 책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국가는 정당하지 못한 방법을 사용했고, 그것이 여의치 않자 시민을 겁박하여 폭력적으로 군사기지를 강행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마을 공동체는 산산조각이 났고, 제주사회는 심각한 내상을 입었습니다. 이 과정을 목격한 한 제주 시인은 ‘강정은 4.3이다’라고 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끊임없이 절차적·민주적 공정성에 질문하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2018년 국제관함식 과정에서 대통령이 직접 마을을 방문해 강정 주민들에게 사과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국가가 사후적으로 사과 한다고 모든 일이 없던 것처럼 정리되어도 좋은 것인지, 그에 대한 사회적 합의는 여전히 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관함식마저 마을의 분열을 조장한 국가와 군대의 기만으로 만들어졌기 때문입니다. 2019년에 나온 <제주 강정 해군기지 건설 사건 조사결과보고서>에 의하면 국가기관과 군이 직접 마을의 분열에 가담하고 심각한 인권유린을 자행한 것으로 드러났습니다. 그 보고서에서조차 관함식 과정의 문제점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와 같은 폭력을 길게는 십 년 넘게 직접 겪고 목격한 시민들이 있습니다. 송강호와 류복희 역시 이와 같은 불행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 계속 질문하며, 무자비하게 파괴된 모든 것들을 기억하고 아파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저는 그 사람들의 친구입니다.

2월 14일이었습니다. 강정 평화활동가인 송강호와 류복희는 해군기지 안에 일부 남아있는 구럼비 바위를 보고 싶어서 해군 민원실에 문의했습니다. 신청서를 넣는 과정에서 관계자와 통화를 하기도 했으나 불가 통보를 받았습니다. 구럼비 발파 8주기 추념일인 3월 7일 오전 9시, 다시 방문 요청서를 제출하였습니다. 안전상의 이유로 들어갈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지만, 구럼비를 보고 싶은 열망을 재차 전달하며 군의 협조를 부탁했습니다. 연락처를 주며 10시까지 답변을 부탁했습니다. 이번에도 대답이 오지 않았습니다. 12시에 민원실에 가서 다시 방문신청을 했습니다. 불가하다는 통보를 받았습니다. 다시 군대 방문 신청서와 협조 사항에 사인해 접수하면서 당일 오후 2시까지 방문을 허락해 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리고 2시까지 연락하지 않으면 ’서로 불편해질 것임‘을 상부에 전해달라고 당부했습니다. 
연락은 오지 않았습니다. 송강호, 류복희는 ’멧부리‘로 갔습니다. 멧부리는 강정마을의 맨 동쪽 주상절리 언덕으로 예전에 구럼비와 연결된 공유수면입니다. 마을이 해마다 1월 1일 첫 순간에 제사를 올리는 제단이 있고 마을이 신성한 곳으로 여기는 곳입니다. 그나마 그 제단이라도 남아있어 사람들은 그곳에서 그리움을 달래곤 하였습니다. 연이은 요청에도 불구하고 달리 방법이 없다고 판단한 송강호는 빗속에서 철망을 자르고 꿈에 그리던 구럼비로 들어갔습니다. 옆에 함께 있던 류복희도 따라 들어갔습니다. 비는 종일 내렸고, 그들은 빼앗긴 성소를 그리워했을 뿐입니다. 이젠 장소성의 맥락이 바뀌고 훼손된 일부에 지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일부라도 남아있는 구럼비에 앉아 기도하고 묵상하다 그들은 정문 쪽으로 걸어나갔습니다. 3시 40분경이었습니다. 구럼비에서 한 시간 넘게 머물러있다가 나가는 길에 정문께서 군과 마주쳤습니다. 곧이어 경찰이 왔습니다. 정문 앞 50미터 지점에서 군 관계자가 “군사보호구역에 무단 입장하여 지금 나갈 수 없다” 라며 멈춰 세웠고, 지시에 따라 멈춰 섰습니다. 멈춰 서 있는 동안 송강호는 항상 갖고 다니던 가로 1m 세로 50cm 크기의, ‘군사기지 없는 평화의 섬’이라고 쓰인 노란 배너를 들었습니다. 류복희는 ‘구럼비, 봄 잠 잘 잔?’이라고 수 놓인 바느질 현수막을 들었습니다. 
그렇게 고착되기를 삼십여 분, 5시 20분경 강정 주민 한 사람이 정문으로 들어와 “이 사람들 데려가도 되나요?”라고 물었습니다. 지금 영내 일부 땅을 강제수용 당했던 강정 주민 김미량이었습니다. 해군기지 영내에서 마을 친구가 붙들려 있다는 말을 듣고 부랴부랴 달려온 그 사람은 겁날 것도 없이 기지 안으로 들어가 친구의 손을 잡습니다. 군은 김미량에게 “빨리 데리고 가라.”고 했습니다. 헌병의 퇴거 조치에 따라 세 사람은 정문으로 걸어 나왔습니다. 

