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신화산책]아기와 산모를 돌보는 ‘인간’ 삼승할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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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신화산책]아기와 산모를 돌보는 ‘인간’ 삼승할망
  • 제주투데이
  • 승인 2020.10.30 1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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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죽희의 ‘제주의 돌에서 신성을 만나다’⑪한양할망당과 존나니ᄆᆞ르 일뤠당
제주신화산책 동갑내기 친구 작가 홍죽희와 여연. (사진=김일영 작가)
제주신화산책 동갑내기 친구 작가 홍죽희와 여연. (사진=김일영 작가)

50대 동갑내기 두 친구가 제주의 신당을 찾아 함께 걷는다. 제주의 신을 찾는 순례길에 오른 셈. 그 길에서 마을을 지켜준 신들과 만나기도 하고 30년 전 20대 청년의 ‘나‘를 만나기도 한다. 1만8천의 신과 함께 해온 제주인의 삶과 지금의 나 그리고 우리의 삶은 어떻게 맞닿아 있을까. 매주 금요일 ‘제주신화산책’ 코너에서 작가 여연의 ‘한라산의 신들’과 작가 홍죽희의 ‘제주의 돌에서 신성을 만나다’를 돌아가며 싣는다. <편집자주>

특이하게도 함덕에는 신체(신의 몸)가 무덤인 당이 있다. ‘한양할망당’과 ‘존나니ᄆᆞ르 일뤠당’이 그것인데 무덤이 신체인 당은 오직 이곳밖에 없다고 한다. 두 곳 모두 아기의 넋을 드리는 무덤으로 ‘넋산’이라 하여 마치 당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제주 신화에서 아기를 점지하거나 출산과 양육을 담당하고 있는 제주의 신은 삼승할망(삼신할머니의 제주어;옮긴이)인데, 여기에는 한때 ‘인간 삼승할망’로 여겨졌던 사람이 묻혀 있다. 살아생전에 삼승할망으로 남다른 능력을 보였는데 죽은 이후 무덤 속에서도, 여전히 신통한 영험을 가지고 있다는 믿음으로 사람들이 찾아온다. 

삼승할망의 풍채처럼 넉넉해 보이는 한양할망 무덤가에는 목백일홍과 굴거리나무가 보인다. (사진=김일영 작가)
삼승할망의 풍채처럼 넉넉해 보이는 한양할망 무덤가에는 목백일홍과 굴거리나무가 보인다. (사진=김일영 작가)

내가 어렸을 적에도 심하게 놀라는 일이 있으면, 어머니 손에 이끌려 소문난 인간 ‘넋할망’을 찾아가 넋을 들인 적이 있었다. 내 정수리 위에 삼승할망이 손을 올려놓거나 등을 쓸어주면서 “우리 설운 애기, 오마, 넋 들여줍서, 코오오!” 주문을 외거나 따뜻한 입김을 불어 넣어주면 놀랍게도 씻은 듯이 낫곤 했다. 여기에 묻힌 인간 삼승할망은 오래전에 유명을 달리했지만 죽어서도 영험하다는 믿음으로 이 무덤에 와서 기원하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인간 삼승할망, 한양할망당

한양할망당은 조천읍 함덕리 제주장례식장 남쪽 근처의 밭에 있다. 개인주택 담장을 사이에 두고 바로 옆에 위치해 있는데, ‘한양할머님’ 무덤을 감싸 산담으로 주변이 에둘러 있었다. 산담의 양쪽에는 목백일홍이 나란히 심어져 여름철 백일동안 진홍 빛깔로 가득할 풍경을 생각하니 마음이 흐뭇했다. 지금은 굴거리나무가 진초록 빛깔을 피워내며 이 당의 운치를 더해 주고 있었다. 

한양할망 무덤. (사진=김일영 작가)
한양할망 무덤. (사진=김일영 작가)

무덤 앞에는 ‘한양할머님’이라고 새긴 넓고 큼직한 대리석 제단이 놓여 있다. 제단 앞에는 작은 궤가 있는데 세 개의 구멍을 돌로 막아놓은 상태였고 한쪽 면에는 ‘손(孫)한순섭 세움’이라는 작은 글씨가 새겨져 있다. 답사 사진을 찍던 작가 말대로 할망 무덤의 풍채가 넉넉해 보였다. 무덤은 단정하게 정돈되었고 주변을 깨끗하게 손질해 놓은 품새가 자손들의 지극한 정성을 엿볼 수 있었다. 살아생전 한양할망의 따뜻하고 넉넉한 모습을 보는 것 같았다. 

