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화문에 등장한 일장기. 오른쪽은 원희룡 제주도지사(사진=온라인커뮤니티, 김재훈 기자)
광화문에 등장한 일장기. 오른쪽은 원희룡 제주도지사(사진=온라인커뮤니티, 김재훈 기자)

일장기가 펄럭였다. 지난 15일 75주년을 맞은 광복절에 광화문 한복판에서. 괴이한 장면이었다. 우익 이데올로그들의 일탈행위에 충분히 단련돼 있다 생각해 왔다. 단식 중인 세월호 유족 앞에서 ‘폭식투쟁’을 벌인 게걸스러운 우파 이데올로그들의 모습을 목격한 바 있지 않은가. 그러나 매번 적응하기 어렵다. 광복절에 광화문에서 펄럭인 일장기를 보면서 말문이 막혔다. 이 비상식적인 풍경을 뭐라고 말해야 할지 막막했다.

그 시각적 충격은 좀처럼 언어화되지 않았다. 이런 생각을 했을 뿐이다. 일제로부터의 독립을 기념하는 날에 광화문에서 일장기를 펄럭이는 저들은 ‘천황 폐하만세’를 외칠 정치인을 필요로 하는 것은 아닐까. 무덤 속의 패전국 일제 천황도 민망해서 해골이 다 닳도록 뒤통수를 박박 긁고 있겠구나.

그 시각적 이미지를 알아듣기 쉽게 청각언어로 번역해준 이가 있다. 바로 원희룡 제주지사다. 원 지사는 같은 날 제주 조천체육관에서 열린 경축식에서 “(친일)앞잡이는 단죄를 받아야 한다. 하지만 인간은 한계가 있는 것이고, 특히 역사 앞에서 나라를 잃은, 주권 없는 백성은 한없이 연약하기만 하다."며 친일면피론을 들먹였다. 친일행위를 한 이들이 주권 없는 나라의 백성으로서 어쩔 수 있었겠냐는 주장이다.

원 지사는 한국전쟁 참전 용사 중에 일본 군대에 복무를 한 이들도 있다면서 그들의 공과를 논했다. 그는 “3년의 해방 정국을 거쳐 김일성 공산군대가 대한민국을 공산화시키려 왔을 때 목숨을 걸고 나라를 지켰던 군인들과 국민들이 있다. 그분들 중에는 일본 군대에 복무를 했던 분도 있다. 하지만 한국전쟁에서 나라를 지킨 그 공을 우리가 보면서 역사 앞에서 공과 과를 겸허하게 우리가 보는 것”이라고 말했다. 한국전쟁 참전 카드를 친일행위의 면죄부로 삼은 것이다. 이런 말을 코앞에서 들어야 했던 독립유공자 외손자는 얼마나 큰 모욕감을 느꼈을까. 그의 항의는 지극히 온당했다.

원 지사는 과연 친일 인사의 공과를 따져보고는 있을까. 석달 전 원 지사는, 독립군을 때려잡은 백선엽을 이순신에 비유한 바 있다. 백선엽이 독립군을 때려잡는 데 앞장 선 사실을 아예 머릿속에서 지우지 않고서는 상상할 수 없는 정신착란적인 비유다. 원 지사는 그런 비유를 아무 부끄러움도 없이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렸다. 물론 백선엽이 독립군 토벌에 앞장섰다는 사실을 거론조차 하지 않았다.

광복절에 펄럭인 일장기. 그리고 같은 날 독립유공자 유족을 앞에 앉혀놓고 친일옹호 발언을 내뱉은 원희룡 제주지사. 이 두 장면은 오래도록 오버랩될 것이다. 이는 명백히 독립유공자와 독립유공자 유족을 모욕하는 행위다. 그리고 두 장면은 일제강점기에 대한 역사 인식의 부재가 얼마나 큰 상처를 낳는지 보여주는 좋은 자료가 될 것이다. 광복절에 광화문에서 펄럭인 일장기를 바라보며 충격을 받은 이들과 원 지사의 발언을 코앞에서 들어야 했던 독립유공자의 외손자에게 위로를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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