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근/ 아라요양병원 원장

우리나라에 코로나 19(COVID 19) 첫 환자가 발생한 이래 75일이 지나는 사이에 확진환자 누적 수는 만 명에 육박하였고, 사망자도 165명을 넘었다. 그 사이 5000명 이상의 환자가 완치판정을 받았으나 아직도 4000여 명이 치료를 받고 있다.

작년 11월에 시작된 우환괴질이 코로나 바이러스의 변종이라 알려졌을 때만 하더라도 과거 코로나 바이러스 변종인 SARS나 MERS를 떠올리고 불안에 떨었지만 이내 치사율이 이들만 못하다는 것이 알려지면서 안심했다. 그러나 전염력이 이들보다 훨씬 강하다는 것을 눈치 채지 못하는 바람에 방비에 소홀함이 있었다. 더구나 SARS나 MERS와는 달리 증상이 나타나기 전에 이미 전염력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다. 그 결과 모 종교단체에 의해 집단감염으로 퍼지면서 대구, 경북 지역이 완전히 초토화되었다. 대구 지역의 집단감염이 일어나기까지 충분한 시간이 있었으므로 집단감염이 일어나라라 예측하였더라면 미리 대비책을 마련할 수도 있었으나, 우리나라에서는 잘 조절되고 있다고 여기는 바람에 엄청난 혼란을 초래하였다. 사실 이번에 크게 문제가 된 마스크 품절이나 생활치료시설 같은 것은 미리 예측만 하였더라면 우리나라 형편에서는 그리 크게 문제가 될 것이 아니었다.

이제 코로나 19는 전 세계적으로 퍼져나가 우리나라를 비웃던 나라들이 우리에게 도움을 요청하는 지경이 되었고, 우리나라 의료가 얼마나 앞서있는가를 세계에 알리는 기회가 되었다. 이번에도 우리나라 특유의 순발력이 발휘되어 짧은 시간 내에 하루에 만 명이 넘는 인원을 검사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고, ‘드라이브 스루(drive through)’나 ‘글로브 월(glove-wall)’ 등 검사를 안전하고도 신속하게 할 수 있는 방법들을 고안해 세계인들의 칭찬을 받고 있다.

어차피 이제 코로나 19는 세계화가 되었다. 일반적으로 치사율이 높으면 바이러스 특성 상 상황이 빠른 시일 내에 정리가 되는데, 치사율은 낮은데 전염력은 강하니 오래 갈 수밖에 없다. 그러니 결국 우리들은 ‘사회적 거리 두기’와 개인위생을 철저히 지키는 수밖에 다른 방도가 없게 되었다.

이번에도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요양병원은 집단감염에 매우 취약하다. 직원이나 환자 중에 환자가 생기면 바로 다른 환자들에게 전파 되고, 또 환자분들이 대부분 면역력이 약해져 있기 때문에 치사율도 높기 마련이다. 따라서 우리병원(아라요양병원)에서는 제주도에 두 번째 환자가 발생하자마자 문병객을 완전 차단하고, 직원들은 일체 경조사(慶弔事)나 여러 사람이 모이는 곳에 가지 말고 개인위생을 철저히 지키도록 엄명을 내렸다. 처음에는 보호자들의 항의를 많이 받았으나 대구 사태가 알려지면서 이해해 주셨고, 여러 요양원이나 요양병원에서 집단 발병이 생기자 이제는 고맙다고 하시는 분들도 계신다.

개인적으로는 제주도에 환자가 발생하였다는 소식이 들릴 때마다 신경이 곤두선다. 병원 종사자가 100명이 훌쩍 넘다 보니 아무리 단속을 잘 한다 하더라도 증상이 없는 사람을 만나도 전염이 되니 방법이 없다. 그저 운에 맡길 수밖에.

그러나 한 달이 지나면서 보니 나쁜 것만 있는 것도 아니다. 모임을 전부 취소하다 보니 시간이 생긴다. 덕택에 그동안 읽으려고 사 두었던 책들을 읽을 시간이 나고, 특히 손자들이 읽었으면 하는 책들을 내가 먼저 읽고 전할 수 있게 되었다. 특히 병원에서 책을 읽는 두어 시간을 방안에서 걷거나 서서 읽으니 운동도 되어 일석이조(一石二鳥)다. 또 함께하기가 어려웠던 아내와 매일 오붓하게 저녁을 함께하니 아내가 무척 좋아하여 나 또한 즐겁다. 모두들 어려워하고 있는데 이런 즐거움을 느낀다는 게 한편 죄송하기도 하다.

또 국민들 사이에 공동체의식이 강화된 것 같고, 개인위생을 지키는 사람들이 많아졌다는 것도 덤으로 얻은 소득이다. 의료기술이나 국민 참여로 국격(國格)이 높아진 것도 자랑스럽다. 우리 국민들이 어려운 환경에 처하면 똘똘 뭉쳐 헤쳐 나가는 모습이 다른 나락 국민들 사이에는 경이롭게 보이나 보다. 역사적으로 보아도 우리 국민과 같은 경우는 매우 드물다. 임진왜란 때나 일제 강점기의 의병이나 끈질긴 독립운동, 국채상환운동, 국민계몽운동뿐만 아니라, 4. 19나 광주 민주화운동, 박 대통령 탄핵 사태 시에도 치안이 제대로 유지되고, 태안반도의 석유오염 때의 자원봉사활동, IMF 당시의 금모으기, 그리고 지금 코로나 사태에서도 여러 나라에서 보이는 생필품 사재기가 없는 것 등은 정말 세계인의 부러움을 살 만한 것들이다.

시간이 지나면서 국가적으로 경제에 많은 어려움이 쌓이고 있다. 특히 관광이 주요 산업인 제주도인 경우 타격이 심하다. 관광객이 많이 오면 병이 확산될까 걱정이고, 없으면 경제가 파탄 나는 것이 두렵다. 경제란 것이 돈이 돌아야 하는 것인데 모두들 집에만 움츠리고 있어서 돈이 돌지 않는다. 아직 제주도에서는 관리가 잘 되고 있고, 집단감염에 대하여 대부분 도민들이 인식하고 있으니 대구와 같은 일은 벌어지지 않을 것 같다. 그러니 모임이 취소되는 바람에 남아도는 시간을 유익한 책읽기와 운동으로 선용하며, 개인위생을 철저히 지키면서, 감염되지 않은 것이 확실한 가족들과 사람이 붐비지 않는 곳을 골라 나들이하는 것도 도민경제와 가족들의 화합을 위해 크게 도움이 될 것이다. 정신건강에도 유리할 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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