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대 동갑내기 두 친구가 제주의 신당을 찾아 함께 걷는다. 제주의 신을 찾는 순례길에 오른 셈. 그 길에서 마을을 지켜준 신들과 만나기도 하고 30년 전 20대 청년의 ‘나‘를 만나기도 한다. 1만8천의 신과 함께 해온 제주인의 삶과 지금의 나 그리고 우리의 삶은 어떻게 맞닿아 있을까. 매주 금요일 ‘제주신화산책’ 코너에서 작가 여연의 ‘한라산의 신들’과 작가 홍죽희의 ‘제주의 돌에서 신성을 만나다’를 돌아가며 싣는다. <편집자주>

글도 좋고 활도 좋아 문무를 겸비한 백조도령과 새미하로산또는 천기지기를 짚어 와흘과 회천 마을을 좌정처로 삼았다. 그리고 본향신이 되어 마을의 모든 일을 관장하며 자손들의 섬김을 받는다. 한편 이런 무난한 코스를 밟지 못하고 바깥세상으로 내쳐지는 소천국의 아들들이 있다. 성산읍 신풍리 개로육서또, 광양당신 하로산또, 제주시 내왓당 당신, 김녕리 궤네기또, 표선읍 토산리 서편한집 바람웃도이다.

부모를 노엽게 하여 쫓겨난 아들들의 행적은 거의 같다. 부모로부터 버림을 받고, 그것을 계기로 낯선 세계에서 우여곡절을 겪으며 견문을 넓힌 후에 다시 제주로 돌아와 마을의 신으로 좌정한다는 것이다. 

부모에게 버릇없이 군 죄로 바다로 던져지고 종횡무진 활약하다 돌아온 대표적인 신이 궤네기또이다. 궤네깃당본풀이 속에 궤네기또의 활약상이 생생하게 펼쳐지는데, 이러한 서사는 부모님들의 이야기이기도 한 송당본풀이의 내용과 많은 부분 겹친다. 

자, 그러면 한라산 자락에서 태어난 궤네기또가 어떻게 하여 바닷가 마을 김녕에 좌정하게 되었는지 그의 서사를 따라가 보자.

(…앞부분 생략) 남의 소를 잡아먹은 일로 백주또에게서 쫓겨난 소천국은 해낭골굴왓이라는 굴속에 기거하면서 예전에 하던 대로 다시 사냥을 해서 먹고 산다. 이렇게 속 편한 남편과 달리 백주또는 혼자 많은 자식들을 키우면서 뱃속에 아이까지 임신하고 있었으니 여간 힘든 게 아니었다. 

마침내 아들이 태어나고 세 살이 되자 아비를 찾아주려고 소천국을 찾아갔다. 그런데 아버지의 무릎에 앉은 아들이 버릇없이 아버지 삼각수염을 잡아당기고 가슴을 치는 것이 아닌가. 소천국이 얼굴을 찌푸리며 아들을 밀쳐내었다. 그러자 이를 본 백주또도 푸념했다.

“이놈의 자식이 뱃속에 있을 때도 살림을 분산허게 되언게마는 태어나서도 버릇이 고약허다.” 
소천국과 백주또는 못된 아들을 바다에 던져버리기로 했다. 아들을 무쉐설캅(무쇠상자)에 들여앉혀 놓고 마흔여덟 자물쇠를 채워 바다로 밀어버렸다. 무쉐설캅은 물 위에서 삼 년, 물 아래서 삼 년 파도 따라 홍당망당 떠다니다가 용왕황제국 산호수 가지에 걸렸다. 

그날부터 용왕황제국에 이상한 일들이 일어났다. 밤에도 초롱불을 밝힌 것처럼 환하고 낮에는 우렁우렁 글 읽는 소리가 가득했다. 용왕황제가 무슨 일인고 하여 큰딸에게 나가보라고 하였다. 하지만 큰딸은 다녀와서 아무 일도 없다고 대답했다. 둘째 딸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마지막으로 셋째 딸을 내보냈더니 산호수 가지에 무쉐설캅이 걸려 있었다고 보고하였다. 