한양할망은 아기를 넋들여 주기도 했지만, 동시에 마을에서 산파의 역할을 했다고 한다. 산부인과가 없던 시절에는 아이를 낳는 일이 생사를 오가는 무척 힘든 일이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통을 겪고 있는 산모의 배에 한양 할망의 손길이 닿으면 여지없이 효험이 나타났다는 이야기를 실제로 들은 적이 있다. 

#귤꽃 향기 가득한 존나니ᄆᆞ르 일뤠당

존나니ᄆᆞ르 일뤠당은 한양할망당에서 남쪽으로 5백 미터쯤 떨어져 있다. 당으로 가는 길에 낮은 돌담 넘어 누렇게 익어가는 보리밭을 만났다. 보리밭 풍경에 정신없이 눈길을 주고 있을 때 어디선가 몰려오는 진한 꽃내음이 내 코를 찔렀다. 존나니ᄆᆞ르 동산에 피어나는 귤꽃 향기였다. 돌담으로 이어지는 당 올레길 주변은 온통 귤나무로 가득했다. 귤나무에 알알이 박혀 있는 하얗고 어린 꽃향기를 따라 이끌리는 듯 올레길을 걸어갔다.

귤꽃 향기로 가득한 존나니ᄆᆞ르 언덕길(왼쪽)과 올망졸망 박혀 있는 하얗고 어린 귤꽃(오른쪽). (사진=김일영 작가)
귤꽃 향기로 가득한 존나니ᄆᆞ르 언덕길(왼쪽)과 올망졸망 박혀 있는 하얗고 어린 귤꽃(오른쪽). (사진=김일영 작가)

당 입구에 함덕리 문화재 지킴이가 세운 표지판이 보인다. 이곳이 당의 입구임을 알려 주는 듯 거대한 목백일홍의 굵은 가지들이 서로 엉킨 채 뻗고 있어 신령스러운 분위기를 물씬 풍기고 있다. 

주변의 울창한 나무 때문에 몸을 낮추어 당 안으로 조심스레 들어가는데 세월의 흔적이 묻어 있는 돌담이 당 안을 에워싸고 있었다. 이 당에는 ‘고씨할망’을 모시는 무덤과 비석이 있다. 함덕리 삼승할망이었던 고씨할머니 무덤 앞에 제단을 따로 마련하여 신당으로 삼고 있었다. 그 무덤 뒤에 자리 잡은 두 개의 아기 무덤은 보는 이로 하여금 가슴을 시리게 했는데 어떤 연유를 간직하고 이곳에 있는지 무척 궁금했다. 오른쪽 구석에도 돌무더기로 된 아기 무덤 하나가 더 있었다. 

#고씨할망 옆에 누운 어린 넋

존나니ᄆᆞ르 일뤠당에 모신 고씨할망은 살아생전 손덕이 있어 어루만지기만 해도 효험이 나타나 어딘가 남달랐던 분이라고 명성이 자자했다. 그래서일까, 고씨할망과 함께 누워있는 아기 무덤들을 보며 잠깐 생각에 잠겨 본다.

함덕리 삼승할망이었던 고씨할머니 무덤. 뒤편으로 구슬픈 애기무덤들이 있다. (사진=김일영 작가)
함덕리 삼승할망이었던 고씨할머니 무덤. 뒤편으로 구슬픈 애기무덤들이 있다. (사진=김일영 작가)

이승에 와서 꽃 한 번 피우지 못하고 가없는 저승길을 홀로 떠난 아기가 무척 안타까웠을 것이다. 그래서 할머니의 넉넉한 품으로 어린 넋들을 품어달라고 손덕 좋은 할머니 곁으로 보낸 게 아닐까? 

무덤 옆에는 작은 당집이 있었는데 그 안에는 최근까지 사람들이 당을 찾은 흔적으로 소주병, 타다 남은 양초 등이 남아 있었다. 당신인 고씨할머니가 어떤 병이든 낫게 해 주는 능력이 전해졌고, 죽은 후에도 그 능력에 의지하고자 많은 사람들이 이곳을 찾는다고 하였다. 지금도 지역주민은 물론 해외에서도 가끔 찾아온다고 하니 할머니의 신통한 능력이 매우 뛰어났음을 알 수 있었다.

