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순 찬반의 의사 피력을 조장한 의견수렴 방식

전체 의견 315건
찬성 의견 135건
반대 의견 161건
미분류 의견 19건

8월 31일 마감된 「제주도 제2공항 상생방안 의견수렴」(온라인) 결과다. 
제주도정은 제주도의회의 도민공론화 추진과는 별도로 “제2공항 상생방안 마련을 위한 도민사회의 폭넓은 주민의견 수렴”을 하겠다며, 8월 11일부터 「제2공항 상생방안 의견수렴」에 착수했다.
애초 ‘제2공항 상생방안 마련’이 취지이니 제2공항 사업 추진을 전제하고 진행된 이번 의견수렴은, 그러나 찬반 의견의 각축장이 되었다. 위의 수치는 온라인 게시물의 제목에 근거해 찬성 의견과 반대 의견을 셈한 것이다. ‘상생방안 마련’이 취지이니 도민들로부터 구체적인 아이디어를 받아야 생산성이 있었겠지만, 거의 모든 게시물의 제목을 보면 “찬성합니다”, “반대합니다”라며 찬반 의사를 밝히고 있었다. 제목만으로 찬성 입장인지 반대 입장인지 불분명하면 미분류 의견으로 셈했으나, 애초 제목에 찬반 입장을 명확히 표명한 게시물이 대다수여서 미분류 의견은 20건도 되지 않았다.
이는 의견을 밝힌 도민들이 이번 의견수렴의 취지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탓일까. 아니, 그렇지 않다. 애초 의견수렴 방식 자체에 문제가 있었던 것이다. 「제2공항 상생방안 의견수렴」은 이렇게 안내되어 있었다.

“제주 제2공항 건설과 관련하여 단순 찬·반 논의를 넘어 갈등해소 방안, 주민들의 피해 최소화, 환경수용력 대응 등 제주도 미래상에 대한 도민 여러분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하여 상생방안을 마련하고자 합니다. 도민 여러분의 많은 참여 바랍니다.”

그런데 그 방식이 게시판 하나를 개설해 놓는 것이었다. 더구나 게시물은 한 번만 작성할 수 있고, 게시물 열람은 작성자와 관리자만이 가능하다. 동료 시민들의 의견이 무엇인지는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러니 자연스럽게 게시물들은 제목에 제2공항을 찬성하는지 반대하는지를 밝히는 식이 되었다. “단순 찬·반 논의를 넘겠다”고 공언했지만, 의견수렴의 방식이 단순 찬반의 의사 피력과 세대결을 부추긴 것이다.
그 결과를 보면 반대 의견이 찬성 의견을 상회하고 있다. 하지만 이를 곧 제주도민의 여론으로 간주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전체 제주도민 가운데 의견을 적극적으로 피력한 소수의 입장만이 확인될 뿐이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것은 제2공항 상생방안 마련을 위한 도민의견 수렴과정이었다고 하나 찬반 의견이 뚜렷하게 대립하는 공방전이 되었다는 사실이다. 즉 제2공항 사업을 어떻게 해야 할지를 정하려면, 제주도민에게 여전히 소중한 시간(특히 알 권리와 논의, 검증을 위한)이 필요한 것이다.

