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길호의 일본이야기] 이쿠노 제주 자리요리 당당한 시민권
상태바
[김길호의 일본이야기] 이쿠노 제주 자리요리 당당한 시민권
  • 제주투데이
  • 승인 2020.06.24 10:32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자리물회라도 고찌(같이) 먹으러 갑주게" 여느 때 같으면 제주 제일중 선배들한테서 전화가 와서 빨리 총동창회 회의를 열라고 독촉 전화도 왔을 것이다. 몇년 전부터 '재일본 제주제일중총동창회"를 20년 가깝게 만년 총무를 하다가 회장직을 맡게 되었다.

그러나 올해는 그러한 전화가 한통도 없었다. 동창회만이 아니고 재일 제주인이나 아니면 자리 맛을 아는 일본인까지도 오래간만에 자리물회나 먹으러 갑시다 하고 연락이 오는데 그 연락도 없다.

자리요리는 그 맛 자체 하나가 독립성 주체를 지니고 있지만 이렇게 교류적 역할을 해주는 강한 구심력이 되기도 했다.

오래간만에 만나는 사람들끼리 구체적인 요리 이름을 제시해서 그것을 먹기 위해서 만나는 예는 지극히 드문 일이다. 동포 최대 밀집지, 특히 제주인이 가장 많이 사는 오사카 이쿠노에서 자리요리는 완전히 '이쿠노향토요리'로서 시민권을 얻고 5월에서 10월까지 한국식당과 이자카야(선술집)에는 '자리 있습니다'라는 새로운 메뉴표가 등장한다. 어떤 식당에서는 '제주 자리 있습니다'라고 제주라는 단어를 강조하기도 한다.

일본산 자리도 있지만 제주 자리가 더 맛 있다는 것이다. 그 논리에서 비약해서 제주 자리 중에도 중문 보목 자리가 가장 맛 있다느니, 법환리 자리가 더 맛 있다느니까지 제주인들은 논쟁에 논쟁의 불을 붙인다. 솔직히 필자는 어느 곳의 자리든 간에 상관 없다. 눈 앞에 자리요리만 있으면 충분하다. 필자에게는 모두 사치성 논리이다.  

다만 부끄러운 일이 하나 있었다. 초장에 찍어 먹게 자리를 요리하지 않고 그냥 잘라서 달라고 했을 때, 꼬리를 잘라 주었으면 괜찮은데 꼬리도 있는 그대로 갖고 오는 가게가 있었다. 필자는 그게 싫어서 꼬리 털을 앞으로 잘라 달라고 부탁을 했었다. 같이 간 선배 일행은 물론 가게 아주머니까지 바다 고기 특히 자리 꼬리를 보고 '털'이라고 말하는 사람은 처음 보았다고 집중 포화를 받았다. 

검은 모래의 해수욕장이 있는 삼양 출신이라고 어데 가서도 자랑했던 필자에게 정말 삼양에 살았었느냐는 비아냥거림도 들었다. 꼬리는 털이 아니고 지느러미로서 가장 영양가 있는 곳이어서 일부러 안 잘랐다는 데는 할 말이 없었지만 지금도 생각하면 털이라고 말했던 것이 부끄럽지만 영양가 많다는데는 회의적이다.  

그러나 코로나바이러스로 제주행 비행기만이 아니고 한국에 가는 비행기도 제대로 없는데 제주도 자리가 오사카로 온다는 것은 꿈 같은 소리로 엄두도 못 낼 일이다. 제주 자리는 자취를 감추었지만 그래도 이쿠노에는 와카야마에서 낚아온 자리들이 있어서 그런대로 올해도 명목을 유지하고 있지만 위광이 없다.

자리의 일본 표준 이름은 '스즈메다이'라고 한다. '스즈메'는 '참새'라는 뜻이며, '다이(타이)'는 '옥돔'이라는 뜻으로 '참새옥돔'라는 합성어이다. 그 이름의 유래는 확실치 않지만 바다에 미끼를 마구 뿌리면 자리가 참새처럼 우르르 몰려오고, 생김새가 옥돔과 비슷하니 붙여진 이름이 아닌가 하는 설이 가장 유력하다.

와카야마 지방에서는 '오센'이라고도 하고 덧붙여서 '오센고로시(おせんごろし:お仙殺し)'라고도 한다. 옛날 아주 엣날 '오센(仙)'이라는 아가씨가 살고 있었는데 자리를 먹다가 가시가 목에 걸려 죽었다고 한다. 그래서 자리를 오센을 죽인 '오센고로시'라고 불리웠고 그후로 사람들은 자리를 먹지 않았다고 한다.

어떠한 이유에서건 일본인들이 자리를 먹지 않는 것은 사실이다. 필자와 같이 근무하는 일본인 동료 중에 낚시광이 있는데 자기들은 자리를 낚으면 짜증스럽다면서 그때마다 다시 바다로 버린다고 한다. 필자가 자리요리에 대해서 설명하고 인터넷에 일본어로 자리요리에 대해서 소개된 기사를 보여 주었다니 너무 놀라는 것이 신기할 정도였다.

이렇게 경원 당했던 자리요리가 이쿠노 향토요리로서 시민권을 얻었으니 재일 제주인들의 입맛은 대단한 것이다. 제주 향토요리로서 이쿠노에서 자리 이외로 시민권을 얻기 위해서 햇병아리 날개처럼 날을 듯 말 듯 들썩 들썩하는 요리로서 '몸국'과 '빙떡'이 있는데, 몸국이 조금 앞서 있지만 자리요리처럼 자리를 굳히기에는 아직 멀었다.

제주에서는 지금 자리가 제대로 안 나온다면서 울상을 짓는 사람들도 많다. 하지만 작년 10월 초순에 제주연수 갔을 적에 제주 동문시장에 잘 다듬어진 자리가 넘쳐나는 것을 보았을 때 필자는 엄살이 좀 심하지 않을까 하는 의구심도 들었다.

자리를 좋아하는 필자가 단체 연수로 갔기 때문에 그 자리를 사고 오지 못한 것이 지금도 무척 아쉽고, 제주 사는 사람들이 마음대로 자리를 먹을 수 있는 권리가 부여된 것이 부러운 것 중에 하나이다.

자리를 낚으면 그냥 바다에 던져버린다는 일본인 동료에게 언제 이쿠노에서 자리 시식회를 갖자고 했는데 그도 시식회가 끝나면 자리요리를 틀림없이 좋아할 것이다. 일본어로 '그와즈기라이(食わず嫌い)'라는 말이 있다. '먹어 보지도 않고 싫다'는 의미이다.

가시가 거칠고 세서 싫은 사람도 물론 있겠지만 절대 다수는 자리팬일 것이다. 그는 먹어 보지도 않고 싫어 했던 사람이지만 자리의 맛 자랑을 앞으로 선전할 것이다. 제주 자리 요리가 지속적인 소통 창구 역할도 톡톡히 하고 있지만  또 다른 차원의 교량적 역할을 하게 되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