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숙 난산리 주민. (사진=김숙씨 제공)
김숙 신산리 주민. (사진=김숙씨 제공)

오늘도 아침 일찍 운동하러 집을 나섰다. 항상 목적지는 집에서 걸어 30분정도 걸리는 독자봉이다. 독자봉 입구에서 한 바퀴 도는 데는 14분정도 걸린다. 독자봉을 한 바퀴를 돌고 다시 걸어서 집까지 오면 1시간 10분정도 걸리는데 운동하기에 더 없이 좋은 곳이다. 

독자봉은 나에겐 건강과 마음의 안식처를 찾아준 곳이다. 13년 전 베체트병이라는 자가면역질환 진단을 받았다. 베체트로 염증이 심했고, 특히 입안에 살갗이 패여서 아프고 시려, 먹지도 못하고 몸이 피곤하여 잠깐 외출하는 것도 힘들었다. 너무 힘들어 울기도 많이 울었다. 그래서 좋은 음식도 먹고 약도 먹었지만, 크게 효과가 없었지만 독자봉을 오르면서 건강이 좋아지기 시작했다. 그 덕분에  지금은 약도 먹지 않는다.

병 때문에 찾기 시작한 독자봉은 나의 자부심이 되었다. 가파른 계단을 따라 독자봉을 오르면 멀리 푸른 바다와 성산일출봉이 가슴을 트이게 하고, 경사진 도로를 내려올 때는 신산리 마을이 한눈에 보여 가까이서는 볼 수 없는 전경이 더없이 좋다. 집에서 가까운 곳에 이렇게 작고 아름다운 오름이 있다는 건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다. 그런데 공항이 들어서면 이 오름이 깎여 없어진다니 생각만 해도 나의 팔 한쪽이 잘려 나가는 것 같다.

난 운동을 마치면 남편을 도우러 무 밭으로 간다. 9월은 우리 집이 제일 바쁜 시기이다. 트랙터로 밭을 갈아 밭 정리를 해서 무를 심는다. 우리 집 1년 농사이다. 무 농사는 몇 십 년 동안 해왔다. 무값이 폭락해도 다른 작물로 바꾸기가 힘들다. 다른 농사에 대한 지식도 없고, 토질에 적합한지도 모른 채 다른 농사를 짓게 되면 인건비도 나오지 않을 것 같아 엄두도 못 내고 있다. 가끔은 고소득이라고 불리는 천혜향 등 만감류를 하고 싶어도 자본이 없어 엄두도 못 내고 있다. 올핸 3~4일에  한번씩  내리는 비로  농사가 짖기도 힘들다. 오늘도 힘든 농사가  잘되어 인건비라도 제대로 나오길 바랄 뿐이다. 

남편은 무 농사를 천직으로 여기며 살아왔다. 마을엔 여기저기 부동산업자가 들어왔고, 공항이 들어온다는 것 하나 때문에 투기꾼들이 농토를 점점 빼앗아 가고 있다. 공항이 생겨 농토를 다 뺏겨 버리면 이 힘든 농사마저 지을 수 없게 될 것이고 남편은 술과 우울함에 빠져 살아 갈 것이다. 힘들어도 무 농사를 지으며 매일 아침 독자봉도 오르고 농사가 힘들어 남편에게 투덜거리긴 하겠지만 난 지금의 일상을 지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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