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특별자치도 전(前)도지사 김태환, 산수(傘壽)의 나이다. 최근 ‘나이 80 인생역정(人生歷程)’을 담은 회고록 ‘제주는 나의 삶이어라’를 내놨다.

가난했던 시골 소년의 성장과정과 파란만장했던 ‘공직 45년’ 삶의 여정을 촘촘하게 엮어낸 회상록이자 회고록이다.

필치는 담담했다. 문장은 기교를 부리지 않고 간결했다. 꾸밈이 없었다. 팩트를 근거로 했지만 딱딱하지 않았다. 마치 소설 속 이야기처럼 흥미진진했다.

자칫 자서전 등 자전적 문장이 갖기 쉬운 자기미화나 합리화의 오류에 빠지지 않았다. 조곤조곤 이웃과 이야기 나누듯 부드럽고 편안했다.

제주사람들은 알 것이다. 김전지사는 제주사람 중 몇 안 되는 입지전적(立志傳的) 인물이다. ‘시작은 미미했지만 끝은 창대하리라“는 말을 떠올리게 하는 사람이다.

시작은 제주시 말단인 9급 공무원이었다. 이를 시작으로 제주도 요직을 거치고 남제주군수, 제주시장, 1급 관리관인 제주도부지사까지 승승장구했다.

이에 더해 민선제주시장 8년, 민선 제주도지사 6년 등 ‘공직 45년’의 금자탑을 쌓아 올렸다.

이러한 성취는 어디에서 왔던 것일까. 회고록 프롤로그에서 그는 스스로 ‘남들보다 능력이 뛰어난 사람이 아니’라고 했다. ‘가진 것은 매사에 최선을 다하는 성실과 열정과 책임감 뿐’이라는 것이다. 그러면서 ‘늘 행운이 뒤따랐기 때문‘이라고 겸손해 했다.

‘부지런 함’은 그의 트레이드마크나 다름없다. 이러한 부지런과 열정과 책임감이 어우러져 일련의 성취를 이뤄냈을 것이다.

독일의 사회사상가 막스베버는 ‘직업으로서의 정치’에서 정치가에 필요한 자질은 ‘열정·책임감·균형감각’이라고 했었다.

김전지사의 행정적 정치적 성취도 이와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은석이 아빠, 지치지도 않으꽈?”.

10년 전 그의 아내가 한말이라고 했다. 은석이는 큰 아들 이름이다. 아내는 6년 전 이승을 떠났다.

김전지사는 회고록 뒤표지에 이 말에 대해 설명했다. ‘좀처럼 이야기를 하지 않고 말을 아끼는 아내가 어느 날 “은석이 아빠, 지지치도 않으꽈?”라고 했다는 것이다.

‘지치다’는 ‘힘이 들거나 시달림을 받아 기운이 쇠약해지다’는 말이다. 사전적 의미로서는 그러하다.

이 말속에는 너무 부지런히 일만하느라 힘이 빠진다는 뜻도 포함된다. 상대에 대한 애틋하고 안쓰러운 표현이기도 하다.

김전지사는 외유내강(外柔內剛)형이다. 그렇게 말하는 사람들이 많다. 대인관계에서 화내는 일이 없다. 항상 표정은 부드럽고 웃음 띤 얼굴이다. 그러나 속은 강하고 자기관리에 철저하다.

아내에게도 말하지 못할 만큼 고민을 안으로 삭이는 타입이다.

회고록에 드러난 김전지사의 ‘공직 45년’에는 남다른 애환과 영욕이 점철되어 있다. 영광만이 아니었다. 건너기 어려운 수렁도 있었다. 좌절도 있었고 절망적 상황의 치욕도 겪었다.

말단 공무원에서 도정 최고 책임석인 도지사직에 올랐던 승승장구의 과정은 영광의 사다리였다.

행정공무원에서 선거 직인 정치인으로의 변신은 모험과 도전의 새로운 결단이었다. 외유내강의 결기를 보여준 사례로 볼 수 있다.

정치인으로 변신하여 두 차례의 민선제주시장과 두 차례의 민선 도지사 선거에서 승리했다.

도지사직 수행과정에서 이뤄냈던 행정구조 개편, 제주특별자치도 출범, 제주 섬 세계자연유산 등재 등은 그래서 그로서는 자랑하고 싶은 치적이다.

그러나 선거 승리의 기쁨과 영광, 이뤄낸 정책 추진의 성과 못지않게 엄청난 좌절과 시련과 고통을 겪었다.

