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투데이는 긴 시간 이어져온 강정평화운동이 이번 작품 전시 활동으로 연계되는 의미를 살피는 취지에서 [밀양X강정 우리는 산다]展 주최 측의 요청에 따라 작가와의 대화 전문을 싣는다. 

2020년 8월 7일, 강정평화상단협동조합 선과장 특설 전시장 2전시관에서 열린 이상, 복희 작가와의 대화 전문이다.

진행은 마법사, 기록은 복희, 이상, 사진 기록은 양상과 하늘이 맡았다. 모두 활동명이다.

마법사 : 시작해보겠습니다. 안녕하세요? 오늘 세 번째 작가와의 대화를 진행하게 된 저는 공동 전시 기획자구요. 마법사라고 합니다. 제가 내일 육지로 올라가요. 내일 아침 비행기를 타고. 그래서 제가 진행하는 마지막 대화인 거 같아서 되게 잘하고 싶네요. 욕심이 있는데 두 분 작가님들을 소개해보도록 하겠습니다. 각자 화면을 보고 인사하시던 관객을 보고 인사하시죠.
 
복희 : 저는 복희이구요. 저희 관객 분들 여성농민회의 서포트에 너무 든든하고요. 와주셔서 너무 감사드립니다.
 
이상 :  저는 이상이라고 하구요. 강정살고 있고, 공연 쓰고 연출하는 일로 밥 벌어먹고 살고 있습니다. 만나서 반갑습니다.
 
마법사 : 관객분들한테 미리 안내드리면 해보니까 대화가 꽤 길어요. 자리가 불편할 수 있으니까 중간에 자유롭게 일어났다 앉았다 선풍기 앞에 가셔서 바람 좀 쐬었다 그렇게 하셔도 될 것 같습니다. 그럼 본격적으로 대화를 시작해볼게요. 저는 목소리가 커서 다 들어갈 거예요. 이 두 분만 목소리를 키우시면 될 것 같아요. 이제 세 번째 대화니까 제가 첫 질문 뭐할지 두 분 다 아실 거 같아요. 처음 기획하는 회의 단계에서 같이 하셨던 분들이어서 ‘원래 밀양전을 그냥 강정에 유치한다.’에서 ‘강정사람들의 이야기를 한번 담아보자.’ 이 선과장이라는 공간 안에. 이렇게 기획이 좀 변동되는 과정이 있었는데요. 강정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겠다고 했을 때, 각자 받아들였던 느낌. ‘아, 그렇게 한다면 나는 어떤 얘기를 할 수 있을까?’ 떠올랐던 이미지? 얘기해주시면 좋을 것 같은데, 누구부터 하실래요?
 
복희 : 저는 애초에 강정에서 밀양전을 그대로 재현하는 것도 사실은 의미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을 하고요. 하지만 제가 추구하는 바는 아니다. 그래서 그런 강정과의 연결성이라든지. 이렇게 하는 것이 더 좋았고, 추구하는 바이고, 그러한 것이 서울 기획팀의 입을 통해서 나와 가지고 너무 기뻤습니다.
 
마법사 : 그렇게 했을 때 ‘그러면 나는 무엇을 할 거다.’라고 떠오르는 게 있었나요?
 
복희 : 지금 하는 ‘밤 산책’과 ‘내가 좋아하는 남의 개들’이라는 두 가지 작업들이 구체적이지 않고, 어렴풋이 계속 ‘이 주제가 일상이니까 이런 걸 가져갈 수 있겠다.’라고 생각을 하다가 좀 나중에 확정이 됐어요.
 
마법사 : 구체적인 건 나중에 전시 설치 과정에서 확정이 됐었을 수 있지만, 강정의 일상하면 떠올랐던 게 밤 산책과 개들 이야기.
 
복희 : ‘전체 기획에서 강정 이야기를 어떻게 꺼낼 수 있을까? (이런 게) 재밌겠다.’ 이런 쪽에 더 비중을 크게 두고 있어가지고, 개인 작업은 조금 비중을 덜 가지고 있었습니다.
 
마법사 : 참고로 이 두 분은 기획자이셔서 이 공간을 기획하는 책임자이기도 해가지고 자기들 작품보다 ‘다른 분들 (작품을) 어떻게 배치할까?’ 이런 고민을 더 하셨을 거 같아요. 이상님도 같은 질문.
 
이상 : 저도 처음에 밀양전이라는 전시를 강정에 가져온다고 했을 때 들었던 생각은 밀양의 이야기를 강정에 가져와서 전시한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있을지에 대한 궁금증이 있었고요. 다른 한편으로는 제가 그 전시를 보지 못한 상태에서 아이디어만 공유 받았을 때에, 기존의 어떤 작업들을 다른 공간에 그대로 가져온다는 것에 대한 의아함이 있었던 거 같아요. 어쨌든 그 아이디어가 나왔을 때부터 같이 노동을 분담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있었고, 기획팀 활동을 하면서 밀양전이라는 전시에 대한 이해가 조금 되면서 ‘아, 그런 방식은 아니었구나.’라는 것을 알게 되었고요. 또 우리 기획자체가 더 넓어지는 과정 속에서 납득되는 시간들이 있었던 것 같아요. 개인 작업에 있어서는 이 기획자체가 강정에서 사는 개인의 일상을 다른 사람들에게 공유하는 개념이라고 이해를 했어요. 어떤 작업자로서의 기준이나 관점 같은 것보다 좀 편안하게 ‘여기서 살고 있는 나를 드러내면 되겠다. 그것으로도 충분할 수 있고, 나에게 어떤 의미가 될 수 있겠다.’라는 생각을 했던 거 같아요. 그래서 매일매일 반복해오던 것들을 정리하고, 그에 대한 구상들을 정리를 했고요. 그렇게 편안한 상태에서 접근을 하다보니까 정리가 되지는 않지만 떠오르는 아이디어들이나 이미지들은 많이 있었던 것 같아요.

마법사 : 제가 알기로는 다른 것들 다 설치하고 두 분께 마지막이었어요. (관객들에게) 여기에요. 아직 이 분들 작품을 못 보시고 지금 대화부터 듣게 되는 거죠. 대화 끝나고서 자세히 보시면 좋을 것 같고요. 제일 마지막에 하게 됐는데, 설치가 생각대로 되셨는지. 그리고 자신이 의도했던 게 잘 구현됐는지. 혹은 의도하지 않았는데 ‘어, 이런 게 되니까 좋더라.’라는 것도 좋고요. 이번엔 이상님부터
 
이상 : 일단 기획팀으로서의 역할과 참여 작업자로서의 역할을 분리할 수 없었고, 처음에는 제2전시장의 공간 크기나 높이 같은 것들 그리고 다른 친구들이 어떤 작업을 하겠다고 준 아이디어들을 공유 받았을 때, 큰 오브제들이 필요할 것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이를테면 카약이나 구럼비 지도 표지판, 혹은 여기 평센 쪽에 세워져 있는 이 표지판들을 쓰면 어떨까 라는 제안을 그 이후로 했었던 것 같고요. 개인작업에서 텐트라는 오브제를 사용했던 이유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가장 큰 이유는 큰 오브제가 필요하다. 전체적인 그림에서 큰 오브제가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 때문에 했었던 거 같아요. 그런데 막상 가벽이 설치되고, 평화센터가 재현되고 나니까 생각보다 공간이 그렇게 막 휑하고 크지 않은 거예요, 저희가 예측했던 것 보다. 조금 ‘망했네.’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마법사 : (텐트가) 그렇게 큰 오브제가 아니더라고요.
 