용왕은 큰딸에게 무쉐설캅을 내려오라고 시켰다. 그러나 큰딸은 내리지 못하고 빈손으로 돌아왔다. 둘째를 시켜도 마찬가지였다. 셋째 딸에게 시켰더니 밖으로 나가 산호수 가지에 올라가서는 무쉐설캅을 겨드랑이에 끼워서 살짝 내려놓았다. 그러고는 꽃당혜 신은 발로 툭툭 차니 무쉐설캅이 저절로 설강 열리면서 옥 같은 도련님이 한 아름 책을 안고 나왔다. 

용왕이 도령에게 어디서 온 누구냐고 물었다. 도령이 대답하기를 조선 남방국 제주에서 온 소천국의 아들인데 강남천자국에 난리가 났다하여 평정하러 가는 길이라 하였다. 이 말을 들은 용왕은 도령이 보통 인물이 아니라고 생각하고는 막내 사위로 삼았다. 

용왕국에서는 사위를 대접하느라 상다리가 부러지게 음식을 차렸지만 소천국의 아들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용왕 황제가 왜 음식을 먹지 않는지 묻자 자신은 소도 전머리(한 마리 통째) 돼지도 전머리 먹는다고 대답하였다. 

그날부터 용왕국에서는 소도 잡고 돼지도 잡아 사위 대접을 시작했다. 그렇게 석 달 열흘을 대접하다 보니 동 창고도 비어가고 서 창고도 비어갔다. 사위 먹이다 나라 망하겠다고 생각한 용왕 황제는 무쇠 바가지 하나, 무쇠 방석 하나, 금동 바가지 하나, 상마루에 매어 둔 비루먹은 망아지 한 마리 두루 챙겨 주고는 무쉐설캅에 사위와 딸을 담아 바다에 띄어버렸다.

무쉐설캅은 밀물에도 홍당망당, 썰물에도 홍당망당 물결 따라 흘러 다니다가 강남천자국 백모래밭에 다다랐다. 그날부터 강남천자국에서는 이상한 일들이 일어났다. 밤에는 백모래밭에 초롱불을 밝힌 듯 환하고, 낮에는 글 읽는 소리가 우렁우렁 그치지 않았다. 

강남천자국 왕은 신하들에게 무슨 일인지 조사해보도록 했다. 군사들은 백모래밭에서 무쉐설캅을 발견하고 왕에게 가져갔다. 왕은 무쉐설캅을 열어보도록 했지만 신하들이 아무리 애를 써도 상자는 열리지 않았다. 하는 수 없이 제관을 불러와 예를 갖추어 제사를 지냈다. 그러자 단단히 닫혀 있던 무쉐설캅이 살강 하고 열리면서 안에서 기골이 장대한 도령과 어여쁜 여인이 나왔다.

강남천자국 왕이 공손하게 어느 나라에서 오신 누구냐고 물었다. 소천국의 아들은 조선 남방국 제주라는 섬나라에서 강남천자국에 큰 사변이 일어났다고 하여서 그 난을 평정하러 왔다고 대답하였다. 왕은 황급히 두 사람을 궁궐로 맞아들여 극진히 대접하고는 무쇠투구와 갑옷을 갖추어주면서 적을 물리치도록 했다. 

소천국의 아들이 비루먹은 망아지를 타고 전쟁터로 들어가 보니 머리 둘 달린 적장, 머리 셋 달린 적장이 칼을 휘두르며 달려오는데 아무도 막아내지 못하고 있었다. 소천국의 아들은 무쇠방석을 빙글빙글 돌리다 머리 둘 달린 적장을 향해 휙 던졌다. 그러자 적장의 머리가 그대로 한꺼번에 떨어져 나갔다. 그걸 본 적군들이 웅성웅성하기 시작했다. 

연이어 머리 셋 달린 적장을 향해 무쇠 바가지를 던졌다. 무쇠 바가지에 가슴을 맞은 적장이 세 개의 머리에서 한꺼번에 피를 토하며 고꾸라져 버렸다. 이를 본 적군들이 비명을 지르며 삽시간에 흩어져 달아났다. 

