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 여 검사가 “두 남성을 동시에 추행하는 ‘권력형 성범죄’를 범했다”고 고백했다.

고백은 발칙했고 충격적이었다. 그러나 의도의 방향은 고약했고 내용은 저급한 패러디였다.

스스로 “권력형 성범죄를 저질렀다”고 고백한 사람은 대구지검 진혜원(45·사법연수원 34기) 부부장 검사였다. 제주지검에서도 근무한 바 있다.

진 검사는 지난 13일 자신의 페이스 북에 성추행 사실을 고백하는 게시 글과 사진을 올렸다.

‘자수합니다. 몇 년 전(그때 권력기관에서 일하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종로에 있는 갤러리에 갔다가 평소 존경하던 분을 만났습니다. 한 분도 아니고 두 분이나.

냅다 달려가서 덥석 팔짱을 끼는 방법으로 남성 두 분을 동시에 추행 했습니다.

증거도 제출합니다.

페미니스트인 제가 추행했다고 말했으니 추행입니다. 권력형 다중 범죄입니다.

질문: 팔짱끼는 것도 추행이에요?

답변: 여자가 추행이라고 하면 추행이라니까!

질문: 님 여자에요?

답변: 머시라? 젠더 감수성 침해! 빼 애 애 애 애....(하략)‘

이러한 게시물과 함께 박원순 전 서울시장과 다른 한명의 남자 사이에서 양팔로 두 사람의 팔짱을 낀 사진도 게재했다.

사진 속 박전시장은 성추행을 당하고 있는데도 하얗게 웃고 있었다. 가해자와 피해자가 함께 웃는 성추행 사건, 성추행 가해자나 피해자가 모무 행복하다는 뜻인가? 우습다.

코미디 같은 ‘권력형 성추행 사건’ 내용이다. 그래서 일파만파 파문이 가라앉지 않고 있다.

‘성관련 피해자의 말을 다 믿을 수 없다“는 말을 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게시 글은 누가 보아도 성추행 피해자인 ‘박원순 비서’를 비꼬아 조롱하는 것으로밖에 볼 수 없다. 진실을 비틀어 짓밟아 버리려는 시커먼 의도가 바퀴벌레처럼 스멀스멀 기어 나오는 것 같다.

인권을 지키고 약자를 보호해줘야 할 현직 검사가 성추행 관련 피해자를 저격하고 2차 가해를 했다는 비판이 제기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진 검사의 ‘성추행 고백’을 사실로 받아들이자면 진 검사는 당장 검사직을 그만둬야 할 일이다. ‘추행(醜行)’이란 무엇인가. 표준국어대사전은 ‘더럽고 지저분한 행동 또는 강간이나 그와 비슷한 짓’이라고 설명하고 있다.

진 검사는 스스로 ‘더럽고 지저분한 짓’을 했다고 고백한 것이다. 그렇다면 지저분한 성범죄가가 ‘정의와 법치’를 내세우는 대한민국 검사직을 수행하는 것은 그야말로 블랙 코미디나 다름없는 것이다.

피해자의 죽고 싶은 수치심과 불안감 두려움, 가리가리 찢겨진 마음의 상처, 그래도 살 수 밖에 없는 무력감을 비틀어 패러디로 장난치며 욕보일 일이 아닌 것이다.

진 검사의 페이스 북 논란은 여기서 그치지 않고 있다.

“영화감독 겸 배우 벤 애플렉도 자기 집에서 아이를 봐주는 여성과 바람을 피운 사실이 발각돼 이혼 했고 지금은 그 여성과 만나고 있다”는 글도 있다.

또 “빌 게이츠는 자기 비서였던 멜린다와 연애하고 나서 결혼 했다”며 “그 어떤 경우에도 형사고소 되지 않았고 민사소송도 제기하지 않았다”고 썼다.

세상에, 이는 박전시장에 대한 심각한 명예훼손이 될 수도 있는 사안이다. 고인을 바람둥이로 매도하는 악담이나 다름없다.