이상 : 네, 맞아요. 원래 되게 다 작은 오브제들로 계획이 될 거라고 예상을 했었어요. 그리고 생각했던 거 그대로 구현 되었어요. 사실 이 작업이 저한테는 큰 도전이었던 게. 제가 밥벌이를 작업으로 하고 있다 보니까 어떤 기준이나 관점에 대한 강박들이 심해요. 그런 것들로부터 벗어나서 나를 드러내는 것 정도까지만 하는 선택을 한 게 되게 오랜만이에요. 작업하면서 5~6년 전 정도가 거의 마지막이었던 거 같아요. 이것을 공유 받게 될 사람들을 생각하기보다 그냥 어떤 나의 자의식을 표출해보자라는 방식으로 작업을 했던 때가 너무 오랜만이어서, 저한테는 그 과정에서 힐링이 있었던 거 같아요. 사실 개인적으로 작업이라는 게 어떤 내가 하고 싶은 말을 다른 방식으로 사람들에게 전달하는 것 보다는 새로운 공동의 경험을 만드는 것이라는 생각을 하는데요. 이 작업에서는 ‘나는 이렇게 살고 있어.’를 정리하고 드러내는 것까지만 생각했던 거 같아요. 그게 어떤 방식으로 사람들과 공유가 되어야 하는지 까지는 생각하지 않았던 거 같고, 그것을 생각하지 않았던 이유는 현실적으로 핑계에 불과하지만 개인 작업에 쓸 수 있는 시간이 많지 않을 것이라는 판단을 했고요. 그랬을 때 더 무리해서 스스로를 갈아 넣거나, 거짓말을 하거나 그러고 싶지 않았던 거 같아요. 사실 이거를 준비하는 과정에서도 ‘이 더운 날씨에 누가 이 실내 공간 안에 있는 텐트에 들어가기는 할까? 들어가서 시간을 보낼까?’ 라는 스스로의 질문에 있어서 그럴 사람이 거의 없을 것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었고요. 작업적으로 봤을 때도, 이 안으로 들어가는 것 보다는 바깥의 작은 의자에 앉아서 소리를 들으면서 망원경 같은 거로 안쪽에 있는 어떤 이미지들을 관찰하게 된다던지 그런 아이디어들이 작업 준비하는 과정에서 있기도 했어요. 혹은, 제 작업이 매일매일 44초 동안 녹음한 소리들을 하나의 44초로 중첩한 작업인데, ‘이 사운드를 조절해서 내가 원하는 늬앙스나 감각으로 만들어야 되지는 않을까?’ 또는 텐트라는 오브제를 그냥 사용한 건 아닌데 의미보다 실제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활용할 수 있을까에 대한 상상들을 하기도 했는데요. 아이디어 차원의 것들을 시도하거나 ‘조금 다른 방식이면 관객들과 더 잘 만날 수 있겠다.’ 라는 걸 시도하는 것 보다는. 제가 준비되어 있고 소화할 수 있는 것만큼의 것을 드러내자는 용기를 내었습니다. 

마법사 : 아티스트잖아요. 진짜 직업적으로 하는 사람으로서 되게 큰 용기였을지도 모르겠어요. 관객이 어떻게 반응할지 사실 다 계산해서 연출 안에 넣어야 된다는 강박이 어마무시하게 있었을텐데, 그 강박과 싸운 결과물이네요. 그러면 개별 작업에 대한 질문을 드릴 텐데요. 복희님께 먼저 질문을 해볼까봐요. 복희님 작업은 두개에요.
 
이상 : (손 번쩍) 복희 생각한대로 나왔는지..
 
마법사 : 아, 그거 안 물어봤구나. 죄송해요.
 
복희 : 괜찮은데
 
이상 : 그런 거 같아서 굳이 얘기 했어요.
 
복희 : 왜냐면 저는 미리 딱 계획한 것을 그대로 끌고 가려는 욕구가 없고, 그렇게 살아본 적도 없어요. 그래서 지금 한 거. 처음에 목적으로 한 거 (둘 다) 구체적이지 않았던 게. 그냥 원래 내가 생각했던 대로 나왔다고 생각하고 있고, 과정이나 과거를 다 까먹어가지고..
 
마법사 : 그래요.
 
복희 : 다음 질문으로 넘어갈까요?
 
마법사 : 이상님 얘기를 듣다보니까 복희님한테 그 얘기를 안 듣고 넘어갔구나.
 
복희 : 듣다보니까 그건 있었어요. ‘진짜 정말 뭐 하나 할 때도 성실하게 하는구나.’
 
마법사 : 약간 완벽주의
 
복희 : 여러 가지를 고려할 줄 생각도 못했어요. 여태까지 꼼꼼하게. 또 놀랐네요.
 
마법사 : 전시 준비하면서 많이 알아가는. 여튼 두 개의 작품이 있어요. 작은 공간에 밤 산책 사진들, 본인의 습관인 거죠. 습관이 담겨있는데 하나는 밤 산책 사진들로 구성된 오솔길처럼 되어 있는 밤 산책 사진이구요. 저 끄트머리에는 작은 책자가 있고 그 책자를 열면 너무 귀여운 개 이야기가 담겨있어요. 남의 집 개 이야기죠. 좋아하는 남의 집 개 이야기들이 담겨있거든요. 첫 번째 작품인 밤 산책에 대해서 전시 설명이 아주 작게 붙어있는데, 무기력과 냉소를 벗어나는 본인의 습관이라고 설명을 하셨거든요. 사실 우리가 지금 사는 세상이 되게 무기력과 냉소에 빠지기 너무 적합한 세상이잖아요. 저도 그렇고요. 강정 사람 뿐 아니라 아마 많은 사람들이 그럴 텐데 그럴 때마다 각자가 빠져나오기 위한 각자의 방법이 있는 거 같아요. 복희님한테는 밤 산책이었던 거죠. 그래서 밤 산책이 정말 효과가 있었는지 그게 제일 궁금해요.
 
복희 : 법사님은 스트레스 받을 때 세밀한 그림을 그리신다고 해요.
 
마법사 : 되게 복잡한 그림을 그려요.
 
복희 : 저는 밤 산책이. 원래 내향적이고, 집에 혼자 있는 거 좋아하고, 스트레스 받으면 자고, 진짜 가만히 있는 거 되게 좋아하고, 그래서 힘든 시기에 집에만 더 있게 되고 그러면 쓰레기가 쌓이잖아요. 그 쓰레기를 내다 버리는 거. 해 진 다음에 좀 선선해지고 사람도 별로 없고 이랬을 때, 그걸 버리러 나가는 동선을 처음에 시작했던 거 같아요. 하루에 아무것도 안하고 누워만 있고, 트위터나 하고 있었어요. 그래도 할일 목록에 쓰레기 버리는 거는 생산적인 항목인 거예요. 하루하루 그걸 쌓아가는 게 목적이었고, 그걸 하고 있는데 거기서 조금 살만해지니까 길이 길어진 거고, 조금 더 멀리가게 된 거죠. 쓰레기는 좀 모아서 가지고 가잖아요. 근데 오늘도 나가야 되니까, 하나만 있어도 바로 나가서 버리고. 이래가지고 되게 뿌듯한 거예요. 원래도 밤길 혼자 다니는 거를 되게 좋아해요. 불빛 없는데, 깜깜한데, 눈을 떴는데 감은 것처럼 깜깜한 데에 혼자 다니는 것도 좋아하는데요. 그럴 때 만났던 장면들이 좋았고, 일단 내 세계 밖으로 나가서 내 에너지를 환기, 전환할 수 있는 거를 발견한다던지, 날 회복할 수 있는 어떤 걸 만난다던지. 이런 것들을 찾는 거였고, 되게 맞는 걸 잘 만났어요. 제가 나무가 바람에 흔들리는 움직임이랑 조용하고 사락거리는 장면들을 봤을 때, 되게 회복하는 경험을 많이 했거든요. 사소하게 길에서 발견하게 되고, 작지만 분명한 기쁨을 주어가지고 되게 효과가 많이 있었고, 최근에는 상태가 많이 괜찮아서 왠만하면 안 나가고요. 나빴을 때 멍 때리면서 가다가 보면서 센치해지기도 하고 그러는데 요즘은 근육통을 유발하는 운동기구 같은 거. 야외에 있는, 그런 것들 하는 것들로 좀 바뀌었어요.
 
마법사 : 되게 액티브하게 바뀌었네요. 어떤 분들은 그러시더라고요. 밤 산책하면 도시 사는 여성들은 다 공포감이 제일 먼저 떠올랐데요. 원래 그런 공포감이 없었는지, 아니면 강정이어서 가능한 건지 물어보고 싶어요. 

복희 : 없었어요. 지금도 하늘님은 밤길에 ‘나 혼자 간다.’ 그러면 ‘안 된다.’고 하면서 바래다주시고 그러는데. 어렸을 때부터 집이 학교랑 멀고, 고속도로 근처고, 산 있고, 이런 덴데, 거기도 걸어 다니는 거 좋아했어요. 귀신이나 사람을 무서워하지 않는 운 좋은 경험을 해왔죠.

마법사 : 저와 정말 비슷합니다. 그러면 이상님 개인 작업에 대한 질문을 해볼게요. 일단 처음 만나게 되는 문장이 되게 멋있어요. 약간 시 같아요. 제가 낭독해보죠. ‘작년, 사랑하는 사람이 유학을 떠났다. 그날 이후 매일 오후 4시 44분이 되면 44초간 소리를 녹음했다.’ 이렇게 시작해요. 이걸 딱 듣는 순간 뭔가 확 드라마 속으로 빠져드는 느낌이 들지 않아요? 근데 전 그 순간 생각했죠. 왜 하필이면 4시 44분일까? 그리고 왜 하필이면 44초일까? 그리고 어떤 일상을 기록하는 방식이 소리가 아니라 이제는 1초짜리 영상을 매일매일 쌓는 사람도 있고, 떠올랐던 문장을 쌓는 사람도 있는데. 되게 다양한 방식이 있는데, 이게 왜 소리이고 이 숫자들이 의미하는 바가 무엇인지 궁금했습니다.
 
