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일 국회 앞에서 규탄대회를 열고 있는 제주4·3희생자유족회(사진=유족회 제공)
지난해 11월 18일 국회 앞에서 규탄대회를 열고 있는 제주4·3희생자유족회. (사진=제주투데이DB)

제주4·3특별법 개정안이 20대 국회 마지막 본회의가 열렸던 지난 20일까지도 끝내 상정되지 못한 채 자동 폐기되는 수순을 밟는다. 

희생자 또는 유가족에게 배·보상금을 지원하는 방안과 군사재판 무효화 등 총 5건의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개정안’은 지난 12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서 심사를 보류하며 이번 국회에서 더 이상 논의가 진전되지 않았다. 

이에 제주투데이는 그날의 회의록을 통해 문재인 대통령이 4·3 희생자 추념식에 두 번이나 참석하며 약속했던 4·3 완전한 해결의 걸림돌이 무엇인지, 특별법 개정안이 무산된 이유는 무엇인지 쟁점별로 살펴봤다.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018년 70주년 4·3희생자 추념식(왼쪽)과 지난 4월 72주년 4·3희생자 추념식(오른쪽)에 참석해 4·3의 완전한 해결을 약속했다. (사진=제주투데이DB)
문재인 대통령은 지난 2018년 70주년 4·3희생자 추념식(왼쪽)과 지난 4월 72주년 4·3희생자 추념식(오른쪽)에 참석해 4·3의 완전한 해결을 약속했다. (사진=제주투데이DB)

#쟁점별 정부의 입장…”기재부는 10년째 형평성 핑계, 행안부는 ‘신중 검토’ 답변 반복“ 

▶희생자 및 유가족 배·보상

오영훈 의원(2017년)과 권은희 의원(2018년)이 대표 발의한 개정안에 따르면 희생자 또는 유족에게 보상금을 지급하도록 하고 액수와 방법 등에 필요한 사항은 대통령령으로 규정하도록 위임하고 있다. 

개정안 중에서도 가장 많은 예산(1조8000억여원으로 추산)이 소요돼 매번 심사에서 정부가 재정 부담과 형평성 등을 이유로 난색을 표했던 부분이다. 

12일 회의에서도 행정안전부와 기획재정부의 입장은 1년 전 심사 때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윤종인 행안부 차관은 “정부는 과거사 사건 전반에 대한 배·보상 특별법을 제정하는 포괄 입법 방식이 필요하다고 보여진다”면서도 “4·3과 관련해선 우선 추진하는 여부를 국회에서 결정하는 바에 따라 되는 것이 바람직하다는 입장이다. 다만 재정 당국(기획재정부)은 다른 입장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밝혔다. 

한마디로 행안부는 배·보상 지급에 대해 국회 결정을 따르겠으나 기재부 측에서 이에 동의하지 않는다는 것. 

김경희 기획재정부 행정국방예산심의관은 “다른 과거사 희생자 문제가 있다”며 “보상 체계에 대해서 현행 법률 체계뿐만 아니라 앞으로 어떻게 유효하게 효율적으로 할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충분한 고민과 검토가 있어야 하는 상황”이라고 답했다. 

수년째 거론되는 다른 과거사와의 형평성 때문이라는 것이다. 

지난 12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회의실에서 제377회 임시회 행정안전위 법안심사소위원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김민기 의원 페이스북)
지난 12일 국회 행정안전위원회 소회의실에서 제377회 임시회 행정안전위 법안심사소위원회가 열리고 있다. (사진=김민기 의원 페이스북)

이를 두고 정부가 배·보상 문제에 대해 10년째 같은 핑계를 대며 제자리걸음 하고 있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강창일 의원(더불어민주당·제주시갑)은 “‘과거사법이 나올 때 배·보상 문제를 일괄적으로 추진하자’는 건 10년 전에도 그랬다”며 “노근리 같은 사건처럼 이미 다 배·보상이 끝난 지역도 있는데 지금 와서 실질적으로 포괄적인 입법으로 하는 건 불가능하다. 개별입법 통해서 밖에 되지 않는다”고 강조했다. 

이어 “지금 재판을 통해 희생자나 유가족들이 전부 배·보상을 받고 있다”며 “이 재판이 전부 넘어가면 사법부가 마비될 상황이다. 그래서 특별법을 통해 배·보상해야한다는 게 일반적인 법조인들의 의견이다. (일일이) 재판을 통해서 하면 앞으로 10년, 20년이 걸린다. 희생자들이 돌아가시기 전에 빨리해야 한다”고 따졌다. 

