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유근 칼럼] 이유근 칼럼 연재를 마치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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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근 칼럼] 이유근 칼럼 연재를 마치며
  • 제주투데이
  • 승인 2020.05.17 08:11
  • 댓글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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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유근/ 아라요양병원 원장

이유근/ 아라요양병원 원장

제주국제협의회를 중심으로 제주의 미래를 함께 고민하자며 시작한 ‘제주미래담론’ 글쓰기가 2년여 동안 30여 편의 글을 쓰고 중단 되자 아쉬워 매주말마다 이유근 칼럼이라는 제목으로 다시 쓰기 시작한 지 벌써 1년이 지났다. 글재주도 없는 사람이, 민주주의란 다양한 의견이 개진되어야 한다는 생각으로 글을 쓰면서, 독자들의 다양한 찬성과 반대 의견을 듣고자 했으나, 글이 너무 재미가 없었는지 별 반응이 없어 서운하였다. 다른 인터넷 매체에 기고했을 때에는 ‘악플’이라도 달렸는데, ‘사랑의 반대말은 미움이 아니라 무관심이다.’라는 말이 가슴에 와 닿았다.

우리 도민들은 우리 고장의 가장 큰 비극인 4. 3 사건이 ‘남노당의 무장폭동이냐 민족의 분단을 막기 위한 민주항쟁이냐’로 의견이 나뉘면서 아직 정명이 되지 못하는 아픔을 겪고 있다. 그 저변에는 해방 직후의 남한의 혼란상과 무관하지 않다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북한에서는 일찍이 소련군에 의해 김일성 일당 독재의 기틀이 갖춰져, 이에 반대하는 세력들은 숙청되든가 남한으로 도피하는 바람에 혼란이 일어날 틈이 없었으나, 남한은 ‘민주주의는 원래 시끄럽다.’라는 말도 있듯이 미군정에 의해 공산주의자들이 핍박을 받기도 하였으나, 도처에서 스트라이크나 데모가 일어나 사회가 혼란하였다.

더구나 문제가 심각해진 것은 3. 1운동으로 일본의 식민지 정책이 문민화로 바뀌면서 새로 생겨난 많은 지식인들이 일본제국주의에 맞서 조국의 독립을 쟁취하려면, 당시 유일하게 제국주의를 물리친 소비에트를 본받아 공산혁명을 일으켜야 한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고, ‘20대에 사회주의를 생각하지 않으면 가슴이 없는 사람이다.’라는 말도 있듯이 젊은이로서 좌편향의 사상을 갖게 된 것이었다.

특히 우리 제주도는 일본과 지리적으로 가까운 탓도 있지만, 일찍이 교육열이 높았기 때문에 다른 지역에 비해 학교가 많았고, 일본으로 공부하러 가거나 일터를 찾아 간 사람들이 다른 도에 비해 많았다. 이분들이 해방이 되자 고향으로 돌아 왔는데, 미군정은 소련과 달리 늦게 들어온 데다 지지 세력의 확보가 늦어 치안을 대부분 친일파에게 맡기게 되어, 귀국 지식인들이 들어갈 자리가 학교와 군대밖에 없게 되었다. 이 분들은 자연 경찰과 마찰을 일으키게 되었다.

이런 갈등 요소에 기름을 부은 것이 소위 찬탁과 반탁의 대립이었다. 미, 영, 소의 삼상회의(얄타회담)에서 우리나라를 5년 동안 신탁통치하기로 결정을 하자 온 국민들이 들고 일어나 반대를 하였다. 처음에는 좌익에서도 신탁통치를 반대하였으나 소련의 지시로 찬탁으로 돌변하는 바람에 남한에서는 친탁파와 반탁파 사이에 치열한 투쟁이 전개되었다.

여기에서 우리가 깊이 생각해야 할 것이 있다. 그럼 과연 그때로 돌아갈 수 있다면 우리는 5년 동안 신탁통치를 받아들이는 것이 옳은가 하는 것이다. 분단의 책임이 반탁을 주장한 세력의 잘못이라면 4. 3 사건은 민주항쟁이라고 할 수도 있을 것이다. 비록 희생된 대부분의 도민들이 소위 무장대의 활동에 참가하였다가 희생된 것이 아니고, 또 무장대에 의해 피해를 본 분들도 많다는 점에서 4. 3 사건 전체를 항쟁이라고 보는 것이 과연 타당한가 하는 점에서는 또 다른 논쟁의 여지가 있다고 본다.