이상 : 개인적으로 ‘너무 질척대는 거 같다.’라는 느낌이 있는데요. 이 분에게는 다 동의를 구하고 작업을 발표했고요. 숫자에는 별다른 의미가 없어요. 그냥 직관적인 선택이었고요. 저에게 중요했던 건 매일매일 바쁘게 돌아가는 일상에서 내가 그 사람을 생각하고, 그 사람의 부재를 감각하는 시간을 마련하는 일이었던 거 같아요. 그리고 처음에는 이런 행위가 그 사람과의 관계나 소통에 있어서 좋은 핑계거리가 되지 않을까라는 기대감이 있었고, 처음에는 그 친구도 똑같이 그 친구가 있는 곳에서 4시 44분에 소리를 녹음하는 행위를 했던 걸로 알고 있어요. 물론 그게 어떤 관계적인 측면에 있어서 지속적으로 유효하지는 않았던 것 같아요. 근데 제가 계속 지금도 이걸 하고 있잖아요? 이걸 하고 있는 걸 보면서 명확하진 않은데, 이게 어떤 종류의 그리움을 대하는 나의 태도나 방식의 한 모습이지 않을까라고 스스로를 확인하고 납득해가는 과정 중에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소리를 선택했던 이유는, 일단은 그게 저에게 익숙하지 않은 매체여서. 낯선 곳에서 일상을 새로 시작하는 친구에게 ‘이거 같이 하고, 공유를 하자.’라고 제안했을 때, 저 스스로에게도 익숙하지 않은 것이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고요. 한편으로는 또 쉬워야 된다는 생각을 했어요. 많은 시간과 에너지를 들이는 어떤 습관을 들인다는 것은 굉장히 어려운 일이어서 계속 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고, 쉽게 계속 할 수 있는 것을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소리를 선택했고요. 한편으로는 조금 시간이 지나서 제가 그 사람과 다시 만나서 이 시간을 공유하게 되거나 혹은 지금처럼 다른 사람에게 이 시간을 공유하게 되는 것을 상상했을 때, 이 시간들이 명확하게 읽히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었거든요. 사람이 비장애인인 경우 정보전달의 85퍼센트 이상을 시각으로 한다고 하는데요. 시각적인 요소는 그만큼 많은 정보를 담고 있고, 어떤 사람의 상태나 감각, 그리고 감성들을 읽어내기에 되게 좋은 요소인 것이죠. 글이나 그림도 그렇다고 생각을 했고요. 시간이 명확하게 상상되거나 예측되지 않기를 바라서 소리를 쓰기로 했어요.
 
마법사 : 네. 그 부분에서 제가 궁금함을 느꼈나 봐요. 저는 오히려 되게 단순하지만 거기서 명확한 게 딱 떠오르는 것으로 일상을 쌓는 것에 대한 게 익숙한 상상이어서, 왜 하필 소리일까? 소리는 정말 너무 뭔지 잘 모르는 잡소리들이 많잖아요. 잡음들이요. 그래서 왜 그랬을까 궁금했습니다.  

이상 : 실제로도 그랬습니다.

마법사 : 그럼 복희님 두 번째 작품으로 넘어가 볼까요. 두 번째 작품을 보시면 아마 귀여울 것입니다.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개에요. 그런데 자기가 키우거나, 자기 반려견이 아니라 남의 개. 좋아하는 남의 개거든요. 같은 톤의 질문일 수 있는데 왜 굳이 왜 하필 개일까요? 수많은 동물과 사람과 자연이 있고 그런데 왜 하필 개일까요? 근데 또 왜 하필 남의 개일까요?
 
복희 : 전 개가 좋아요. 고양이도 좋지만 고양이는 약간 안달나게 하고 매달리게 하고 그래서. 그리고 사람의 감정에는 제가 공감을 못하는데 개랑은 조금 통하는 것 같고. 그래서 개가 좋고, 특히 남의 개가 좋은 이유는 내가 사료값과 복지를 신경 써도 되지 않기 때문에 더 선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개들이 보호자를 먼저 알아서 부수적으로 알게 되는 게 아니고 그냥 우연한 자연 상태에서 직접적으로 대면한 경우이기 때문에 그 순간을 특히 더 좋아하는 거 같아요. 그게 내가 관계를 맺는 방식에서 선호하고 편한 방식이에요.
 
마법사 : 제가 알기로는 친구의 반려견이 있다고 들었고, 그 반려견 산책도 자주 시킨다고 들었는데요. 자신이 데리고 산책하는 개랑 그림에 보면 묶여있거나, 울타리 안에 있거나 그런데요. 복희님하고 막 노는 거예요. 그러면서 처음 만났을 때는 짖다가 그 다음에는 친한 척 하게 되는 과정도 담겨있고 그랬거든요. 그런 개와 복희님을 따라서 같이 산책하는 개와 어떤 울타리 안, 혹은 묶여있거나 일정 거리를 둔 개와의 관계가 차이가 좀 있을 거 같아요.
 
복희 : 많이 있어요. 시간과 밀접함이라든가 좀 다르긴 한데요. 결정적인 것은, 아는 사람의 개는 복지가 일정 수준 이상으로 사랑을 받는 개인 것 같고요. 이런 개들은 어떻게 보면 선택권이 없어요. 저랑 만나는 순간을 피하거나 할 수 없는 불공평한 환경에서 겹쳐지는 반경에 나를 만나게 되는 건데, 그 순간이 처음에는 되게 적대적인 표현들이 있다가 시간이 지날수록 그 변화를 내가 반가워하고 기뻐하는 거거든요. 그 밀접함이나 그 개들이 완전히 나한테 그렇게 되는 게 아니니까, 그 사소한 변화가 좋은 것 같고 약간 더 기원하게 되는 거 같아요. 행복해라, 잘 살고 있는지 안부를 확인하게 되고. 오늘 좀 편안해 보이면 좀 안심하게 되고, 이런 게 있는 거 같아요.
 
마법사 : 복희님이 선호하는 관계 맺기 방식과 개를 만나는 복희님의 방식이 좀 통해있는 거 같아요.
 

복희 : 맞아요. 보통 개를 좋아하는 사람이 개랑 친하다고 하면, 그게 10이라고 치면 저건 1, 2 정도 될 거에요. 근데 그것만으로도 난 정말 벅차고 충만하다. 3정도 되면 좀 힘들 수 있다. 어떻게 보면 좀 무책임한.

 

마법사 : 구태여 그렇게 가치 판단을 하지 않기로 해요. 그러면 이상님 작품에 대한 질문으로 넘어갈 텐데요. 안 보신 분들이 계시니까, 스포입니다. 아마 얘기를 듣고 보시면 확 다가  오실 거예요. 전시 설명 캡션부터 정서를 확 건드리는 문장, 단락으로 시작했는데 노트에 이어지는 듯 이어지지 않는 문장들이 담겨있어요. 텐트 안에 들어가시면 거기 있는 몇몇 단어들이 떠올라요. 제가 떠올랐던 것은 편의점이 있던 지금은 없는 벽, 바나나우유, 그리고 구럼비 얘기도 있죠. 그런데 그 문장들이 다 하나의 감정을 향해 있어요. 저는 이 텐트를 가득채운 정서는 그리움이라고 느끼거든요. 그래서 거기 보면 44초를 계속 기록하려고 했던  마음도 그리움이었고, 매일 인간띠잇기에 나가려고 했던 그 마음도 그리움이고, 그런 그리움의 정서가 저한테는 되게 크게 다가왔고, 그걸 그냥 마음만 갖는 게 아니고 행위로 하는 거잖아요. 녹음을 하고 기록을 하고. 어떻게 하든 인간띠잇기 12시면 나가려고 하고. 그래서 개인 이상님한테 그리움이란 어떤 정서일까? 이게 궁금해졌어요. 제가 이걸 궁금하게 된 건 사실 저는 약간 그리움과 동떨어져있는, 그런 감정을 잘 많이 못 느끼는 사람이라서 그런 거 같아요. 그래서 그 감정이 이상님한테는 어떤 의미일까?
 
