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신화산책 동갑내기 친구 작가 홍죽희와 여연. (사진=김일영 작가)
제주신화산책 동갑내기 친구 작가 홍죽희와 여연. (사진=김일영 작가)

50대 동갑내기 두 친구가 제주의 신당을 찾아 함께 걷는다. 제주의 신을 찾는 순례길에 오른 셈. 그 길에서 마을을 지켜준 신들과 만나기도 하고 30년 전 20대 청년의 ‘나‘를 만나기도 한다. 1만8천의 신과 함께 해온 제주인의 삶과 지금의 나 그리고 우리의 삶은 어떻게 맞닿아 있을까. 매주 금요일 ‘제주신화산책’ 코너에서 작가 여연의 ‘한라산의 신들’과 작가 홍죽희의 ‘제주의 돌에서 신성을 만나다’를 돌아가며 싣는다. <편집자주>

제주도 해안가 마을의 당에는 어부와 해녀를 보호해 주는 당신이 좌정해 있는데, 돌을 쌓아 제단을 만들거나 울타리를 두른 정도로 규모가 작다. 신촌의 동동네 일뤠당은 어부가 바다에서 운명적으로 건져 올린 미륵돌을 신으로 모시고 있는 당이다. 깊은 바닷속 이승과 저승 사이에서 목숨줄을 부여잡고 물질을 하는 해녀와 어부들은 무사 안녕과 풍요로운 수확을 기원하면서 이 당에서 간절한 기원을 올렸을 것이다.

해녀들의 물질은 칠성판을 등에 지고 바다에 든다고 할 만큼 위험한 일이었다. 물에 들었다가 물 밖으로 나와 숨을 쉬어야 하는데 마침 전복이나 문어가 보여 저것만 잡아야지 하며 숨을 한 번 더 참다가 영영 숨이 끊어져 버리는 해녀들이 지금도 끊이지 않는다. 그만큼 어렵고 힘든 일인데도 불구하고 먹고 살기 위해 여름이건 겨울이건 가리지 않고 물에 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당의 신체인 미륵돌, ‘신과 정령이 들고 나는 관문’이라는 궤 안에 과일이 보인다.(사진=김일영 작가)
당의 신체인 미륵돌, ‘신과 정령이 들고 나는 관문’이라는 궤 안에 과일이 보인다.(사진=김일영 작가)

잠수들을 지켜주는 신이 요왕신이요, 요왕신이 좌정하고 있는 당이 바로 잠수(해녀)당이다. 잠수들은 물에 들기 전에 잠수당에 들러 무사 안녕을 빌고, 일을 마치고 나오면서도 다시 잠수당에 들러 지켜주어 고맙다고 절을 한다. 이러한 잠수당의 역할과 기능을 이곳 신촌과 함덕에서는 미륵신이 맡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 아직까지도 초라하게나마 미륵당들이 지켜지고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잠수와 어부들의 목숨줄을 잡아주는 역할을 이 미륵신들이 해 주고 있으니까 말이다. 

#신촌 동동네 일뤠낭거리 일뤠당

시야가 확 트인 해안가에 옹기종기 모여 있는 시원한 용천수의 풍경을 바라보며, 천천히 ‘신촌리 동동네 일뤠낭거리’로 발걸음을 옮겼다. 이 ‘동동’은 마을 이름 중 하나로 동카름, 돌코지, 일뤠낭거리, 사장막, 소곰밭, 도체비언덕 등 각양각색의 이름으로 불리워진다. 일뤠할망을 모신 당이 있어서 일뤠낭거리로, 옛날에 활쏘기 장소라 하여 사장막으로, 예전에 소금을 만들었던 곳이라 소곰밭으로 불리워지고 있다. 이곳에 살았던 지역 주민들의 삶을 증언하는 명칭이겠다.

