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는 코로나 피난처가 아니다. 이기적 엔조이 여행객은 필요 없다. 최악의 경우다”

어조는 강경했다. 표정에는 분한 기운이 또렷했다. 좀처럼 볼 수 없었던 모습이었다.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쉽게 화를 내는 편이 아니라고 한다. 화를 돋우는 일이 있어도 속으로 삭이는 편이라고 했다. 이러한 표정관리를 ‘정치적 내공’으로 설명하는 이들도 있다.

그러나 이날은 달랐다. 작심한 듯 표현은 격렬했고 비판은 거칠었다. 얼굴에 분기를 감추지 않았다.

지난 26일 제주도청 기자실에서 열었던 ‘코로나 19’ 브리핑에서다.

그렇다면 그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던 것인가. ‘코로나 19’ 상황이 만들어낸 것이었다.

제주에서의 ‘코로나 19’ 첫 확진자는 지난 2월21일 발생했다. 타 지역으로 휴가 갔다가 귀대한 군 장병이 확진 판정을 받았다.

이때까지 제주는 국내 첫 확진자가 나온 이후 한 달 간 ‘코로나 19’ 확진자 제로의 청정지역이었다.

이 때문에 제주 코로나 확진자 발생 이틀 전(2월18일)까지만 해도 원지사는 재래시장 일대를 돌며 지역상권 활성화 방안 등 경제관련 민생행보에 주력하고 있었다.

그리고 공직자들에게 ‘코로나 19 제로 청정제주’ 이미지를 적극 홍보하고 소비활동 활성화에 참여하도록 독려하기도 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제주의 첫 ‘코로나 19’ 확진자 발생은 원지사나 도민 입장에서는 충격적 일 수밖에 없었다. ‘청정의 좌절’이었다.

그 후 확진자가 4명으로 늘어났고 제주도는 준전시 체제에 돌입 했다.가능한 수단과 방법을 동원해 ‘코로나 19’와의 전쟁에 나섰던 것이다.

이 때문인지 지난 4일의 4번째 확진자 발생이후 23일 현재 19일 간 제주에서는 확진자가 한 명도 나오지 않았다.

이로 인해 또다시 사회일각에서는 희망 섞인 성급한 ‘코로나 19’ 청정지역 선포이야기가 나오기 시작했다.

그런데 좋은 일 다음에는 마(魔)가 끼는 것인가. 호사다마(好事多魔)라 했다.

지난 20일부터 24일까지 제주도에서 여행을 하고 서울로 돌아간 강남 거주 유학생 모녀 일행 중 모녀가 서울에서 확진 판정을 받은 것으로 알려지면서 제주전역이 발칵 뒤집혔다.

‘코로나 19’ 청정지역 꿈의 좌절도 그렇지만 그 두 모녀의 발칙한 일탈이 제주도민을 분노케 하고 있는 것이다.

문제의 유학생 딸은 지난 15일 미국에서 입국했다. 당연히 2주간의 자가 격리 대상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4일간 자가 격리해야 한다’는 정부의 방역지침을 지키지 않고 귀국 5일후인 20일 어머니 등과 함께 제주에 여행을 왔던 것이다.

제주에 도착한 20일 저녁부터 오한과 근육통 및 인두통을 느꼈다고 했다. 23일 오전에는 숙소 인근 병원을 방문할 정도였다. 이처럼 심각 수준의 유증상을 보였음에도 아랑곳없이 여행을 강행했던 것이었다.

이 때문에 도민사이에서는 “제주에 코로나 19 바이러스를 뿌리기 위해 여행을 했던 것 아니냐”는 풍화되지 않은 격한 된소리가 쏟아졌다.

이들 모녀의 ‘고의성’에 대한 질타였다. ‘미필적 고의’라는 말이 나오는 이유다.

이들이 다녔던 곳은 제주시 시내 권은 물론 애월읍, 성산, 우도 등 20여 곳으로 파악되고 있다. 접촉자는 38명으로 알려졌으나 100여명에 이를 것이라는 추정도 있다.

이들이 휘젓고 다닌 ‘코로나 여행’이 제주에 얼마나 큰 해악을 끼쳤는지, 또 이로 인한 도민의 불안이나 의료진 등 희생적 방역담당자들의 허탈감이 어느 정도인지, 생각 할수록 부아가 치밀지 않을 수 없다.

공교롭게도 유학생 모녀가 제주를 다녀간 후 제주에는 5명의 확진자가 더 발생했다. 지금까지 총 9명의 확진자 중 4명은 완치해 퇴원했고 5명은 입원 치료중이다.

비록 유학생 두 모녀가 뿌린 바이러스에 의한 것은 아니라 해도 그 상징성은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원지사의 평소 그 답지 않은 ‘분노의 브리핑’도 이 같은 일련의 상황전개에서 비롯됐을 공산이 크다.

이에 따라 도 당국은 이들 모녀에 대해 1억 원 상당의 손해배상을 청구할 계획이며 형사적 책임도 묻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계량할 수 없는 사회적 경제적 정신적 피해와 도민적 정신공황 상태를 감안하면 당연한 조치다.

‘코로나 19’ 예방 수칙 이행에 대한 경각심을 높이기 위해서도 그러하다.

그런데 이러한 도당국의 조치에 대한 서울 정순균강남 구청장의 반응이 도민적 분노의 감정에 불을 붙였다.

강남 구청장은 예의 유학생 모녀가 거주하는 서울 강남구의 자치단체장이다.

정구청장은 27일 ‘제주도의 손해배상 소송 제기 방침’과 관련해서 문제의 두 모녀도 코로나 19발생으로 인한 ‘선의의 피해자’라고 말한 것이다.

정구청장은 ‘제주 여행 이후 확진 판정을 받은 강남 구민에 대한 구청장 입장’을 통해 “제주의 손배소 방침이 알려지면서 두 모녀가 사실상 정신적 패닉 상태에 빠져 있다“고했다. 그러고는 ’두 모녀도 선의의 피해자‘라는 발언을 했던 것이다.

이에 대해 상당수 도민들은 ‘제주도와 제주도민들을 우습에 여기는 망언“이라고 거센 반응을 보이고 있다.

정구청장의 말대로라면 ‘코로나 19’를 뿌리고 다녔던 두 모녀는 ‘선의 의 피해자’이고 이로 인해 전전긍긍하는 전체 제주도민은 ‘악의적 가해자’라는 말인가.

피해에 시달리는 제주도와 제주도민에게 위로를 보내고 고개 숙여 사과는 못할망정 기초단체장이 제 지역 주민만 챙기려는 분별없는 편협성에 대한 네티즌들의 비판도 거세다.

모든 행동에는 결과가 따르게 마련이다. 방역지침을 어긴 두 모녀는 그에 상응한 책임을 져야 하는 것이다. 감싸고 변명으로 잘못을 덮으려는 것은 옳은 일도 아니고 무책임한 일이다.

아주 사소한 일탈이 큰 재앙을 부른다는 말이 있다. ‘바늘구멍이 둑을 무너 뜨린다’는 속담 역시 이에 대한 경구(警句)다.

‘코로나 19’ 방역 및 대응 안전 수칙도 여기서 벗어 날 수 없다.

규칙을 지키는 수칙은 나의 안전을 지키는 일이기도 하지만 공동체의 운명을 지키는 것이다.

‘두 모녀의 일탈‘을 감싸려는 서울 강남구청장이 반성하고 경청해야 할 대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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