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문예회관 대극장에서 오페라 공연이 열리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사진=제주특별자치도)
제주문예회관 대극장에서 오페라 공연이 열리고 있다. 사진은 기사 내용과 관련 없음. (사진=제주특별자치도)

코로나19 장기화에 따라 각종 문화예술 행사가 취소되면서 경제적 어려움에 처한 지역 문화예술인들. 최근 원희룡 제주도지사가 ‘특별명령’이라는 법에도 없는 용어를 사용하며 이들에 대한 지원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선포했지만 아직 뚜렷한 방안이 나오지 않고 있다. 

지역 예술인들에겐 앞날이 보이지 않는 막막한 상황에서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지원하겠다’는 다소 파격적인 후원 캠페인이 알려지며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 2018년 제주지역 문화예술인 5명은 기존 문화예술계의 관행을 깨고 스스로 새로운 지평을 열겠다는 취지로 ‘바즈라사회적협동조합(이사장 우상임)’을 만들었다. 조합은 최근 코로나19로 많은 예술인이 어려움을 겪자 행정에선 상상도 못할 일을 벌였다. 

지난 16일 도움을 필요로 하는 예술인이라면 누구에게나 후원금 범위 내에서 일정 금액(최대 50만원)을 즉시 지원하는 캠페인을 시작한 것. 프로젝트 명은 ‘너와 나 함께’다. 이들이 설정한 최소한의 기준은 제주에서 활동을 했던 문화예술인이다. 

활동 증명에 필요한 서류는 없다. 신청양식에 이름(가명 가능)과 계좌번호, 전화번호, 자기소개만 입력하면 된다. 문화예술을 아끼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후원할 수 있고 후원 내역과 지급 내역은 실시간으로 확인이 가능하다.

획기적인 시도에 대한 관심은 뜨겁다. 2주가 채 지나지도 않은 29일 오후 4시 현재 후원자는 76명, 후원금은 1470여만원에 이른다. 이 프로젝트를 본 사람들의 대부분은 반신반의했다. 누군가는 무모하다고도 했다. 왜 이런 일을 하는 걸까. 

‘너와 나 함께‘ 프로젝트를 설명한 게시물(왼쪽)과 신청양식. (사진=바즈라사회적협동조합 페이스북 게시물 갈무리)
‘너와 나 함께‘ 프로젝트를 설명한 게시물(왼쪽)과 신청양식. (사진=바즈라사회적협동조합 페이스북 게시물 갈무리)

 

언론 매체엔 조합 이름이 나가는 것만으로도 충분하다며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말아달라 부탁했던 조합원 A씨는 “다들 안 된다고만 하며 시도조차 하지 않았던 일이지만 우린 오히려 ‘절대’ 안 되는 게 아니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했다”고 설명했다. 

A씨는 “제주도나 문화예술재단 같은 행정에선 예산으로 사업을 진행해야 하기 때문에 집행 기준이 명확해야 한다”며 “그런데 그 기준이 수십 년 전에 만들어 놓은 것이라 시대에 맞게 변해야 하는데 개선이 잘 안 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많은 분들이 기준 없이 지원하는 프로젝트 방식에 우려를 하고 있는데 한두명의 거짓 지원자를 걸러내기 위해 전체 기준을 빡빡하게 잡으면 오히려 많은 예술인들이 지원을 받기 어렵다”며 “지금은 여러 루트로 크로스체크도 할 수 있고 예술인의 양심에 맡길 수 있는 시대”라고 강조했다. 

또 “지원받는 예술인들의 계좌번호를 공개하고 있는데 그 이유는 시민들이 자신이 후원하고 싶은 예술인들에게 직접 후원할 수 있는 통로가 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라며 “이 프로젝트가 앞으로 지역 음악가의 앨범을 사고 지역 화가의 작품을 사는 등의 방식으로 발전해 나갔으면 한다”고 바랐다. 

제주에서 10년이 넘도록 활동 중인 한 예술인은 “다른 지역에 비해 제주도는 유독 문화예술인에 대한 지원 대책이 미미하다”며 “이런 상황에서 ‘너와 나 함께’ 프로젝트는 하나의 사회적 실험이 아닌가 한다.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기대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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