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일 제주지방법원 앞에서 제주4·3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도민연대가 ‘제3차 4·3수형 피해자 재심청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2일 제주지방법원 앞에서 열린 ‘제3차 4·3수형 피해자 재심청구’ 기자회견에서 이재훈 할아버지(가운데)가 소감을 말하고 있다. 왼쪽은 고태삼 할아버지. (사진=조수진 기자)

72년 전 영문도 모른 채 경찰에게 끌려가 옥살이를 한 두 소년. 아흔이 넘어서야 억울함을 말할 수 있는 용기가 생겼다. 

92세 고태삼 할아버지는 지난 1947년 6월 6일 제주시 구좌읍 종달리 동네 청년 모임에 나갔다. 열흘 뒤 집회 장소에서 경찰관과 청년들 간 충돌 과정에서 경찰을 때렸다는 누명을 쓰고 세화지서로 끌려가 기절할 때까지 매를 맞았다. 

다음날 제주경찰서에 유치됐지만 조사도 받지 않고 법원에서 공무집행방해죄와 감금죄, 폭행죄 등의 혐의로 징역형을 받은 뒤 인천형무소에서 1년을 복역했다. 고 할아버지의 억울한 누명은 자녀들에게까지 이어졌다. 그의 아들은 원양어선 승선면허증이 있어도 승선을 하지 못했고 교사인 딸은 상당 기간 발령받지 못했다. 

91세 이재훈 할아버지는 지난 1947년 8월 13일 북촌마을 주민 3명이 제주경찰서 경관들이 쏜 총에 맞았던 현장에서 멀지 않은 북촌 버스정거장에서 서 있다가 마을사람들이 함덕으로 몰려갈 때 따라갔다. 함덕지서 순경이 “어디 사느냐”고 묻자 “북촌”이라고 말하자마자 구금됐다가 학교 선생님의 도움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하지만 다음날 다시 체포돼 일주일 넘도록 밤마다 불려가 매를 맞거나 물고문을 당했다. 구타는 “삐라를 봤다”고 말할 때까지 계속 됐고 내란죄 혐의 등으로 재판에서 단기 1년·장기 2년 징역형을 받았다. 이후 인천형무소에 수감돼 1년6개월을 옥살이했다. 

2일 제주지방법원 앞에서 제주4·3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도민연대가 ‘제3차 4·3수형 피해자 재심청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2일 제주지방법원 앞에서 제주4·3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도민연대가 ‘제3차 4·3수형 피해자 재심청구’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청구 소송인인 고태삼 할아버지(왼쪽에서 두 번째)와 이재훈 할아버지(가운데). (사진=조수진 기자)

제주4·3 72주년을 하루 앞둔 2일 제주4·3 진상규명과 명예회복을 위한 도민연대(대표 양동윤)가 ‘제3차 4·3수형 피해자 재심청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도민연대는 “두 할아버지가 미 군정 하에서 영장 등 절차도 없이 구타와 고문 끝에 어떤 조력도 없이 일반재판에 넘겨졌다”며 “두 미성년자가 자신을 방어하거나 변명할 위치에 있지 않은 상태에서 재판을 받았다면 이것은 ‘초사법적 국가범죄’”라고 주장했다. 

이어 “두 분은 영장 없이 체포됐고 경찰의 살인적 취조와 고문을 받은 뒤 이름만 호명하는 재판에 따라 형무소로 이송됐다”며 “오늘날 이 분들의 판결문과 형사사건부 등이 존재하지만 판결문 어디에도 두 분의 범죄 사실이 구체적으로 적시하고 있지 않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미군정 하에 무고한 제주의 어린 학생과 소년에게 가한 국가 공권력은 명백한 ‘국가범죄’”라며 “이분들은 구순이 돼서야 평생의 한을 풀기 위해 이 자리에 나섰다. 70년이 넘도록 전과자 신세로 살아온 누명을 벗기 위해 72년 전 어린 소년들에게 채운 족쇄를 풀기 위해 재심을 청구한다”고 호소했다. 

이날 이재훈 할아버지는 “그동안 겪은 고생을 생각할 때 너무 억울하고 한심하다”며 “억울함을 하소연할 데가 없어서 지금까지 참고 있었다. 이런 기회를 줘서 감사하다”고 말했다.

앞서 두 차례에 걸친 4·3생존수형인 재심 청구를 맡았던 법무법인 해마루 소속 김세은·임재성 변호사가 이번에도 두 할아버지의 재심 청구 소송 대리인으로 함께 한다. 

임재성 변호사는 “재심이 개시되려면 판결에 불법성이 존재하는지, 수사 과정에서 구금과 고문이 있었는지를 밝혀야 한다”며 “너무 오래된 사건이라 당시 고문당한 분들이 진술해 최소한 불법 고문을 입증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이어 “(지난해 4·3 생존수형인 18명이 공소 기각 판결을 받은 재심은)불법구금이 있었다는 조사보고서가 있었고 공소 기각 판결이라는 선례가 있는 반면 이번 일반재판은 공인된 보고가 이뤄지지 않았고 선례가 존재하지 않아 선례를 만들어야 한다는 부담감이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불법 고문을 당한 일을 증언을 통해서 입증할 기회가 있다면 재심을 개시하는 데 유력한 증거로 작용할 것으로 예상한다”며 “신속하게 기일을 열어서 입증 사실을 밝혔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기자회견이 끝나고 두 할아버지는 재심청구서를 접수했다. 

저작권자 © 제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