“구럼비야 봄잠 잘 잔?” 
이것은 류복희가 들었던 현수막 내용입니다.

구럼비 발파 8주기를 추념하는 마음을 담아 친구들과 함께 만든 것입니다. 국가는 해군기지 건설이 끝났으니 이제 모든 것이 끝났다고 합니다. 국가와 군이 나서서 분열시킨 마을 갈등과 그로 인한 사회적 문제들 역시 그냥 봉합하려 듭니다. 그러하기에 더욱 피해당한 사람들, 자연들, 무엇보다 민주주의와 평화의 가치들을 다시 일깨워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봄에 낮잠 든 아이처럼 구럼비를 의인화하여 어서 일어날 것을 요청하였습니다. 그렇게 나온 현수막 언어가 <구럼비야 봄잠 잘 잔?>입니다.

“군사기지 없는 평화의 섬” 
이것은 송강호가 들었던 깃발입니다. 

제주는 2005년에 ‘세계평화의 섬’으로 선포되었습니다. 이 평화의 섬 구상 과정에서 ‘비무장’은 중요한 전제였습니다. 2003년 10월 10일에 제주대 평화연구소는 '세계평화의 섬 지정 및 향후 추진과제'라는 주제를 발표하며 2002년 화순항 해군기지 반대 운동 역시 “제주도를 비무장 평화의 섬으로 발전시켜 나가려는 도민적 의지”를 보여주는 사례라고 평가했습니다. 이들은 제주도가 “대륙과 해양의 교차점에 위치하기 때문에 두 세력 간의 각축장이 될 수도 있지만, 오히려 두 세력의 완충 역할을 해낼 '중립의 화해지대'”가 될 수 있음을 주장했습니다. 또한 “탈냉전에 대응한 비핵지대 및 평화회담 개최지 역할'을 해야 한다고 확인했습니다. 특히 21세기 북한 핵위기, 한-중-일 3국의 패권적 군비경쟁 가능성, 미-일 신 안보지침 및 MD체제 구축가능성과 이에 대한 중국의 반발, 대만해협의 유사사태 등이 제주도를 둘러싼 주변 지역 군사 경쟁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는데, 이러한 움직임에 효율적으로 대처하기 위해서는 세계평화의 섬 지정을 통한 평화지대 역할이 요청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제주 평화의 섬 개념은 처음부터 제주도의 비무장화 논리에 바탕을 두고 출발했습니다. 실제로, 제주 평화의 섬 지정에 따른 '개요'에서 평화의 섬 정책이 지향하는 '평화의 의미'는 "모든 위협 요소에서 자유로운 상태인 적극적 의미의 평화를 실천해 나가는 일련의 사고체계와 정책 등을 포괄하는 문화적, 사회적, 정치적 활동체계"로 정의하고 있으며 어떤 의미에서도 군사력에 의한 평화 확보는 그 내용에 담겨 있지 않았습니다. 심지어 참여정부 시절 제주 평화의 섬 정책 최초 제안자였고 동북아시대 위원장과 국제안보대사를 역임했던 문정인 교수는 2001년 4월 제주를 '평화지대' 로 선포할 것을 제안하면서, 제주의 '비군사화(비무장화)'와 '중립화'를 국제적으로 선언할 것과 "장기적으로 군사목적의 선박 및 항공기의 기항과 기착을 전면 금지"해야 한다는 추진 원칙을 내놓았습니다.우근민 제주도지사 역시 제1회 평화포럼(2001년) 개막연설에서 "만일에 한국·중국·일본 동북아 3국이 상호존중, 공동번영의 정신을 버리고 팽창주의적인 태도로 나아가면 제주의 (발전) 가능성은 사라지고 오히려 지정학적 중요성은 다시 위험성으로 작용하게 될 것입니다. 극단적인 예를 들어, 만일 팽창주의적 움직임 속에서 제주의 군사적 중요성이 부각되면 제주의 운명은 어떻게 될지 상상해 보아야 합니다. 그것이 다른 나라의 팽창주의적 압박에 대항하기 위한 것이든 아니든 간에 제주는 국제적 위험성 앞에 노출되고 말 것입니다." 라며 제주의 군사화 문제를 우려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비무장 평화의 섬을 향한 밑그림은 제주에 해군기지 건설이 추진되면서 무너집니다. 2005년에 참여정부는 미국과 일본, 중국과 러시아의 동북아 대결구도를 완화하고 중재하는 ‘동북아 균형자’ 노릇을 자처하면서도 군사력 증강에 의한 한미군사동맹을 강조하는 모순적이고도 분열적인 평화론을 제시함으로써, 애써 키워오던 비무장 평화의 섬 제주도에 어두운 그림자를 드리웠습니다. 뒤이어 이명박 정부는 '국가안보' 이데올로기를 내세워 해군기지 건설에 반대하는 국민을 '불순 종북세력”으로 몰아가며 공권력을 동원하여 무참히 '진압'했습니다. 하지만 강정마을의 해군기지 반대 운동이야 말로 평화의 섬 제주도의 비무장화를 위한 비폭력 평화 운동이었습니다. 송강호와 류복희 역시 제주도가 비무장 평화의 섬이 되어야 함을 끊임없이 주장해왔습니다. 우리가 해군기지 준공 5년 차가 되도록 이 마을에 남아 평화 운동을 지속하는 이유이며, 송강호가 늘 가슴에 현수막을 품고 다니는 이유입니다. 