다만 왜 소련의 찬탁을 지지했는가를 살펴볼 필요가 있다. 물론 삼상회의에서 그렇게 정하였으니 그렇게 해야 한다고 주장할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소련의 속셈은 1년 동안 소련이 신탁통치를 하는 기간 동안에 북한에서 했던 것처럼 우리나라를 완전히 공산화할 수 있다고 판단했을 것이라는 것이 필자의 생각이다. 그런 점에서 필자는 친탁통치가 이뤄지지 않았기에 우리나라가 자유민주주의를 지킬 수 있었다고 확신한다.

필자가 보수우익(?)이라서 그런지 주위에 1947년 3. 1절 행사에 참여하였던 분들이나, 가족 중에 좌익으로 몰려 희생된 분이 있는 사람들도 4. 3 사건을 민주항쟁이라고 부르는 데에 반대하시는 분들이 많다. 그런데 요즘 젊은 세대들은 이런 역사적 배경을 모른 채 많은 도민들이 무고하게 희생된 것만 듣고 ‘민주항쟁’을 옹호하는 분위기다. 더구나 요즘 재판을 다시 하면 무죄가 되는 것을 항쟁의 정당성을 반영하는 것이라고 오해하기도 한다. 그러나 재심에서 무죄가 되는 것은 우선 이 분들이 항쟁(?)을 하지 않았는데도, 그리고 정상적인 재판 절차도 밟지 않고 감옥살이를 한 것이 잘못이라는 것이다. 정말 무장대로 활동하고 무고한 사람을 살해했는데도 무죄라고 판결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달아야 한다.

또 한 가지 아쉬운 것은 소위 지식인이라고 자처하는 사람들이 이런 문제에 발언하기를 꺼린다는 것이다. 그런 발언을 하였다가는 비난의 십자포화를 맞기 때문이다. 적어도 민주주의 사회라면 정당한 의견개진은 용납이 되어야 한다. 자신의 의견과 다르다고 인신공격을 하는 사람은 민주시민으로서의 자격이 의심스럽다. 전북대학교의 강준만 교수께서 ‘강남좌파 II’에서 지적하신 대로 정치적 양극화 체제하에서 정파성을 초월해 독자적인 판단을 내리는 ‘공공 지식인(public intellectuals)’이 사라진 곳에서 번성하는 건 각자 자기 진영의 이해관계를 대변하는 ‘직업적 선동가들(polarization entrepreneurs)’ 뿐이기 때문이다.

지금 언론들이 많은 국민들의 지탄을 받고 있다. 중도적인 입장에서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확증편향적 특성을 보일 때가 많기 때문이다. 여기에는 댓글을 다는 무수한 독자들의 책임이 있다는 것을 우리는 인식해야 한다. 요즘 인터넷 언론을 보면 댓글이 토론의 장이 아니라 감정의 배설구 역할을 한다는 생각이 든다. 이것은 정당한 의견을 막는다는 점에서 민주주의의 적이다.

언론이 좀 더 다양한 사람들의 의견을 나타낼 수 있는 광장의 역할을 할 수 있게 되기를 기대해 본다.

그 동안 관심을 가져주신 모든 분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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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유진 2020-05-27 17:33:32
그간 균형잡힌 시각과 풍부한 지식이 녹아난 글들 잘 읽었습니다. 다른 매체에서 또 선생님의 글을 읽게 되길 기대하겠습니다.

김 대니얼 2020-05-22 11:33:44
수고하셨습니다. 고마웠습니다. 아쉽습니다.
다시 새로운 봄이 올수도~~~

이승학 2020-05-18 21:59:24
이유근님!! 그동안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쭉 이유근님 글을 보아왔습니다. 아쉽네요. 제주4.3사건에대한 의견 높이 평가합니다. 소련이 해체 된 후 공개된 소련 비밀문서에 " 북한 주둔 소련군 총정치국장인 요시프 쉬킨 대장이 1945. 12. 25 소련 외무부 장관 몰로토프에게 보고하기 위해 작성한 10page 분량의 보고서에 북한에서 단독 정부 수립에 대한 계획이 나타나 있습니다. 곧 현실화가 되어 1946.02.08 김일성 위원장의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 설립으로 단독정부였지요. 1946.3. 5 토지개혁법령으로 무상몰수 형식의 토지개혁은 그해 3월 20일에 열린 미소공동위원회에서 소련이 한반도 문제를 두고 미국과 협상할 의도가 전혀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정책이지요.

좌문철 2020-05-17 22:00:59
아니, 이 박사님, 이 칼럼 연재를 마치신다구요?
저는 비록 뒤늦게나마 애독자 중의 한 사람이었는데. 퍽 아쉽습니다.
하지만 언제 어디에선가 새로운 마당이 다시 열려지겠죠.
그간 박사님을 통해서 민간의료와 공공의료 체계 등에 대해서도 상식을 많이 얻었습니다.
수고 많으셨습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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