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은 차가운 2월..

숲 속은 조용한 듯 하지만 햇빛과의 전쟁을 치루는 중이다.

앙상한 숲 속 나뭇잎이 그늘을 만들기 전 낙엽수림대 아래에는

남들 보다 먼저 겨울잠에서 깨어난 봄의 전령사

언 땅을 뚫고 나왔던 얼음새꽃 '세복수초'가 노란 얼굴을 내밀었다.

하얀 치맛자락을 살짝 들어올린 가냘픈 몸으로 한껏 뽐을 내는 변산아씨 '변산바람꽃'

이에 질세라 봄비와 나뭇잎을 이불삼아 보송보송 솜털을 단

앙증맞은 '새끼노루귀'도 기지개를 켠다.

[세복수초]
[변산바람꽃]
[새끼노루귀]

전형적인 이등변삼각형의 모습을 한 큰노꼬메의 위엄

이웃한 다정다감한 족은노꼬메는 정답게 마주 앉아 있어서

오름 모양새나 형체가 조화를 이루고 있어

이곳에서 바라보는 모습은 하나의 오름처럼 착각이 든다.

봄을 여는 봄꽃들의 향연이 펼쳐지는 숲 가장자리에는

천진난만한 모습의 '구슬붕이'

길에서 흔히 만날 수 있는 어릿광대 '광대나물' 

허리를 꼿꼿이 세운 '가는잎할미꽃'

밝은 표정으로 하늘을 향한 '민들레'가 슬쩍 끼어들어

봄의 요정 선발대회에 이름을 올렸다.

[구슬붕이]
[광대나물]
[가는잎할미꽃]
[민들레]

숲길을 벗어나 소나무림을 지나면

부드러운 능선의 한라산과 대평원이 눈 앞에 펼쳐진다.

조릿대 사이로 얼굴을 내민 소박한 모습의 생명력 강한 하얀 '남산제비꽃'

등산로 가까이 바닥에 납작 엎드린 채 봄처녀 '산자고'가 봄마중 나왔다.

[남산제비꽃]
[산자고]

아직은 차가운 바람이 머무는 360도 전망대

바다 방향으로 희미하게 드러난 비양도와 이웃한 바리메와 족은바리메

멀리 산방산을 중심으로 펼쳐지는 서부지역 오름군락의 파노라마

한라산 치맛자락을 타고 내려온 겹겹이 이어지는 오름군락,

열두 폭 병풍에 수채화를 그려내 듯 마법같은 풍경이 펼쳐진다.

산부추가 있던 곳에는 '별꽃'이 자람터를 넓혀가고 

돌 틈 양지바른 곳에 활짝 핀 '양지꽃'

하늘빛 미소가 아름다운 '큰개불알풀(봄까치꽃)'도 정상의 봄을 노래한다.

[별꽃]
[양지꽃]
[큰개불알풀(봄까치꽃)]

끝없이 이어지는 직각에 가까운 가파른 계단

따스한 햇살과 향기를 품은 바람, 맑음이 펼쳐지는 숲길

겨우내 움츠렸던 새 생명은 세상 밖으로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다.

꽃잎을 활짝 연 유독식물 별사탕 꽃 '개감수'

습기가 있는 그늘을 좋아하는 작은 꽃 '벌깨냉이'

하늘을 수놓던 은하수가 땅 위로 살포시 내려와 바닥을 수놓는 '큰개별꽃'

그늘진 산길에서 만난 하얀 꽃잎에 수놓인 붉은 줄무늬 '큰괭이밥'

사랑초의 잎을 닮은 실핏줄 속살을 드러낸 귀한 모습은

빛나는 마음이란 꽃말보다 더욱 빛이 난다.

[개감수]
[벌깨냉이]
[큰개별꽃]
[큰괭이밥]

걸을 때 마다 봄을 밟는 소리

앙증맞은 이름도 별난 골짜기의 황금 '흰괭이눈'

길고 말린 잎이 멋있는 별을 닮은 '중의무릇'

바람꽃 속 식물 가운데 꽃잎 모양의 꽃받침수가 가장 많은 하얀 속살을 드러낸 '꿩의바람꽃'

한 발짝 한 걸음 그냥 스치기엔 너무 아쉬워 담고 또 담아낸다.

[흰괭이눈]
[중의무릇]
[꿩의바람꽃]

걷기만 해도 기분 좋아지는 숲길

조선시대에 제주지역의 중산간 목초지에 만들어진 목장 경계용 돌담인 잣성

상잣성은 말들이 한라산 삼림지역으로 들어갔다 얼어죽는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만들어졌고

오름~목장탐방로를 조성하여 중산간의 목축문화를 느낄 수 있도록

상잣질을 조성하였다.

통바람이 부는 삼나무숲

보기만 해도 힐링이 되는 상잣질에는 한꺼번에 봄을 깨우는

허리를 꼿꼿이 세운 당당한 모습의 '개구리발톱'

군락을 이룬 고양이 눈을 닮은 '산괭이눈'

자연이 그려낸 아름다운 자주빛깔 쥐방울 '개족도리풀'

쪽빛 바다를 이룬 진초록 잎이 아름다운 '산쪽풀'

종달새의 아름다운 노랫소리가 들리는 듯 '현호색'의 화려한 외출이 시작되었다.

[개구리발톱]
[산괭이눈]
[개족도리풀]
[산쪽풀]
[현호색]

황량한 숲, 낙엽 속에서 막 새순을 틔워 기지개 켜는 어린 꽃들

밟힐까 조심, 또 조심하며 담았던 봄꽃들이 이어달리기를 하는 동안

제주의 거센 바람을 이겨내고 봄나들이 나온 '새끼노루귀'

흔적을 남기고 봄바람 타고 사라져버린 '변산바람꽃'

초록 치마에 샛노란 저고리로 갈아입은 '세복수초'는

황금물결 꽃길을 걷게 해준다.

[새끼노루귀]
[변산바람꽃]
[세복수초]

봄을 부르는 생명이 속삭이는 상잣질

자연의 사랑을 먹고 자란 찬란한 이 봄의 꽃들

따뜻한 온기로 나무 잎새는 아침마다 색을 달리하고 븕은 몽우리가 아직이지만

짧은 봄날을 더욱 화사하게 만들어 줄 오름 가장자리에 자리잡은 '올벚나무'

봄바람 휘날리며 왕벚꽃의 향연이 곧 펼쳐질 4월의 봄

한꺼번에 봄을 깨우는 소리가 넘쳐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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