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동갑내기 두 친구가 제주의 신당을 찾아 함께 걷는다. 제주의 신을 찾는 순례길에 오른 셈. 그 길에서 마을을 지켜준 신들과 만나기도 하고 30년 전 20대 청년의 ‘나‘를 만나기도 한다. 1만8천의 신과 함께 해온 제주인의 삶과 지금의 나 그리고 우리의 삶은 어떻게 맞닿아 있을까. 매주 금요일 ‘제주신화산책’ 코너에서 작가 여연의 ‘한라산의 신들’과 홍죽희의 ‘제주의 돌에서 신성을 만나다’를 돌아가며 싣는다. <편집자주>

제주 신화를 접하다 보면 제주 민중들의 진솔한 경험 세계와 인생살이의 속살을 알 수 있다. 화산섬 특유의 거친 박토에 뿌리를 내리고 하루하루 생활을 이어나간다는 것은 결코 녹록한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막막하고 의지할 데조차 없었던 제주 사람들은 척박한 삶의 문제를 신화 속에 투영시켜 때론 위안을 받고, 때론 보다 나은 미래를 꿈꾸며 살아왔다. 

오늘 만나게 될 미륵신은 화북동 윤동지영감당에 좌정해 있는데, 신앙민들에게 복과 재물을 안겨준다는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다. 그렇다고 무슨 엄청난 큰 부자가 되기를 바란 것은 아니었다. 그저 가족들이 굶지 않고 배고픔에서 벗어났으면 하는 평범하지만 절실한 기원이었다.
  
#화북 윤동지 영감당에 좌정한 미륵신

화북 윤동지 영감당을 가기 위해 바닷가 쪽으로 내려가는데 마을 길 분위기가 무척 어수선하다. 마을로 들어가는 동네가 도시개발공사로 인해 여기저기 파헤쳐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기억하기론 예전에는 이 골목 어귀로 접어들면 나무나 넝쿨이 우거진 잡목 숲이 있었다.

지금은 잡목은커녕 오롯한 옛길의 흔적도 사라졌고, 속살이 뒤집힌 땅덩어리만 황량하게 드러누워 있었다. 주말이어서 그런지 공사장 주변에는 멈춰선 덤프트럭과 커다란 포크레인들이 눈에 보였고, 정돈되지 않은 채 여기저기 버려진 건축 폐기물과 잡다한 생활 쓰레기들이 넘쳐나고 있었다.

이 마을 주변이 공사판으로 어지럽게 변해버린 탓으로 화북 윤동지 영감당은 찾기가 쉽지 않았다. 사방이 온통 파헤쳐져 예전에 이곳을 답사한 적이 있다던 친구도 당황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기억을 애써 더듬으면서 걷다가 마침내 하얀색 창고로 보이는 건물을 발견하였다. 그 앞으로 돌담이 남아 있는 소로길이 당올레이다. 

멀리서 바라보니 둥그런 돌담 울타리가 눈에 띄었는데, 그곳이 바로 우리가 찾고 있는 윤동지영감당이었다. 하지만 눈앞의 풍경이 어찌나 황량한지 초행길이 아닌 친구는 연신 탄식을 쏟아내었다. 어이없게도 공사장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위험, 안전제일’이란 테이프가 신당 주변을 두르고 있었다. 

공사를 하는 사람들에게 신령스러운 공간인 신당만은 절대 건드려선 안 된다는 불문율이 작용했을까. 아니면 신당을 출입하는 단골들의 간절한 요청에 의한 것인지 몰라도 사방이 파헤쳐진 가운데 다행스럽게도 윤동지 영감당은 옛 모습을 간직한 채 온전하게 남아 있었다.

신당은 마을의 신이 거주하는 신령스런 공간이다. 대부분 ‘신의 몸’은 나무인데, 이곳 ‘윤동지 영감당’은 바다에서 주워 온 ‘미륵돌’을 신체로 섬기고 있다. 윤동지 영감당은 예전에 주변이 덤불로 덮여 있어서 그런지 돌담을 두른 울타리 안쪽은 더욱 가라앉은 느낌으로 다가왔다. 

외로이 앉아 있는 미륵신 앞에 미리 준비해간 술을 올리고 향을 피운 후 예를 갖춰 우리의 방문을 알렸다. 그리고는 그곳에서 윤동지 영감당 본풀이를 읽으며, 이 미륵신이 이곳 사람들과 어떤 인연을 맺고 있는지 살펴보는 시간을 가졌다. 

#화북 윤동지 영감당 본풀이

화북 마을에 윤 씨 성을 가진 어부가 갈치를 낚으러 바다에 갔다. 원하는 갈치는 잡히지 않고, 이상한 돌덩이가 올라왔다. 어부 윤 씨는 올라온 돌덩이를 바다에 던져버리고, 다시 낚싯줄을 드리웠는데 이상하게도 같은 돌덩이만 올라오곤 했다. 세 번째도 네 번째도 계속해서 올라오니 ‘참으로 이상한 일이구나’ 고개를 갸웃거리며 중얼거렸다. 하는 수 없이 돌덩이를 뱃머리에 조심스럽게 올려놓으면서 조용히 말했다.

“혹시 나한테 태운 조상이라면 이 바다에서 고기를 많이 낚게 해줍서.” 

신통하게도 그때부터 계속해서 고기가 올라와 배가 넘칠 만큼 가득 채우게 되었다. 만선을 이룬 윤 씨는 화북 포구로 돌아와서는 돌덩이가 베풀어 준 은혜를 까마득히 잊어버리고 그 돌을 내팽개쳐 버렸다. 그 후 이 돌은 화북포구를 드나드는 어선들이 닻줄을 매는 용도로 쓰이면서 돌덩이의 허리가 점점 조여지기 시작했다. 