이상 : 삶에 전반적으로 깔려있는 베이스 같은 감정들이 있어요. 그리움도 그렇고 자조나 비관 같은 것도 기본적으로 저한테 깔려있는 베이스적인 감정인데요. 그게 꼭 나쁘지만은 않고요. 전 그리움으로 사는 것 같아요. 그게 어떤 그리운 과거의 시간이나 대상들을 붙잡고 있는 것은 아니고, 지금을 만들어준 지나간 것들을 계속 복기하고 생각하면서 동시에 오늘을 사는 거죠. 그래서 오늘이 2020년 8월 7일이고 우리가 지금 여기에 있지만 제가 동시에 다른 시간이나 장소에 존재하고 있다고 느낄 때가 많이 있어요. 그래서 그리움이란 그냥 어떤 삶에 전반적으로 깔려있는 베이스다.
 
마법사 : 이상님의 베이스.
 
이상 : 네, 제 베이스입니다.
 
마법사 : 그런 면에서 여기 노트에 적혀있는 문장 중에 ‘난 구럼비에 가본 적이 없다’라는 문장이 있어요. 저는 그걸 보는데 심장이 툭 떨어지는 느낌이 들었거든요. 구럼비에 가본 적이 없는 사람이 구럼비를 그리워하며, 12시에 인간띠잇기를 나가고, 구럼비를 그리워하는 사람들을 그리워하며, 그곳에 같이 함께 하는 거죠. 그 마음이 뭘까? 이런 여러 가지 생각이 막 들게 됐어요. 구럼비를 본 적 없는 사람이 그리워하는 구럼비는 어떤 의미일까? 구럼비에 대한 그리움을 얘기하는 사람들이 많잖아요. 강론시간에 신부님도 얘기하시고, 집회할 때나 이럴 때 각자 자기의 구럼비 추억을 얘기하기도 하고 그렇게 하시는데.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사람이 구럼비에 대해서 갖는 그리움 그리고 이상님이 강정으로 이주하신 것 자체가 늦은 시기잖아요. 그것도 연결돼있지 않을까? 가보지 않은 자의 그리움과 해군기지가 이미 들어선 이후에 강정에 온 이상님 그런 게 연결되어 있지 않을까? 이런 궁금함도 들고 역시나 그리움에 대한 질문이지만 조금 더 구체적으로.
 
이상 : 이게 갑작스러운 건 아니고 되게 자연스러운 결과물인거 같은데요. 아까 그리움이 기본적인 정서의 베이스라고 말씀드린 것처럼 저는 그런 상상들을 늘 하면서 사는 거죠. 세상의 모든 공간들은 적어도 한사람 어떤 누군가에게는 되게 소중한 장소일 수 있다는 상상을 해보는 거예요. 예를 들자면 내가 무심코 지나치는 어떤 후미진 골목길이 어떤 사람에게는 평생 잊을 수 없는 기억이 담겨있는 장소일 수 있고, 만약 그 사람이 그 기억을 진심으로 저에게 공유해준다면 저는 그 사람만큼은 아니지만, 저도 그 골목길을 지나면서 이전에 그 골목길을 보았을 때와 그 이후에 그 골목길을 볼 때가 다르게 보일 거라는 생각을 하는데요. 그게 그리움이라는 정서처럼 제가 늘 어디를 가서 일을 하거나 관계를 맺을 때, 늘 하게 되는 생각들이기도 하고, 어떤 공연들을 만드는 일들에 있어서 그것들을 말로 직접 표현하지는 않지만 깔리는 기본적인 관점 같은 거 같아요. 그런 선으로 보자면 내가 구럼비에 가보지 않았지만 구럼비를 그리워하는 마음에 어떤 작동 방식은 비슷할 수는 있는데 크기가 되게 달라서 저도 되게 신기한 건데요. 실제로 어떤 친구들의 모습이나 혹은 기지 완공 이후에 와서 활동을 하면서 어떤 상황들에 직면하게 될 때, 내가 직접 경험하지 않은 어떤 이미지나 영상이나 글로서 들었던 그 기록에 의해서 구럼비라는 존재의 이미지나 단어가 소환될 때마다. 진짜 가끔이긴 한데 명치 아래에서 접시 같은게 올라오는 것 같은 느낌이 들 때가 있거든요.  
 
복희 : 되게 구체적이다. 굳이 접시.
 
이상 : 진짜 딱 접시 같은 게 올라오는 느낌이야.
 
복희 : 세워서 눕혀서?
 
이상 : 그래서 약간 좀 막히는 느낌이 드는데요. 그게 왜 그런지 설명하기가 어렵고, 어쩌면 난 결국 어떤 사람들. 내가 좋아하고 존경하는 사람들에 대한 어떤 마음을 구럼비에 투여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보기도 했고요. 그리고 아직은 잘 모르겠어요. 근데 그냥 가보지 않은 곳을 빼앗겼다는 기분이 들 때가 많고, 그래서 내가 취할 수 있었던 현재와 미래를 빼앗겼다는 생각이 들 때가 있고, 그걸 되찾고 싶다는 운동권적인 마음이 들 때가 있는 것 같아요. 그리고 사실 기지완공 이후에 이주하게 된 건, 그 전에도 강정에 왔다 갔다 했었는데요. 제가 가진 성향상 마을 커뮤티니와의 관계에서 나의 존재가 별로 도움이 되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고요. 기지 완공 이후에는 조금 평화운동 관점에서 내가 와서 살 수 있겠다, 활동해 갈 수 있겠다는 판단을 했던 거 같아요. 그래서 그 후로 이주를 한 것 같습니다.
 
마법사 : 어떤 건지 알 것 같기도 해요. 어제 작가와의 대화 했었던 호수님의 봉숭아꽃 할머니가 있거든요. 저는 이제 그 할머니랑 되게 특별한 관계를 맺은 거 같은 느낌이에요. 물론 뵌 적은 없어요. 하지만 저는 언젠가 정말 등이 굽은 한 90세 정도의 할머.. 아니, 등이 꼿꼿하다고 하셨는데요. 90세 정도의 할머니를 길에서 마주치면 봉숭아 꽃 할머니를 떠올리게 될 거고 ‘아, 저 할머니가 조금이라도 건강하셨으면.’ 간절하게 바라게 되는 거 같아요. 약간 그런 거지 않을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이상 : 정확합니다.
 
마법사 : 감사합니다. 그럼 복희님 작품 얘기 위치 얘기를 해보고 싶어요. 텐트가 이렇게 있잖아요. 문이 여긴데 꼭 뒤통수에 자신의 작품을 설치하고 싶다는 거예요. 근데 이게 출입구나 이런 게 부딪치니까 그랬겠죠. 뒤통수보다 약간 비껴서 설치해서 되게 아쉽다는 얘기를 세 번인가 네 번인가를 들은 거 같아요. ‘진짜 아쉬우셨구나.’ 그런 생각을 했거든요.
 
복희 :  그랬군요. 질문을 미리 받고 답을 준비하면서 다른 답을 생각하고 있었는데 내가 그랬구나.
 
마법사 : 그런 얘기를 제가 한 3번을 들은 거 같아요. 사람들이 여기가 출입구인 것은 누구나 알잖아요. 이 전시 이 섹션의 출입구인걸. 근데 왜 뒤통수에 하고 싶었을까? 너무 궁금했어요.
 
복희 : 제가 추구하는 것을 막연하게 뒤통수라고 표현했던 거 같아요. 근데 지금 제가 추구하는 느낌은 이게 더 맞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뒤통수에 하고 싶었다는 표현에서 안 맞았던 거는, 뒤통수는 사실 너무 밀첩한 관계잖아요. 너무 질척거리는 거고, 좀 무례하기도 하고. 그래서 그것까지 추구한 것은 아니었고, 약간 뒷면이나 집이라면 울타리가 있다면 울타리의 바깥면의 한 부분이라든지. 이런 느낌을 추구했던 거 같아요. 그래서 사실 비껴가는 거라는지 이런 것들이 더 원래 추구하는 바와 더 맞게 구현이 된 것이고, 처음에 ‘뒤통수가 왜 안 될까?’ 했는데 생각보다 텐트가 낮고 뒤에도 곡선이어서 사진 크기라든지 배치를 할 때 너무 어려운 거예요. 아예 단독으로 해볼까 생각도 하다가 그래도 같이 있는 게 더 재밌고, 벽에다 붙일까 하다가 바닥 아이디어를 준 게 반디라는 친구가 바닥에다 하라고. 이렇게 이렇게 길처럼 하라고. 그 분이 저기 보시면 ‘여기 왜 있지?’ 라는 글씨를 제가 썼거든요. 꼭 걸어가야 한다고 글씨가. 그래서 신발 신겨 놓고 그랬어요. 약간 걸어가는 거에 꽂히신 분이에요, 그 분이. 근데 보니까 산책이잖아요. 너무 잘 맞는 거야. 너무 기가 막히고 재밌는 아이디어다 해서 냉큼 수용을 했고요. 그 분이 끝에다가 꼭 작은 조명, 스탠드 같은 거 세워서 가로등처럼 하라고 그랬는데, 그건 구하기가 좀 귀찮아서 그리고 좀 너무 과한 거 같아서 수용하지 않았어요.
 
