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은 제주문화예술재단 전경. 오른쪽은 제주도에서 열린 한 마당극 공연(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사진=제주투데이DB)
왼쪽은 제주문화예술재단 전경. 오른쪽은 제주도에서 열린 한 마당극 공연(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사진=제주투데이DB)

“요즘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포털 사이트에서 ‘제주문화예술재단’을 검색하거든요. 혹시나 문화예술인을 지원하는 계획이 나오진 않았나 해서요. 그렇게 하루에 수십 번씩 실망한 게 벌써 두 달이 넘었네요.”

지난 13일 만난 이사랑(38·가명)씨는 수년 전 제주로 내려와 창작과 공연 활동을 이어가고 있는 청년 예술인이다. 대부분 지역 문화예술인과 마찬가지로 코로나19로 인해 수입이 모두 끊겨 두 달째 대출을 받아 생계를 잇고 있다. 

이씨는 “예술인들이 소통하는 SNS 커뮤니티에선 전국 각지 (문화)예술재단의 문화예술인에 대한 지원사업이 계속해서 올라오는데 제주도만 안 올라온다”며 “예전에도 우리가 힘들 때 딱히 실질적인 지원을 받은 기억이 없어서 기대는 크게 안 했지만 이번 코로나19로 다른 지역재단과 너무 비교되니 ‘이건 좀 아니다’ 싶은 생각이 든다”고 토로했다. 

#“문예재단, 문화예술인 복지에 기여? 체감한 적 없어”

이씨를 비롯해 제주지역 문화예술인들에게 제주문화예술재단은 ‘남’ 같은 존재다. 비단 이번 코로나19 사태뿐만 아니라 제주지역은 비나 태풍이 잦은 특성상 공연 또는 행사 취소로 인한 경제적인 피해가 빈번히 발생하지만 이에 대한 지원 대책은 전무한 실정이기 때문이다. 

극단 세이레의 연극 장면(사진=김관모 기자)
극단 세이레의 공연 장면.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사진=제주투데이DB)

연극배우인 지승준(47·가명)씨는 “비가 오거나 태풍이 와서 야외 행사가 취소되면 출연료 자체를 못 받는 경우가 많다”며 “그 공연을 올리기 위해 최소 한 달에서 길게는 두 달이 넘도록 연습하는데 공연 취소되면 수개월 동안 수입이 ‘0’원이 되는 셈”이라고 털어놨다. 

이어 “제주는 그런 피해가 다른 지역에 비해 잦은데 여기에 대한 지원 대책이 전혀 없다”며 “우리가 힘들다고 하면 ‘누가 당신들한테 그런 일 하라고 했느냐’는 식이다. 우리 예술인들은 나름 지역주민들에게 공연을 통해 문화를 누리는 데 기여한다는 소명감을 갖고 일하는데 그럴 땐 매우 서운하다”고 힘들어했다. 

지씨는 또 “최근 정부가 ‘사회적 거리두기’를 끝내고 ‘생활속 거리두기’로 방침을 전환했는데 음악 하는 사람이나 연기하는 사람, 소극장 관계자들에겐 코로나19 위기가 아직 현재진행형”이라며 “언제 풀릴지 감도 안 오는데 당장 굶을 수 없으니 일용직을 알아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재단 직원들은 도청 공무원에 비해 문화예술인들의 어려운 실정을 잘 알지 않느냐”며 “그런데도 마치 공무원처럼 자기들 편한 방식으로 일하는 것 같다. 실질적으로 문화예술인의 복지와 관련해선 도움이 된다는 체감이 되지 않는다”고 꼬집었다. 

