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근/ 아라요양병원 원장

중국 우한에서 괴질이 발생하였다는 것이 알려진 후 4개월이 되는 사이에 이 병이 세계로 퍼져 나가 4월이 되면서 100만 명 가까이 감염되고 5만 명이 넘게 사망하는 상황으로 악화되었다. 중세 유럽에서 창궐한 페스트나, 1차 세계대전 당시의 스페인 독감과 같이, 21세기 최악의 상황으로 기록되지 않을까 두렵다. 20세기 중반에 WHO에서 팬데믹(Pandemic, 세계적으로 퍼진 유행병)으로 명명된 홍콩독감이나 21세기 초의 멕시코 독감 못지않은 피해를 일으킬 것 같다. 상황이 이렇게 된 데에는 각국의 정치 지도자들의 안이한 판단이나 정치적 고려가 한몫했다고 여겨진다.

이번 사태가 진행하면서 두 나라가 모범적 사례로 거론되고 있다.

첫 대응에 성공한 케이스로는 대만이 꼽힌다. 대만은 중국에서 코로나 19의 대 유행이 시작되자마자 중국에서 오는 항공편을 폐쇄하여 국내로의 전파를 차단하였다. 그 결과 중국과 교류가 많음에도 불구하고 인구비례로 따지면 중진국 이상에서는 가장 발생률이 낮은 국가가 되었다. 몽고 등 외국과의 교류가 적은 나라를 제외한다면 단연 성공적이라 할만하다.

우리나라는 초기에 공항검역을 강화하여 어느 정도 성과를 거두었으나, 대구에서 집단감염이 발생하자 준비부족이 바로 드러났다. 중국에서 감염의 근원지인 우한을 폐쇄하는 상황이 발생하는 것을 보면 집단감염에 대한 대비책을 마련해야 하는데 그렇지 않았다가 낭패를 보았다. 그 결과 초기에는 우리나라는 환자 수가 중국에 이어 2위가 되었으나, 이후 적극적인 방역대책이 가동되면서 환자 수로는 세계 14위, 그리고 발생률로는 세계 17위가 되었다. 우리나라 실정으로 보면 미리 예측만 하였어도 마스크 대란이나 감염자의 자가격리라는 엉터리 처방이 생길 것이 아니었다. 하루에 1200만 개의 마스크를 생산할 수 있으니, 한 달 동안 수출만 통제 했어도 충분한 양의 마스크를 확보할 수 있었다. 그러면 가수요도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고 사재기나 매점매석 행위를 꿈꾸는 사람도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마스크 생산이라든가 유통 과정을 이해하고 있었다면 대책을 자꾸 바꾸는 그런 실수도 줄일 수 있었을 것이다.

우리나라처럼 지자체나 국영기업 혹은 대기업들이 연수 또는 교육시설을 많이 가진 나라는 없을 것이다. 즉 평소에 쓰이지 않는 많은 유휴시설들이 있으니 언제라도 다급하면 상황이 심각하지 않은 환자들을 격리하여 수용할 수 있는 생활치료시설로 전용하여 쓸 수가 있다. 이 시설들을 순차적으로 쓸 것으로 계획만 세워 두었어도 자가격리란 제도로 집에서 환자가 사망하는 그런 혼란은 겪지 않아도 되었을 것이다.

다음으로 집단감염이 생길 수 있다는 사실을 예측하고 많은 사람들이 근접하여 모이는 것을 자제하도록 대 국민 홍보를 하였더라면 사태가 덜 심각했지 않았을까 하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하지만 사태가 악화된 이후에는 우리 국민 특유의 순발력과 뭉치는 힘에 의해 세계가 놀랄 정도로 사태가 수습되어가고 있다. 민간 기업들의 발 빠른 진단검사키트 생산과, 드라이브 쓰루(drive-through)나 글로브 월(glove-wall)과 같은 안전하고 빠르게 검사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해내는 것이라든가, 전국 각지에서 의료인들이나 방역진, 소방대원들이 봉사 대열에 참가하기 위해 대구로 모이고, 모자라는 의료용품이나 음식물, 또는 후원금을 제공하는가 하면, 전 국민들이 개인위생을 지키기 위해 힘쓰는 등 정부의 노력에 아낌없는 동참을 하는 모습은 정말 세계인들을 감동시키기에 조금도 모자람이 없었다. 덕택에 우리나라 국격(國格)이 많이 높아진 것 같아 가슴 뿌듯하다.

그런데 이런 성과가 우리나라 의료의 공공성이 다른 나라보다 뛰어나서 그렇게 된 것은 아니라는 것을 국민들께서 이해해야 한다. 지금 한참 곤욕을 치르고 있는 유럽 여러 나라들은 우리나라보다 훨씬 공공의료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다. 만약 우리나라 공공 의료 시스템이 지금보다 낫다고 이 사태에 지금보다 더 잘 대처할 수 있었을까? 필자는 아니라고 본다. 우리나라에서 민간의료가 많은 부분 공공의료를 담당하고 있어서 이런 성과를 이룰 수 있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러니 더 이상 공공의료가 확충되어야 국민의 건강이 지켜질 것이라는 망상을 버렸으면 한다. 그리고 공공의료가 확충되는 것만큼 국민의료비가 증가한다는 사실을 인식했으면 한다. 다만 어떻게 하면 민간이 공적 역할을 효율적으로 담당할 수 있는지에 대해 지혜를 모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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