마법사 : 그러게요. 작은 조명 이렇게 서있으면 되게 근사하긴 했겠네요.
 

복희 : 텐트 꽁무니에 콘센트도 있어요. 이상 꺼 그게 있어서 설치도 괜찮을 거라고 했는데 그렇게까지는 너무 과한 거 같아서. 그래도 정말 아이디어를 주셔가지고 좋았고, 형식 같은 것도 이게 먼저 정해지니까 만화도 어떻게 해야될 지 그때 정리됐어요. 초기에는 두 개의 개별 작업이 아닌 하나의 작업이고, 밤 산책 사진이랑 멍멍이 그림을 포토샵으로 합성을 하는 그런 형식으로 좀 생각을 했었거든요. 구체적이지 않을 때 처음에 그렇게 생각을 했다가 일단 이걸 먼저 하고 나니까, ‘저거는 간단하게 편하게 끼워넣을 수 있겠다.’해서 이렇게 형식이 정해졌어요.

 

마법사 : 산책로가 만들어지니까 그 다음이 만들어졌네요. 그건 되게 잘 된 것 같네요.
 
복희 : 되게 구체적이지 않았는데 이렇게 주위 사람들 다 만들어 준거라고 할 수 있죠.
 
이상 : 그 만화는 전시 당일 날 완성됐다는…
 
마법사 : 그러게요. 전시 몇 시간 전에, 오픈 몇 시간 전에 됐다는 소문이…
 
복희 : 그렇죠. 근데 그 전에 질척거리는 분량으로 마음만 조급해서 구질구질하게 길게 쓴 비슷한 형식으로 한 게 있어요. ‘도저히 안 되겠다.’ 해서 멈추고, 일단 설치를 다 한 다음에 자리가 조금 어떻게 해야 될 지가 정해지니 딱 나오더라고요. 다들 만들어 줬어요.
 
마법사 : 역시 그래도 작품은 마감이 만든다. 그런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가끔은 우연히 만드는 게 신기한 결과를 낳을 때가 있잖아요. 그게 기쁘기도 하고 좋습니다. 여러 에너지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결과물인 것 같아요. 이상님은 아까 텐트 얘기를 하셨는데 텐트에 아무도 안 들어 갈 거라고 확신했다고 했어요.
 
이상 : 아무도는 아니고 굉장히 적을 거라고..
 
마법사 : 며칠 전에 친구들하고 같이 여행하다가 이 전시를 보러 왔어요. 한 친구는 양상님 사진에 꽂혔고, 한 친구는 이상님 텐트에 꽂혔거든요. 그래서 텐트 안에 들어가서 한참을 웅크리고 앉아있어서, 제가 그 친구 사진을 찍었거든요. 웅크리고 있는 모습이 너무 인상적이어 가지고. 그래서 ‘와, 저 텐트가 가진 끄는 당기는 힘이 있구나.’ 그런 게 있었고,  양상님 사진을 좋아했던 그 친구는 텐트 안이 너무 예쁘다는 거예요. 그 공간 자체가 너무 예쁘대요. 그 친구는 인스타 감성을 좋아하는 친군데 그 친구한테 너무 마음에 드는 공간이었대요. 텐트라는 공간을 활용한 이유가 큰 오브제도 있었지만 어떤 텐트 안을 꾸밀 때 이상님의 주안점, 신경 써서 했던 것, 텐트라는 공간이 주는 연출 의도 이런 것들 좀 얘기가 듣고 싶어요.
 

이상 : 텐트는 자유롭게 이동할 수 있고, 접었다 폈다 할 수 있는 물건이고, 하지만 집처럼 단단하게 안정감을 주지는 못하는 속성을 가지고 있어서 마음에 들었고요. 되게 사적인 공간이어서 관객이 누군가의 사적인 공간, 내면의 공간으로 들어가서 그 내면에서 있는 소리나 이야기들을 듣고 읽고 밖으로 나오면 좋겠다는 게 의도였어요. 그래서 누군가가 들어갈 때 보면, 제 눈에는 이 사람이 내 마음 속으로 들어가는 것처럼 보이는데요. 사실, 관객의 입장에서 상상해 볼 때는 그런 것들을 느끼게 하려면 또 어떤 것들이 필요하잖아요. 그렇게까지는 아니지만, 최대한 안쪽으로 더 안으로 들어가는 느낌을 주려고 했고요. 몇 가지 내부를 시각적으로 구성하고자 하는 아이디어들도 있었지만, 아까 말씀드렸던 것처럼 지금 내가 소화하고 있는 것 만큼만을 그대로 드러내는 게 목적이었기 때문에 되게 단순하게 꾸몄어요. 그래서 안에 있는 것을 보시면 향꽂이와 향이 있고, 손톱깎이가 있는데요. 이거는 이 행위를 하게 만든 그 사람이 저에게 선물해줬던 물건들이고, 이걸 설명할 필요는 없지만요. 그리고 들어가서 헤드폰을 쓰고 다음에 저기 있는 노트를 펼쳐서 그 안의 이야기들을 읽고 나오면 되도록 연출을 했습니다.

 

마법사 : 이 공간이 외부랑 갑자기 차단이 확 되면서 몰입하게 하는 효과가 있었던 거 같아요. 그래서 그 텐트 안에서 되게 오랜 시간 머물렀던 그 친구가 했던 말은 나와서 ‘어우. 이 분 되게 집착이…’ 그랬어요. ‘이 44초를!!’ 하면서. 그렇게 느꼈나 봐요. 이 공간에 확 들어갔다가 나오니까. 그런 게 궁금하기도 하다고. 이 사람이, 이 작가가 궁금하다고 해서 ‘어, 아까 가이드 해주신 분이야.’라고 했는데. 네, 그랬습니다. 확실히 공간이 주는 힘도 있는 것 같아요. 복희님하고 이상님한텐, 두 분 다 아티스트세요. 그래서 자기 작업에 대한 질문을 할 수 밖에 없을 것 같은데요. 만화를 그리시는 분이고 만화를 그리는 작업, 그런 직업이 복희님에게 어떤 의미인지. 지금 현재, 그리고 강정에서 살아가는 복희님, 강정 사람인 복희님한테 이 작업은 어떤 의미인지 듣고 싶어요.
 
복희 : 전 여기 왔었을 때부터 ‘강정에서 겪은 거를 만화로 그려야지. 그래서 내 의견을, 내 주장이 맞고 사람들이 틀렸다.’는 것을 지적하는 것을 되게 하고 싶었거든요. 만화로 사람들을 선동하고 이런 거를 되게 하고 싶어요. 그런데 다른 일로 미루어져서 손대지 못하고 있는 작업이고, 저는 꼭 만화를 그릴 때 그리는 소재나 그 주제 속에 있어야 해요. 그래서 강정 밖에 있으면 강정이야기를 못 그리는 거죠. 작년에 돈키호테북스랑 같이 했던 다른 작업도 그렇고요. 그래서 거기에 죽치고 있으면서 작업을 했던 건데 다른 기획이나 여러 가지 문화예술에서 하는 이것저것 다 닥치는 대로 하고 있는데요. 예전에는, 만화는 내 작업이고 내가 만화를 그리고 있지 않으니까, 내 작업은 안하고 있다고 표현하고 있었거든요. 근데 이제 이것도 다 내 작업이라는 생각으로 전환을 하는 게 최근에 있었고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만화를 안 그리고 있으니까 뭔가 빨리 해야 되고, 강정이야기를 빨리 그려야 된다는 걸 추동하는 의미가 있어요. 강정에서 하려고 하는 거랑 이런 일들을 계속 이어가는 것이 그런 의미가 있어요. 최근에 작업실도 얻고, ‘만화를 그려야지, 그려야지.’ 하는 것을 좀 더 적극적으로 스스로한테 말하게 되는 이유가 점점 나이를 먹어가지고 집중력과 체력이 떨어지니까 내가 더 이상 미루면 이번 생에는 못 하겠다는 생각이 드는 거예요. 그래서 지금 부지런히 빨리 나를 어르고 달래서 만화그리기를 시작하게 하는 것을 생각하고 있어요. 이번 년도는 망한 것 같고 내년에는 좀 더 만화 쪽으로 방향을 틀을 수 있지 않을까 이렇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마법사 : 복희님의 작품도 기대되네요.
 
복희 : 네, 기대해 주십시오.
 
마법사 : 이렇게 기대를 하면 추동이 되나요?
 
복희 : 약간 부담이 있겠죠. 아주 미세하게 쌓일 거예요.
 
