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9월 18일 선흘2리 주민들이 조천읍사무소를 찾아 김덕홍 읍장이 정현철 이장을 해임하지 않는 데 대해 면담을 요청하고 있다. (사진=김재훈 기자)
지난해 9월 18일 선흘2리 주민들이 조천읍사무소를 찾아 김덕홍 읍장이 정현철 이장을 해임하지 않는 데 대해 면담을 요청하고 있다. (사진=김재훈 기자)

선흘2리 이장 임명권을 가진 조천읍장이 이장 해임 요건과 관련해 변호사 자문을 받은 결과를 의도적으로 숨겼다는 의혹이 나오고 있다.

31일 선흘2리 주민 A씨에 따르면 정의당 강은미 의원을 통해 지난해 10월 김덕홍 조천읍장이 제주시 자문 변호사 3명으로부터 받은 결과를 확보했다. 

김 읍장은 지난해 9월과 10월 두 차례에 걸쳐 정현철 선흘2리 이장 해임과 관련해 자문을 구했다. 1년이 넘도록 이어지는 이장 해임 논란은 세계자연유산마을과 람사르습지도시로 지정된 조천읍 선흘2리에 대규모 사파리형 동물원과 숙박시설이 들어서는 제주동물테마파크 개발사업에서 시작했다. 

정 이장은 지난해 4월 열린 마을 임시총회에서 구성된 선흘2리 대명제주동물테마파크 반대대책위원회의 위원장을 맡았다. 하지만 석 달 뒤인 7월 26일 정 이장이 마을회 동의 없이 사업자와 만나 ‘지역상생방안 실현을 위한 상호협약서’를 체결, 돌연 사업 찬성 측으로 돌아서게 됐다. 

27일 선흘2리 마을 임시총회 중 향약 개정의 건에 대한 거수 투표 중인 모습(사진=김재훈 기자)
지난해 8월 27일 열린 선흘2리 마을 임시총회. 마을이 생겨난 이래 가장 많은 주민이 참석했지만 향약상 유일한 소집권자인 이장이 소집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총회로 인정받지 못했다. (사진=김재훈 기자)

이 때문에 선흘2리 주민들은 지난해 8월 27일 마을 임시총회를 열어 정 이장 해임 안건을 상정해 통과시켰다. 제주특별자치도 이장·통장·반장 임명 등에 관한 규칙 제3조(해임) 3항인 “주어진 임무를 성실하게 수행하지 못하거나 품위 손상 등 주민으로부터 지탄의 대상이 된 때”를 근거로 했다. 

#김 읍장, 1차 자문 결과 근거로 “이장 해임이 불가하다” 

이에 김 조천읍장은 이장 해임 요건 충족 여부를 두고 제주시 변호사 3명에게 1차로 자문을 구했다. 그 결과 해당 총회는 이장이 소집한 회의가 아니므로 총회에서 의결된 안건에 대해선 법적 효력으로 인정하기 어렵다는 답을 받았다(선흘2리 향약에 따르면 이장만이 총회를 소집할 수 있다). 

김 읍장은 선흘2리 주민들에게 이 같은 결과를 전달하고 최종적으로 “이장 해임이 불가하다”고 통보했다. 아울러 (이장이 아닌 주민이)임시총회를 열 수 있도록 법원에 요청하는 방안을 자문받았다고 전하기도 했다.

주민들은 사실상 이장을 해임할 수 없는 상황에 대해 반발하며 다음 달인 10월 7일 다시 임시총회를 열어 새 이장 선거를 진행했다. 

지난해 10월 7일 오후 선흘2리 주민들이 임시총회를 열고 이장 선거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김재훈 기자)
지난해 10월 7일 오후 선흘2리 주민들이 임시총회를 열고 이장 선거를 진행하고 있다. (사진=김재훈 기자)

#2차 자문서 “마을총회 대신 주민 탄원서로 이장 해임 요건 충족 가능”

그러자 김 읍장은 2차로 제주시 자문변호사에게 이장 해임 요건에 대한 검토를 요청했다. 이에 변호사 3명 중 2명이 반드시 총회가 아니더라도 이장의 해임 요건을 충족시킬 수 있다고 답했다. 

