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신화산책]바다로 나아간 산신 궤네기또-2
상태바
[제주신화산책]바다로 나아간 산신 궤네기또-2
  • 제주투데이
  • 승인 2020.10.16 17:00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작가 여연의 ‘한라산의 신들’ ⑪아버지를 넘어선 아들
제주신화산책 연재 작가 두 친구. 여연(왼쪽)과 홍죽희(오른쪽). (사진=김일영 작가)
제주신화산책 연재 작가 두 친구. 여연(왼쪽)과 홍죽희(오른쪽). (사진=김일영 작가)

50대 동갑내기 두 친구가 제주의 신당을 찾아 함께 걷는다. 제주의 신을 찾는 순례길에 오른 셈. 그 길에서 마을을 지켜준 신들과 만나기도 하고 30년 전 20대 청년의 ‘나‘를 만나기도 한다. 1만8천의 신과 함께 해온 제주인의 삶과 지금의 나 그리고 우리의 삶은 어떻게 맞닿아 있을까. 매주 금요일 ‘제주신화산책’ 코너에서 작가 여연의 ‘한라산의 신들’과 작가 홍죽희의 ‘제주의 돌에서 신성을 만나다’를 돌아가며 싣는다. <편집자주>

궤네기또는 사냥의 습성을 버리지 못하고 어머니께 쫓겨난 아버지 소천국을 넘어섰다. 또한 사냥과 목축, 그리고 농사를 관장하는 신으로 뿌리를 내린 형님들과도 다른 인생 역정을 보여주고 있다. 부모에 의해 바다에 버려지는 것이 그 계기가 되었지만, 이 모티브는 실제 버려진다기보다는 부모의 한계를 넘어서기 위한 갈등의 다른 표현이라고 볼 수 있다. 

궤네기또는 아버지를 닮아 ‘소도 전머리, 돼지도 전머리’를 먹어치우는 엄청난 식성의 소유자다. 이 평범함을 넘어서는 식성은 다른 존재에게 부담으로 작용하니 용왕 황제국에서도 쫓겨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하지만 궤네기또는 비범함으로 자신의 한계를 넘어섰다. 

강남천자국에서 전쟁터에 나아가 머리 둘 달린 적장, 머리 셋 달린 적장의 목을 베고 오랑캐들을 흩어지게 하여 난을 평정한 것이다. 이러한 궤네기또의 활약상은 그를 신으로 모시는 마을 공동체의 자부심이 되었다. 마을 사람들은 자신들의 신에 대하여 ‘용맹한 영웅신으로 비바람을 잠재워 한 해 농사를 돌봐주고 불행한 일들이 일어나지 않도록 지켜준다’고 하면서 자랑스러워하고 있다. 

김녕 성세기 해변의 옥색바다. (사진=김일영 작가)
김녕 성세기 해변의 옥색바다. (사진=김일영 작가)

#신화 속에 담긴 세대 간의 갈등  

궤네기또의 무용담은 흥미롭고 장쾌하지만 이야기 속으로 한 걸음 더 들어가면 인간의 역사와 문화뿐만 아니라 세대 간의 갈등문제까지 짚어낼 수 있다. 그래서 신화 코드를 풀어가는 과정은 우리의 삶을 반추하는 계기가 되기도 한다. 

궤네기또는 세 살 적에 부모에 의해 버려진다. 그것도 그냥 내쳐지는 것이 아니라 죽으라고 석함에 담아놓고 마흔여덟 자물쇠를 채워 바다에 띄워버렸다. 아버지 영조에 의해 뒤주에 갇힌 채 죽어간 사도세자가 생각나는 장면이다. 그렇다고 궤네기또가 엄청난 과오를 저지른 것도 아니다. 아버지 삼각수염을 잡고 가슴을 친 것이 죄명이라면 죄명이다. 

어린 아들의 응석에 대한 부모의 대응이 너무 극단적이지 않는가. 하지만 아버지의 삼각수염을 잡고 가슴을 치는 행위는 권위에 대한 도전의 표현이다. 소천국은 아들을 석함에 담아 바다에 던져버리는 것으로 자신에 대한 도전을 허용하지 않았다. 그래서 소천국이 아들을 버리는 서사는 아들로 대표되는 새로운 세대의 도전을 용납하지 않으려는 기성세대의 결단이라 할 만하다. 