마법사 : 그럼 응원 좀 해주시고 ‘넌 만화를 그려야 해.’라고 압박을 해주시면 좋겠네요. 이상님에게도 비슷한 질문일 수도 있는데, 저는 직접 보거나 그런 적은 없어요. 주로 퍼포먼스, 연극 이런 작품을 하고 있는 걸로 알고 있는데요. 그래서 이 전시라는 건 시각적이고, 입체적이긴 하지만 되게 시각적인 거잖아요. 그리고 일방적으로 보여주는 거고. 그런데 이상님이 해왔던 작업은 참여자의 액션자체가 작업의 일부가 되는 걸로 들었어요. 그래서 하시면서 답답함이 있지 않을까? 자기가 해왔던 것과, 조금은 한계가 있는 어떤 형식이니까. 형식이 다르니까. 그래서 혹시, 이건 미리 드린 대본에는 없던 건데 다음에 이런 기회가 만약에 있다면, 혹시 이상님이 해왔던 방식으로 해보고 싶은 거 아이디어나 떠오르거나 그런 게 있으셨는지? 궁금하네요.
 
이상 : 일단 전시 매체 자체가 가진 한계라는 표현은 아닌 거 같고요. 왜냐면 그걸 넘어가시는 작가들은 늘 있으니까. 그냥 제가 공연 매체에서 일을 하는 사람으로서 이 전시 매체라는 것으로 왔을 때, 그냥 저 스스로의 한계를 느끼는 것이죠. 욕심 같아서는 이것도 잘하고, 저것도 잘하고 싶은데 그건 좀 어려웠던 것 같고요. 아이디어는 사실 이번 기획에서 강정파트도 공동 작업을 하고 싶었었어요. 그거 관련된 작업인데요. 이건 공연매체는 아니고, 여행 가이드북을 만드는 작업인데요. 예를 들자면, 강정에 살고 있는 친구들이랑 같이 하는 작업이에요. 여러 사람이 7개 정도의 키워드들을 가지고 글을 쓰는 거죠. 예를 들면, ‘비밀’이라는 키워드가 될 수도 있고, ‘분노’라는 키워드가 될 수도 있고, ‘즐거움’이라는 키워드가 될 수도 있는데요. 강정 지도를 펼쳐놓고, 그 키워드에 대한 기억이 있는 공간들에 스티커를 붙여놓고, 그거에 대한 각자의 기억을 쓰고, 그걸 하나의 주제별로 묶어서 하나의 동선을 만들어 낸 여행책을 만드는 거죠. 관객들이 강정에 사는 사람들의 기억 속을 여행하면서 동시에 실제적으로 그 장소들을 찾아다니는 그런 여행책을 만드는 작업 같은 거를 해보면 좋겠다고 이번에도 생각을 했는데 이루어지진 못했고요. 그 정도의 아이디어인거 같아요. 공연으로 무언가 풀어내는 것에 대해서는, 저는 주제의식이 명확한 작업을 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기 때문에 강정에서 하는 것은 적합하지 않은 것 같고요. 강정에서 작업을 한다면 이런 친구들의 기억이나 일상들을 다른 방식으로 더 넓은 범위의 사람들과 만나는 것을 추구하고 싶은 마음이 있어요.

 

마법사 : 몇 달 전에 전체 기획회의에서 나온 아이디어이긴 했었거든요. 사실 ‘구현되면 너무 재밌겠다. 상상하면서 너무 재밌겠다. 얘를 들고 막 가면 여긴 누군가의 분노가 쌓여있는 공간’ 막 이러면서.
 
이상 : 그 공간에 가서 그 페이지를 펼치면, 그 기억이 나오는 거죠.
 
마법사 : 강정에서 몇 박 며칠 있으면서 경험해보면 너무 재밌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여력이 안 돼서. 그래도 한번 해보면 되겠어요.
 
이상 : 사실 그런 아이디어는 공연으로도 가능은 한데요, 기술적인 걸 활용하면. 근데 이제 그 부분은 돈이 많이 드는 문제이기 때문에.
 
마법사 : 이거는 꼭. 됐으면 좋겠다. 꼬옥. (관객들을 향해) 혹시 일방적으로 들으시니까 좀 지루하시거나 그러지 않아요? 질문이 있으시면 머리속에 잠시 쟁여놓고 제가 준비한 질문을 좀 더 해보도록 할게요. 이 분들은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첫 기획 단계부터 같이 기획하셨던 분들이세요. 그래서 자기 작품보다는 오히려 이 공간을 어떻게 하면 좋을까, 이 공간에 친구들의 작업이 어떤 방식으로 배치되고 어떻게 할까를 더 고민하셨던 분들이셔서 기획자이신 이 두 사람에게 질문을 할 수밖에 없는 거 같아요. 기획자로서 이 2전시실 선과장이 처음 구상대로 잘 구현이 됐는지 오픈 때 어떠셨는지 궁금합니다.
 
복희 : 저는 생각했던 대로 된 거 같아요. 어떠세요?
 
이상 : 전 사실 ‘처음에 생각이라는 게 우리에게 존재했나?’라는 생각을 하고 있는데요. 처음부터 계속 아이디어 차원이 많았고, 그게 명확히 정리가 되지 않았던 부분이 많았고, 개인 작업들도 거의 다 닥쳐서 들어왔기 때문에. 그게 애초 구상이라고 했던 부분이 개념적으로는 1전시실에서 밀양의 농성천막을 재현한 바탕에 할머님들의 작품들을 걸었다는 개념과 강정에서는 평화센터를 재현한 토대 위에 지킴이들의 이야기를 넣는다는 거를 개념적인 거는 정리가 됐지만, 사실 애초 구상에 우리가 아무도 이 모습을 상상할 수 없었고, 오픈 전날 되어서야 확인을 했다라고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복희 :그거는 결과물에 대한 이미지를 어느 정도 예측할 수 있느냐는 거잖아요. 이 이미지를 이런 식으로 배치가 되거나 이런 거는 예상을 하기는 어려웠지만, 내용들이 ‘이 정도는 모을 수 있겠다.’라는 걸 생각했었던 것보다 사실 저는 좀 더 잘 나왔어요. 친구들이 자기 얘기를 꺼내는 것을 조금 어려워해서 그 과정이 더 공을 들여야 되는 과정이라고 생각을 했는데 생각처럼 공을 들이지 않았는데도 되게. -못 들였다. 안 들인 게 아니고 못 들였다. 그럴 수 없었다.- 그랬는데 이 주제를 만났을 때 더 마음을 열어주시고 자기 표현하는 거에 대한 의지나 욕구나 이런 것들을 확인하는 작업들이 있어서 그런 부분은 생각보다 수월하게 왔어요.
 
이상 : 저는 조금 덧붙이면 어쨌든 불확실성이 많은 상황 속에서 많은 사람들이 할 수 있는 것 안에서의 최선을 하는 그 경험이 되게 좋았던 거 같아요.
 
마법사 : 여기 모습은 각자에게 오더를 내린 게 아니거든요. ‘각자 강정의 일상을 한번 표현해 보세요. 하실 분?’ 이렇게 해가지고 각자가 할 수 있는 방식대로 주제를 잡고, 이렇게 그림 한 점을 갖고 오기도 하고, 누군가는 한 공간을 만들어 보기도 하고, 그렇게 한 거예요. 각자의 할 수 있는 방식대로. 그래서 이거를 잘 배치하고 조율하게 된 거는 또 다른 
 
복희 : 화사님, 감사합니다. 사랑합니다.
이상 : 박수, 짝짝짝.
 
마법사 : 그 분이 큰 역할을 해주셨고, 두 분이 큰 역할을 해주신 것 같아요. 그러면 전시가 중반 정도 됐잖아요. 사람들이 작가님들도 자기 작품이 어떤 방식으로 전시가 됐는지 전체적인 걸 보면서 그걸 확인하셨을 테고, 또 그게 관객들을 만났을 때 어떤 느낌을 주는지도 아마 피드백을 조금이라도 받긴 받으셨을 거라고 생각은 해요. 이 두 분이 전시장 지킴이를 제일 많이 하시는 분이기도 하니까, 이게 관객들하고 어떤 교감이 되고 있다는 느낌이 드는지, 본인들이 처음 구상할 때 이런 정도의 교감은 있지 않을까라고 예상했던 게 있다면 ‘그것과 잘 의도대로 잘되고 있어.’ 이런 느낌인지 어떤지가 궁금해요. 이제 중반이니까.
 
이상 : 진짜 잘 모르겠는데요.
 