그로부터 어부 윤 씨는 몸에 부스럼이 나고 점점 아프기 시작했다. 온갖 약을 쓰고 의원을 찾아도 낫지 않으니 윤 씨는 결국 심방을 찾아가게 되었다. 심방은 “석상미륵 돌부처의 조화우다. 돌부처가 베풀어 준 은덕을 잊고 포구에 함부로 버리는 바람에 낮에는 볕 이슬 맞고 밤에는 찬 이슬 맞게 되어 돌부처를 푸대접한 죄를 받고 있는 거우다”라고 말하였다.

그제야 자신의 잘못을 깨달은 어부 윤 씨는 부랴부랴 달려가서 포구에 팽개쳐 있는 미륵돌을 동네 안으로 옮겨 정성껏 모시게 되었다. 결국 어부 윤 씨는 병이 낫고, 동지라는 벼슬도 얻어 부자가 되니 그 소문이 마을에 자자하였다.

그런데 마을 청년들은 미륵돌을 정성껏 모시는 윤 동지 어른에게 “히여뜩헌 짓 허염수다.(아무 소용없는 일을 하는군요.)”라고 불만스럽게 말하면서 석상미륵 돌부처가 있는 곳에 불을 놓아 태워버리려고 했다. 이 순간 깜짝 놀랄 일이 벌어졌다. 석상미륵 돌부처가 활활 타오르는 불길 속에서 스스로 걸어 나오는 것이 아닌가! 

이 기이한 장면이 벌어지는 동안 불을 지른 청년들은 순식간에 물에 빠져 죽는 일이 벌어졌다. 이런 끔찍한 일이 있고 나서 윤 동지 어른은 마을 바깥 밭 옆에 정성껏 울담을 두르고 당을 만들어 신성한 미륵돌을 모셔놓았다. 그로부터 지금까지 미륵돌은 주로 윤 씨 집안에서 섬기는 조상신이 되었다. 

원래 이 미륵돌은 경상북도 안동시에 있는 절에 있던 부처상이었는데 제주도 관음사라는 절에 이 석상을 모시기 위해 육지에서 갖고 들어오는 중이었다. 그런데 관탈섬 근처에서 광풍으로 배가 파선되는 바람에 미륵돌은 잠시 사신용왕으로 들어갔다가 어부 윤 씨의 낚싯줄에 올라온 것이었다. 

(진성기의 <제주도 무가본풀이 사전(민속원 펴냄)>의 내용을 재정리함.)

  
이 신화의 내용은 바닷가 마을에 좌정한 다른 미륵돌 이야기와 그 맥락이 유사하다. 어부에 의해 바다에서 건져 올린 이상한 돌덩이가 나에게 태운 조상이라 여겨 집안의 신으로 모셨는데, 그 후 벼슬을 얻고 건강을 되찾았으며 부자가 되었다는 것이 그 핵심 내용이다. 

신화를 좀 더 깊이 들여다보면 바다 건너 들어온 미륵돌을 마을 사람들이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세대 간 갈등 양상이 나타난다. 윤 씨 어른이 섬기고 있는 미륵돌을 마을 청년들은 부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아무런 득이 되지 않은 쓸데없는 짓’이라 생각하며 미륵돌을 불에 태워 없애버리려 하자 불을 지른 청년들이 바다에 빠져 죽는 끔찍한 일이 발생한다. 한 마디로 동티가 난 것이다. 마을 청년들은 영험한 미륵돌을 함부로 건드려서 스스로 재앙을 초래하고 말았다.

특히 미륵돌이 화염을 뚫고 스스로 걸어 나오는 모습은 마치 영화 속의 한 장면처럼 매우 극적이다. 그동안 윤 씨 어른이 미륵돌을 섬겨 동지라는 벼슬을 얻고 부자가 되었다는 소문이 마을에 퍼졌지만, 마을 청년들에게는 그저 소문일 뿐, 헛된 망상이라 치부하고 있다. 그런데 화염을 헤치고 걸어 나오는 미륵돌은 인간의 힘을 넘어선 초자연적인 신의 모습으로 등장한다. 

순간적으로 사람들은 대단한 위력을 가진 미륵돌 앞에서 납작 엎드리며, 함부로 대우한 자신들의 잘못을 빌고 앞으로 고이 받들어 모실 것을 다짐했을 것이다. 마침내 미륵돌은 마을 신당에 좌정하게 되고 영험한 신으로서 마을 사람들로부터 대접받으며 윤씨 집안의 조상신으로 정성껏 모시게 되었다는 결론을 맺고 있다. 화북 윤동지 영감당에 있는 미륵돌의 유래는 바다 건너 들어온 불교 신앙이 어떻게 제주의 원초적인 신앙과 융합하는지를 잘 보여주는 사례로 여겨진다. 

홍죽희.

제주에서 중학교 영어교사로 30여 년을 재직하다 2020년 2월 명예퇴직했다. 대학 시절 마당극 운동단체인 극단<수눌음>에 가입, 외지 자본에 의한 제주의 토지 잠식을 다룬 ‘땅풀이’와 1932년 제주에서 일어난 항일 해녀 투쟁을 다룬 ‘ᄌᆞᆷ녀풀이’ 등에 출연하면서 제주의 역사와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육지와는 달리 제주의 마당극은 신화를 바탕으로 굿에 의해 전개되는 특징이 있어 자연스럽게 제주의 신화를 눈여겨보게 되었고 지금도 틈틈이 신당 기행을 다니고 있다. 독서모임<아랑ᄒᆞ라>와 아코디언 모임<바숨>의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인문적 소양과 예술적 감성을 배우려고 노력하는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