다시 퇴행한 제2공항 문제의 공론장

그런데 9월 1일 JIBS 보도에 따르면 마지막 날에 무려 1300여건의 우편 의견이 접수되었다. 온라인 의견이 300건 남짓임을 감안한다면 무척 이례적인 일이다. 가령 작년 11월, 제주도정이 이번과 거의 유사한 방식으로 「제주 제2공항 개발사업 기본계획(안)」에 대한 도민의견을 수렴했을 때도 온라인 360건, 방문접수 105건이었다.
더욱이 여러 날에 거쳐 개별적으로 접수된 것이 아니라, 의견수렴 최종일에 1300여건이 한꺼번에 접수되었으니 조직적 동원 혹은 집단행동이 있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이는 머잖아 밝혀지겠지만 제2공항 찬성단체가 주도한 것으로 보이는데, 그렇다면 1300여건의 의견은 대부분 ‘제2공항 건설 찬성’일 것이다. 이로써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의견수렴 결과는 크게 괴리되고, ‘제주도민의 의견’ 수렴은 심각한 편향성을 띠어 왜곡될 수밖에 없게 되었다.
하지만 이는 찬성 의견 독려와 수합에 매진했을 제2공항 찬성단체만을 탓할 일이 아니다. 자신들의 신념과 이해관계에 따라 조직적 동원 내지 집단행동에 나설 권리를 그들은 갖고 있다. 보다 큰 문제는 찬반 세대결을 다시금 조장한 제주도정의 의견수렴 방식에 있다.
국책사업을 둘러싸고 공론장이 발전한다는 것은 찬반 갈등이 첨예한 상황에서 검증하고 해명해야 할 쟁점들을 섬세히 가려내고, 당사자인 시민들에게 충분한 알 권리를 제공해 시민들이 쟁점들에 관해 숙고하고 논의하며, 입장의 차이에도 불구하고 상호이해를 쌓아가는 일일 것이다.
더욱이 제2공항 사업은 제주사회 전체와 미래에 가장 크게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는 국책·개발 사업이다. 따라서 그 문제의 중대함에 걸맞은 공론장이 형성되어야 하며, 이는 제주도 민주주의의 훈련장으로 진화해야 할 것이다.
하지만 지난 7월 한 달간에 걸친 ‘제주 제2공항 쟁점 해소를 위한 공개토론회’를 통해 서른 개 넘는 첨예한 쟁점, 따라서 제주도민이 함께 고민해야 할 과제가 드러났는데도 불구하고 이번 제주도정의  「제주도 제2공항 상생방안 의견수렴」 은 다시 도민의 의사를 찬반 갈등으로 내몰아 제2공항 문제의 공론장을 퇴행시켜 놓았다. 이에 따른 사회적 비용은 대체 누가 어떻게 질 것인가.