복희 : 이것도 약간 비슷한 게, 바라는 것은 이게 진짜 완전 대박나서 사람들 바글바글 하고 우리가 했던 하고 싶었던 얘기 이상으로 막 해석하면서 그렇게 해주는 분들이 있었으면 좋았겠죠? 근데 저는 사실 그래요. 의도와 다르게 해석을 가져가는 분들도 자기 안에서 맥락을 가지고 있잖아요. 그래서 뭐든지 발견해주시면 좋을 것 같고, 결과물.. 저는 공감을 잘 못하니까 설명을 잘.. 취지나 의도를 설명하는 역할을 하기도 하지만 다 각자의 감정과 경험과 이런 거를 연결해서 가져가시더라고요. 그런 부분이 되게 좋았어요. 정말 생뚱맞고 특별한 일상인데 거기서도 자기의 평범한 어떤 맥락을 가져가서 연결시키고 그렇게 가져가시는 것 같고요. 그러면서도 이 밀양할머니들의 특별한 순간인 싸움들, 일상적이지 않은 그런 부분들 같은 것들, 여기서도 뭔가 그 자리를 지켜주시는 거에 대한 고마움. 이런 것들이 방명록에 표현되어 있어요. 그래서 되게 훌륭한 관객들이 오시고 간다. 감사합니다. 라는 그런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상 : 사람이 많지는 않지만 지속적으로 사람들이 계속 오고 있다는 사실과 이 전시를 통해서 혹은 강정 평화상단이 여기에서 운영하고 있는 문화워크숍을 통해서 처음으로 이 공간에 오게 되고 처음으로 싸움들을 알게 되시는 분들이 있다는 게 좋은 것 같아요. 그 분들이 어떤 걸 가져가는 것까지는 알 수는 없지만 우리가 전에 만나지 못했던 사람들을 조금이라도 만날 수 있는 과정을 가져오고 있다는 측면에 있어서 좋다고 생각합니다.
 
복희 : 난 또 그런 생각도 있어요. 날씨가 되게 덥고, 관람환경도 되게 열악, 극악하잖아요. 매년 여름에 대행진을 했는데, 굳이 와주시는 분들은 이미 연대를 해왔던 분이고 연대의 마음으로 오시는 분이라서, 이 극악한 환경에서도 나름의 성실함으로 자기가 하려고 하는 최선을 다해서 관람을 하고 가세요. 그런 부분들 되게 감동적인 부분이고, 굳이 전시를 오지 않더라도 동네를 왔다 갔다 하면서 ‘우리는 산다’가 이렇게 붙어 있잖아요. 이게 너무 좋은 거예요. 우리는 산다. 그래서 전시 홍보 현수막이 거리 곳곳에, 시내 곳곳에 걸려있는 것과 포스터 제가 열심히 버스정류장에 붙이고 다니거든요. 그 작업도 되게 좋았어요.
 
마법사 : ‘우리는 산다’라는 카피가 참 좋은 거 같습니다.
 
복희 : ‘우리’를 빼먹을 뻔 했는데 법사님이 ‘우리’가 되게 중요한 것 같다고 하셔서 (카피가 그렇게 나왔다)
 
마법사 : 자화자찬 티 안 낼라고 했는데. 도시에 있는 친구들 이야기를 들어보면, 사실은 안 끝났다는 거는 알지만 머리로 아는 것과 감각으로 아는 것은 되게 다르잖아요. 격렬한 싸움이 벌어질 때는 매일 매일 속보를 보면서, 확인하면서 있던 그게 사리진거죠. 그러니까 잊는 단 말이에요. 도시에서도 매일매일 사건사고가 터지니까요. 그렇게 하다가 여기 딱 오는 순간, ‘이곳을 지키는 사람이 있어.’라는 감각이 빡 생겼다고 그런 얘기를 하더라고요. ‘그래, 그게 우리의 전시 의도였지.’ 그러면서 뿌듯해하고, ‘우리가 여기 있다고 얘기하는 거였지.’ 그 친구가 너무 미안해하길래 그러지 말고 도시에서 열심히 싸우라고 해줬어요. 네, 그렇습니다. 그러면 기획자로서의 마지막 질문이 될 수도 있는데요. 밀양전이 들어오는 어떤 기회가 생기면서 이게 생겼잖아요. 문화공간 비수기가 매년 굴러가겠죠? 문화공간 비수기는 매년 비수기마다 뭔가 하겠죠? 이렇게 할 때, 혹시 강정사람들의 일상을 나누고 공유하는 작업들을 넓은 사람들에게 오픈해서 이야기 듣게 하고, 같이 나누고, 이런 자리를 또 기획하고 싶거나, 해보고 싶거나. 그런 생각이 있는지? 두 분의 개인적인 생각이에요.
 
복희 : 저는 맨날 하려는 게 그런 거 같아요. 지금 비수기 상단의 공간에 얹어서 펼치게 됐고, 다른 기획팀들의 의견들이 모여서 같이 이 방향으로 가게 된 것 같은데요. 그래서 저한테는 되게 의미 있는 시간과 경험이 되었어요. 앞으로도 계속 그런 방향성의 작업들을 할 것 같아요. 그런 것 밖에 생각이 안 나고, 자연스럽게 그렇게 하고 있는 것 같아요. 꼭 전시나 이런 형태가 아니더라도 뭐든 하고 싶은데, 강정에서 직접 한 적은 별로 없었던 거 같아요. 약간 강정 내부의 조직에서 조직화하는 차원에서 접근을 많이 했는데, 밖에서 하던 활동들을 강정 안에서 하게 된 이번 계기가 되게 좋고요. 그리고 비수기 활동을 상단에서 매년 하는 것이 저에게 정말 필요하고, 바라고 있다. 그런 것들을 상단에 어필을 하고 싶어요. 기회가 됐으면 좋겠고, 기회를 만들려고 하는 의지도 있는데, 사실 전 실현하는 능력이 없다. 그래서 주위에서 상황이 맞아 떨어져야 진행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 가지고, 감 떨어질 때까지 입 벌리고 있겠다는 입장입니다.  
 
이상 : 전 문화공간 비수기라는 컨셉이 좋고, 계속 무언가를 도모하고 상상하고 실험해 볼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드는데요. 강정 친구들의 어떤 커뮤니티 작업을 하고 싶은 욕구가 그렇게 크지는 않고, 만약에 어떤 일을 진행하게 된다면 작업자로서 접근하기 보다는 활동가로서 실무들을 해치우면서 함께할 정도의 생각을 -상상했을 때 그런 역할을 내가 할 수는 있겠다는- 하고는 있어요. 지금 당장은.
 
마법사 : 하여튼 공간이라는 게 비어있는 공간은 상상력을 자극하는 거 같아요. 이 전시는 8월 30일 날 끝나고, 철거가 되고, 보관할 것은 아카이빙 되겠지만. 이 비어있는 공간이 어떤 에너지가 계속 흐르는 공간으로 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데. 양상은 자꾸 .. 그렇습니다. 그러면 자연스럽게 관객들에게 질문을. 이렇게 얘기를 일방적으로 들으시면 물음표가 안 생길래야 안 생길 수가 없는데.
 
관객 :  이상님이 공연 하시는데 아까 말씀하실 때 완벽주의자이신 거 같아요. 성향이. 이렇게 했을 때, 관객들의 반응까지 계산을 해서 기획을 하시지 않을까 싶어요. 그렇게 했을 때 딱 맞아떨어진 경험들 있잖아요. 공연했는데 내가 계획한대로 딱 되서 너무 만족했다. 또 아닌 것도 있을 수 있잖아요. 그런 경험들이 있는지.
 
이상 : 일단 기획일은 아니고 작가, 연출로 일을 하고 있는데요. 좋았던 기억은 2018년 용산에서 이동하는 형식의 공연을 했었어요. 관객들을 사전예약으로 받고 약속된 장소에 관객들이 모이면 문자 메시지로 음성 링크를 전달해서 관객들이 용산 역 계단에 앉아서 들으면서 광장을 내려다보는 상황에서 작업세계로의 초대가 이루어지게 되죠. 그리고 지령 같은 게 전달이 되는 거죠. ‘어디로 가서 어떤 짐을 챙겨가라.’ 관객들이 지정된 장소에 가서 지도를 받게 되는데, 지도는 관객들마다 다 다르고 스티커가 붙어있어요. 1번, 2번. ‘1번 장소에 몇 시까지 도착해라, 2번 장소에 몇 시까지 도착해라.’라는 게 붙어있는데요. 관객들이 그 곳으로 가는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한 마을을 여행하게 되는, 한 마을을 돌아보게 되는 작업이었고요. 그 마을은 용산 재개발 4구역, 용산에 마지막 남은 재개발 지역이었고, 거기 같은 경우는 주민들이 다 합의를 하셨어요. 오랜 시간 동안 관과의 합의를 마친 상태에서, 5~6년 뒤에 사라지게 될 마을이고, 서울이지만 기찻길이 있는 마을인데요. 저희가 원했던 건 사람들이 마을을 여행하면서 내면적인 여행을 함께 하기를 원했고요. 시간이나 장소, 기억에 대해서 생각하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지정된 장소에 가면 어떤 퍼포먼스에 참여하게 되고, 거의 마지막 장소에 가서 관객들은 처음으로 누가 관객이었는지 알게 되요. 용산역 광장이라는 곳에 굉장히 많은 사람들이 있고, 나 말고 어떤 관객이 있는지를 알지 못하다가, 기찻길 앞에서 처음으로 다 같이 모이거든요. 다 같이 기찻길을 지나가면서 마지막 장소에서 텍스트를 들으면서 헤어지는 작업이었는데요. 진행되는 과정에서 이게 잘 되고 있다는 느낌이 명확하게 왔고, 끝나고 되게 명확한 어떤 긴 글의 피드백들을 받았었어요. 그게 좋았던 경험이고. 안 좋았던 경험도 있는데, 이게 얘기 뭘 해야 할까…안 좋았던 경험은 조금 더 단단해지고 나면 하겠습니다.
 
