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신화산책 연재 작가 두 친구. 여연(왼쪽)과 홍죽희(오른쪽). (사진=김일영 작가)
제주신화산책 연재 작가 두 친구. 여연(왼쪽)과 홍죽희(오른쪽). (사진=김일영 작가)

50대 동갑내기 두 친구가 제주의 신당을 찾아 함께 걷는다. 제주의 신을 찾는 순례길에 오른 셈. 그 길에서 마을을 지켜준 신들과 만나기도 하고 30년 전 20대 청년의 ‘나‘를 만나기도 한다. 1만8천의 신과 함께 해온 제주인의 삶과 지금의 나 그리고 우리의 삶은 어떻게 맞닿아 있을까. 매주 금요일 ‘제주신화산책’ 코너에서 작가 여연의 ‘한라산의 신들’과 작가 홍죽희의 ‘제주의 돌에서 신성을 만나다’를 돌아가며 싣는다. <편집자주>

신화에서는 소천국의 아들인 백조도령이 먼저 자리를 차지한 여신을 밀어내고 본향신이 되었지만, 와흘의 여성들은 적극적이고 주도적으로 마을 공동체를 이끌어간다는 느낌을 받았다. <제주여성문화유적>(제주특별자치도 인력개발원·제주발전연구원 엮음, 도서출판각 펴냄, 2008)의 와흘리 편에 이런 이야기가 있다. 

와흘의 남자들이 술을 많이 마시고 도박에 빠지는 일이 자꾸 생기자 부녀회에서 악습추방운동을 벌이며 어느 가게에서도 술을 팔지 못하도록 했다. 여기에 마을 청년들도 동참하면서 힘이 실렸고 결국 남자들이 술을 끊게 되었다는 것이다. 그리하여 남자들이 열심히 일을 함으로써 와흘에 알부자가 많이 생겼다고 한다. 

여성들이 팔을 걷어붙이고 마을에서 술을 팔지 못하도록 한 것은 1970년대에 벌어진 일이다. 처음에는 가게의 반발이 없지 않았으나 꾸준히 설득하고 잘 타협하여 협조를 이끌어내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와흘에 있는 가게에서는 오랫동안 술 종류를 팔지 않는다는 약속을 꾸준히 이행해 왔다고 한다. 

신년과세제 등 당굿이 있을 때 남자들이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있는 것도 여성들의 주도적인 활동이 바탕에 깔려있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야무지고 부지런한 여성들의 주체적인 활동과 이에 호응하고 뒷받침해주는 남자들의 역량이 당굿에서도 드러난다고나 할까.

와흘본향당 신년과세제는 온 동네 사람들이 함께하는 축제이다. (사진=김일영 작가)
와흘본향당 신년과세제는 온 동네 사람들이 함께하는 축제이다. (사진=김일영 작가)

그러면 요즘도 와흘에 있는 가게는 술을 팔지 않을까? 최근 와흘리사무소에 전화할 일이 있어서 이 부분을 넌지시 물어보았다. 그러자 리사무소 직원은 마을에 편의점이 들어오면서 더 이상 강제할 수 없게 되었다고 했다. 중산간 마을까지 진출한 편의점이 오랜 세월 이어온 공동체의 문화를 변화시키고 있는 것이다. 

#와흘리 본향 한거리 노늘하로산당 풍경

백조도령이 좌정하고 있는 와흘리 본향당을 ‘본향 한거리 노늘하로산당’이라고 한다. 우리는 이 당 이름만 가지고도 여러 가지를 짚어낼 수 있다. 우선에 ‘본향’이라고 하고 있으니, 본향신이 좌정하고 있는 당이라는 말이다. 본향신은 마을의 호적, 장적, 생산, 물고를 차지하고 마을사람들을 지켜주는 마을의 대표신이라 하겠다. 

‘한거리’는 큰길가를 말하는 것이다. 실제 이 당은 중산간 동로 대로변에 위치하고 있다. ‘노늘’은 와흘의 옛 지명이다. 그래서 이 당을 노늘당이라고도 줄여 부른다. 또한 하로산당이라고 하고 있으니 산신이 좌정한 당임을 알 수 있다. 한거리 노늘하로산당은 새미하로산당과 같이 ‘제주도 민속자료 제9호’로 지정된 다섯 개의 신당 중 하나이다. 