회고록에서는 이러한 과정을 ‘천당과 지옥을 오가는 경험’이라고 표현했다.

그중 ‘강정 해군기지’로 표현되는 민군복합형 관광미항 건설과 관련한 주민 간 갈등은 최악이었다. 국가안보와 제주지역 균형발전을 위한 프로젝트였는데도 그랬다.

이로 인해 김전지사는 45년 공직생활에서 씻을 수 없는 오명을 안게 됐다. ‘주민소환’을 당한 첫도지사로 기록됐기 때문이다.

주민소환투표 결과 투표율 11.0%, 주민투표법상 개표 요건인 3분의 1(33.1%)를 넘지 못해 소환이 무산됐지만 김전지사의 입장에서는 일생일대의 치욕이었다.

주민투표 과정에서는 인간적 모욕과 악의적 인신공격까지도 이 악물고 감내해야 했었다.

권력남용, 비민주적 전횡, 독선과 무능, 위선과 오만 등 견디기 힘든 공격과 조롱을 받았던 것이다.

그런데도 회고록은 이러한 모욕적 상황까지도 가감 없이 기술했다. 신상 평가에 대한 유 불리에 관계없이 사실을 있는 그대로 기록한 것이다. 인내의 내공과 자제력을 읽기에 충분한 대목이다.

그러기에 글쓴이에게는 대단히 미안한 소리지만 회고록을 읽는 재미가 쏠쏠했다.

2006년 도지사 선거를 앞두고 검찰의 도청 압수 수색사건은 또 한 번의 악재였다. 이와 관련한 선거법 위반 혐의 재판은 대법원에서 무죄취지로 파기환송 됐다. 그렇지만 재판과정의 1년 7개월은 김전지사로서는 좌불안석일 수밖에 없었다.

이처럼 사금파리 같은 파편이 몸과 마음의 상처를 긁어냈지만 초심을 잃지 않았다. 묵묵히 끝까지 맡은 소임을 다했다. 인내의 한계를 뛰어넘는 대단한 내공이었다.

회고록을 재미로만 읽어서는 더욱 미안한 가슴 먹먹한 사연들이었다.

김전지사는 2010년 6월 30일 퇴임했다. 애환과 영욕의 공직 45년에 마침표를 찍었다.

“마지막 혼불을 태우는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열심히 살아가려 한다”는 퇴임사는 ‘새로운 인생 3막’을 열겠다는 의지를 담아냈다. 그의 말대로 ‘유쾌한 도전’을 하게 되는 것이다.

‘영원한 것은 아무것도 없다. 내일이면 이 세상에 없을 것처럼 살라’는 법정스님의 법문 일기일회(一期一會)를 퇴임사에서 인용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볼 수 있다.

그래서 김전지사는 ‘회고록’발간에 즈음한 ‘인사의 말씀’에서 ‘팔심종수(八十種樹)’라는 말을 소개했다. ‘나이 80에 씨를 뿌리고 나무를 심는다는 말’이라고 설명했다.

‘제 나이 팔순에 이른 지금 다시 무엇을 얻겠다고 나무를 심겠습니까. 그러나 씨를 뿌리면 나무는 자라고 열매를 맺기 마련입니다. 설사 제 당대(當代)에 덕화만발의 세상을 볼 수 없다 하더라도 한 그루의 나무를 심는 심정으로 책을 냈습니다’.

‘내일 지구가 멸망한다 하더라도 오늘 나는 한 그루의 사과나무를 심겠다“는 스피노자 또는 마틴 루터가 했다는 명언과 오버랩 되는 의지의 표현이다.

김전지사의 ‘회고록’이 이처럼 다시 씨를 뿌리고 나무를 심는 ‘유쾌한 도전’의 계기가 되었으면 싶다.

‘새벽을 일깨우는 찬란한 일출 못지않게 저녁 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황혼의 장관도 역시 황홀하고 아름답다’는 말이 있다.

회고록에서는 그런 지치지 않는 노익장의 흐름을 읽을 수 있었다. 서쪽하늘을 붉게 물들이는 그런 아름다운 노을이었다.

자연인으로, 평범한 시민으로 돌아 간지 어언 10년, 그래서인지 그는 아직도 정정한 ‘현역 인생’이다.

“취미도 없고 소일거리도 없어 퇴직하면 어떵 살젠 햄수꽈”, 회고록의 에필로그는 ‘귓전에 울리는 것 같은 아내의 목소리’로 마감했다. 절절하고 애틋한 그리움이 녹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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