해안 포구를 따라 동쪽으로 조금 걷다 보면 ‘동동네 노인정’ 건물이 보인다. 노인정에서 동쪽으로 난 골목으로 들어서면서, 신당 기행을 함께 한 사진작가가 “신당이 어디 있을 것 같아요?” 하고 내게 물었다. 나는 골목을 두리번거리면서 주변 나무들만 찾았다. 당 이름이 ‘일뤠낭거리’라 제주어로 ‘낭’은 ‘나무’의 뜻이므로 당연히 신당의 ‘신목’에 신경을 썼기 때문이었다. 사진작가는 손짓으로 근처 가정집 담벼락과 경계한 한쪽 귀퉁이를 가리키는데 거기 신당이 위치하고 있어서 순간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신촌 동동네 일레낭거리 일뤠당, 주택 사이에 있다.(사진=김일영 작가)
신촌 동동네 일레낭거리 일뤠당, 주택 사이에 있다.(사진=김일영 작가)

신촌리 동동네 일뤠당은 돌담으로 둘러싸인 채 슬레이트 지붕의 주택 사이에 위치하고 있었다. 신당 안에서 신의 신체를 아무리 찾아봐도 화북 윤동지영감당의 미륵돌과 같은 형상을 갖춘 돌은 보이지 않았다. 세 개의 현무암을 다듬어서 양쪽에 기둥을 세우고 지붕을 올려 만든 집 앞에 돌 하나가 놓여 있다. 평범하게 보이지만 이 돌이 고동지영감 낚시줄에 올라온 미륵돌이구나 싶었다. 

궁금한 마음에 돌집 틈으로 신과 정령이 들고 나는 관문이라는 궤 안을 조심스럽게 들여다보았다. 궤 속에는 과일 등 몇 가지 음식물이 남아 있어 최근까지 사람들이 이곳에서 치성을 드렸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더군다나 돌담 사이와 궤 안팎에 여기저기 하얀 종이로 만든 지전, 실타래, 양초, 소주병들이 있는 것으로 보아, 많은 세월이 지났지만 이 당은 신촌 마을 단골들과 함께 꾸준하게 호흡하고 있구나 하는 느낌이 들었다. 이 당의 본풀이는 바다에서 올라온 돌덩이가 어떻게 마을주민들과 관계를 맺고 미륵신으로서 좌정하게 되었는지 보여준다.

#신촌 동동네 일레낭거리 일뤠당 본풀이

신촌 동동네 고동지 영감은 길고 질긴 백발술인 낚시줄과 천근이나 되는 무거운 뽕돌인 낚시돌을 배에 싣고, 오늘도 월척을 기대하며 바다로 향하였다. 시간이 흘러 낚싯줄이 무겁게 흔들리는 것을 느끼고 커다란 물고기가 잡히는 운수 좋은 날이라 여기며 환호성을 질렀다. 그런데 낚싯줄에 걸린 것은 다름 아닌 커다란 돌덩이였다. 기대하던 월척 대신 낚시줄에 올라온 돌덩이를 보고 마음이 몹시 상했다. 

고동지 영감은 있는 힘을 다하여 돌덩이를 깊은 바다를 향해 던져 버렸다. ‘바라던 고기는 안 잡히고 하필 재수 없게 돌덩이라니.’ 고동지 영감은 실망스러운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히며 다시 낚싯줄을 드리우자 이번에도 또 돌덩이가 걸려 올라왔다. 돌덩이를 바다로 던져도 올라오는 상황이 계속되었다. 마침내 고동지 영감은 ‘거 참 이상한 일이여’ 고개를 갸우뚱하고는 하는 수 없이 낚시를 포기하고 돌덩이를 배에 싣고 신촌 포구로 돌아왔다. 

순간 신기하고 믿기지 않은 일이 벌어졌다. 포구에 도착한 후 육지에 닿자마자 돌덩이가 일어나 뚜벅뚜벅 걸어가더니 일뤠낭거리로 가서 좌정하는게 아닌가! 마을 사람들은 이 돌덩이를 신성한 돌이라고 입을 모았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도 누구 하나 먹으라 쓰라 신으로 대접하지 않으니, 미륵신은 화가 나기 시작했다. 미륵신은 고기잡이 배는 물론 출항하는 모든 배에 열두 흉험을 내리고 광풍을 불러일으켰다. 그제서야 마을 사람들은 대접받지 못한 미륵돌의 조화임을 깨닫게 되었다. 그 후 바닷일을 업으로 삼는 잠수와 어부들은 이월 초여드렛날 제를 올려 신을 대접하니 풍성한 수확뿐만 아니라 마을이 편안해졌다.(‘현용준, 『제주도무속자료사전(도서출판 각)』 ’의 구술자료를 바탕으로 재정리)

어부의 백발술에 올라온 미륵돌은 바닷가 마을에 있는 화북 윤동지영감당이나 함덕 서물당에 있는 미륵돌과 마찬가지로 마을에 들어와 좌정하고 어업을 관장하는 신이 되는 전개과정이 얼추 비슷하였다. 이 당의 신체는 미륵돌이지만 ‘일뤠낭거리 일뤠또, 고동지영감, 짐동지영감’ 등 다수의 신을 함께 모신다고 한다. 