B 변호사는 “현재까지의 사건 경과를 살펴보면 정 이장이 주어진 임무를 성실하게 수행하지 못하거나 품위 손상을 하였다고 볼 수는 있으나 이를 이유로 주민들로부터 지탄을 받고 있는지 여부가 불확실하다”고 밝혔다. 

이어 “이를 확인하기 위해 원칙적으로 주민 총회로 주민 의사를 확인해야 하나 향약상 총회의 유일한 소집권자가 이장이므로 이장 스스로 자신의 해임 여부를 묻기 위한 총회를 개최할 가능성이 거의 없다”며 “임명권자로선 반드시 총회의 방식만이 아니라 주민 상당수가 연서(연달아 서명함)한 탄원서 등 다른 방식으로 주민 의사를 확인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10월 제주시 조천읍이 선흘2리 이장 해임 요건과 관련해 제주시 자문변호사로부터 받은 의견. (사진=독자 제공)
지난해 10월 제주시 조천읍이 선흘2리 이장 해임 요건과 관련해 제주시 자문변호사로부터 받은 의견. (사진=독자 제공)

‘이장만이 총회를 소집할 수 있다’는 향약이 독소조항이며 정 이장이 ‘주어진 임무를 성실하게 수행하지 못하거나 품위 손상을 하였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이다. 다만 주민 의사를 확인하는 절차가 필요한데 총회 개최가 어려우니 주민 탄원서를 받는 방안을 제안하고 있다. 

C 변호사 역시 “해당 규칙 ‘주민으로부터 지탄의 대상이 된 때’에 해당한다고 판단하려면 과반수 이상 주민들의 진정한 의사에 기한 탄원서 등을 제출받아야 한다”고 답했다. 

#김 읍장, 9개월 가까이 2차 자문 결과 주민에게 알리지 않아

자문변호사 3명 중 2명이 이장을 해임하기 위한 요건으로 마을총회 소집 이외에 주민 탄원서를 받는 방법을 제시했다. 하지만 김 읍장은 9개월 가까이 이 같은 결과를 주민들에게 알리지 않았다. 

주민 A씨는 “최근까지도 읍장에게 마을총회가 아닌 탄원서 제출로 주민 의사를 모으면 안 되느냐고 물었지만 불가능하다는 답만 했다”며 “의도적으로 자문 결과를 숨긴 게 아니냐는 의심을 할 수밖에 없다”고 토로했다. 

A씨의 주장대로라면 김 읍장은 특정 사실을 숨겼을 뿐만 아니라 ‘마을총회 개최말곤 방법이 없다’며 거짓 사실을 전한 게 된다. 

지난해 9월 18일 선흘2리 주민들이 조천읍사무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김덕홍 읍장을 상대로 정현철 이장의 해임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김재훈 기자)
지난해 9월 18일 선흘2리 주민들이 조천읍사무소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김덕홍 읍장을 상대로 정현철 이장의 해임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김재훈 기자)

#김 읍장 “자문 결과를 알려줄 의무 없어…행정이 한쪽 편에 치우치면 안 돼“

이와 관련 김 읍장은 “2차 자문은 우리가 자체적으로 알아본 것인데 그런 것까지 주민들에게 의무적으로 알려줄 순 없지 않느냐”라며 “변호사 답변이 정답도 아니고 의견에 불과하다. 이런 부분을 주민들에게 알려주면 우리 행정이 이장 해임을 유도하는 것처럼 되기 때문에 부적절하다”라고 해명했다. 

이어 “1차 자문 결과 해임이 불가하다는 통보를 하면서 법원에 총회 소집을 요구하는 방법까지 알려줬다”며 “그 이후에 주민으로부터 탄원서 제출을 통해 이장 해임 요건을 대신할 수 있느냐는 질문을 들은 기억은 없다”고 답했다. 

한편 마을총회 개최 말고는 답이 없다고 생각했던 주민들은 결국 자비를 들여 지난 5월 법원에 ‘임시총회 소집허가 신청서’를 제출했다. 1년이 넘도록 마을 내 분쟁이 끊이지 않고 있어 마을총회가 반드시 필요한데도 불구하고 이장이 회의 소집을 거부하고 있으니 주민이 회의를 열 수 있도록 허가해 달라는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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