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덕남 칼럼] 말리지 못하는 ‘테스형!’ 신드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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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덕남 칼럼] 말리지 못하는 ‘테스형!’ 신드롬
  • 김덕남 주필
  • 승인 2020.10.18 20:56
  • 댓글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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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감사장에까지 울려 퍼진 ‘나훈아 노래’ 열풍

“아! 테스형, 세상이 왜 이래, 왜 이렇게 힘들어”.

지난 16일, 정부 세종청사에서 국토교통부에 대한 국정감사가 열렸었다. 이 자리에서 최근 뜨거운 바람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가수 나훈아의 신곡 ‘테스형!’ 한 소절이 울려 퍼졌다.

국회 송석준의원(국민의힘)이 김현미 국토부 장관을 향해 “왜 국민들이 이렇게 힘들어 하는 시대가 됐느냐”면서 노래 중 한 소절을 재생해 틀었던 것이다.

부동산 정책 등 정부 정책의 실패와 부작용으로 인해 지치고 고달픈 국민의 처지를 말해주는 정치적 퍼포먼스였다.

나훈아의 ‘테스형!’은 이렇게 국정감사장에까지 등장할 정도로 전국을 흔들고 있다. 그의 절창은 가히 폭발적 인기다.

회오리바람처럼 음원 사이트를 휘젓고 있다. 음원 사이트 멜론은 “9월27일부터 10월5일까지 주간 인기 베스트에서 ‘테스형!’이 1위를 차지했다”고 밝힌바 있다.

추석 다음날부터 일주일간 ‘테스형!’ 스트리밍이 그 이전주보다 3733%나 폭발적으로 증가했다는 통계도 있다.

스트리밍 연령대도 20대 37%, 30대 34%로 2030대가 주류를 이뤘다.

어린이들의 우상인 EBS 인기 캐릭터 ‘펭수’도 유튜브 채널 ‘자이언트 펭 TV’를 통해 ‘테스형!’을 부르는 영상을 올리며 나훈아 열풍에 동참했다.

그야말로 남녀노소 할 것 없이 ‘테스형!’을 보고 듣고 부르며 마음을 달래고 있는 것이다.

‘테스형!’ 가사 중 “세상이 왜 이래”는 세상의 아픔과 절망적 세월을 관통하는 시대의 유행어가 되고 있다.

“정치가 왜 이래”, “경제가 왜 이래”, “코로나가 왜 이래”, “ㅇㅇㅇ이 왜 이래” 등 등 정치 사회적 불신과 불평등과 불확실성을 꼬집는 유행어로 자리 잡고 있다.

초등학생들 사이에서도 ‘엄마가, 아빠가, 형이, 누나가, 친구가, 누구누구가’ 등 “왜 이래” 앞에 대상을 넣어 불만과 항의를 표출하는 언어로 사용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추석연휴 첫날이었던 지난 달 30일 밤, KBS 2TV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 콘서트 이후 계속되고 있다.

일흔 네 살 나이를 잊게 했던 2시간40분간의 열정적 무대, 여전히 폭발적인 가창력과 카리스마적 무대 매너는 시청자를 압도하기에 충분 했다.

실물 크기의 모형 배와 기차, 컴퓨터그래픽(CG)를 이용한 바다 속 유영 등 기발했던 아이디어와 화려하고 웅장했던 무대 구성과 파워풀 했던 진행이 돋보였던 콘서트였다.

여기에다 ‘노 개런티’였다. (일설에는 5억 원 이상의 출연료를 제안했지만 정중히 사양했다는 말도 있다). 나훈아의 통 큰 추석 선물이었다.

나훈아의 무대는 중장년·노년 층 뿐만 아니라 2030대의 마음도 블랙홀처럼 빨아 들였다.

포털사이트는 관련 검색어로 도배 되었다.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와 SNS 등에서는 ‘테스형!’ 신드롬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테스형!은 나훈아가 지난 8월 발표한 새 앨범 ’아홉 이야기‘의 수록 곡중 하나다. 고대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 이름에서 제목을 따왔다.

대중가요에 철학적 사유의 옷을 입힌 것은 기발하고 깜찍했다. 무릎을 치지 않을 수 없었다. 일반의 상상을 초월한 발상의 전환으로 보여서 그렇다.