일뤠또라는 신은 마을 사람들을 위해 산육과 치병을 담당하는 일뤠할망신을 지칭하여 부르는 이름이다. 일반적으로 일뤠당신은 제주도 전역에 분포하고 있으며, 농업과 어업을 관장함과 동시에 치병능력이 있는 여신들이다. 

문무병은 『제주도 본향당신앙과 본풀이』에서 일뤠당 신앙은 옛날 의사가 없는 무의촌에서 칠일신을 모셔 아기를 낳아 돌보고 기르며, 아기의 피부병을 치료해달라고 기원하는 개인축원형 당신앙이라고 그 특징을 말하고 있다. 신촌마을에도 산육과 치병신인 일뤠할망을 모신 신촌 일뤠당이 따로 존재하고 있었다. 하지만 거의 방치된 채로 있었고, 마을 포제를 지내면서 철당을 한 이후 당에 다니는 사람들도 없어서 일뤠할망신을 이곳에 같이 모시게 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바다가 매립되면서 신당은 골목길에 붙어 있게 되어버렸다.(사진=김일영 작가)
바다가 매립되면서 신당은 골목길에 붙어 있게 되어버렸다.(사진=김일영 작가)

이 신당 안쪽의 돌담 틈 사이로 흰색 지전과 명실인 실타래가 군데군데 보였다. 아마도 신당에 드나드는 단골들이 일뤠할망신에게 가족의 무병장수와 복을 빌며 이곳에 걸어놓은 것이라고 여겨진다. 단골들은 대부분 마을의 여성들로 멧밥과 술, 과일, 생선을 준비하고 해 뜨기 전에 이곳에 와서 제를 지낸다고 한다.

미륵돌과 관련한 신당 기행을 하면서 알게 된 것은 미륵신을 모신 당들이 주로 제주시 동북쪽의 바닷가마을에 위치하고 있다는 것이다. 깊은 바다 속에 있던 돌이 한 어부에 의해 건져 올려져 마을에 좌정하여 미륵신이 되었다는 이야기는 가난한 어부나 해녀들의 삶 과 염원을 담고 있다. 바닷가 마을 사람들은 현재의 고달픈 삶을 어떻게 극복할까 하는 간절한 기원의 대상이 필요했을 것이다. 그런 의미로 볼 때 마을 당 안에 자리하고 있는  미륵은 깨달음이나 득도와는 거리가 멀지만, 마을 사람들 가까이에 보살처럼 다가와 민중들의 소박한 꿈을 어루만져주는 존재가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홍죽희.

홍죽희.

제주에서 중학교 영어교사로 30여 년을 재직하다 2020년 2월 명예퇴직했다. 대학 시절 마당극 운동단체인 극단<수눌음>에 가입, 외지 자본에 의한 제주의 토지 잠식을 다룬 ‘땅풀이’와 1932년 제주에서 일어난 항일 해녀 투쟁을 다룬 ‘ᄌᆞᆷ녀풀이’ 등에 출연하면서 제주의 역사와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육지와는 달리 제주의 마당극은 신화를 바탕으로 굿에 의해 전개되는 특징이 있어 자연스럽게 제주의 신화를 눈여겨보게 되었고 지금도 틈틈이 신당 기행을 다니고 있다. 독서모임<아랑ᄒᆞ라>와 아코디언 모임<바숨>의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인문적 소양과 예술적 감성을 배우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사진작가 김일영.

1969년 서울에서 태어나 중학교 2학년 때 집에 있던 카메라를 시작으로 사진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여행사 직원으로 근무하면서 전 세계를 여행했다. 2012년 제주로 이주해 ‘여행과치유’ 회원으로 활동을 시작, 회원들과 제주도 중산간마을을 답사하고 기록한 <제주시 중산간마을>(공저, 류가헌 펴냄, 2018)과 <제주의 성숲 당올레111>(공저, 황금알 펴냄, 2020)을 펴냈다. 또 제주 중산간마을 사진전과 농협아동후원 전시를 이어가고 있다. 현재 ㈜탐나는여행 대표이며 ‘여행과치유’ ‘제주신화연구소’ 회원으로 제주의 중산간마을과 신당을 찾고 기록하면서 제주의 삶을 느끼고 이해하려는 입도 8년차 제주도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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