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신화산책]백조도령의 와흘 무혈입성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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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신화산책]백조도령의 와흘 무혈입성기-1
  • 제주투데이
  • 승인 2020.09.11 18: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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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여연의 ‘한라산의 신들’ ⑧좌정했던 여신과 결혼하고 별거하기까지
제주신화산책 연재 작가 두 친구. 여연(왼쪽)과 홍죽희(오른쪽). (사진=김일영 작가)
제주신화산책 연재 작가 두 친구. 여연(왼쪽)과 홍죽희(오른쪽). (사진=김일영 작가)

50대 동갑내기 두 친구가 제주의 신당을 찾아 함께 걷는다. 제주의 신을 찾는 순례길에 오른 셈. 그 길에서 마을을 지켜준 신들과 만나기도 하고 30년 전 20대 청년의 ‘나‘를 만나기도 한다. 1만8천의 신과 함께 해온 제주인의 삶과 지금의 나 그리고 우리의 삶은 어떻게 맞닿아 있을까. 매주 금요일 ‘제주신화산책’ 코너에서 작가 여연의 ‘한라산의 신들’과 작가 홍죽희의 ‘제주의 돌에서 신성을 만나다’를 돌아가며 싣는다. <편집자주>

동새미하로산또의 바로 위 형님은 와흘의 본향당신이다. 와흘본향당에 대한 신화도 앞 장에서 소개한 새미하로산당 신화와 거의 유사하다. 이 당에는 소천국의 열한 번째 아들인 백조도령이 좌정하고 있는데, 그 역시 글도 좋고 활도 좋아 문무를 겸비한 영재라 할 수 있다. 더욱이 이 백조도령은 하늘옥황에 올라가 공부를 하고 돌아왔으니 이른바 천상으로 유학까지 다녀온 셈이다. 그러면 와흘 본향당본풀이를 읽으면서 얘기를 풀어가 보자.

하늘옥황에서 공부를 마친 백조도령은 인간 세상에 내려와 한라영산으로 물장오리로 태역장오리로 민오름 굼부리로 다니며 앉아서 천 리 보고, 서서 만 리를 보았다. 차차 아래로 내려오다 개머리동산에 앉아 내려다보니 노늘(와흘) 동네가 편안하게 누워있는 형세라 살 만하였다. 좌정할 곳을 찾아 이리 저리 둘러보는데 노늘 한거리 만년폭낭 아래 이미 자리를 차지한 여신이 보였다. 

다시 몸을 돌려 기시내오름에 올라가다 현씨 하르방과 마주쳤다. 백조도령은 현씨 하르방에게 팽나무 아래 있는 이가 누구냐고 물어보니, 았다. 현씨 하르방은 ‘서정승 따님아기’가 좌정하여 호적 장적을 차지하고 있다고 대답했다. 백조도령은 명함을 주면서 중매를 부탁하였다. 이에 현씨 하르방이 명함을 가지고 서정승 따님아기에게 가서 백조도령의 의중을 전했다. 

명암을 살펴본 서정승 따님아기는 백조도령에게 가까이 들어와도 된다고 허락하였다. 가까이 들어선 백조도령은 서정승 따님아기에게 정중히 부부가 되어 같이 살자고 청혼하였다. 서정승 따님아기가 청혼을 받아들이니 둘은 부부가 되어 노늘 한거리 만년폭낭 아래 좌정하였다. 그들은 동네 어른들을 불러 일렀다. 

“우리는 여기에 좌정할 것이니 정월 열나흘과 칠월 열나흘에 대제일을 마련하라.” 이리하여 새해 정월 열나흘 날 신년과세제를 올리고, 칠월 열나흘 날 마블림제를 지내게 되었다. 

 

제단 가운데에 자리한 백조도령. 바로 앞 3단의 제단이 있어 이곳에 제물을 진설한다. (사진=김일영 작가)
제단 가운데에 자리한 백조도령. 바로 앞 3단의 제단이 있어 이곳에 제물을 진설한다. (사진=김일영 작가)

 

이렇게 부부가 되었으니 오순도순 함께 지내며 자손들의 섬김을 받으면 좋으련만 지금 둘은 별거 아닌 별거를 하고 있다. 같은 당 안에 좌정하고 있긴 하지만 이른바 ‘바람 위와 바람 아래’ 따로 떨어져 있는 것이다. 둘은 어찌하여 따로 좌정하게 되었을까.

