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업이 홀대받고 있다.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해가 갈수록 그 정도가 심하다. 정부의 농업정책은 산업적 측면과 경제 논리에만 매몰돼 있다. 정책 결정의 후순위로 밀려 난지 오래다.

이 때문에 식량주권이 위협받고 있고 식량안보가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식량 위기 파도가 해일처럼 밀려오고 있다.

참다 참다 못한 제주지역 농업인들이 들고 일어나 정부의 농업홀대 정책을 규탄했던 까닭이 여기에 있다.

지난 8일, 전국여성농민회 제주도 연합과 전국 농민회 제주도 연맹 등 농업인들이 제주도청 앞에서 제주농민대회를 열었다.

농업인들은 여기서 최근 기후위기와 ‘포스트 코로나19 시대 식량위기’에 대한 근본대책 마련을 정부 당국에 촉구했다. 농사용 차량을 이용한 시위도 벌였다.

“2018년 기준 곡물 자급률이 21.7%밖에 되지 않는 우리나라에서 코로나 19와 같은 식량위협에 직면해 있고 악화되고 있는 기후 위기에 본질적으로 대응하지 못해 국민의 안전한 먹거리 공급을 지속하지 못할 위험에 노출되고 있는 현상은 정부의 농업 홀대 때문”이라고 경고 했다.

농업인들은 “문재인정부와 더불어민주당은 3차례에 걸친 ’코로나 19 대응 추경‘에서 농업을 배제시켰고 160조원을 투입하겠다는 한국판 뉴딜에서도 농업이 배제 됐다”고 성토했다. 정부의 농업 홀대 정책에 대한 비판이었다.

일찍이 정약용(丁若鏞) 선생은 ‘농자천하지대본(農者天下之大本)’이라 했다. 목민심서(牧民心書)에서다.

이를 두고 “농업은 세상 사람들이 살아가는 가장 큰 근본”이라고 해석하는 이들이 많다.

‘먹는 것이 사람 사는 세상의 근본’이라면 당연히 먹거리를 제공하는 농업은 삶의 핵심기능 일수밖에 없다.

“농사를 지으려면 눈비와 바람과 햇살, 그리고 시간의 흐름과 선후 이치를 배우고 깨달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이처럼 하늘과 땅의 이치와 순리를 깨달아 배우고 행하여 소출을 내는 노고(勞苦)가 농사인 것이다.

선조들이 말하는 ‘농자천하지대본’은 이 같은 농업인들의 깨달음과 실천의 생활철학인 셈이다.

농업은 농경사회 이후 지금까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시공을 초월해 어느 나라에서든 핵심적 생명산업으로 자리 잡았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생명산업인 농업이 경시되고 있다. 정부의 관심도 점점 퇴색하고 있다.

인간 생존을 위한 생명의 에너지로 작용할 농업을 업신여기고 밀어내는 것은 자기모순이다.

지금 우리가 먹고 사는 풍요가 먹거리를 제공하는 농업에서 얻어지는 것인데도 그 먹거리를 발로 걷어 차버리는 어리석음을 범하고 있는 것이다.

‘개구리 효과’ 또는 ‘냄비 개구리 효과’라는 말이 있다. ‘현실 안주 증후군’이라고도 한다.

개구리는 뜨거운 물의 냄비에 들어갔을 때 바로 뛰쳐나온다. 그러나 냄비에 찬물을 넣고 서서히 데우면 개구리는 뜨거움을 감지하지 못하고 서서히 죽어가는 현상을 말하는 것이다.

변화를 감지하지 못하고 현실에만 안주하다가 개구리처럼 서서히 죽어가는 상황에 대한 교훈이다.

한국 농업의 위기도 이 같은 ‘냄비 속 개구리’ 상황이다. “식량위기에 둔감해 식량안보 위기가 닥치는데도 속수무책 상태”라는 전문가 그룹의 경고가 나오는 이유다.

지구 온난화에서 비롯된 홍수, 가뭄, 혹한, 혹서 등 예측하기 힘든 변화무쌍한 기상 이변은 국제 곡물 생산량 예측의 불확실성을 더욱 가증시키고 있다.

