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신화산책 동갑내기 친구 작가 홍죽희와 여연. (사진=김일영 작가)
제주신화산책 동갑내기 친구 작가 홍죽희와 여연. (사진=김일영 작가)

50대 동갑내기 두 친구가 제주의 신당을 찾아 함께 걷는다. 제주의 신을 찾는 순례길에 오른 셈. 그 길에서 마을을 지켜준 신들과 만나기도 하고 30년 전 20대 청년의 ‘나‘를 만나기도 한다. 1만8천의 신과 함께 해온 제주인의 삶과 지금의 나 그리고 우리의 삶은 어떻게 맞닿아 있을까. 매주 금요일 ‘제주신화산책’ 코너에서 작가 여연의 ‘한라산의 신들’과 홍죽희의 ‘제주의 돌에서 신성을 만나다’를 돌아가며 싣는다. <편집자주>

화북 윤동지 영감당은 내가 생각했던 것 이상으로 독특한 느낌을 주는 곳이었다. 우선 내 시선을 사로잡은 것은 작은 돌집 안에 모셔진 미륵돌인데, 돌 전체가 하얀 종이로 둘러싸여 신비로우면서도 엄숙한 자세를 취하고 있다.

누가 이런 정성을 쏟아 놓았을까! 새해를 맞이하여 이곳에서도 신께 세배를 드리는 제를 지내는데 윤씨 집안 자손들이나 마을 단골들이 정성을 들여 곱게 단장을 한 것이라 여겨졌다. 그래서인지 미륵돌이 더욱 신성한 느낌으로 다가왔다. 

화북 윤동지 영감당에 좌정한 미륵돌에 하얀 종이 옷을 입힌 모습. (사진=홍죽희)
화북 윤동지 영감당에 좌정한 미륵돌에 하얀 종이 옷을 입힌 모습. (사진=홍죽희)

그 모습을 가만히 들여다보니 하얀 백지 한 장으로 미륵돌 전체를 감싼 후, 머리 부분에는 스님의 고깔처럼 단아하게 모자를 씌워 놓았고, 종이를 둘둘 말아 허리띠 모양으로 만들어 허리춤에 감아 놓았다. 전체적으로 하얀 종이옷을 입은 미륵돌은 마치 스님과 같은 형상이다. 

제단 주변에 있는 작은 돌에도 머리 수건처럼 하얀 종이가 씌워져 있었는데, 그것 하나만으로도 다정한 할망처럼 느껴졌다. 손바닥 위에 올려놓아도 될 정도로 작고 앙증맞은 여신이라고나 할까. 미륵돌 양쪽에는 두 개의 조그마한 청거북 자기가 놓여있다. 아마 이곳이 바닷가와 인접해 있어 바다거북 모형을 갖다 놓은 게 아닌가 싶었다. 그리고 당의 제단 앞에 타다 남은 양초와 향이 있었다.

요즘도 윤씨 집안에서 굿을 할 때 미륵돌을 군웅(조상신)으로 놀리는데(즐겁게 대접하는데), 제물은 메 4그릇, 돌레떡 4개, 과일 3개, 삶은 계란 4개를 올린다고 한다. 하나는 석상 미륵 몫이고, 나머지는 해신(용왕)몫이라 한다. 간간이 마을 사람들도 집안의 평안을 위해서 이 당을 찾는다고 전해진다.

이렇듯 화북 윤동지 영감당에 모셔진 미륵돌은 가난한 어부에게 벼슬도 주고 부귀영화를 안겨주면서 피부병을 다스려주는 영험한 신의 형상이다. 거듭하여 집안에 경사를 바라거나 혹은 재앙과 화를 피하려면 꾸준하게 지극정성으로 미륵돌을 돌봐야 한다는 것을 말하려고 했던 게 아닐까 한다.