타 지역 문화재단은 코로나19로 인한 예술인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다양한 지원사업을 펼치고 있다. 왼쪽은 인천문화재단 사업 포스터, 오른쪽은 서울문화재단 사업 포스터. (사진=인천문화재단, 서울문화재단 홈페이지)
타 지역 문화재단은 코로나19로 인한 예술인들의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다양한 지원사업을 펼치고 있다. 왼쪽은 인천문화재단 사업 포스터, 오른쪽은 서울문화재단 사업 포스터. (사진=인천문화재단, 서울문화재단 홈페이지)

#타 지역 문화예술 분야 재단, 다양한 지원사업 진행

실제로 다른 지역의 문화예술 관련 재단에선 지자체보다 한발 빠르게 예술인을 대상으로 한 다양한 지원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인천문화재단의 경우 지난달 초 지역 예술인들의 코로나19 피해를 최소화하기 위해 태스크포스(TF)팀을 꾸려 적극적으로 지원사업을 펼치고 있다. 지역 예술인 한 가구당 30만원씩 긴급재난지원금을 지급하고 창작 환경 조성을 지원하는 ‘인천형 예술인 지원사업’ 규모를 확대했으며 ‘크라우드펀딩 지원사업’ 공모를 진행하고 있다. 

재단 관계자는 “예술인들은 재난이나 경제 위기 때마다 다른 직종에 비해 더 어려운 측면이 있다”며 “지금도 예술인 개개인이 매우 힘든 상황인 것을 우리가 가장 잘 알기 때문에 긴급히 지원을 하고 있으며 당연히 해야할 일”이라고 설명했다. 

이어 “다른 지역의 재단 역시 같은 고민이 있겠지만 예산 한계의 문제 때문에 지원이 어려운 부분이 있을 것”이라면서도 “코로나19와 같은 사태는 앞으로도 언제든지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 이번 계기로 예술 현장에서 위기 상황에 대한 대응 방안을 고민할 필요가 있다”고 덧붙였다.  

서울문화재단의 경우 지난달 △코로나19 피해 긴급예술지원 △예술교육 연구활동 긴급지원 △온라인콘텐츠 제작 긴급 지원 ‘#모두의 예술놀이’ △예술인 문화기획활동 긴급지원 [190시간] 등 다양한 사업을 진행했다.

제주문화예술재단 인사말. (사진=제주문화예술재단 홈페이지)
제주문화예술재단 인사말. (사진=제주문화예술재단 홈페이지)

#재난 시 문화예술인 지원 기본 매뉴얼 마련돼야 

제주지역 문화예술인들이 재단에 바라는 건 그리 대단한 일이 아니다. 어려움에 처할 경우 이를 실질적으로 지원하려는 노력이다. 

연극배우 지씨는 “재단이 문화예술인들의 현실을 남의 얘기라고 생각하지만 않았으면 좋겠다”며 “조금만 관심을 기울이면 피해 상황을 알 수 있는 위치에 있지 않느냐. 지금 같은 어려운 상황에서 모든 예술인에게 실질적으로 지원하는 방식을 고민해줬으면 좋겠다”고 바랐다. 

예술인 이씨는 “코로나19뿐만 아니라 기상악화로 공연과 행사가 취소되면 그 피해를 예술인들이 고스란히 떠안을 수밖에 없는 시스템을 바꿔줬으면 한다”며 “재난 시 문화예술인 지원에 대한 기본 매뉴얼을 마련해야 지금 같은 상황이 반복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선 지역사회에서도 공감하고 있다. 

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속 강민숙 제주도의원(더불어민주당·비례대표)은 “재단이 문화예술인 개개인의 복지까지 신경쓰기엔 한계가 있는 것으로 보여진다”며 “문화예술인들이 제도권 안으로 들어와 제대로 된 복지를 받을 수 있도록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구체적인 방안을 논의하기 위해 같은 상임위(문화관광체육위) 의원들과 문화예술 분야 관계자 간 토론회 등을 마련하고 고민해나갈 것”이라고 약속했다. 

제주문화예술재단 홈페이지에 인사말을 보면 “재단이 예술인과 단체의 창작활동을 지속가능하게 하고 그 바탕 위에서 문화예술의 향유 기회가 모두에게 주어지는 제주를 만들겠다”는 문구가 있다. 

또 ‘제주문화예술재단 설립 및 육성 조례’엔 재단이 ‘문화예술인 복지 지원’ 사업을 수행한다고 명시하고 있다.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과연 재단 스스로가 이에 맞는 역할을 하고 있는지 자문해야할 때다. 

저작권자 © 제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