난은 곧 평정되었고, 비루먹은 망아지를 타고 당당하게 궁으로 돌아온 소천국의 아들에게 왕이 크게 기뻐하며 벼슬을 내리고 땅 한 쪽을 나눠줄 테니까 국세를 받으며 살라고 하였다. 하지만 소천국의 아들은 제주로 돌아가겠다고 했다. 이에 강남천자국 왕은 섭섭해 하면서 큰 배 한 척에 식량을 가득 실어주고 군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제주 땅으로 돌아갈 수 있게 해 주었다. 

마침내 배가 제주 바다에 당도했는데, 썰물 때라 제주 동편 소섬 진질깍으로 배를 댔다가 마음에 안 들어 종달리 갯가로 갔다가 거기도 마음에 안 들었다. 그래서 알다랑쉬오름 비자림 쪽으로 올라왔다. 소천국 아들이 부인과 함께 군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제주섬으로 올라서자 천둥번개가 치듯 땅이 들썩이고 하늘이 출렁였다. 

그 때 아버지 소천국은 산에서 사냥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땅이 들썩이고 하늘이 출렁출렁하면서 사방이 어수선해졌다. 새들이 푸드득 푸드득 날아오르고 산짐승들도 놀라 사방으로 뛰쳐나갔다. 

소천국이 무슨 일이 있는가 하여 오름 위에 올라 아래를 내다보니, 마을 사람들이 무슨 구경거리를 만났는지 우르르 아래로 몰려가고 있었다. 소천국은 사냥하는 걸 그만두고 마을로 내려왔다. 하녀 느진덕정하님은 소천국에게 세 살 적에 죽으라고 무쉐설캅에 집어넣고 바닷물에 띄워버린 작은 상전님이 아버지 나라를 치려고 들어왔다고 전했다. 

소천국은 겁이 바락 나서 한라산 쪽으로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런데 정신없이 달리다가 그만 고꾸라져 바위 아래로 떨어졌다. 그리고 그 자리에서 숨이 끊어지고 말았다. 소천국은 알송당 고부니마루로 가서 신으로 좌정했다. 

어머니 백주또도 아들이 들어왔다는 소문을 듣고 겁이 바짝 나서 도망가다가 당오름 아래서 숨이 끊어졌다. 백주또는 죽어 당오름에 좌정하였다. 그래서 백주또는 송당의 마을신이 되어 정월 열 사흗날 대제일을 받아먹게 되었다.

아버지 어머니를 모두 잃은 아들은 몹시 슬펐다. 아버지가 좌정한 알송당 고부니마루에서 눈물 흘리던 아들은 마을마다 연락해 사냥꾼들을 모으고는 사냥을 해서 제물을 바치도록 했다. 그러고는 사냥꾼들이 잡아온 노루며 사슴을 통째로 올려 아버지께 제사를 지내주었다. 

아들은 군사들을 본국으로 돌려보내고 부인과 함께 한라산으로 들어갔다. 그들은 조천면 선흘리로, 복오름 체오름으로, 교래리 숲으로, 윗송당 아랫송당 거쳐 체역장오름에 올랐다. 그곳에서 물을 마시고 좌우를 둘러보았다. 

“이름난 장수가 날 명당이 어딘가 보자. 김녕리가 명당 중에 명당이로다. 김녕리 입산봉은 두 우산 심은 듯, 괴살미오름은 양산 홍산 불린 듯허다. 아끈 다랑쉬오름은 초출일산(初出日傘) 불린 듯허고, 웃궤눼기로 들어가니 위로 든 바람 아래로 나고, 아래서 든 바람 위로 나고, 아래 길 굽어보니 별 솜솜 달 솜솜하여 좌정할 만허구나.”