어린 넋을 넉넉한 품으로 돌봐주고 있는 고씨할망을 모신 존나니ᄆᆞ르 일뤠당. 뒤편으로 작은 당집이 보인다. (사진=김일영 작가)
어린 넋을 넉넉한 품으로 돌봐주고 있는 고씨할망을 모신 존나니ᄆᆞ르 일뤠당. 뒤편으로 작은 당집이 보인다. (사진=김일영 작가)

존나니ᄆᆞ르 일뤠당 주변은 귤 농사를 짓는 밭들이 대부분인데 과수밭 사이에 꽤 많은 무덤들이 눈에 띠었다. 주변을 둘러보니 볕도 잘 들고 사방이 아늑하게 느껴진다. 혹시 이곳이 지관이 찾아낸 풍수의 명당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잠시 해보았다. 
 
두 넋산은 당과 같은 역할을 하기에 아기의 산육을 기원하는 일뤠당과 유사한 경우라 할 수 있다. 제일이 따로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좋은 날을 택해 다니기도 하지만 경우에 따라 3일, 7일, 13일, 17일을 택하여 다닌다고 한다.

처음에는 단순한 무덤이었지만 시간이 점점 흐르면서 마을 사람들에 의해 넋산으로, 아기의 출산과 양육을 기원하는 당으로 그 역할이 변모해 가는 것이 문명화된 사회에서도 여전히 가능한 일임을 깨닫는 순간이었다. 

하얀 귤꽃으로 덮인 당 올레길을 걷고 있다. (사진=김일영 작가)
하얀 귤꽃으로 덮인 당 올레길을 걷고 있다. (사진=김일영 작가)

현재에도 우리 주변에는 마음의 병을 치유해 주는 ‘인간’ 삼승할망이 존재하고 있다. 사실 나도 몇 년 전에 남편과 함께 서귀포에 있는 ‘인간’ 삼승할망을 찾아가 비념을 한 적이 있었다. 사람들은 그녀를 ‘삼성여고할망’이라 부른다. 집안에 답답한 일이나 자식에 관한 고민이 생기면 해결의 방도를 알려 준다는 꽤 소문이 난 곳이다. 나중에 알고 봤더니 내 주변의 친구들도 이미 한 번씩은 다녀간 경험이 있었다. 

이 문명화된 현대사회에 미개한 행위처럼 보일지 모르지만 영험한 존재를 찾아다니는 행위는 인간의 불안이 그치지 않는 한 전혀 터무니없는 일은 아닐 것이다. 자신이 믿는 종교와 상관없이 일상에서 막힌 구석을 풀 수 있는 탈출구를 찾거나 지푸라기라도 잡고자 하는 욕망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너무도 인간다운 일이 아닌가.

홍죽희.
홍죽희.

홍죽희.

제주에서 중학교 영어교사로 30여 년을 재직하다 2020년 2월 명예퇴직했다. 대학 시절 마당극 운동단체인 극단<수눌음>에 가입, 외지 자본에 의한 제주의 토지 잠식을 다룬 ‘땅풀이’와 1932년 제주에서 일어난 항일 해녀 투쟁을 다룬 ‘ᄌᆞᆷ녀풀이’ 등에 출연하면서 제주의 역사와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육지와는 달리 제주의 마당극은 신화를 바탕으로 굿에 의해 전개되는 특징이 있어 자연스럽게 제주의 신화를 눈여겨보게 되었고 지금도 틈틈이 신당 기행을 다니고 있다. 독서모임<아랑ᄒᆞ라>와 아코디언 모임<바숨>의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인문적 소양과 예술적 감성을 배우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사진작가 김일영.

1969년 서울에서 태어나 중학교 2학년 때 집에 있던 카메라를 시작으로 사진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여행사 직원으로 근무하면서 전 세계를 여행했다. 2012년 제주로 이주해 ‘여행과치유’ 회원으로 활동을 시작, 회원들과 제주도 중산간마을을 답사하고 기록한 <제주시 중산간마을>(공저, 류가헌 펴냄, 2018)과 <제주의 성숲 당올레111>(공저, 황금알 펴냄, 2020)을 펴냈다. 또 제주 중산간마을 사진전과 농협아동후원 전시를 이어가고 있다. 현재 ㈜탐나는여행 대표이며 ‘여행과치유’ ‘제주신화연구소’ 회원으로 제주의 중산간마을과 신당을 찾고 기록하면서 제주의 삶을 느끼고 이해하려는 입도 8년차 제주도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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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성돈 2020-11-02 14:48:06
정난주 마리아도 한양할망으로 칭송받아 나중에 성녀의 반열에 올랐는데 한양할머님도 비슷한 이야기가 있지않을까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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