이 당은 영기가 센 당으로도 알려져 있다. 거기다 큰길가에 자리하고 있으니 당굿이 있을 때나 없을 때나 찾는 사람도 많다. 동회천 새미하로산당은 길 안으로 깊이 들어가야 만날 수 있는 당이지만 한거리하로산당은 와흘리 동쪽 중산간 일주도로에 인접해 있어 운전하고 지나가면서도 바로 알아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조천읍 와흘리 본향 한거리하로산다의 궤
한거리 노늘하로산당의 궤. (제주투데이DB)

와흘 한거리하로산당의 답사기록들을 읽어 보니 예전에는 신목과 울타리 동백나무가 울창하여 겉에서 보기에도 예사롭지 않은 분위기였나 보았다. 유홍준은 <나의 문화유산답사기7>에서 제주답사 일번지 중 하나로 ‘와흘본향당’을 꼽으며 제자들을 데리고 답사했을 때의 인상에 대해 실감나게 표현하고 있다. 

신당 안은 팽나무 신목 두 그루가 만든 짙은 그늘 때문에 아주 어둡고 음습하였고, 고개를 들어보면 팽나무의 구불구불한 여러 줄기들이 하늘을 향해 호소하듯 큰 몸짓으로 용틀임하며 치솟아 있다고 하였다. 귀기로 범벅이 된 본향당 안의 신령스러움은 거의 소름이 돋을 정도여서 제자들은 잔뜩 웅크린 채 ‘해리 포터 무대’ 같다느니 ‘센과 치히로의 행방불명’의 한 장면 같아 보인다느니 하는 반응을 보였다고 한다.

유홍준은 ‘귀기로 범벅이 된 본향당 안의 신령스러움은 거의 소름이 돋을 정도다.’라고 했는데 이제는 예전 같지 않아 그런 분위기를 느껴 볼 기회를 가질 수 없다. 2009년과 2018년에 있었던 두 번의 사건 때문에 짙은 그늘을 드리우던 신목 팽나무가 쓰러져 생명을 다하고 말았기 때문이다. 

불에 탄 팽나무가 응급조치를 받고 허리를 구부린 채 철 기둥에 의지하는 모습. (사진=김일영 작가)
불에 탄 팽나무가 응급조치를 받고 허리를 구부린 채 철 기둥에 의지하는 모습. (사진=김일영 작가)

2009년 당 안에서 화재가 발생했다. 육지에서 온 무속인들로 인해 일어난 화재라 한다. 육지 무속인들은 제주에 들어와서 곳곳에 있는 신당을 찾아다닌다고 하는데, 실제 신당 답사를 다니다 그런 무속인과 마주친 일도 있다. 그들은 우리에게 주소를 가지고 근처까지 가도 신당을 찾지 못해 헤매기 일쑤라고 하소연했다. 

와흘 본향당은 영기가 센 당으로 알려져 있으면서도 찾기 쉽게 큰길가에 있으니 어찌 그들이 드나들지 않겠는가. 이렇게 무단히 들어와서 제를 지내고 초에 불을 켜 놓은 채 나가버려 화재가 난 것이다. 불은 신목에 옮겨 붙었고, 나무둥치와 가지 일부를 태워버렸다. 

민속학자 문무병은 육지 무속인들이 여기저기 찾아다니며 고기를 올리지 않는 당에 돼지고기를 올리는 등 제단을 어지럽히니 심히 우려스럽다고 했다. 신화 속에서도 부인이 임신 중에 돼지고기를 먹었다는 이유만으로 쫓아내고 있으니 이는 가볍지 않은 문제이다. 육지 무속인들은 심지어 자기네 식으로 인형 같은 것을 세워 놓기도 하고, 잔뜩 음식을 담아놓은 채 치우지 않고 가 버려 썩는 냄새가 진동하는 경우도 많다.

하여간에 이렇게 당 안에서 화재가 일어나니까 마을에서는 입구의 문을 잠그고 함부로 드나들지 못하게 해 버렸다. 와흘리사무소 직원은 현재 마을에서 일주일에 한 번 본향당 청소를 하는데, 계속 사람들이 드나들면서 쓰레기를 어찌나 버리는지 그걸 치우는 일도 장난이 아니라고 푸념했다. 그러면서 이젠 어지간하면 열쇠를 내주지 않는다고 하였다. 