서정승 따님아기가 임신했을 때의 일이다. 하루는 백조 도령이 외출하고 돌아왔는데 서정승 따님아기가 ‘노린족달, 한족달, 서족달’, 즉 고기를 받아먹고 있었다. 백조도령은 부인에게 어찌하여 고기를 먹고 있느냐고 따져 물었다. 이에 서정승 따님아기가 ‘아이를 낳젠 허민 당연히 고기가 먹고프지 않겠습니까?’라고 대답하였다. 

하지만 백조도령은 부인에게 고기를 먹어 부정해졌으니 도저히 한 자리에 같이 있을 수 없다고 선언하고는 바람 아래로 내려앉으라고 했다. 그리하여 서정승 따님아기는 바람 아래로 내려앉았고, 부부는 따로 지내게 되었다. 

보통 고기를 먹어 부정한 신은 바람 아래(마파람 부는 쪽)에 좌정하고, 고기를 먹지 않은 깨끗한 신은 바람 위(하늬바람 부는 쪽)에 좌정한다. ‘바람 위와 바람 아래’ 자리는 상징적 의미가 크다. 깨끗한 신이 좌정하는 자리와 부정한 신이 좌정하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육식금기를 깬 신, 바람 아래 좌정한 신은 서열이 낮은 신이 된다.

부부가 같은 당에 좌정하고 있어도 조금 떨어져 위치를 달리하는 경우가 많은데 대부분 육식금기의 파괴로 인한 것이다. 같은 이유로 백조도령과 서정승 따님아기는 같은 당 안에 있으면서도 좌정하고 있는 자리를 달리하고 있다. 이러한 유형을 민속학자 문무병은 ‘동당이좌형(同堂異坐型)’이라 명명한다. 

제단 아래 구석진 자리로 밀려난 서정승 따님아기. 대제일에 따로 작은 상을 받는다. (사진=김일영 작가)
제단 아래 구석진 자리로 밀려난 서정승 따님아기. 대제일에 따로 작은 상을 받는다. (사진=김일영 작가)

 

앞 장에서 살펴보았던 새미하로산또도 부인과 따로 떨어져 좌정하고 있다. 이 역시 육식 금기의 파괴와 관련이 있다. 그런데 이 경우는 부부가 멀리 떨어져 아예 다른 당에 좌정하고 있다. 새미하로산또가 좌정하고 있는 새미하로산당은 동회천에, 부인이 좌정하고 있는 남선밧당은 서회천에 위치하고 있는 것이다. 이렇게 육식 금기의 파괴로 인하여 살림이 파탄 나고 ‘땅 가르고 물 갈라’ 이혼까지 하게 되는 경우를 ‘이당 별거형’ 혹은 ‘살림파탄형’이라 한다. 다만 살림 파탄의 과정을 담은 서사는 동새미하로산당본풀이에 남아있지 않다. 

백조도령과 서정승 따님아기의 별거에 대하여 혹자들은 백조도령이 토착신인 부인을 밀어내고 그 자리를 차지했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이른바 굴러온 돌이 박힌 돌을 뺀 셈이다. 아니 신들을 돌에 비유하는 건 조금 무례한가? 하여간에 상황이 그렇게 되었다. 

새로운 신이 좌정하기 위해서는 그 곳을 먼저 차지한 신에게 허락을 받거나, 아니면 ‘공안ᄒᆞᆫ(좌정한 신이 없는)’ 곳으로 찾아 가야 한다. 그런데 백조 도령은 먼저 자리를 차지한 서정승 따님아기와 혼인하여 부부가 되는 방법으로 무난하게 무혈 입성했다. 거기에 그치지 않고 부인이 그것도 임신했을 때 고기를 먹었다는 이유로 바람 아래 자리로 밀어내버리고 본인이 당당하게 본향신이 되었다. 그리하여 떡하니 제단의 중앙 자리를 차지하고 매년 신년과세제와 마블림제를 받는다. 당 이름도 산신인 그의 신격에 따라 하로산당이라 붙여졌다. 

