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2일자 제주우체국 접수 날인이 찍혀진 제주문학 여름호가 8월 3일 오사카 우리집으로 배달되었다. 꼭 한달 걸렸다. 코로나 이전에는 일주일도 채 안 걸려서 오는 우편물이 그야말로 바다 건너 산 넘어 어렵게 왔다. 지난 번 봄호가 왔을 때도 썼지만 그렇게 어렵게 온 제주문학이 참 반가웠다.

이번 호에는 필자가 쓴 졸작 '오사카 하늘 아래서'라는 단편도 게재되었다. 소설에 대한 평은 전문을 게재 않고 또 구입해서 읽는 것이 어렵기 때문에 제주투데이에서 읽은 감상이나 평은 자제한다고 필자는 써왔다. 그래서 필자가 쓴 작품에 대해서도 생략한다.

다만 약간 소개한다면, 제목처럼 '오사카 하늘 아래서' 일어나는 재일동포 이야기를 썼다. 한국 TV방송국에서 재일동포 이산가족 찾기와 조총련동포들의 모국방문을 주제로 한 작품이다. 찾기 쉽게 게재한 페이지를 기억할려고 보니 264페이지에 게재되었었다.

그것이 반갑고 기뻤다. 우연이지만 이육사 시인의 이름의 발음과 같기 때문이다. 그의 대표작 '청포도'는 내 고장 칠월은/ 청포도가 익어가는 시절/로 시작되는데 약간 바꾸면, 내 고장 제주는/ 자리가 넘쳐나는 시절/이다. 내 고장에서 온 시조 5편과 동시 1편을 소개한다. 제주문협회원이기 이전에 한 사람의 독자로서 읽어서 선택한 작품들이다. 게재된 차례로 소개한다.

강문신 시인의 <화랑담배>이다.

 

화랑담배

 

모 사단 보급하사로 복무하던 군 시절

나는 부대에서 인기(?)가 좋았었다

당시는 내무반장에게 일등병 당번 있었지

 

식기에 이틀 한번 화랑담배 나왔는데

담배를 못 피는 난 당번에게 가지라했어

그 소문 돌고 돌아서 상병이나 병장까지

 

서로 식사당번하러 경쟁이 심했던 것

그 담배 연기처럼 무시로 그리움 일면

눈빛도 형형하던 날들의 안부를 또 묻는니

필자도 1970년도에 군에 입대하여 강제적으로 단기하사에 착출되어 정보교육을 받았지만 부산의 기성부대에서는 보급하사와 내무반장을 맡다가 제대했다. 당시 담배를 못 피우는 병사들은 화랑담배를 모아두었다가 휴가 갈 때 선물로 갖고 가는 병사들도 있었다. 그야말로 호랑이 담배 피우던 시절의 이야기지만 화랑담배 연기 속의 아련한 추억의 그리움은 어떤 때는 파도처럼 밀려올 때가 있다. 그래서 오사카 노래방에 가서 가끔 군가 '전우야 잘 자라'를 부를 때가 있다. '화랑담배 연기 속에 사라진 전우야'. 그립게 하는 시이다.

다음은 강상돈 시인의 <저물녘 동문시장에서>이다.

 

저물녘 동문시장에서

 

볼일을 끝낸 새도 자취감춘 거리에

너덜난 라면상자 깔고 앉은 할머니

길어진 그림자만큼 세월을 세고 있다

 

마실 간 하늘빛도 돌아오는 저녁 무렵

오늘 물량 팔지 못해 떨이로 내민 하루

잰 걸음 멈춘 사내가 흥정을 하고 있다

 

무릎관절 성치 않아 손 짚으며 일어서도

입가에 미소가 번져 떠날 줄을 모르고

내 뒤를 따라온 노을 어깨위에 앉아 있다

재래시장으로 일본에서도 잘 알려진 제주동문시장의 애잔한 저물녘 풍경을 가슴 뭉클하게 활자로서 재생 시켜 놓았다. 어쩌면 텃밭에서 정성들여 키운 나물들인지 아니면 오름을 다니면서 꺾어온 고사리인지, 그것도 아니면 샛노란 참외인지도 모르겠다. 파장의 시간 속에 다 팔지 못해 속태우던 할머니 앞에 구세주처럼 나타난 사내는 그 물건 값보다 몇배 더 가는 기쁨을 할머니에게 드리는 순간의 드라마이다.

