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산마을은 한라산 서남부지역에 위치한

동남쪽으로 군산과 서쪽으로 산방산, 남쪽으로 월라봉이 있는 자연생태우수마을로

깎아지른 듯한 벼랑과 창고천 하류에 형성된 계곡미를

느낄 수 있는 안덕계곡을 끼고 있다.

창고천이 고래소, 도막은소, 도깨비빌레를

휘감아 돌아 굽이굽이 꺾이면서 거칠게 내려오는 황개천에 이르고

황개천(황개창)은 안덕계곡의 하류 계곡으로 동쪽은 감산리, 서쪽은 화순리이다.

황개천의 지명 유래는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조간대여서 

'가끔 누런 물개가 나타났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다.

[까마귀돌]

휘어져 아름다운 안덕계곡

한라산 남서쪽 사면 삼형제오름 일대에서 발원하여

안덕계곡으로 유입된 물줄기가 굽이굽이 꺾이면서 거칠게 내려오는 '황개천'

안덕계곡의 속살을 볼 수 있는 창고천 따라 생태 길을 걸어본다.

[보막은소 전망대]
[보막은소(도막은소)]

 

황개천 상류 '오리소' 하류에 위치해 있는 보막은소는

물의 입구를 막았다는 데서 붙여진 이름이다.

[도채비빌레]

창고천 따라 걷는 계곡 트래킹  

 

긴 장마가 물러가고 찌는 듯한 불볕더위가 불청객으로 찾아왔다.

하늘을 가리는 큰 키나무가 그늘을 만들고

하늘 높이 기어가고 싶었을까? 매달려있는 달팽이는 위태해 보인다.

경계하는 새들의 삐쭉이는 소리

힘찬 계곡의 물소리 들으며 걷는 길은 기쁨도 두배가 되고

코 끝에 느껴지는 녹색의 상큼함은 걷기를 멈추게 한다.

[미국자리공]
[댕댕이덩굴]
[후추등]
[천선과나무]
[꾸지뽕나무]

걷다 보면 만난 수 있는 불가능을 넘어선 사람 '김광종'

 

김광종은 한경면 저지리 출신으로

조선 후기 서귀포시 안덕면 화순리 일대의 수로 개척자로

조선 1832년(순조 32년)~1841년(헌종 7년)에 이르는 만 10여 년에 걸쳐

오직 자신의 사재만을 이용하여 황개천 바위를 뚫고

화순 마을의 넓은 들에 물을 끌어올 수 있게 수로를 개척하였다.

비석의 전면에는

산을 뚫고 물을 끌어, 한서(한라산 서쪽) 지방에 논을 개척하였으며

이에 필요한 많은 비용을 오직 자신의 재산을 바쳐 후세 사람들에게 유족하게 하였다.

이제 우리도 향 그로운 쌀밥을 먹고 있으니

이게 모두 김광종 공의 덕을 입은 것이다.

그 공로가 소부 소신신(召信臣)의 선정과 비길만하므로

이에 전조(田祖)로 모셔 해마다 기도드린다.

[김광종 영세불망비]
[개끄리민소]

개끄리민소는

 

화순리 황개천 중류의 쇠머리동산 절벽 아래에 있는

그 깊이가 매우 깊은 곳으로 소(沼)의 동단은 암벽 아래를 깊숙이 밀고 들어가 있다.

침식작용으로 만들어진 동굴형 돌개구멍이 보인다.

[진모르 동산]

긴 능선을 이룬 야트막한 지형이라는 의미에서 진모르 동산이라고 부른다.

[버섯바위]
[장군석]

세월을 낚아도 좋을 만큼 아름다운 풍광

 

'도막은소' 동북쪽 절벽에 웅장한 바위 셋이 서 있는데

바위 옆모습이 마치 장군의 형상을 닮았다 하여 붙여진 지명이다.

빠르게 지나치면 결코 만날 수 없는 것들~

가는 길마다 녹음이 우거진 곳에는 봄과 여름의 흔적,

그리고 여름의 끝을 알리는 막바지 들꽃들이 옷자락을 붙잡는다.

[굴피나무]
[푸조나무(검팽나무)]
[무환자나무]
[덜꿩나무]
[탱자나무]
[익모초]
[가시엉겅퀴]
[돌동부]
[며느리밑씻개]
[여우콩]
[좀닭의장풀]
[닭의장풀 색변이]
[괭이싸리]
[방동사니아재비]
[삽주]
[구름다리]

장마가 지나가고 찾아온 폭염

 

 

제주올레 9코스이기도 한 생태 길에는

칡과 사위질빵 등 덩굴식물들이 얼기설기 뒤엉켜 걷는 길이 불편했지만

생태연못에는 넓은 잎사귀가 아름다운 물칸나가

시원스레 꽃줄기를 뻗어 올려 숨 막히는 여름이지만 청량제가 되어준다.

[물칸나]
[자주색달개비(자주색닭개비)]
[황금연꽃바나나]
[팽나무]
[마스크 착용한 돌하르방이 맞아주는 안덕계곡 입구]

안덕계곡은 서귀포시 안덕면 감산리 마을 앞 계곡으로

 

 

천연기념물 제377호 안덕계곡 상록수림지대로 지정, 보호하고 있고

감산천계곡, 창고천계곡이라고도 부른다.

조면암으로 형성된 계곡의 양쪽으로 고색창연한 기암절벽이 병풍처럼 둘러 있고

계곡 양쪽 기슭에 상록수림 등이 울창한 고목림을 이루고

300여 종의 식물과 하층식물인 양치식물이 서식하고

희귀 식물인 담팔수, 제주상사화 등이 자생하고 있다.

평평한 암반 바닥에서 흐르는 맑은 계곡물이 멋스러운 운치를 자아내며

군데군데 있는 동굴들은 선사시대의 삶의 터전으로 알맞았을 것으로 보인다.

안내글에는

구전에 의하면 고려조 목종 10년에

하늘이 울고 땅이 진동하면서 구름과 안개가 자욱하게 끼더니

이레만에 '군산'이 솟아오르고 이 일대에서는 계곡이 패었다고 전해진다.

[바위그늘 집터1]

탐라시대 후기 제주도의 야외 정착 주거지 외에

 

 

화산지형으로 만들어진 소위 '엉덕'과 동굴이 당대 주민의 주거지역으로

육지부에서는 흔히 볼 수 없는 주거형태이다.

계곡의 습한 곳에는 '나도생강'이 자람 터를 넓혀간다.

[나도생강]
[맥문동]

휘어져서 더 아름다운 '안덕계곡'

 

 

불가능을 넘어선 김광종의 '농수로'

좋은 물을 얻기 위해 추사 김정희가 다녔을 제주 유배길 '사색의 길'

안덕계곡을 품은 창고천의 숨은 속살까지

시의 한 구절

길이 끝나는 곳에서 길은 다시 시작되고

길을 걷는 사람만이 볼 수 있지

[봉선화]

안덕계곡을 빠져나오니

 

 

담벼락 밑에 핀 봉선화가 오래전 기억을 소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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