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희룡 제주도지사. (사진=원더풀TV 갈무리)
원희룡 제주도지사. (사진=원더풀TV 갈무리)

어린 시절 외할머니가 자주 하셨던 말은 ‘말은 요구리 똥은 싸구리’였다. 3.1 운동이 일어나던 해에 태어난 할머니는 평생 학교 문턱 근처에도 가보지 않으셨다. 어쩌다 ‘테레비’ 뉴스를 보시다가 ‘말은 요구리 똥은 싸구리’라고 하시면, 추임새처럼 쯧쯧 혀 차는 소리가 이어졌다. 말만 번드르르한 누군가가 마음에 안 드실 때면, 주름 가득한 이마를 찡그리면서 ‘말은 요구리 똥은 싸구리여’하고 혼잣말을 하시곤 했다.

격투기 선수가 링 위에서 몸이 먼저 반응하듯, 래퍼가 라임을 맞추듯, ‘말은 요구리 똥은 싸구리’. 애면글면 키운 자식 데려가면서 ‘평생 고생 안 시키쿠다’, 호언장담했던 누구가 마음에 안 들 때도 ‘말은 요구리 똥은 싸구리’', ‘또시 술 안먹으쿠다’, 발이 손이 되도록 비는 사촌 큰 형도, 앞에서 호호거리면서 뒤에서는 흉을 보던 동네 삼촌보고도, ‘말은 요구리 똥은 싸구리’, ‘나 컹 결혼해도 할머니랑 살젠’, 애지중지 키운 할망손지의 호언장담에도 ‘말은 요구리 똥은 싸구리’.

‘분시 모르는 때’에는 그냥 지나쳤지만 세월이 지나고 보니 그 말이 무슨 의미인지는 알 것 같았다. ‘말은 요구리 똥은 싸구리’. 말 한마디에 천 냥 빚 갚는다지만 ‘천 냥 빚’은 천 냥으로 갚아야 된다. 뙤약볕에서 누군가 땀 흘리면서 검질을 매고 있으면 ‘검질 재와싱게’, 말 한마디로 끝날 게 아니라 함께 땀 흘리며 호미질 한 번이라도 해야 한다. 실천이 없는 공감은 허무하고, 공감 없는 실천은 가식이다. 명징한 삶의 지혜가 ‘말은 요구리 똥은 싸구리’에 담겨 있었다.

최근 원희룡 도지사의 행보를 보면서 ‘말은 요구리 똥은 싸구리’라는 말이 생각났다. 본격적인 대선 도전을 선언한 이후 원 지사의 언론 노출 빈도가 많아졌다. ‘틀면 원희룡’이라는 말이 생각날 정도다. 정치 사회 현안 문제도 놓치지 않는다. 정의연 사태, 인천공항 비정규직의 정규직 전환 등 민감한 사회 이슈에 대한 발언도 적극적이다. 심지어 김종인 미래통합당 비대위원장이 백종원 대표를 언급한 후에는 백종원 같은 사람이 되겠다고 언론 인터뷰도 했다. 한 라디오 방송에서는 지지자가 지어준 삼행시라면서 ‘백명을 갖다대도 종국에는 원희룡’이라는 말까지 소개했다. 자신의 경쟁력을 ‘똑똑하고 된 사람’이라고 평가하기도 했다.

백종원 같은 사람이 되겠다는 원희룡 도지사의 변신에 박수를 보낸다. 원 지사 스스로 백종원 씨가 언급된 이유를 이렇게 밝혔다. ‘어려움에 처한 자영업자들, 젊은 창업자들에 대해 국민 멘토이자, 엄격한 트레이너로서 백씨가 가지고 있는 국민의 기대감과 대중 친화적인 이런 것’. 보수 진영의 유력 대권 주자로서 국민 멘토 백종원이 되겠다는데 말릴 이유가 없다.

구구절절 옳은 이야기다. 하지만 제주도로 눈을 돌리면 조금 이상하다. 백종원 같은 사람이 되겠다면서 행정시장 인사와 관련한 여론에는 관심이 없다. 안동우 예정자야 평가가 엇갈리겠지만 김태엽 서귀포시장 예정자는 도무지 이해할 수 없다. 음주운전 전력에, 아들의 신화월드 입사 의혹, 임대사업자 신고 지연 등 문제가 심각하다.

언론에서 제기한 의혹을 보면 짬짜미, 그들만의 리그, 지역 토호들간의 유착 등 그동안 제주 사회의 고질적 병폐들이 종합세트로 등장하는 듯하다.

우선 음주운전과 관련된 내용을 보면 음주 운전 적발 당일 관내 불법 건축물에서 지인들과 술을 마신 것으로 확인됐다. 불법건축물을 관리 감독해야 하는 고위 공무원으로서 윤리적 문제가 거론될 수 있지만 당사자는 ‘몰랐다’라고 해명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함께 술자리를 한 인물들의 면면이다. 전직 도의원 출신이자 현직 건설회사 사장과 고위 공직자의 술자리. 이를 현직 시절 맺은 인연을 퇴직 후에도 끈끈하게 이어가고 있는 인간적 만남으로만 볼 수 있을까. 아들의 입사와 관련한 의혹도 사실이 아니라고 하니 사실관계가 드러난 임대사업자 신고 지연만 보자. 김태엽 예정자는 공직생활 중 제주시내 노형동에 4층짜리 빌라를 지어 임대소득을 올리면서 퇴직 후 뒤늦게 임대사업자 등록을 했다. 건물 준공 후 4년간의 임대소득에 대한 재산신고, 세금 납부 등이 제대로 이뤄졌는지 의혹투성이다.

그런데 정작 이상한 것은 원희룡 도지사의 반응이다. 그야말로 시시콜콜 정치, 사회, 문화의 현안 문제에 대해서 자신의 입장을 밝히고 있는 원희룡 지사가 유독 이 부분에 대해서는 입을 다물고 있다.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는 데는 목소리를 높이면서도 정작 임면권자인 자신의 문제는 묵묵부답이다. 이 정도 되면 원희룡 지사가 그토록 좋아하는 페이스북이나 유튜브를 통해 해명이나 설명을 해야 옳은 게 아닌가. 원희룡 지사가 닮고 싶어하는 백종원 대표는 TV 프로그램에서 네티즌의 실시간 댓글에 성실하게 답변했었다.(짜증 한번 안내고)

왜 사람들이 백종원 대표를 좋아할까. TV 프로그램을 하면서 보여준 신뢰, 요리의 원칙을 지키는 고집, 그리고 따뜻하고 날카로운 조언, 자신의 지식을 과장하지 않는 진솔한 모습. 대중들이 좋아하는 백종원 대표의 모습은 이런 것이 아닐까.

백종원이 되겠다면서, 무너진 보수를 일으켜 세우겠다면서 대통령이 되겠다는 원희룡 도지사다. 하지만 정치는 말만 갖고 되는 게 아니다. 말보다 더 중요한 것은 실천이다. ‘말은 요구리 똥은 싸구리’, 말만 번지르한 요망진 대선 주자가 아니라, 제주의 문제에 집중하고, 제주 사람들과 소통하는 조금은 촌스럽지만 우직한 제주도지사. 지금 제주에 필요한 것은 대선주자가 아니라 제주도지사다.

#관련태그

저작권자 © 제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