화북 윤동지 영감당에 좌정한 미륵돌에 하얀 종이옷을 입힌 모습. (사진=김일영 작가)
화북 윤동지 영감당에 좌정한 미륵돌에 하얀 종이옷을 입힌 모습. (사진=김일영 작가)

오늘 이곳 화북 윤동지 영감당을 답사하는 동안 미륵불에 하얀 종이를 씌우는 유래가 무척 궁금하던 차에, 문무병의 <제주의 성숲 당올레 111>(황금알 펴냄)에서 그 의문점이 풀렸다. 화북의 윤씨 집안에서 조상신으로 모셨고, 부자가 되었는데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자손들의 정성이 부족해 돌부처가 또다시 불쌍하게 버려졌다. 

미륵돌은 화북진성의 돌 틈에 끼워진 채 방치되어 비바람에 마모되고 있었다. 이로 인해 자손들뿐만 아니라 화북 마을까지 온갖 피부병이 만연하게 되었다. 마치 괄시받은 돌부처의 긁힌 피부처럼 말이다. 이를 안 자손들이 눈비에 마모된 미륵돌을 다시 하얀 종이에 싸서 잘 모셨더니 재앙이 없어지고 평안하였다고 한다. 이렇게 해서 미륵돌에 하얀 종이옷을 입히게 된 것이다.

미륵불에 하얀 종이를 씌우는 의례 행위는 동회천 화천사 오석불에 하얀 종이를 감싸는 형태와 비슷하다고 느껴졌다. 화천사 석불제에도 제를 지내기 전에 석불에 백지로 만든 송낙을 씌우고 종이옷을 입혀 무명실로 허리를 감싸며 스님과 같은 모습으로 치장을 한다.

화북 윤동지 영감당 미륵신에게 예를 갖추며 이곳이 건재하기를 기원했다. (사진=김일영 작가)
화북 윤동지 영감당 미륵신에게 예를 갖추며 이곳이 건재하기를 기원했다. (사진=김일영 작가)

옛 조상들은 바다에서, 한라산에서 가져온 돌에 생명과 신성을 불어넣어 초월적인 신앙의 대상으로 삼았는데 미륵돌이 한 집안의 조상신으로 때론 마을 수호신으로 자리매김하게 된 것은 외부에서 들어온 불교 신앙을 배척하지 않고 토착 신앙 속으로 승화시킨 결과물이라 볼 수 있다. 

미륵돌을 당의 신체로 모신 신화가 그리 다양하고 풍부한 것은 아니지만, 제주도의 미륵은 마을의 중심인 본향당에 있기도 하고, 한 집안의 조상신으로 기자(祈子·아들 낳기를 빎), 산육, 피부병, 부자가 되게 하는 신의 기능을 지니고 있다. 이제는 정해진 제일에 이루어지는 당굿이 점차 사라지고, 개별적으로 날을 택하여 기원하는 당으로 변모되고 있다.

부자가 되게 해 준다는 윤동지 영감당을 나오면서, 부자가 되고자 하는 소망이 사실 서민들의 애환과 무관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지런히 사진을 찍고 있던 김일영 작가도 여러 가지 생각들이 오가는지 입을 열어 속마음을 드러내었다. 요즘 그는 작은 여행사를 운영하면서 어려운 경영난을 타개해 보려고 고군분투하는 중이라 했다.

“패배자를 뜻하는 ‘루저’라는 말이 나에게는 절대 해당하지 않을 거라 생각했어요. 그런데, 시간이 가면 갈수록 무한경쟁을 일상으로 경험하다 보니, 내가 혹시나...? 경쟁에서 패배하면 결국 개인 탓으로 돌리는 게 현실이잖아요. 먹고사는 문제만이라도 해결되면 좋겠는데 생활의 불안은 여전해요. 이런 사회의 풍토에서 ‘부자 되세요’라는 말이 나에겐 그리 와 닿지는 않지만, 듣기는 좋아요. 실은 마음속으로 이 미륵신에게 부자 되게 해 달라고 빌었어요”라며 함박웃음을 지었다. 

