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일 70년 전 군법회의에 대한 재심 선고공판에서 4.3생존수형인들이 사실상 무죄 취지인 공소 기각 판결을 받은 뒤 제주지방법원 앞에서 기쁨을 나누고 있다.(사진=김재훈 기자)
지난해 1월 17일 70년 전 군법회의에 대한 재심 선고공판에서 4.3생존수형인들이 사실상 무죄 취지인 공소 기각 판결을 받은 뒤 제주지방법원 앞에서 기쁨을 나누고 있다. (사진=김재훈 기자)

지난 2012년 임은정 검사는 과거사 재심에서 상부의 ‘백지구형(무죄나 유죄를 정하지 않고 재판부에서 판단해 달라고 구형하는 것)’ 지시를 어기고 무죄를 구형했다. 또 지난 2018년 열린 제주4·3사건 생존 수형인에 대한 재심에선 검찰이 법원에 공소 기각을 요청했다.
 
위 두 사례는 언론은 물론이고 우리 사회 내에서 큰 조명을 받았다. 피고인의 유죄를 입증해 법원의 심판을 구하는 일을 하는 검찰이 피고인에 대해 ‘무죄 구형’ 또는 ‘공소 기각’을 요구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인 일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우리나라 최초의 무죄 구형 사례라 볼 수 있는 사건이 71년 전에도 있었다. 

“무죄 구형한 검찰이라고 하면 몇 년 전에 임은정 검사가 최초라고 알려져 있는데…. 사실 우리나라 최초로 검찰이 무죄를 구형한 판결이 1949년에 이미 있었습니다.”

지난 6일 김종민 전 제주4·3위원회 전문위원은 국가인권위원회 제주출장소 교육관에서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 바로읽기’ 강연을 진행했다. 

이날 김 전 위원은 지난 2009년 국내 한 극우세력이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 위원회(위원장 국무총리 한승수)’를 상대로 제기한 희생자 결정 무효 확인 소송(사건번호 2009구합14668)에서 피고 측의 소송수행을 맡았던 경험을 나눴다. 

지난 6일 김종민 전 제주4·3위원회 전문위원은 국가인권위원회 제주출장소 교육관에서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 바로읽기’ 강연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독자 신동원씨 제공)
지난 6일 김종민 전 제주4·3위원회 전문위원은 국가인권위원회 제주출장소 교육관에서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 바로읽기’ 강연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독자 신동원씨 제공)

당시 원고 측 극우세력은 위원회가 결정한 희생자 1만3564명 중 유죄 판결을 받았거나 폭도였던 20명이 포함돼 있다며 이들의 희생자 결정을 무효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4·3 당시 수형 생활을 했던 일반주민 양을윤(梁乙允)씨를 이름이 비슷한 양을(梁乙·고 양금석 제주도의원 부친) 검사로 착각해 양 검사를 희생자 무효화 명단에 포함시켰는데 이는 명단이 얼마나 엉터리로 작성됐는지를 보여주기도 한다.

여기서 등장하는 양을 검사가 바로 최초 무죄 구형의 주인공이다. 김 전 위원과 진상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양 검사는 지난 1949년 2월 28일 서울지검에서 검사시보를 마치고 제주지방검찰청 검사에 임명돼 제주도로 가기 위해 준비하던 중 서울로 올라 온 제주경찰서 형사대에 체포돼 압송됐다. 

현직 검사가 판사에 의해 발부된 구속영장도 없고 법무부장관의 사전 승인도 없이 불법으로 체포된 사실이 언론 보도를 통해 알려지자 대검찰청은 제주도경찰청에 양 검사의 체포 해제를 요구했다. 

이에 김효석 내무차관은 즉각 “정식 구속영장을 받았다”는 거짓 담화를 발표했다. 실제로 구속영장이 발부된 것은 체포되고 나서인 3월 14일이었다. 법원이 군의 압력에 의해 뒤늦게 구속영장을 발부한 것. 

지난 1948년 제주농업학교 수용소에 붙잡혀와 심문을 받기 위해 기다리는 수용자들. (사진=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
지난 1948년 제주농업학교 수용소에 붙잡혀와 심문을 받기 위해 기다리는 수용자들. (사진=제주4·3사건진상조사보고서)

제주지검은 앞서 지난 1948년 김방순 검사가 재판 없이 군인들에게 살해당한 사례가 있어 양 검사 역시 군·경에 의해 같은 일을 당하지 않을까 하는 두려움에 같은 해 5월 관련 사건을 광주지검으로 이송했다. (양 검사는 이송 직전에 의원 면직됐다.)

다섯 달 뒤 10월 31일 광주지방법원에서 열린 공판에서 검찰은 피고인 양 전 검사가 받았던 미군정법령 제19호 위반, 내란음모 및 방조 혐의에 대해 무죄를 구형했고 법원 역시 무죄를 판결했다. 4·3 관련 군법회의가 불법적으로 이뤄졌다는 사실을 반증한 셈이다. 

이 사건은 동아일보 1949년 11월 2일자 신문에 실렸다. 남아있는 기록물 중 대한민국에서 검찰이 피고인에 대해 무죄를 구형한 최초의 사례다. 

한편 제주4·3기념사업위원회 주최하고 사단법인 제주민주화운동사료연구소가 주관하는 ‘제주4·3사건 진상조사보고서 바로읽기’ 강연은 오는 10월 17일까지 격주 열린다. 

진상조사보고서와 신문 기사 자료 등을 바탕으로 진행되며 보고서를 집필한 김 전 위원이 강연을 맡는다. 이날은 두 번째 시간으로 광복 전후의 제주도 상황을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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