궤네기또는 기성의 세계에서 미지의 세계로 던져졌다. 미지의 세계는 새롭게 적응하고 개척해야 하는 미래 세계다. 인생역정이 시작된 것이다. 바다 속 용궁에 떨어진 궤네기또는 용왕의 딸과 혼인하는 방법으로 정착을 시도한다. 하지만 용궁은 궤네기또를 수용하기에 너무 좁은 세계였다. 그의 식성을 충족시켜 주려하다 동창고도 비어가고 서창고도 비어가 나라가 망할 지경이 된 것이다. 

또 한 번 용궁에서 내쳐진 궤네기또는 바다를 떠다니다 강남천자국에 당도했고, 난을 평정하는 공을 세움으로써 땅 한 부분 차지할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다. 하지만 궤네기또는 이를 거절하고 제주섬으로 귀향한다.

아들이 성공하여 돌아왔을 때 부모는 그 아들을 환영하고 자랑스러워했을까. 신화 속에 드러난 바와 같이 소천국과 백주또는 아들을 피해 도망가다가 고꾸라져 죽음을 맞이한다. 새로운 세대의 도전을 끝내 부정하고 받아들이지 않으려 하는 기성세대의 고집이 느껴지는 대목이다. 하지만 자식의 고난이 부모에게는 아픔이라는 것 또한 사실이니 이러한 심경을 행간에서 읽을 수 있다. 

김녕 성세기해변 근처에서 본 밭담 풍경. (사진=김일영 작가)
김녕 성세기해변 근처에서 본 밭담 풍경. (사진=김일영 작가)

백주또와 소천국의 죽음에 대하여 신화학자 신동흔은 ‘그들이 본래 살던 곳을 떠나 죽음을 맞는 것은 지난 세상이 종말을 고하고 새로운 세상이 시작됨을 알리는 상징으로 읽을 수 있다.’고 하면서 소천국과 백주또의 죽음이 우스꽝스럽게 그려지고 있는 것은 그것이 비통한 일이 아니기 때문일 것이라고 말한다(<살아있는 한국 신화>, 한겨레출판, 2015). 

#바다밭을 일구며 사는 김녕 마을과 궤네기굴

소천국의 아들이 바다로 내던져지고 용궁에 가서 공주와 혼인하고 돌아오는 모티브는 해촌마을의 형성과 관계가 깊다. 따라서 궤네기또 이야기는 수렵사회에서 농경사회로, 그리고 해촌 마을의 반농‧반어업 사회로의 이동 역사를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고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한다.(知者樂水, 仁者樂山)’는 말이 있다. 여기에 바다를 좋아하는 사람은 모험심이 강하다는 나의 생각을 덧붙이고 싶다. 거친 바다로 나아가 바다를 밭으로 일구고, 망망대해를 바라보며 어로 활동을 하는 바닷가 마을 사람들의 모험심과 상상력이 용궁과 강남천자국으로 진출하는 궤네기또 신화를 만들어낸 것이리라.

궤네기굴의 내부. (사진=김일영 작가)
궤네기굴의 내부. (사진=김일영 작가)

궤네기또가 좌정하고 있는 궤네기굴은 만장굴과 김녕굴처럼 제주 형성 초기의 화산폭발로 만들어진 용암동굴이다. 궤네기굴은 김녕리 입산봉(삿갓오름) 기슭에 위치하고 있으며 전체 길이가 200m이다. 2017년 11월 23일 한국일보 기사에 의하면, 제주도민속자연사박물관에서 1991년부터 3년간 궤네기굴을 발굴 조사 했는데, 조사결과 궤네기굴은 기원전후에 사람이 거주하던 유적으로 밝혀졌다. 입구 쪽은 물론이고 안쪽까지 동굴 전체에 유물이 분포하고 있었다고 한다.

발견된 유물과 동굴 바닥에 퇴적된 토층의 두께로 보아 이곳에서 지속적으로 제사가 이루어진 것으로 추정했다. 그래서 궤네기굴은 오랜 기간 주거지였고, 신앙 공간으로도 이용되었던 보기 드문 유적으로 문화재적 가치가 높다고 평가하고 있다. 