소천국의 아들이 김녕 마을에 자리를 잡고 앉았는데 며칠이 지나도 누구 하나 대접하는 이가 없었다. 이에 화가 나서 마을 곳곳에 풍운조화를 일으켰다. 배가 뒤집히고 어른들이 병이 나 자리보전하고 아이들도 피부병으로 고생을 하니 마을 사람들은 영문을 몰라 방황하다가 심방을 불러와 점을 치게 했다. 

“소천국의 아들이 하늘옥황의 명령을 받아 김녕 마을에 내려왔으나 누구 하나 대접하는 이 없으니 노여워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소천국의 아들을 찾아가 여쭈었다. “어디로 좌정하겠습니까?” “알궤네기에 좌정하겠다.”

소천국의 아들이 알궤눼기로 좌정하자 심방이 뭣을 잡수시냐고 물었다. 소도 한 마리 통으로 먹고 돼지도 한 마리 통째 먹는다고 하자 심방이 놀라 사정을 하였다. “가난한 백성이 어떵 소를 잡아서 올릴 수 이시쿠과? 집집마다 돼지를 잡아 올리도록 허쿠다.”

소천국의 아들은 심방의 청을 받아들였고, 이때부터 김녕 궤네기당에서는 해마다 돼지를 잡아 돗제를 올리게 되었다. 김녕 알궤네기 당신이 되어 자손들의 섬김을 받는 소천국의 열여섯째 아들을 궤네기또라고 부른다. 
-현용준, <제주도무속자료사전>(신구문화사 펴냄)의 내용을 바탕으로 정리-

궤네기또에 관한 당신화는 내용이 풍부하고 서사가 잘 짜여 있는 편이다. 궤네기또가 부모에 의해 바다에 버려지는 서사가 흥미진진하게 펼쳐지고 있으니 궤네깃당본풀이는 ‘궤네기또의 무용담’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궤네기또는 좌정할 곳을 찾으면서, ‘이름난 장수가 날 명당’ 자리를 찾았고, 김녕이 명당 중의 명당이 분명하다고 판단하였다. 그런데 이름 난 장수는 바로 자기 자신이기도 하다. 강남천자국에서 난리를 평정하지 않았는가. 그러기에 용맹한 장수인 자신이 좌정할 입지로 김녕이 적합하다고 본 것이다. 

‘궤네기또’라는 신명은 동굴을 의미하는 ‘궤’에 태생의 의미로 쓴 ‘네기’, 그리고 신(神)을 의미하는 ‘또’가 결합된 것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는 것처럼 궤네기또가 좌정하고 있는 궤네깃당은 동굴이다. 

신동흔은 <살아있는 한국 신화>에서 궤네깃당본풀이의 궤네기또를 극찬하면서 “용왕의 딸을 아내로 맞고 용왕국을 헤집어 놓았으니 바다를 평정한 셈이고, 강남천자국에 들어가 천자의 절을 받고 오랑캐를 물리쳤으니 대륙을 평정한 셈이다. 바다와 대륙을 동시에 평정한 존재였으니 그야말로 영웅이라는 이름이 부족하지 않다“고 평가하였다.

작가 여연. 

제주와 부산에서 30여 년 국어교사로 재직하였고, 퇴직 후에는 고향 제주로 돌아와 신화 연구로 인생 2막을 펼치고 있다. 생애 첫 작품으로 2016년 <제주의 파랑새>(각 펴냄, 2016)를 출판하였고, 이 책은 문화체육관광부에서 2017년 출판산업진흥을 위해 실시한 ‘도깨비 책방’ 도서에 선정되었다. ‘제주신화연구소’의 신당 답사를 주도하면서, 답사 내용을 바탕으로 민속학자 문무병과 공저로 <신화와 함께하는 제주 당올레>(알렙 펴냄, 2017)을 출판하였는데, 이 책은 ‘세종도서’에 선정되었다. 제주신화 연구모임을 1년간 진행하고 2018년 제주신화 전반을 아우른 책 <조근조근 제주신화>(지노 펴냄, 2018)를 3권으로 출간하였고 서울과 부산, 제주에서 북콘서트를 열었다. 2019년 하반기부터 제주신화 테마길을 여는 등 제주 신화 스토리텔링 연구작업을 진행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