그래서 더욱 신기하고 그의 철학적 재치가 더욱 재미있고 더욱 노래 맛을 당기고 있다. ‘테스형!’ 신드롬을 부르는 이유이기도 하다.

‘철학자’는 ‘지혜를 사랑하는 사람’이라는 의미의 고대 희랍어에서 유례 됐다고 한다. ‘인간의 존재론적 질문을 깨우치고 일깨우는 사람’이라는 설명도 있다.

세계관, 인생관, 가치관등에 대한 관조(觀照)와 사유(思惟)를 녹이는 지혜의 담금질이 철학이다.

소크라테스는 지혜를 사랑하는 마음으로 정의·절제·용기·경건 등을 가르치며 젊은이들에게 큰 감화를 끼쳤던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렇다면 나훈아는 왜 ‘테스형!’을 통해 애타게 절규하듯 ‘소크라테스 형’을 불렀던 것이었을까.

아마도(개인적 상상력을 동원하자면) 내일이 두렵고, 부질없는 사랑이야기, 아프고 힘든 세상사, 어쩔 수 없는 세월의 무게를 가눌 수 없어 ‘테스형!’에게 답을 얻으려 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구도자의 심정으로 소크라테스 형에게 아픈 세상의 이치를 일깨워 달라는 하소연 일 수도 있다.

그래서 “네 자신을 알라”는 ‘테스형!’의 가르침에서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가수로서 나훈아의 철학적 사유는 무겁지가 않다. 쉽고 친근하다. 생각은 투명하고 영혼은 자유롭다.

그래서 그의 노래는 일상에서 느껴지는 삶의 애환을 특유의 생활언어로 이해하기 쉽고 재미있게 엮어낸다는 이야기를 듣고 있다.

그는 스스로를 ‘유행(流行)가수’라 했다. ‘흐를 유(流), 다닐 행(行)’, 물처럼 흘러 다니며 노래를 하고 대중의 삶속에 녹아내리는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돈과 명예보다는 자유로운 영혼을 가진 ‘유행가 가수 나훈아’, 그의 가수 인생이 많은 이들에게 큰 울림으로 다가서는 이유가 여기에 숨어있다.

‘나훈아의 가수 인생'을 듣고 보고 느끼면서 문득 미국의 대중가수 밥 딜런(79)이 떠올랐다.

밥 딜런은 2016년에 노벨문학상을 받았다. 노벨문학상을 받은 최초의 대중가수다.

당시 노벨위원회는 “미국의 노래 전통 속에서 새로운 시적 표현을 창조 해 냈다”고 노벨문학상 선정 이유를 밝혔었다.

그때 사라다니우스 스웨덴 한림원 사무총장은 밥 딜런의 노래를 ‘귀를 위한 시’라고 표현 한 바 있다.

스웨덴 한림원의 파격적 노벨문학상 선정에 대한 시시비비가 있었지만 노래가 ‘귀를 위한 시’라면 가요의 작곡 작사도 글쓰기 영역에 속할 것임에 틀림없다.

그래서 발칙한 상상력으로 말하자면 대한민국이 열광하는 대표적 대중가수 나훈아나 세계를 주름잡는 한류스타 방탄소년단(BTS)이 노벨문학상을 받지 못하리라는 법은 없다.

그들의 노벨문학상 수상은 ‘꿈속의 꿈’이라 해도 상상만 해도 즐겁고 신명나는 일이다.

많은 이들의 귀를 열게 하여 마음에 희로애락의 꽃을 피우는 그들의 노래는 ‘귀를 위한 아름다운 시’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나훈아의 ‘테스형! 신드롬’은 사람들의 마음에 오래도록 긴 여운으로 이어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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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 대니얼 2020-11-02 10:03:28
"Know thyself" 너, 자신의 무지를 깨달으라는 말씀은 우리가 언제 어디서나 사회생활을 할 때에
필요한 자세다. 그렇게 할 때에 평화가 유지되니 말이다. 자신을 낮추고 겸손해 하면 모든 일이 원만하게 풀려 나갈 것이다. 오만 불손하게 언행을 취하면 소통이나 협치가 제대로 이루어질 수 있을가...?
오늘날 정치에도 예술적 미의 발견과 창작의 고민이 요청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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