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린 씨앗은 물을 주면 언젠가는 꽃이 핀다. 빨리 좋은 결과가 나오기를 기다린다." 약 43년간 북한에 납치된 딸 메구미를 기다리던 부친 요코타 시게루 씨(87)가 스스로 뿌린 씨앗의 핀 꽃을 보기 전에 6월 5일 별세했다. 일본 납치 가족의 상징적 존재로서 일본 매스컴은 연일 대서 특필 기사로 다루었다.

1977년 11월 학교에서 베트민턴부의 연습을 마치고 하교하던 니카타현의 중학교 1학년 요코타 메구미 학생이 사라졌다. 일본은행에 다니면서 부인 사키에(84) 씨 사이에 2남 1녀를 두고 단란한 가정을 꾸려가던 가족에게는 청천벽력이었다.

웃음 꽃으로 넘쳐흐르던 가정의 행복이 송두리채 무너지고 13살의 어린 딸 메구미를 찾기 위해 모든 수단을 가리지 않고 백방으로 호소했다. 실종 후, 자택 전화에는 유괴일지도 모른다고 해서 경찰의 역탐지기가 설치되었고 조사원이 드나들었다.

취침 전에는 전화를 옆에 두었으며, 출근 전에는 무슨 단서라도 있을까 해서 표착물을 찾기 위해 해변을 돌아다녔다. 텔레비전에서는 '찾는 사람'의 방송에 나와서 정보 제공을 요청했다. 그래도 사랑하는 딸 메구미는 어디에도 없었다. 어쩌면 사고로 인하여 사망했을런지도 모른다는 체념도 있었다.

약 20년이 지난 1997년 1월 21일이었다. "댁의 따님이 납치되어 북한에 있다는 정보가 있다." 북한의 전 공작원으로서 탈북자의 증언이라면서 시게루 씨가 토쿄에서 국회의원 비서로부터 놀라운 소식을 들었다. 다시 한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해에 납치피해자가족 7가족과 <납치피해자 가족연락회>를 설치하여 스스로 대표를 맡고 100만명 서명운동에 앞장서서 일본정부를 움직였다. 2002년 9월 17일 고이즈미 수상이 일본 수상으로서는 처음으로 북한을 방문하였다. 그 동안 북한이 부정해 오던 납치 사건을 김정일 총서기가 납치를 인정하고 사죄를 했었다.

이때에 북한의 설명으로는 5명 생존, 8명 사망, 메구미 씨는 1994년 우울병으로 자살했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시게루 씨는 사망은 인정 못한다고 울면서 강하게 부정했으며, 정부에도 그렇게 알고 대응해 달라고 강하게 요청했다.

2004년 11월 북한에서 일본 정부 대표단이 갖고 온 메구미 씨의 유골은 그후, DNA의 감정 결과 다른 사람으로 판명되었다. 이로 인하여 납치문제로 북한에 대한 일본 국민의 분노와 불신감은 더해 갔다. 이때에 북한을 못 믿겠다고 조총련을 이탈한 재일동포들도 많았다.

북한의 타인 유골 반환으로 메구미 씨의 생존에 대한 확신은 더욱 깊어지는 가운데 2006년 시게루 씨가 한국을 방문하고 메구미 씨 남편 김영남 씨 어머니, 최계월 씨와 누님 김영자 씨를 만났다. 김영남 씨는 1978년 북한에 납치되어 1986년에 메구미 씨와 결혼했다고 한다.

김영자 씨는 요미우리신문 취재에  "메구미 씨를 만나지 못한 시게루 씨가 가슴에 큰 상처를 안고 살아온 것이 얼마나 쓰라렸을까. 2018년 12월에 돌아가신 어머니와 같이 동생을 만날 수 있었다. 우리들만 만나서 죄송스럽고 가슴이 무척 아프다."면서 울먹거렸다. 

2007년 시게루 씨는 건강이 안 좋아서 가족회 대표를 그만두고 2014년에 3월 몽골 울란바트르에서 외손녀 김은경(32) 씨와 증손녀를 만났다. 그때 이야기는 시게루 씨 부부는 가족 만남이 즐거웠지만 그 이상에 대해서는 말들을 아끼고 하지 않았었다.

김은경 씨의 남편은 재일동포 아들이라는 것을 2017년 12월 4일 마이니치신문은 보도헀다. 김은경 씨 남편의 부친 송호 씨는 일본 중부지방 출신으로 일본 공립 중고교를 졸업했다. 대학은 총련계 조선대학을 졸업하고 1976년 북송사업으로 단신 북한으로 가서 북송 동포와 1985년 결혼하여 아들을 낳았는데 그 아들이 김은경 남편이라고 한다.

김은경 씨는 김일성대학에서 선배인 송호 씨 아들 송모 씨에게 컴퓨터를 배우면서 교제를 하다가 결혼했는데 송호 씨는 평양에서 기술자로 근무하다가 2016년 60세로 별세했다고 했다. 한.일 양국에서 각각 납치 당한 김영남, 메구미 씨와의 결혼도 기구하지만, 그 사이 딸 김은경 씨와 북송동포 아들 송모 씨와의 결혼도 한반도를 둘러싼 소용돌이 속에서 기구하기 짝이 없는 가슴 아픈 역사의 드라마이다.

2008년 6월 북한은 일본 정부에 납치 문제 재조사를 약속했지만 동년 9월에 연기 표명, 2014년 5월에도 재조사 실시에 합의했지만 동년 가을까지 조사 보고하기로 한 것을 다시 연기, 2016년 2월 조사 중지를 일방적으로 발표하여 지금은 교착 상태에 빠져 있다.

2017년 9월 미국 트럼프 대통령은 유엔 기조연설에서 "북한이 일본 해안에서 13새의 소녀를 납치했다."고 메구미 씨를 염두에 두고 연설을 했으며, 동년 11월 트럼프 대통령이 일본을 방문했을 때 납치피해 가족들과 만났지만 시게루 씨는 건강이 나빠서 참석하지 못했었다.

고이즈미 수상과 함께 관방부장관으로 북한을 방문하고 납치피해자 구원의 상징인 파란 리본을 항상 양복 깃에 달고 다니는 아베 수상은 시게루씨의 별세에 대해서 "메구미 씨의 귀국을 위해 전력을 기울여왔지만 실현하지 못한 것은 단장(斷腸)의 심경이다. 정말로 죄송하다. 여러면에서 기회를 놓치지 말고 과감하게 행동하지 않으면 안된다." 고 기자들에게 표명했다.

북한의 천륜을 무시한 만행으로 열 세살의 어린 딸과 생이별을 한 시게루 씨가 반생의 모든 인생을 걸고 일본 전국을 누비면서 딸 메구미 구출을 위해서 열린 강연만도 1,400회나 되었다.

6월 9일 카와사키시의 교회에서 가족과 납치피해자 가족들과 약 50명이 참가해서 고별식이 행해졌다. "아버지(남편)는 천국에 갔다고 믿고 있다. 빨리 마중 오라고 말하고 싶지만 딸을 구출하기 위해서 할 일이 있기 때문에 아직 가지 못한다." 부인 사키에 씨가 참석자들에게 들려준 말이다.

저작권자 © 제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