다음은 문순자 시인의 <쇠죽은 못>이다.

쇠죽은 못

 

찔레꽃 가뭄에도 밭갈아치 찾아온다

새벽부터 일을 나선

알더럭 홀어멍네

훅하니 꽃내음 같은 살냄새 맡아다던가

 

마음은 콩밭이라 날씨마저 싱숭생숭

막걸리나 연거푸 홀짝 홀짝 거리다가

밥차롱 쟁기에 걸고

짐짓 드러누웠다지

 

그 모습 보다 못해

쟁기 잡은 여장부

사람도 헉헉 쇠도 헉헉 밭갈인 다 마쳤는데

세상에, 물 먹다 그만

급체한 저 밭갈쇠

 

연못이 무슨 죄랴,

빠져죽은 쇠 잘못이지

그 쇠 헉헉 끌고 온 홀어멍 잘못이지

홀어멍 살냄새 맡은 그 놈이 잘못이지

처음 이 시를 읽었을 때 필자는 <쇠죽은 못>의 의미를 몰랐었다. 인터넷에서 찾아보니 애월읍 하가리에 <쇠죽은 못>의 이야기가 전해 내려오고 있는 사실을 처음 알았다. 그 이야기에 시인은 상상의 날개를 달아그에 걸맞는 토속적인 걸죽한 에로스를 창조해 냈다.

다음은 문태길 시인의 <동틀 녘에>이다.

 

동틀 녘에

 

한 칸 한 칸 원고지에

꽃송이를 가꿉니다

 

새벽 창 방울새 소리

이곳에다 키웁니다

 

아내의 쌀 씻는 소리가

어제처럼 곱습니다

행복의 하루가 열리는 새벽 풍경은 오늘 하루만 갑자기 찾아온 것이 아니다. 아내의 쌀 씻는 고운 소리는 어제도 들렸고 내일도 들리고 또 그렇게 계속 이어질 것이다. 그 속에서 채워지는 원고지의 빈 칸들은 꽃송이가 피어나고 방울새의 지저귐들이 응축된 주위가, 모두 파랑새의 보금자리였다.

다음은 오승철 시인의 <하필이면>이다.

하필이면

 

탑동 해안선은 어느 집 스위치로

때 맞춰 밀물 썰물 켰다 껐다하는 건가

먹돌담 초지붕 몇 채

들락날락 삐걱인다

 

산남에서 유학 와 이 집에 세 든 누이

흙바람벽 천정을 가로지른

형광등 하나

반쪽이 걸린 저쪽은 신혼부부

 

하필 스위치는

저쪽 방에 있어서

시험철 돌아오면 친구집 전전했다

우당탕 천정의 쥐도 숨죽이는 밤이었다

밀물과 썰물도 스위치로 조작한다는 기상천외 속에 독자들을 현혹 시키다가 흙바람벽 천정을 가로지른 형광등 하나에서 그 스위치의 미스터리는 풀린다. 하필이면 왜 또 산남의 유학생이 청순한 여학생이란 말인가. 오승철 시인의 특유의 전개법과 입담이 갈데 없는 우당탕 천정의 쥐까지 난처하게 만들고 있다.

다음은 김영기 시인의 동시 <같은 말 다른 뜻>이다.

 

같은 말 다른 뜻

 

성적이 오르고 계급이 오르고

오름에 오르고 버스에 오르고

 

그러한 오르기에는

기쁨이 함께 올라요.

 

요금이 오르고 세금이 오르고

체온이 오르고 구설에 오르고

 

그러한 오르기에는

한숨이 섞여 있어요.

 

아주 부드럽고 공손히 쓴 작품 속에 번듯 빛나는 해학이 있다. 어린이들만이 아니고 어른들도 읽어서 동시의 즐거움을 맛볼 수 있는 작품으로서 미소를 자아내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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