궤네기굴 발굴 조사에 관한 기사로 볼 때, 선사시대부터 이어온 사람들의 삶의 역사가 궤네기또 신화에 담겨 있다는 생각을 하지 않을 수 없다. 사냥을 하던 사람들이 산자락에서 내려와 해안가로 이동을 했고, 동굴을 주거지로 삼아 혈거 생활을 하면서 점차 바닷길을 개척해냈던 역사가 신화 속 서사로 구전되고 있는 것이다.

#돗제를 받는 궤네기또 

궤네기또는 엄청난 식사량을 자랑하지만 심방이 가난한 백성들의 사정을 말하자 돼지고기를 받는 것으로 양보를 함으로써 일종의 타협이 이루어진다. 그리하여 김녕 마을에서는 매년 돼지를 잡아서 통째로 올리는 제를 지내게 되었다. 돼지를 제주어로 ‘돗’이라고 하며, 돼지를 잡아 신께 올리는 제사를 ‘돗제’라고 한다. 돗제를 올린다는 것은 지역민들이 다 같이 돼지고기를 먹게 된다는 의미이기도 하니 이날은 항시 배고픈 백성들이 돼지고기로 체력을 보충하는 잔칫날이기도 하다. 

김녕의 돗제가 열릴 때에는 살아있는 돼지를 이곳으로 끌고 와 잡고 삶아서 제물을 차렸다고 한다. 몇 백 년 동안 이어져 온 문화유산이다. 그런데 바로 옆에 있는 입산봉이 공동묘지가 되면서 장례라도 있는 날에는 돗제를 올리는 것이 어려워졌다. 게다가 4.3항쟁이 일어나고 중산간 쪽으로의 출입을 금지하면서 당에 다니지 못하게 되었다. 그래서 4.3 이후로는 각 가정에서 돼지를 잡아 개별적으로 돗제를 지낸다고 한다.

동굴 위에 뿌리를 내린 신목 팽나무. 굴이 무너질 위험 때문에 입구를 막아 놓았다. (사진=김일영 작가)
동굴 위에 뿌리를 내린 신목 팽나무. 굴이 무너질 위험 때문에 입구를 막아 놓았다. (사진=김일영 작가)

#궤네깃당과 신목 팽나무

김녕 궤네깃당의 신목 팽나무는 동산 위에 거칠 것 없는 기상으로 우람하게 서 있다. 어찌나 장쾌하게 가지를 뻗고 있는지 당에 이르기도 전에 신목 팽나무에 시선을 빼앗기고 만다. 궤네기또의 모험과 기상을 떠올리게 하는 광경이다. 

안내 표지판에는 팽나무의 수령이 350년 정도라고 하고 있는데, 표지판을 세운 이후로도 세월이 많이 흘렀으니 400여 년 자리를 지키고 있는 셈이다. 더욱이 놀라운 것은 이 팽나무가 흙 속에 뿌리를 내린 것이 아니라 바위 동굴 위를 덮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동굴 입구에는 어지간한 나무의 몸통만큼이나 굵은 뿌리가 꿈틀거리며 존재를 드러내고 있는데 언뜻 보기에는 나무둥치인지 뿌리인지 구분이 안 될 정도이다. 

궤네깃당은 선사시대 사람들이 오랜 기간 거주했다는 주거공간이지만 지금은 사람들이 들어가지 못하게 울타리를 쳐놓았다. 굴 앞으로 내려가 안을 들여다보니 제법 공간이 넓어 적지 않은 사람들이 모여 살기에 안성맞춤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혈거 생활을 하는 설촌 조상의 삶을 상상할 수 있는 공간이다. 

궤네기굴은 가운데 빈 공간을 두고 왼쪽과 오른쪽에 굴 입구가 있는 모양새이다. 그러니까 용암이 땅 속에서 흘러오다가 신목이 있는 지점에서 잠시 탁 트인 하늘을 마주했고, 다시 땅 속으로 흘러 들어간 형세라고나 할까. 어쩌면 가운데 탁 트인 공간은 굴 천장이 허물어진 것일 수도 있으리라. 이곳에서 생활하던 사람들에게는 이 탁 트인 공간이 앞마당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생각해보지만 선사시대 지형이 어떠했는지 알 수 없으니 이 또한 상상일 뿐이다.