양심의 자유와 그 표현의 자유를 보장하는 법원의 역할이 요청되는 이 순간 함께 나누고 싶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1999년 6월, 영국의 세 여성 앤지 젤터, 울라 로더, 엘런 목슬리는 스코틀랜드 파슬레인의 해군기지에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핵잠수함 트라이던트에 필요한 특수장비를 개발하던 수상실험실 “메이타임”의 컴퓨터와 장비를 부쉈습니다. 그들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폭 피해 사진과 “죽음의 핵실험 중지하라!”는 깃발을 내걸었습니다. 그때도 군과 경찰은 3시간 반이 지난 후에 나타났다고 합니다. 핵잠수함 관련 자료들을 망가뜨린 세 여성은 무죄를 주장했습니다. 트라이던트는 4800만톤의 핵탄두를 탑재하여 192개의 목표물을 동시에 겨냥할 수 있는 영국의 전략 핵잠수함으로 이 잠수함에 실린 핵탄두 한 개는 1945년 히로시마에서 15만명의 목숨을 순식간에 앗아간 ‘리틀 보이’의 8배나 되는 파괴력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1999년 10월 20일, 그리녹 셰리프 법원의 마가렛 김블릿 판사는 이 세 사람에게 무죄를 선고합니다. 인류에게 큰 위협이자 범죄행위인 핵잠수함의 시스템을 파괴한 행위는 더 큰 범죄를 예방했다는 차원에서 불법이라 할 수 없다는 판결을 내린 것입니다. 

1971년 6월13일 뉴욕 타임스는 베트남전쟁에 관한 미국정부 극비 문서인 일명 ‘펜타곤 페이퍼’를 6개면에 걸쳐 폭로했습니다. 뉴욕 타임스는 미국이 베트남 참전의 구실로 내세운 ‘통킹만 사건’은 북베트남의 도발로 촉발된 것이 아니라 미국 군대가 조작한 사건이라는 사실을 밝혀낸 것입니다. 요약하면 ‘공해상에서 공격받았다는 미 구축함 매독스호는 사실 북베트남 영해를 수시로 넘나들던 정보 수집 함정이었으며, 북베트남 어뢰정이 미 구축함을 공격했다는 증거가 없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때까지만 해도 북베트남을 전쟁 도발 국가로 알고 있었던 미국 국민들은 큰 충격에 빠졌습니다. 뉴욕 타임스의 후속 보도와 워싱턴 포스트의 보도가 이어지면서 베트남전쟁이 미국정부와 군수기업체, 광신적 반공주의자들이 결탁한 침략 전쟁이었다는 사실이 만천하에 드러났습니다. 미국의 베트남전 패망을 이끈 이 문서의 제공자는 대니얼 엘스버그는 전직 해군 장교로 원래 베트남전쟁을 지지했으나 진실을 알게 된 후 양심을 저버릴 수 없어 문서를 작성해 뉴욕 타임스에 넘긴 것입니다. 법률 위반에 대한 지적과 문서를 반환할 것을 요구에 이어 닉슨 정부의 출판금지가처분 신청이 법원에서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러자 뉴욕타임스는 즉시 연방대법원에 항소하게 되었는데, 연방대법원은 6-3 판결로 뉴욕타임스의 손을 들어주었습니다. 

