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도 일찍부터 기본소득에 대해서 연구해왔고 잘 알고 있습니다. 전문가와도 포럼을 유지해왔고….”
지난 10일 ‘코로나19 경제위기와 기본소득’ 주제로 진행된 MBC ‘100분 토론’에 출연한 원희룡 제주도지사와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선별 복지와 보편 복지의 효용에 대해 공방을 벌였다.
이날 원 지사는 본격적인 토론에 들어가자 “기본소득에 대해 공부해왔고 잘 알고 있다”며 운을 뗐다. 하지만 이어진 발언에선 자신만만했던 시작과 달리 선별복지로 ‘선별복지 사각지대’를 없애겠다는 자기모순적 결론을 내는 등 기본소득을 비롯한 복지 정책에 대한 이해도가 ‘낙제’ 수준으로 비춰졌다.
우선 원 지사는 이날 토론에서 정부의 2차 긴급재난지원금 지급 방식을 놓고 “생존 위험에 처한 사람들, 물에 빠진 사람들에게 소액을 줘선 도움이 안 된다”라며 선별적 지급을 주장했다.
불과 석 달 전인 지난 6월 원 지사는 법에도 없는 ‘도지사 특별명령’이라는 용어를 써가며 제주형 2차 재난지원금을 모든 도민에게 1인당 10만원씩 지급하겠다고 대대적으로 선포한 바 있다. 보편지급 방식이다. 반면 지난 4월 제주형 1차 지급 대상은 중위소득(총가구를 소득순으로 순위를 매겨 정확히 가운데에 있는 가구의 소득) 100% 이하 가구로 한정됐다. 선별지급 방식이다.
재난지원금 지원 방식에 있어 두 달여 만에 선별 지급 방식에서 보편 지급 방식으로 180도 바꾼 것이다. 그 이유에 대해 원 지사는 “위기 피해가 도민사회 전체로 파급됐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이 설명대로라면 원 지사는 아직 코로나19로 인한 피해가 한국 사회 전체에 미치지 않았다고 보고 정부가 2차 재난지원금을 선별 지급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셈이 된다. (원 지사는 이날 방송에선 선별적으로 지급한 제주형 1차 재난지원금만 소개했다.)
#선별복지로 ‘선별복지 사각지대’ 없애겠다?
기본소득을 주제로 한 본격적인 토론에서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기본소득 도입을 제안하며 “최종 목표는 20년 정도 후 빠르면 15년 후 지금 기초생활수급자 기준에 맞춰 현재 가치로 월 50만원인데 그렇게 되면 ‘세 모녀가 30만원이 없어 자살했다’는 얘기는 사라질 수 있는 사회가 된다”고 말했다. 누구에게나 지원하는 보편복지의 한 방식인 기본소득을 도입하면 자연히 사각지대가 사라지기 때문에 ‘송파 세 모녀 사건’도 막아낼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러자 원 지사는 “기존 복지가 너무 부족하다. IMF 이후 양극화도 심하고 고령화 등으로 복지 부담이 올라가는데 지금 정부의 복지 대상 범위와 수준이 너무 낮다”며 “‘송파 세 모녀’ 같은 실질적인 위기를 구제해주고 소득 보장을 해줘야 한다”고 반박했다.
또 “연간 50만원이면 월 4만원이 조금 넘는데 ‘송파 세 모녀’, 정말 복지 사각지대에서 이분들에게 월 4만원 줘서 되겠느냐”며 “차라리 26조원으로 기초생계비를 두 배로 올려 정말 어려운 사람들, ‘죽니 사니’ 하는 분들의 소득을 보장해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지점에서 주목할 부분이 있다. ‘송파 세 모녀 사건’은 지난 2014년 서울 송파구 한 지하 셋방에서 어머니와 두 딸이 스스로 목숨을 끊은 채 발견된 사건이다. 생계를 꾸리던 어머니는 일을 하다 다쳐 수입이 끊겼고 딸 역시 만성 질환으로 일을 하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이에 어머니는 기초생활보장제도 지원을 받으려 했으나 지급 대상에서 탈락한 것으로 알려져 사회에 더욱 큰 충격을 줬다. 당시 행정에서 부양의무자(배우자·직계가족 등)인 딸이 일할 능력이 있다고 판단, 수급자에서 제외한 것이다. 기초생활보장제도는 빈곤층을 ‘선별해’ 최저 생활을 보장하는 선별 복지 방식이다.
‘송파 세 모녀’ 비극의 원인은 생계가 어려운 국민들이 자신의 가난을 적극적으로 증명토록 하는 ‘선별 과정’ 때문이다. 신청 절차는 까다로웠고 부양의무자 기준은 현실을 반영하지 못했다. 이 사건을 계기로 복지 사각지대를 야기한 행정에 대한 비판 여론이 높아졌고 관련 법 개정으로도 이어졌다. 정부는 특히 논란이 됐던 부양의무자 기준을 오는 2022년까지 단계적으로 폐지한다는 방침이다.
이 같은 선별 복지 제도 방식은 행정이 지원 대상을 거르는 과정에서 사각지대가 발생할 수밖에 없다. ‘송파 세 모녀’ 비극은 보편적 복지의 당위성을 주장하는 주요 논거가 된다.
#송파 세 모녀 비극 원인 왜곡한 원희룡 지사
이날 토론에서 원 지사는 선별적 복지의 효용성을 주장하기 위해 ‘송파 세 모녀 사건’을 세 차례나 언급했다. 보편적 복지에 쓸 예산으로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가구를 선별해 “두 배로 지원하자”고 강조했다. 다시 말해 이 사건을 두고 예산을 늘리면 해결되는 문제로만 인식하고 있었다.
‘송파 세 모녀 비극’은 단순히 예산이 부족해서 발생한 사건이 아니다. 포털 사이트에서 기사 두세 건만 검색해도 누구나 알 만한 내용이다. 그러나 원 지사는 선별 복지의 폐단 사례로 인용되는 비극적인 사건을, 반대로 선별 복지를 강조하는 데 사용한 것이다.
#원희룡식 선별복지의 대표사업 ‘더큰내일센터’
이날 원 지사가 말한 내용을 요약하자면 모든 사람에게 똑같이 나눠주는 1/n 방식은 개인에게 지급하는 금액이 소액일 수밖에 없어 어려움에 처한 계층을 실질적으로 돕는 데 한계가 있고 그에 비해 소요되는 재정 규모는 막대하기 때문에 투입 예산 대비 정책적 효과가 낮다는 것이다.
기본소득을 비롯해 선별적·보편적 복지 쟁점과 관련해 지금까지 나온 논의에서 한 치도 벗어남이 없고 새로운 관점이라곤 찾아볼 수 없었다. 이날 원 지사가 유일하게 내세운 제주 복지 정책 중 ‘더큰내일센터’는 상징적이다. 더큰내일센터는 ‘선별된’ 청년 수십여명을 대상으로 2년간 훈련 수당 월 150만원을 지급하며 취업·창업 관련 교육을 하는 사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