열한 번째 아들의 이러한 이력을 보면서 그의 아버지 소천국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아버지 소천국은 사냥 습성을 버리지 못해 어머니인 백주또에게 쫓겨나지 않았는가. 하지만 그 아들은 반대로 부인이 임신 중에 고기를 먹었다는 이유로 바람 아래 자리로 밀어내 버린다. 이는 남성의 발언권이 세지고 있는 시대의 반영이라 여겨지기도 하는데, 처지가 뒤바뀌고 있는 양상에 대해서는 뒤에 다시 거론하게 될 것이다. 

어쨌거나 백조도령은 토착신을 밀어내고 주인 자리를 꿰차게 되었다. 이러한 정착의 성공에 그의 변신도 한몫 했다고 생각한다. 그는 원래 아버지처럼 사냥을 하는 산신이다. 그러니까 당굿을 할 때 사냥을 하던 시대를 상징하는 ‘사농놀이(산신놀이)’를 재연하는 것이다. 하지만 그는 단지 활만 잘 쏘는 것이 아니라 학식도 갖추었다. 하늘옥황에 가서 공부를 하고 왔다지 않은가. 변화 발전한 것이다. 아버지 소천국은 농경사회에 적응하지 못하여 쫓겨났지만 그는 산신이면서 농경신이기도 하고 마을을 지켜주는 본향신이기도 하다. 

여연. (사진=작가 여연 제공)

작가 여연. 

제주와 부산에서 30여 년 국어교사로 재직하였고, 퇴직 후에는 고향 제주로 돌아와 신화 연구로 인생 2막을 펼치고 있다. 생애 첫 작품으로 2016년 <제주의 파랑새>(각 펴냄, 2016)를 출판하였고, 이 책은 문화체육관광부에서 2017년 출판산업진흥을 위해 실시한 ‘도깨비 책방’ 도서에 선정되었다. ‘제주신화연구소’의 신당 답사를 주도하면서, 답사 내용을 바탕으로 민속학자 문무병과 공저로 <신화와 함께하는 제주 당올레>(알렙 펴냄, 2017)을 출판하였는데, 이 책은 ‘세종도서’에 선정되었다. 제주신화 연구모임을 1년간 진행하고 2018년 제주신화 전반을 아우른 책 <조근조근 제주신화>(지노 펴냄, 2018)를 3권으로 출간하였고 서울과 부산, 제주에서 북콘서트를 열었다. 2019년 하반기부터 제주신화 테마길을 여는 등 제주 신화 스토리텔링 연구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작가 김일영.

1969년 서울에서 태어나 중학교 2학년 때 집에 있던 카메라를 시작으로 사진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여행사 직원으로 근무하면서 전 세계를 여행했다. 2012년 제주로 이주해 ‘여행과치유’ 회원으로 활동을 시작, 회원들과 제주도 중산간마을을 답사하고 기록한 <제주시 중산간마을>(공저, 류가헌 펴냄, 2018)과 <제주의 성숲 당올레111>(공저, 황금알 펴냄, 2020)을 펴냈다. 또 제주 중산간마을 사진전과 농협아동후원 전시를 이어가고 있다. 현재 ㈜탐나는여행 대표이며 ‘여행과치유’ ‘제주신화연구소’ 회원으로 제주의 중산간마을과 신당을 찾고 기록하면서 제주의 삶을 느끼고 이해하려는 입도 8년차 제주도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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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돈 2020-09-11 20:30:30
정승댁 따님이 유학파 명함에 혹해서 사냥꾼 집안아들하고 혼인했는데 남편이란 작자는. 곡식은 커녕 바닷고기 한점 들여오는 법이 없어서 할 수없이 육고기 몇점 동네단골한테 받아먹은게 무슨 죄라고 아마도 백조도령의 사냥꾼 집안 자격지심때문에 내쳐진 이야기로 이해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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