뉴욕타임즈의 펜타곤 페이퍼 보도 사건과 영국의 그리녹 재판은 평화와 정의 실현을 목적으로 하는 표현의 자유가 어떠한 이익보다 우선되는 가치라는 것을 보여줍니다. 그러나 모두 알다시피, 문재인 대통령은 2018년 10월 11일 해군기지 문제로 오랜 기간 갈등에 휩싸였던 제주 강정마을 주민들을 직접 만나 고개를 숙였습니다. 이 자리에서 대통령은 "정부가 절차적인 정당성과 민주적 정당성을 지켜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깊은 유감을 표하고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라고 사과했습니다. 그러나 국가가 사과한 것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국가가 저버린 책무는 그렇게 끝날 수 없습니다. 평화를 바라는 시민 모두는 폭력으로 지어진 해군기지를 받아들일 수 없는 것입니다. 국책사업 공무라는 형식을 갖춰 국민을 압도하며 사업을 밀어붙일 때, 그조차 국가가 국민을 설득해서 만든 가치를 스스로 위반하여 폭력을 행사할 때, 그리고 그러한 과정으로 국가시설이나 군사기지가 완공되었다고 그 국민이, 시민이 계속 질문하지 않았다면 이만큼의 평화를 우리는 가져오지 못했을 것입니다. 이만큼의 민주주의 역시 가능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들이 군사시설 보호구역에 입장하여 국가안보에 심각한 문제를 일으켰다는 군의 판단과는 반대로 이러한 평화에 대한 갈망과 각성이야말로 군대를 비롯한 우리 모두가 선취해야 할 진정한 평화를 추동하는 것입니다. 

송강호와 류복희의 몸은 구속할 수 있어도, 그것이 진정한 평화와 정당한 절차를 요구하는 시민의 양심과 자유의지를 구속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안보 논리만 앞세워 국가가 저지른 일을 은폐하고 양심의 자유를 억압하는 일, 저항할 권리를 뭉개는 일이야말로 폭력입니다. 송강호와 류복희는 죄가 없습니다.

평화활동가 엄문희씨
평화활동가 엄문희씨

(이 글은 ‘비무장 평화의 섬 제주를 만드는 사람들’ 선언문과 백신옥 변호사의 ‘표현의 자유와 평화, 법원의 역할’ 강연문 자료, 핫핑크돌핀스의 조약골 활동가의 글을 참조했습니다.)<평화활동가 엄문희>

 

*외부 기고는 본지의 편집방향과 일치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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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가 2020-03-31 16:18:47
어린시절 친구들과 공을 차던 공터가 있었다. 산에서 나무를 주워다가 우리만의 아지트를 만들기도 했다. 그런데 어느 순간 어른들이 나타나 공터에서 우릴 내쫒더니, 큰 주택을 세웠다. 친구들과 난 우리의 추억을 지켜달라고 떼썼지만 소용없었다. 시간이 지나 나도 어른이 됐고, 다시 공터를 찾았다. 어린시절이 그리웠다. 집 주인에게 들어가게 해달라고 요청했지만 거절당했다. '서로 불편해질 것'이라며 협박했지만 통하지 않았다. 결국 주택의 대문을 따고 들어갔고, 한 시간 가량 머물다 나왔다. 집 주인이 신고를 했는지, 경찰이 왔고 난 주거침입으로 구속됐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다. 친구들이 내가 죄가업다고 말한다. 친구들에겐 미안하지만 사실 난 환각상태였다. 누가 제정신으로 남의 집 문을 딴단 말인가.
(자작소설임)

루시아 2020-03-30 14:43:20
위 글에 몇 대목은 몇 자료들의 내용을 거의 그대로 옮긴 것으로 보입니다. 출처를 기사에 같이 언급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갈꺼야 2020-03-30 12:20:45
그들의 행동이 설령 실정법 위반이라 하더라도 처벌해서는 안된다. 전투에서 패배한 군인은 용서할 수 있지만 경계에 실패한 군인은 용서할 수 없다.
그게 무슨기지꽈? 유원지만도 못헌 해군기지 설러붑써~~~

도민 2020-03-30 10:20:48
[기고](법은 무시하면서)저항할 권리

올바른 저항 2020-03-30 01:49:23
그렇다 송강호와 류복희는 죄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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