제2공항 문제 공론장 왜곡의 5년사

그런데 이번 「제2공항 상생방안 의견수렴」 과정 중 제주도의 공론장을 왜곡시키는 또 하나의 사건이 발생했다.
「제2공항 상생방안 의견수렴」이 시작된 다음날인 8월 12일, 국토교통부와 제주도청의 관계자들이 제2공항건설촉구범도민연대, 성산읍청년포럼 등 제2공항 찬성단체 측을 만나 찬성단체의 적극적 활동을 당부한 것이다(8월 18, 19일 제주KBS, 제주의 소리, 제주투데이, 제이누리 보도). 이번 의견수렴 마지막 날에 쏟아진 1300여건의 우편 접수와 이 일이 관련되어 있는지는 판단할 수 없다. 그리고 도민이나 시민이 자신들의 노선에 따라 벌인 활동을 여기서 지적하고 싶지는 않다. 그보다는 이번만이 아니라 제2공항 사업추진 전 과정에서 반복되어온 중앙정부의 일방적 정책추진, 지방정부의 권위주의적 행정을 문제 삼고 싶다. 
제2공항 사업추진 절차는 사전타당성조사, 예비타당성조사, 기본계획 고시, 기본설계, 실시설계, 건설공사 순이다. 제2공항 추진의 근거가 된 「사전타당성 용역보고서」에서는 ADPi(파리공항공단엔지니어링)의 「제주국제공항 인프라 확충 용역보고서」 내용이 은폐되었다. 예비타당성조사에서는 성산을 예정지로 하기 위해 다른 후보지의 평가점수를 낮추는 조작(최소한 과실)이 있었다. 기본계획은 은밀히 착수한 뒤 사후에 기사로 흘렸다.
기본계획 착수보고회는 사전에 장소를 알리지 않고 제주가 아닌 세종시 국토부 건물에서 비공개로 진행했다. 기본계획 중간보고회는 성산에서 제2공항 찬성 측만이 모인 가운데서 한 시간도 안 되게 진행했다. 기본계획 최종보고회 역시 장소 공지를 최대한 늦췄고 시민들이 저지했으나 국토부는 보도자료를 배포해 최종보고를 한 것으로 넘어갔다. 전략환경영향평가는 협의회에 예정부지 및 피해지역 주민이 아닌 국토부가 위촉한 사람(찬성단체 대표)이 주민 대표로 들어갔다.
제주도가 추진한 제2공항 기본계획 반영과제 발굴 1차 공청회 역시 불과 이틀 전에 시간과 장소를 공지해 공무원과 찬성 단체만을 모아놓고 진행했으며, 2차 공청회는 시민들이 막았다. 그러자 온라인으로만 의견수렴을 하겠다고 방식을 변경했다. 기본계획 도민의견 수렴과정은 80%가 넘는 381건의 도민 의견을 ‘기타’(실상은 반대 의견)로 처리했다. 그리고 이번 「제주도 제2공항 상생방안 의견수렴」 까지가 제2공항 문제의 공론장이 왜곡된 5년사다.
5년간 누적된 그 폐해는 현재 제주사회에서 여실하게 드러나고 있다. 공공(公共, 국토부-제주도정)이 공공성을 저버린다면, 특히 이해관계가 복잡한 국책사업을 두고는 민(주민-도민-시민)과 민 사이에 심각한 갈등이 초래되는 수밖에 없다. 제2공항 문제로 제주사회는 이미 많이 상처 입었다. 그리고 첨예한 쟁점들에 대한 객관적 검증과 도민의 숙의를 건너뛴 채 제2공항 사업이 강행된다면, 장기간의 건설과정 동안 성산 지역의 주민간, 제주도 전역의 도민간에 돌이킬 수 없는 사회적 갈등이 초래될 것임이 분명하다.

최소한의 공공성이라도 바라며

「공항시설법」 3조에는 “국토교통부장관은 종합계획을 수립하거나 제3항에 따라 종합계획을 변경하려는 경우에는 관할 지방자치단체의 장의 의견을 들은 후 관계 중앙행정기관의 장과 협의하여야 한다”라고 적시되어 있다.
여기서 ‘지방자치단체의 장의 의견’은 당연히 원희룡 도지사의 개인 의견이 아니라 ‘지방자치단체의 장으로서의 의견’, 즉 제주도민의 집합적 의견이어야 한다. 이제 원희룡 도지사는 찬성단체가 챙겨준 1300여건의 찬성의견을 ‘도민의견’으로 포장해 국토부 측에 내놓을 것인가. 
하지만 지난 여러 차례 여론조사에서 제2공항의 필요성에 대해서는 제주도민의 찬반 의견이 엇비슷하고, 국토부가 성산 지역에 추진하려는 제2공항에 대해서는 반대하는 의견이 늘어나고, 특히 공론화에 대해서는 압도적 다수가 지지하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 사실을 원희룡 도지사는 어떻게 감추려 할 것인가.
원희룡 도지사는 올해 언론에 기고한 「거주불능의 지구를 넘겨줄 수는 없다」에서 이렇게 말했다. “우리를 이어갈 다음 세대에게 ‘공존불가의 자연, 거주불능의 지구’를 물려줄 수는 없습니다. 그들이 우리로 인해 피해 당사자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스스로 자각하고 있듯이 인류가 생존의 기로에 내몰리는 지금, 공공이 지켜야 할 공공성은 ‘뭇 생명의 거주가능한 지구’라는 보편성 속에서 심화되어야 할 것이다. 그러지 못할 것이라면, 공공으로서 최소한의 절차적 공정성과 중립성만큼은 유지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핏발선 눈빛
적대하는 표정
욕설을 머금은 입
이것이 제주도의 얼굴이 되어선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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