복희 : 서로 말 길게 하면 짤라주기로 했어요. 이제 그만하라고.
 
마법사 : 혹시 더 다른 질문은.
 
관객 : 이상님은 계속 용산도 그렇고 아까도 그리움이 저변에 깔려있다고 하고 뭔가 고향, 제가 얼마 전에 이상님이 작품 할 때도 잠깐 참여를 해봤었는데 나이에 비해서는 아니 물론. 굉장히 저변에 그리움, 향수 이런 것들이 많이 깔려있는 것 같은데 특별히 표현하고 싶은 부분이 있어서 그런 거예요? 아니면 본인 성향이나 성격이 그런거예요? 목표하시는 표현하고자 하는
 
이상 : 표현하고자 한다기보다 이제 그런 것들, 길을 걸으면서 제 눈에 아름답다고 느껴지는 것들이 있거든요. 이를 테면, 도심에 전봇대가 있고 전봇대 밑에 음식물 쓰레기봉투들이 있고 거기에서 음식물 쓰레기 국물이 흘러나오고 있는 그런 모습들이 하나의 프레임이라고 한다면, 저는 그런 것들에서 설명하지 못하는 아름다음을 느껴요. 결국, 제가 원하는 건 내가 아름답다고 생각하는 일상적인 풍경들을 사람들과 공유하는 거예요. ‘사람들이 걸음을 멈추면 좋겠다.’ 이런 것이 가장 근원적인 욕구인 것 같아요. 내가 아름답다고 생각해서 발걸음을 멈추게 하는 걸 사람들도 멈춰서 볼 수 있었으면 좋겠고, 그런 것은 대부분 무언가를 만들거나 직접적으로 만드는 게 아니라, 기본적으로 도시가 가지고 있는 것들. 이미 존재하고 있는 것들, 사람들이 살면서 늘 만들어지고 있는, 계속 반복되어 지고 축적되는 것들에서 그것을 같이 보면 좋겠다. 그리고 이 감각이 무엇일지에 대해서 공연매체는 제한된 시간 속에서 어떤 시간을 공유하는 것이잖아요. 공동의 시간을 통해서 이게 무엇인지 어떤 느낌에 대한 것인지 조금 더 명료하거나, 확장되어 갈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을 가지고 있는 거 같아요. 사실 그리움의 정서랑은 조금 또 다른데, 조금 더 근원적으로 간다면 제 욕구는 내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걸 사람들과 공유 하고 사람들은 어떻게 느끼는 지를 피드백 받고 그러면서 어떤 것들 몰랐던 것들을 계속 알아가고 싶은 거 같아요.
 
마법사 : 관객으로서 각자의 작업이 어땠는지?
 
이상 : 편하고, 재미있었어요. 웃음이 피식 나는, 귀여웠고요. 그거면 다 된 거 아닌가? 생각했어요.
 
복희 : 사랑하는 사람 어쩌고로 시작하는 설명글 보고 되게 파격적이라고 느꼈어요. 오늘 아침 전시 열 때, 이상이 자기 텐트로 들어가는 모습을 보면서 아까 이상이 말했던 자기 마음  속에 사람이 들어가는 느낌과 비슷한 느낌이 들었어요. 그래서 직접 들어가기가 약간 부담스러워요. 설치 전에 여기 치우느라고 선물 받은 소중한 것들을 함부로 막 굴렸는데, 그래서 조금 미안했어요. 오늘 대화하면서 뭔가 얼마나 치밀하게 접근을 했나를 들으면서 정말 성실함에 또 숨이 막힌다. 또 한 번 생각했고요. 그런데 그런 부분에 같이 일하면서 많이 의존하는 것 같아서 참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어요.
 
이상 : 유독 올 해, 여러 일을 같이 했던 것 같고. 저도 복희 덕분에 숨통이 좀 트이면서 하고 있습니다.
 
마법사 : 갑자기 ‘칭찬합시다.’ 프로가 된 느낌이지만 약간 은근 되게 다른데 합이 잘 맞는 캐릭터 이긴 한 거 같아요. 그래서 또 다른 작가님들한테 다 물어봤는데요. 어떤 공간을 보면 구럼비나 강정의 해군기지 싸움과 조금이라도 연관성이 보이는데, 여기는 진짜 되게 개인적인 얘기를 하는 것처럼. 두 기획자가 ‘우리는 개인적인 얘기를 하겠어.’ 작정이라도 한 듯이 되게 사적인 이야기들이에요. 물론 연결이 안 됐다고 할 수는 없지만요. 그래서 이 공간을 통해서 여기 오신 분들이, 관객들이 어떤 것은 느꼈으면 좋겠다는 게 있나요? 작가로서 관람객들이 텐트에 들어와서, 오솔길을 걸으며.
 
이상 : 어떤 일을 해도, 손님들의 마음에 티끌 만큼일 지라도 자그마한 흔적이 남으면 좋겠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그런 욕심을 부려도 되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리움이라는 감정을 느낄 수 있었으면 좋겠고요. 그래서 아까 법사님이 그리움 얘기하셨을 때 좋았고요. 굳이 이 이야기가 아니라, 자기가 가지고 있는 그리움이라는 것에 대한 기억이 있다면, 그것을 복기해 볼 수 있게 된다면, 아주 아주 대단히 성공적이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복희 : 저도 약간 비슷해요. 그래서 정말 극악한 환경에 와주신 것만으로 너무 감사드리고요. 진짜 더우면 1전시장 갔다가 2전시장 이렇게 점점 오면서 점점 지쳐요. 여기가 오기가 되게 힘들고 안 봐도 상관없는데, 그냥 지나치듯 풍경 중의 일부로서 받아들여져도 그게 되게 기쁠 것 같아요.
 
마법사 : 1전시장이 더 열악하잖아요. 그래서 여기 오면 숨통이 트인데요. 그래서 여기는 조금 집중해서 볼 수 있는 효과가 있다는.. 이제 진짜 마무리 할게요. 지금까지 계속 준비하시는 스탭의 입장이시다가, 이야기 손님으로 참여하셨는데 대화를 해보시니까 어떠세요?
 
이상 : 그냥 생각하는 거 얘기하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어렵네요. 너무 뻘소리하면 안될 거 같아서 언어를 좀 가려 써야 된다는 생각이 있었는데 그게 조금 힘들었고요. 첫 번째와 두 번째 작가와의 대화가 되게 좋은 기억이어서, 재 뿌리고 싶지 않기도 했고요. 그래도 제가 할 수 있는 것 안에서 노력해서 준비했던 거 같고, 좋은 추억이 될 것 같아요.
 
복희 : 저는 이렇게 자리를 마련해주신 법사님께 감사드리고요. 진행과 제안에 감사드립니다. 재밌었어요. 제가 아무생각 없이 말을 하고 있어서 잘하고 있는지는 모르겠는데.
 
마법사 : 기록도 이 두 분이 하실 거니까. 네, 아무튼 이제 마무리 할 시간인데요. 저도 대화 진행하면서 너무 재밌었습니다. 이렇게 작품을 깊이 들어가서 보게 되는 건 약간 특권이거든요. 제가 볼 수 있는 제 한계만큼 밖에 못 보잖아요. 근데 작가님들과 얘기하다 보면 한발 더 깊이 들어가서 볼 수 있게 되고, 그러면 정말 만나는 게 달라지더라고요. 그래서 시간 내주신 여기 작가님들, 여기 계신 두 작가님께 정말 감사드리고, 끊임없이 표현했듯이 열악한 이 공간에 관객으로 오셔서, 이 분들이 진짜 아무도 없는데서 떠들면 민망할 수도 있는데 귀 기울여주신 관객분들께도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모두 박수 치면서 마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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