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황(歌皇), ‘노래의 황제’라 했다. 9월의 마지막 날, 음력 팔월 열나흘, 한가위 명절 전날 밤이었다. 일흔 네 살, 백발의 가수 나훈아가 대한민국의 안방을 ‘들었다, 놨다’, ‘쥐락펴락’했다.

30일 방송됐던 KBS2TV 특집 프로그램 ‘2020 한가위 대 기획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가 그것이었다.

나훈아가 15년 만에 출연한 방송 프로그램이자 가수 인생 최초의 언택트 공연이었다.

여기서 나훈아는 어느 예인(藝人)도 범접할 수 없는 카리스마로 무대를 압도했다.

때로는 애절하게, 때로는 간드러지게, 때로는 폭풍처럼 몰아친 가창력은 블랙홀처럼 시청자들의 눈과 귀를 빨아 들였다. 마음까지 사로잡았다.

그의 말대로 ‘젖 묵은(젖 먹은) 힘’을 다해 노래했던 감격과 감동의 무대였다.

출연료는 없었다. ‘코로나 19’로 힘들어하는 국민들을 위로하기 위해 출연료 없이 무대에 올랐다.

그러기에 그의 공연은 더욱 빛났고 감동은 더욱 짜릿하게 다가섰던 것이었다.

2시간 40분 동안 스물아홉 곡을 한 점 흐트러짐 없이 소화하며 혼신을 다해 내뿜었던 열창은 감히 어떤 젊음도 흉내 낼 수 없는 불꽃같은 열정이었다.

‘일흔 네 살의 청년 나훈아’의 끼가 유감없이 발휘됐던 무대였다. 온 몸을 불사르듯 무대를 태웠던 노래와 특유의 마력 발산은 아뜩아뜩 시청자들의 숨을 멎게 했었다.

청바지부터 재킷, 한복 두루마기까지 순간순간 무대 위에서 의상을 갈아입는 파격도 돋보였다.

흰 러닝셔츠에 청바지를 입고 종횡무진 무대를 주름잡았고 신발을 벗어 던져 맨발의 퍼포먼스도 벌였다.

피아노를 연주하고 북을 두드리는가 하면 통기타를 치며 팝송까지 열창하며 트로트와 팝송, 민요의 경계까지 무시로 넘나들었다.

‘고향역’, ‘홍시’, ‘사랑’, ‘무시로’, ‘영영’, ‘사내’ 등 주옥같은 그의 히트곡들은 무대와 명절 전날 밤 안방을 훨훨 날아다녔다.

보고 듣는 이들의 마음은 멀미하듯 파도처럼 울렁거렸다. 아련한 추억이 가슴을 적셨고 아스라이 먼 옛날의 그리움까지 되살아났다. ‘소리의 연금술사’, ‘노래의 요리사’라 불러도 지나침이 없을 듯 했다.

그야말로 대한민국이 나훈아의 노래에 흠뻑 취했다. 코로나에 짓눌려 무력감에 빠졌던 이들의 ‘혼쭐’을 흔들어 깨웠다. 지치고 우울하고 불안한 명절맞이 국민들의 마음을 다독였고 달래줬던 것이다.

한가위 명절에 보내준 감동의 선물이었다.

노래만이 아니었다. ‘노래의 날개’에 실려 요깃거리 양념처럼 전해준 구수한 사투리 입담은 예사롭지가 않았다. 누구에게도 눈치 보지 않는 소신발언을 거침없이 내놨던 것이다.

메시지는 징소리처럼 무딘 마음들을 일깨우기에 충분했다. 천둥소리가 되어 천근무게로 다가섰다.

“KBS가 국민의 소리를 듣고 같은 소리를 내는, 여기저기 눈치 안보는, 정말 국민을 위한 방송이 되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작금의 KBS 행태에 대한 일반의 비판적 시각을 에둘러서 대신 전한 듯 했다. 그런 생각을 지울 수가 없었다.

KBS방송에 출연하여 KBS 방송에 쓴 소리를 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다. 그럼에도 나훈아는 거침이 없었다.

그러면서 “모르긴 몰라도 KBS는 거듭날 것”이라고 기대감을 표했다. “거듭나라”는 주문이나 다름없었다.

그의 묵직하고 솔직한 입담은 계속됐다.

‘코로나 방역의 영웅인 의사와 간호사 등 의료인들의 노고를 칭송하고 감사의 인사를 전하면서 ’보통사람들의 힘‘을 이야기 했다.

“우리는 많이 힘들다. 많이 지쳐있다. 옛날 역사책을 보든, 살아오는 동안 왕이나 대통령이 국민 때문에 목숨을 걸었다는 사람은 한 사람도 본적이 없다”고 했다. 어디를 겨냥했는지의 판단은 각자의 몫이다.

그러면서 보통 국민의 위대함을 강조했다.

“이 나라를 누가 지켰는가 하면, 바로 여러분이 이 나라를 지켰다”고 했다.

“유관순 누나, 진주의 논개, 윤봉길의사, 안중근의사, 등 이런 분들 모두가 보통국민이었다”는 것이었다.

그의 말은 이어졌다. ‘IMF때 세계가 깜짝 놀라지 않았나. 나라를 위해 집에 있는 금붙이 다 꺼내 팔고, 국민이 힘이 있으면 위정자들이 생길 수 없다. 대한민국 국민 여러분이 세계에서 제일 위대한 1등 국민’이라고 했다.

국민이 깨어 있어야 나쁜 정치하는 위정자들이 발을 붙일 수 없다는 말로 이해 할 수 있다. 무공침에 찔리듯 아프게 폐부에 와 닿는 말이었다.

‘깜짝 MC’로 출연한 김동건 아나운서와의 대화에서는 소리꾼으로서 구애받지 않은 그의 자유로운 가수 활동 의지를 읽을 수 있었다.

거기에는 진정한 ‘가인(歌人)의 예술혼’이 촘촘하게 박혀 있었다.

“(나라에서 주는)훈장을 사양했다고 하더라”는 말의 답을 통해서다.

“세월의 무게도 무겁고, 가수라는 직업의 무게도 무거운데, 어떻게 훈장까지 달고 사느냐. 노랫말 쓰고 노래하는 사람은 영혼이 자유로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가수 나훈아, 그러기에 그는 권력과 돈 앞에 당당할 수 있었고 누가 뭐라고 하던, 악다구니 세상살이에서 의연할 수 있었을 터였다.

특유의 화려하고 역동적인 무대 매너, 질박하면서도 구수하고 재치 있는 입담으로 나훈아는 추석 절 안방의 이야기 거리를 제공하는 데 부족함이 없었다.

그의 무대는 분명 ‘코로나 19’에 지치고 고달픈 이들에게 잠시나마 위로와 격려의 메시지가 되었을 것이다.

당초 나훈아 공연은 재방송과 다시보기 서비스를 하지 않는다고 발표했었다. 그러나 시청자들의 열화 같은 재방송요구와 아쉬움을 달래기 위해 KBS는 어제(3일)밤 10시 30분부터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 스페셜-15년만의 외출’을 편성하여 방송했다. 사실상의 재방송이었다.

그러기에 더욱 나훈아 공연의 여운이 아직도 사그라지지 않고 있다. 아름다운 울림으로 많은 이들의 마음을 촉촉하게 적시고 있다.

‘나훈아 신드롬’이 온오프라인에서 계속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정말 폭발적인 무대였고 감동과 감격을 엮어낸 추석 연휴 선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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