김민기 의원(더불어민주당·경기용인시을)은 “굉장히 오래된 논의다. 이번에 못 하면 다음번에도 안 되고 그 다음번에도 안 될 것”이라며 “(4·3은)70여년 전 국가가 국민을 폭력과 권력을 통해 죽인 사건이다. 이를 배·보상하는 것이 지금의 대한민국에서 아직도 멀었다는 건가. 오히려 늦었다. 재정적 문제가 있다면 시차를 조정한다든지 해서 가능한데 국가가 책임을 회피하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김영호 의원(더불어민주당·서울서대문구을)은 “4·3은 진실이 어느 정도 윤곽이 잡혔기 때문에 아직 밝혀지지 않은 다른 사건과 연계시켜 소급 적용 또는 배·보상 문제를 연계시킨다는 것은 굉장히 과도한 절차”라며 “얼룩진 과거사 배보상 문제는 앞으로도 형평성과 공정성, 소급 문제 때문에 한치 앞도 못 나갈 것”이라고 질타했다. 

정향신 양의 사연에 눈물 흘리는 유족들의 모습(사진제공=제주특별자치도)
지난해 열린 4·3 희생자 추념식 도중 눈물 흘리는 유족들의 모습(사진=제주투데이DB)

▶비방·왜곡·날조 금지

박광온 의원과 위성곤 의원, 오영훈 의원이 대표 발의한 개정안에 따르면 허위사실 유포, 비방·왜곡·날조 등에 대한 금지 규정을 두고 이를 위반할 시 3년에서 7년의 징역 또는 3000만원에서 7000만원의 벌금을 처분토록 했다. 

이에 대해 윤종인 행안부 차관은 “범죄의 구성 요건을 보다 명확히 한다면 수용을 해도 가능하다”고 긍정적으로 답변했다. 

▶진상규명 및 활동기간

권은희 의원이 대표 발의한 개정안에 따르면 진상규명 조사 개시 결정일부터 2년간, 2년 범위 내에서 활동 기간을 연장 가능하도록 명시했다. 또 제주 4·3사건 진상규명 및 명예회복·보상위원회를 설치해 시기·지역·대상별 피해 상황에 대해 개별 조사를 실시하도록 했다. 

이에 대해 윤종인 행안부 차관은 “신중히 검토해야 한다는 의견”이라고 답했다. 

▶피해 신고 기간 재설정

오영훈 의원과 권은희 의원이 대표 발의한 개정안에 따르면 법 시행일 후 2년 이내에 하도록 제시하고 있다. 

이에 윤종인 행안부 차관은 “현재 시행령에 규정하고 있는데 법으로 올리는 부분은 신중하게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답했다. 

▲지난 1월 17일 70년 전 군법회의에 대한 재심 선고공판에서 4.3생존수형인들이 사실상 무죄 취지인 공소 기각 판결을 받은 뒤 제주지방법원 앞에서 기쁨을 나누고 있다.ⓒ사진 김재훈 기자
지난해 1월 17일 70년 전 군법회의에 대한 재심 선고공판에서 4.3생존수형인들이 사실상 무죄 취지인 공소 기각 판결을 받은 뒤 제주지방법원 앞에서 기쁨을 나누고 있다. (사진=김재훈 기자)

▶군사재판 무효

오영훈 의원이 대표 발의한 개정안에 따르면 재판 절차에 의하지 않고 개별 법률로써 4·3 당시 열렸던 재판의 효력을 무효화한다고 명시했다. 

이에 윤종인 행안부 차관은 “법무부에서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의견을 계속해서 보내고 있다”며 “법무부의 의견을 참조해 달라”고 답했다. 

▶희생자·유족 의료급여 수급권자 특례

강창일 의원이 대표 발의한 개정안에 따르면 희생자와 그 유족을 의료급여법 제3조 제1항 제10호에 따라 보건복지부 장관이 의료급여가 필요하다고 인정한 사람으로 규정해 의료급여를 지원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이에 윤종인 행안부 차관은 “보건복지부에서 조금 부정적인 입장을 보이고 있어 정부로선 신중히 검토한다는 의견을 유지한다”고 답했다. 

▶공동체 회복 프로그램 개발 시행과 추모 단체 재정 지원

오영훈 의원과 권은희 의원이 대표 발의한 개정안에 따르면 국가 및 지자체의 공동체 회복 프로그램 개발·시행 의무를 부여하고 지자체에 대해서 필요한 비용을 지원하는 규정과 트라우마치유센터 설치 등을 규정하고 있다. 

이에 윤종인 행안부 차관은 “신중히 검토한다는 의견”이라고 답했다. 