특히 코로나19 상황은 전 세계 식량 생산과 수급에 차질을 가져오고 있다.

이런 이유로 식량 수입국은 식량 수출국들의 수출 금지 또는 수출 제한 등으로 타격을 받을 수밖에 없다. 곡물가격 폭등으로 엄청난 식량위기를 초래하게 되는 것이다.

한국도 예외일수가 없다. 한국은 쌀을 제외한 국내 식량 소비량의 약 85%를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 식량 자급률이 OECD 상위 30개 국가 중 최하위 수준이다. 식량 안보 위기에 노출된 ‘식량 빈국’이다.

그렇기 때문에 언제 글로벌 식량 위기에 직면할지 모른다. 위기를 감지하지 못하면 다음은 죽음과 같은 혹독한 대가를 치를 수밖에 없다.

안토니오 구터흐스 유엔 사무총장은 “50년만의 최악의 식량위기가 올 수 있다고 경고하고 있다.

그런데도 한국 사람들은 음식에 관해서는 흥청 망청이다. 음식에 대한 절제나 자제력은 찾기 힘들다. 굶주림에 대한 두려움이 없다.

식량의 대부분을 수입에 의존하면서도 음식의 30%를 버리는 행태가 만연한 국가다. 음식물 쓰레기 처리비용으로 연간 25조원 상당의 경제적 가치상실을 가져오는데도 체감을 못하고 있는 나라다.

얼마나 식량위기, 식량 안보에 둔감한지를 말해주는 대목이다.

‘냄비 속 개구리’처럼 서서히 데워져 언제 죽을지 모른 위기가 속속 다가서고 있는 상황인데도 아랑곳없다.

그래서 제주지역 농업인들이 ‘기후 위기 대응, 식량주권 실현, 재해대책 마련’ 등 포스트 코로나 19 시대 식량위기에 대한 근본적 대책마련을 촉구하며 거리에 나선 것이다.

농업인들의 외침은 엄살이 아니다. 심각한 식량 위기 상황에 대한 경고음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들의 외침이 아니다. 농업인들의 요구나 경고를 정부가 심각하게 받아들이지 않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는 것이다.

세계보건기구(WHO)나 국제연합식량농업기구(FAO) 등 국제기구에서는 ‘국가의 존립을 위한 적정 수준의 식량 확보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개념’으로 ‘식량안보’를 정의하고 있다.

“모든 사람이 언제나 건강하고 활동적인 생활을 영위할 수 있도록 충분하고 안전하고 영양적인 음식에 접근 할 수 있는 경우”라는 설명이다.

이를 위해서는 식량의 지나친 대외(외국) 의존보다는 자급력 강화가 필수적이다. 국내 생산을 통한 안정적인 식량 자급률 달성이 식량 안보 문제의 제1과제이며 정답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돈으로도 곡물을 사오지 못하는 비상한 상황에 대비한 정책 전환이 필요한 것이다.

‘농업경시’의 국가 정책을 ‘농업 중시’정책으로 과감하게 그리고 속도감 있게 탈바꿈하는 일이다.

제주지역 농업인들이 요구했던 ‘농산물 가격 보장을 위한 주요 농산물 공공 수급제 도입, 농지투기방지를 위한 비 농민 소유 농지 국가매입 확대와 농지법 개정, 농업재해 보상법 제정, 농업예산 확충, 농민 수당 입법화 등의 대책 마련 촉구는 국가의 농업정책 전환에 참고해야 할 최소한의 주문인 셈이다.

이를 포함해서 식량 자급률 법제화, 곡물 수입원 다양화, 곡물 비축제도 확대, 식량위기 조기경보 시스템 구축 등 동원 가능한 모든 수단과 옵션을 국가 농업정책 테이블에 올려놔야 하는 것이다.

나라 곡간을 채울 특단의 비상한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

가정이나 음식점 등에서의 음식 낭비 최소화 캠페인, 소비자 교육 등 시민의식 개혁은 당연한 수순이다.

농업은 국가의 핵심이다. 농업이 무너지면 나라 근간이 무너진다고 했다. 그러기에 손문은 말하길 ‘농민은 국가의 주인공’이라 하지 않았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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