“고 박전시장이 집안일을 돕는 여성과 바람을 피다가 이혼하거나 가정을 둔 상태에서 비서와 연애하고 향후 결혼해도 상관없다”는 망발이 아닌가. 박 전시장을 두 번 죽이는 해괴한 성인지 논리다.

이를 확대해석한다면, 박전시장과 성추행 피해자인 비서가 연인 관계일수도 있다는 늬앙스를 풍기게 하는 게시 글이다. 피해자에게 2차, 3차 가해를 하는 것이다.

더욱 황당한 언급도 있다. 그리스의 비극 ‘히폴리토스’를 동원한 것이다.

‘히폴리토스’는 고대 그리스의 영웅 테세우스의 아들이다. 그리고 계모는 파이드라다. 파이드라는 욕정에 못 이겨 히폴리토스를 유혹하고 접근해도 거절당했다.

이에 앙심을 품은 파이드라는 “히폴리토스에게 강강 당했다”는 거짓 유서를 쓰고 자살해 버렸다. 히폴리토스는 오해를 산 아버지에게 쫓겨나 방황하다가 죽는다는 내용이다.

진 검사는 왜 ‘히폴리토스’ 이야기를 박전시장 성추행 의혹과 관련한 페이스 북에 인용했을까.

상황을 비틀어 꼬집는 진 검사의 ‘조롱언어’를 빌리자면, 혹여 박전시장을 계모 파이드라의 음모로 쫓겨난 무고한 히폴리토스의 운명과 치환(置換)하려는 의도가 아니었을까, ‘무고한 박원순’을 말하려는 것이 아닌가. 궁금하다.

그러면서 성추행 피해 여성에게 욕정에 사로잡혀 음모를 꾸민 피아드라 이미지를 각인시키기 위한 것은 아닐까. 사실이 그렇다면 비열하고 추잡한 일이다.

진 검사의 ‘성인지 감수성’이 얼마나 천박한 것인지를 말해주는 것이라 할 수도 있다.

‘성인지 감수성’은 성별 불균형 상황을 인식하고 그 안에서 성차별적 요소를 감지해 내는 민감성 또는 인지능력을 말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대법원은 2018년 한 대학교수의 여학생 성 희롱 사건에서 처음으로 ‘성인지 감수성’이라는 개념을 정립하는 판결을 했다.

“사건이 발생한 맥락에서 성차별 문제를 이해하고 ‘성인지 감수성‘을 잃지 말아야 한다” 면서 “피해자가 처한 특별한 사정을 충분히 고려하지 않은 채 피해자 진술의 증명력을 가볍게 배척해서는 안 된다”는 판시였다.

문제의 진 검사가 이를 더듬어 피해자의 주장을 무조건 배척하거나 가볍게 여기지 말아야 할 까닭이 여기에 있는 것이다.

진 검사의 ‘발칙한 권력형 성범죄’ 고백이 박 전 서울 시장에 의한 성추행 피해여성에게 2차, 3차 가해로 작용한다면 그것은 또 다른 범죄행위다.

피해여성 측의 성추행 피해 관련 기자회견을 ‘흥행몰이’와 ‘넷 폴릭스 드라마’에 빗대 조롱하고 비판하는 것은 같은 여성의 입장에서 온당한 일인지 깊이 생각해 볼일이다.

말이나 글은 인격체다. 인격과 인품을 판단하는 근거가 될 수도 있다. 고상하고 아름다운 말과 글은 향기롭다.

악의에 찬 고약한 말과 글은 악취를 풍기고 많은 이들을 역겹게 한다.

‘말이 있기에 사람은 짐승보다 낫다. 그러나 바르게 말하지 않으면 짐승이 그대보다 나을 것이다’.

13세기경 페르시아(현 이란)제국의 시성(詩聖)으로 추앙받았던 사아리 고레스탄이 남긴 명언이다.

진 검사에게 전해주고 싶은 말이다. 진 검사의 말이 짐승보다 나을지 못할지는 스스로 선택할 몫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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