화북 윤동지 영감당 주변 풍경. 뒤쪽으로 내가 오랫동안 살았던 화북주공아파트가 보인다. (사진=김일영 작가)
화북 윤동지 영감당 주변 풍경. 뒤쪽으로 내가 오랫동안 살았던 화북주공아파트가 보인다. (사진=김일영 작가)

몇 년 전 화북에 있는 모 중학교에서 방과후 학교활동으로 제주 신화반을 운영했던 친구가 학생들과 답사를 왔던 경험을 들려주었다. “화북 윤동지영감당은 부자가 되게 해 주는 미륵을 모신 신당이다.”라고 소개했더니 시큰둥하고 별다른 관심을 보이지 않던 학생들이 너나 할 것 없이 두 손을 합장하고 정성껏 절을 하더라는 것이다. 사실 부자가 되길 바라는 마음은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대부분 가지고 있지 않을까. 

나는 12년간 이 근처 화북주공아파트단지에 살았다. 남의 집을 전전하다 최초로 마련한 아파트였다. 큰아들이 초등학교 3학년 무렵에 여기로 이사와 작은아들이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머물렀던 추억의 동네이기도 하다. 

오랫동안 화북마을에 거주하면서도 화북 윤동지 영감당이 있는 줄도 몰랐다. 이렇게 가까운 거리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이 신당은 일반인들에게는 거의 알려지지 않는 장소인 것 같다. 

이 신당을 처음 방문하면서 제주시와 근접한 곳에 있는 이 신당의 매력과 그에 얽힌 신화를 새삼 알게 되어 무척이나 뜻깊었다. 신당 답사를 하면서 느끼는 바는 실로 크다. 각 마을 신당에 좌정하고 있는 신들의 이야기를 통해 척박한 제주에서 가난한 삶을 연명해야 했던 민중들의 애환과 역사적인 흔적과 발자취를 돌아보면서 더욱 단단해진 제주인들의 삶을 다시 한번 느껴볼 수 있어서 더욱 그렇다. 

화북 윤동지영감당을 나서면서 도시 개발로 인한 공사로 온통 파헤쳐진 마을을 다시 한번 돌아보았다. 앞으로 이곳 신당이 어떤 모습으로 변해 있을지 그때까지 신당은 무사할 수 있을지 마음이 무겁고 복잡해졌다.

홍죽희.

홍죽희.

제주에서 중학교 영어교사로 30여 년을 재직하다 2020년 2월 명예퇴직했다. 대학 시절 마당극 운동단체인 극단<수눌음>에 가입, 외지 자본에 의한 제주의 토지 잠식을 다룬 ‘땅풀이’와 1932년 제주에서 일어난 항일 해녀 투쟁을 다룬 ‘ᄌᆞᆷ녀풀이’ 등에 출연하면서 제주의 역사와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육지와는 달리 제주의 마당극은 신화를 바탕으로 굿에 의해 전개되는 특징이 있어 자연스럽게 제주의 신화를 눈여겨보게 되었고 지금도 틈틈이 신당 기행을 다니고 있다. 독서모임<아랑ᄒᆞ라>와 아코디언 모임<바숨>의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인문적 소양과 예술적 감성을 배우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사진작가 김일영.

1969년 서울에서 태어나 중학교 2학년 때 집에 있던 카메라를 시작으로 사진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여행사 직원으로 근무하면서 전 세계를 여행했다. 2012년 제주로 이주해 ‘여행과치유’ 회원으로 활동을 시작, 회원들과 제주도 중산간마을을 답사하고 기록한 <제주시 중산간마을>(공저, 류가헌 펴냄, 2018)과 <제주의 성숲 당올레111>(공저, 황금알 펴냄, 2020)을 펴냈다. 또 제주 중산간마을 사진전과 농협아동후원 전시를 이어가고 있다. 현재 ㈜탐나는여행 대표이며 ‘여행과치유’ ‘제주신화연구소’ 회원으로 제주의 중산간마을과 신당을 찾고 기록하면서 제주의 삶을 느끼고 이해하려는 입도 8년차 제주도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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