4.3평화공원 위령제단 위패(사진=제주특별자치도 제공)
4.3평화공원 위령제단 위패(사진=제주투데이DB)

#여당 “정부, 수년 전 의견 그대로 가져와…업무 태만” 전체회의서 논의 제안도

이날 정부가 비방·왜곡·날조 등의 금지를 제외한 모든 개정안에 대해 “신중 검토”라는 답변 하나로 부정적인 입장을 일관하자 여당 측에선 “업무 태만”이라는 질타까지 나왔다. 

강창일 의원은 “기재부는 1년 전 심사에서도 2년 전 심사에서도 연구니, 고민이니 같은 얘기를 하고 있다. 예전 정부 의견을 고스란히 가져온 거다. 업무 태만이다. 성의가 없어서 환장하겠다”며 “이렇게 얼렁뚱땅 20대 국회를 지나갈 수 없다. 대안을 준비해야 한다. 재정 부담을 말하는데 이건 전부 대통령령으로 넘겨져 있어서 큰 문제가 안 된다”고 몰아세웠다. 

정부 측 입장이 정리가 안 됐으니 일단 법안심사 소위에서 개정안을 통과시키고 행정안전위원회 전체회의에서 다시 논의하자는 의견도 나왔다. 

김민기 의원은 “오늘 소위에서 회부 안 하고 전체회의에서 다시 논의할 방법은 없는가”라며 “오늘이 오히려 마지막일 뿐만 아니라 적기라는 생각이 든다. ”

김영호 의원은 “재정 문제와 배보상금 지급 문제에서 기재부와 행안부 간 입장 차이가 있는 것을 확인했다”며 “이 때문에 야당 의원도 시원하게 동의를 못 해준다. 일단 여기서 의결하고 전체회의로 넘기자. 정부가 합의안이나 대안을 가져와서 다음 전체회의에서 논의하는 건 어떤가”라고 제안했다. 

#야당 “오늘은 이 정도로만…21대 국회로 넘기자”

이날 야당 의원으로는 유일하게 발언한 이채익 위원장(미래통합당·울산남구갑)은 정부 입장 차가 명확하니 다음 21대 국회에서 다시 논의하자는 소극적인 입장을 보였다. 

이 위원장은 “행안부와 기재부의 입장을 근거로 해서 우리 정치권도 함께 고민해야 한다. 대통령으로서 하시는 말씀과 정부의 실무자가 후속 대책을 마련하는 데엔 여러 가지 어려움이 있다”며 “지금 이 자리에서 계속 논의해봤자 더 이상 크게 진전될 상황이 아니다. 21대 국회가 시작하면 하나하나 더 진전시켜 빠른 시일 내 문제를 해소해 나가는 게 맞지 않느냐”고 주장했다. 

또 일단 의결한 뒤 행안위 전체회의로 상정하자는 제안에 대해선 “오늘은 이 회의는 공감대를 넓히자는 차원에서 마련된 것이니 이 정도에서 마무리를 했으면 한다”며 “정부 입장이 ‘신중 검토’로 사실상 어려운 부분이 있다는 건데 법안소위에서 어떻게 통과시키나.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잘라 말했다. 

4·3행불인 묘역의 어머니(김춘화) 비석을 찾은 김정남 유족이 올리고 있다. (사진=제주투데이)
4·3행불인 묘역을 찾은 유족이 비석 앞에서 절을 하고 있다. (사진=김재훈 기자)

#20대 국회 통과 안중에 없었던 정부와 야당, 그리고 정치력 부재한 여당

이날 회의에 기재부와 행안부가 최소한의 합의나 예전 심사 때보다 진전된 입장조차 준비해오지 않으면서 정부가 20대 국회에선 4·3특별법 개정안 처리를 염두에 두지도 않았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또 지난 4·15총선에서 4·3의 완전한 해결을 공약으로 내세웠던 미래통합당은 ‘이견을 좁히지 못한 정부 탓’이라는 좋은(?) 핑곗거리를 내세우며 발을 빼는 소극적인 태도를 보였다.  

더불어민주당 역시 개정 무산에 책임이 없지 않다. 제주지역 국회의원들은 문 대통령이 올해 추념식에서 완전한 해결을 재차 강조한 만큼 이번 국회에서 통과시키겠다는 의지를 보였으나 정부도 야당도 설득시키는 데 성공하지 못했다. 고병수 정의당 제주도당 위원장은 여당 의원들을 향해 “정치력이 부재하다”고 꼬집기도 했다. 

지난 12일 회의를 참관하러 갔던 송승문 4·3유족회장은 현장에서 법안심사 소위에 참석한 의원들에게 “72년 동안 한 많은 삶을 살아계시는 고령의 유족들에게 좋은 소식이 갈 수 있도록 도와달라”며 큰절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송 회장을 비롯해 7만 여명의 유족들의 간절한 마음은 이번 20대 국회에도 가닿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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