화재가 난 직후 마을에서는 불에 탄 나무를 수술하고 영양제를 공급하면서 겨우 살려내었다고 한다. 내가 재작년, 그러니까 2018년 이른 봄 신년과세제 때 본 신목은 이렇게 되살려낸 팽나무였다. 기우뚱하니 구부러진 허리에 시멘트를 붙이고, 철 기둥에 의지하여 겨우 어깨를 세우고 있는 모습이 무척이나 힘겨워 보였다. 

▲지난 6일 태풍에 쓰러진 와흘리 본향당 신목의 모습@사진 제주투데이
태풍에 쓰러진 와흘리 본향당 신목. (사진=제주투데이DB)

그런데 이제는 그런 모습마저 볼 수 없게 되었다. 2018년에 태풍이 강타하여 간신히 버티던 나무를 쓰러뜨렸고 결국 수명을 다하게 된 것이다. 그래서 지금 당 한가운데 있는 신목은 그 이후 새로 심은 어린 나무이다. 어쨌거나 두 번의 사건으로 ‘구불구불한 줄기가 하늘을 향해 용트림하며 치솟았다는’ 신목은 사라지고 말았다. 하늘을 가리던 신목이 사라지니 당 마당은 훤해졌고, 햇살이 쏟아져 내려 음습한 공기를 밀어내 버렸다. 

와흘은 매년 음력 정월 열나흘에 신년과세제를 올린다. 이때는 마을사람들 뿐 아니라 관심 있는 연구자들까지 모여들어 새해 명절을 맞이한 분위기다. 큰심방이 하루 종일 당굿을 주재하고, 마을의 젊은 처자들은 국수 등을 준비해서 사람들을 대접한다. 

청년들도 마을길에 나와 교통 통제를 하고 주차를 안내하면서 적극적으로 활동하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건강하고 활기차 보였다. 게다가 날씨까지 도와주어 겨울의 끝자락임에도 대부분 화창했다.  

와흘은 집 가까이 있는 동네라서 신년과세제 날이 되면 이웃 마을 잔칫집에 가는 것처럼 들뜬 기분으로 집을 나서곤 한다. 시간 여유가 있을 때는 오래 눌러앉아 당굿을 구경하고, 바쁠 때는 점심쯤에 가서 국수 한 그릇만 얻어먹고 오기도 한다. 

작가 여연. 

여연. (사진=작가 여연 제공)
여연. (사진=작가 여연 제공)

제주와 부산에서 30여 년 국어교사로 재직하였고, 퇴직 후에는 고향 제주로 돌아와 신화 연구로 인생 2막을 펼치고 있다. 생애 첫 작품으로 2016년 <제주의 파랑새>(각 펴냄, 2016)를 출판하였고, 이 책은 문화체육관광부에서 2017년 출판산업진흥을 위해 실시한 ‘도깨비 책방’ 도서에 선정되었다. ‘제주신화연구소’의 신당 답사를 주도하면서, 답사 내용을 바탕으로 민속학자 문무병과 공저로 <신화와 함께하는 제주 당올레>(알렙 펴냄, 2017)을 출판하였는데, 이 책은 ‘세종도서’에 선정되었다. 제주신화 연구모임을 1년간 진행하고 2018년 제주신화 전반을 아우른 책 <조근조근 제주신화>(지노 펴냄, 2018)를 3권으로 출간하였고 서울과 부산, 제주에서 북콘서트를 열었다. 2019년 하반기부터 제주신화 테마길을 여는 등 제주 신화 스토리텔링 연구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작가 김일영.

1969년 서울에서 태어나 중학교 2학년 때 집에 있던 카메라를 시작으로 사진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여행사 직원으로 근무하면서 전 세계를 여행했다. 2012년 제주로 이주해 ‘여행과치유’ 회원으로 활동을 시작, 회원들과 제주도 중산간마을을 답사하고 기록한 <제주시 중산간마을>(공저, 류가헌 펴냄, 2018)과 <제주의 성숲 당올레111>(공저, 황금알 펴냄, 2020)을 펴냈다. 또 제주 중산간마을 사진전과 농협아동후원 전시를 이어가고 있다. 현재 ㈜탐나는여행 대표이며 ‘여행과치유’ ‘제주신화연구소’ 회원으로 제주의 중산간마을과 신당을 찾고 기록하면서 제주의 삶을 느끼고 이해하려는 입도 8년차 제주도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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