팽나무 아래서 바라보는 김녕 마을과 바다. (사진=김일영 작가)
팽나무 아래서 바라보는 김녕 마을과 바다. (사진=김일영 작가)

선사시대 주거 공간이 오랫동안 신을 모시고 제를 올리는 제장이 되었다. 하지만 막아놓은 철망이 말해주듯 이제는 더 이상 이곳에서 제사를 올리는 풍경을 볼 수 없다. 탁 트인 공간에 신목 팽나무가 우람하게 서 있어 사람들의 시선을 끌지만 밭으로 둘러싸여 있어 한창 밭작물이 자랄 때는 드나드는 것도 불편하다. 어느 때는 보리가 한창 자라고 있었고 또 어느 때는 유채나물이 무릎 높이까지 올라와 부득이 농작물을 밟으며 들어가야 했다.     

2020년 새해에 다시 궤네기당을 찾게 되었을 때 팽나무 아래 서서 먼저 바다 쪽으로 시선을 던졌다. 그리고 드넓게 펼쳐지는 바다와 마주할 수 있었다. 그간 나는 궤네기당에 올 때마다 신목 팽나무에 사로잡혀 저 앞에 펼쳐진 바다에 눈길을 줄 생각을 못했었다. 그런데 나의 소개로 이곳에 왔던 후배가 팽나무 아래서 멀리 바다를 바라보며 전율을 했다는 소감을 전했다. 그래서 이번엔 작정하고 바다 쪽으로 눈길을 돌렸고, 오랜만에 먼 바다를 바라보며 가슴이 설레었다.

이 동굴에 살던 설촌 조상들도 저 드넓은 바다를 바라보았으리라. 그 당시에는 시선을 가리는 건물도 없었을 테니 지금보다 훨씬 탁 트인 전망이었음이 분명하다. 그래서 한라산 자락에서 사냥을 하고 농사를 짓던 조상들과는 달리 저 바다로 나아가고 싶은 포부를 갖게 되지 않았을까? 마침내 배를 만들고 항해가 시작되었다. 신화 속에 표현되어 있듯이 ‘물 위로 삼 년 물 아래로 삼 년 파도 따라 홍당망당’ 망망대해로 나아갔던 것이다. 

여연. (사진=작가 여연 제공)

작가 여연. 

제주와 부산에서 30여 년 국어교사로 재직하였고, 퇴직 후에는 고향 제주로 돌아와 신화 연구로 인생 2막을 펼치고 있다. 생애 첫 작품으로 2016년 <제주의 파랑새>(각 펴냄, 2016)를 출판하였고, 이 책은 문화체육관광부에서 2017년 출판산업진흥을 위해 실시한 ‘도깨비 책방’ 도서에 선정되었다. ‘제주신화연구소’의 신당 답사를 주도하면서, 답사 내용을 바탕으로 민속학자 문무병과 공저로 <신화와 함께하는 제주 당올레>(알렙 펴냄, 2017)을 출판하였는데, 이 책은 ‘세종도서’에 선정되었다. 제주신화 연구모임을 1년간 진행하고 2018년 제주신화 전반을 아우른 책 <조근조근 제주신화>(지노 펴냄, 2018)를 3권으로 출간하였고 서울과 부산, 제주에서 북콘서트를 열었다. 2019년 하반기부터 제주신화 테마길을 여는 등 제주 신화 스토리텔링 연구작업을 진행하고 있다.

사진작가 김일영.

1969년 서울에서 태어나 중학교 2학년 때 집에 있던 카메라를 시작으로 사진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여행사 직원으로 근무하면서 전 세계를 여행했다. 2012년 제주로 이주해 ‘여행과치유’ 회원으로 활동을 시작, 회원들과 제주도 중산간마을을 답사하고 기록한 <제주시 중산간마을>(공저, 류가헌 펴냄, 2018)과 <제주의 성숲 당올레111>(공저, 황금알 펴냄, 2020)을 펴냈다. 또 제주 중산간마을 사진전과 농협아동후원 전시를 이어가고 있다. 현재 ㈜탐나는여행 대표이며 ‘여행과치유’ ‘제주신화연구소’ 회원으로 제주의 중산간마을과 신당을 찾고 기록하면서 제주의 삶을 느끼고 이해하려는 입도 8년차 제주도민이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0 / 40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기사댓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