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9월 12일 서귀포시 법환포구 인근 잔디밭에서 인디밴드 '스테이플러'가 공연을 하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지난 9월 12일 서귀포시 법환포구 인근에서 인디밴드 '스테이플러'가 공연을 하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처음엔 제주 하늘을 닮은 청량한 사운드에 끌렸다. 그다음엔 섬세하고 여린 가사에 혹했다. 때론 수줍게 마음을 고백하는 연인이, 때론 이기심으로 가득한 어른들의 세상에 반항하는 아이가, 때론 도저히 일어설 용기가 나지 않을 때 손을 건네는 친구가, 때론 막막한 앞날을 고민하는 내가 담겨있다. 

유튜브에선 ‘커버곡(기존의 유명한 곡을 다시 부르거나 연주한 곡)’이, 스트리밍 음반 시장에선 대형 소속사 아이돌 뮤지션이나 유명 연예인이 모여 만든 프로젝트 그룹 등이 낸 노래가 주류를 이룬다. 이 가운데 자신들이 직접 만든 노래로만 무대를 채우는 제주지역 뮤지션이 있다. 공연을 찾아오는 팬들을 볼 때면 지금도 신기하고 설렌다는 ‘스테이플러(STAYPULLER)’는 5년 차 인디밴드다. 

김신익(리더·기타·보컬)과 유현상(기타), 강영철(드럼), 이승민(베이스)은 저마다 어떤 이유로 밴드 음악을 하는 걸까. 직접 만나 음악에 대한 고민과 기대를 들어봤다. (김신익-/유현상-/강영철-/이승민-)

인디밴드 '스테이플러'가 제주시 도두동 한 연습실에서 합주를 하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인디밴드 '스테이플러'가 제주시 도두동 한 연습실에서 합주를 하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밴드에 합류한 계기는.

(익)싱어송라이터로 활동하다가 직접 만든 곡으로 밴드 음악을 하고 싶어 그룹을 만들었다. 

(상)지난 2016년 겨울 신익형이 스테이플러를 만들 때부터 함께했다. 스무 살 이후 이렇게 오랫동안 밴드 활동을 하는 건 처음이다. 

(철)지난해 3월에 들어왔다. 신익형에게 드럼 레슨을 배우던 제자였다. 

(민)학교를 졸업하고 지난 2018년 4월부터 밴드에 합류했다. 친구로부터 여기서 베이스를 모집한다는 소식을 듣고 오게 됐다. 제주지역 밴드 중에선 활발하게 공연을 다니는 팀이 드문데 스테이플러는 제대로 모양새를 갖추고 공연할 수 있는 팀이라서 관심을 가졌다.  

인디밴드 '스테이플러' 리더이자 보컬 김신익. (사진=조수진 기자)
인디밴드 '스테이플러' 리더이자 보컬 김신익. (사진=조수진 기자)

-요즘 커버곡을 공연하는 밴드가 큰 인기를 얻고 있다. 자작곡을 고집하는 이유는.

(상)자기 곡이 있어야 팀이 꾸준하게 유지가 된다. 보통 뮤지션들은 자기 음악을 하려고 한다. 국악이나 클래식 같은 경우 기존의 곡을 자기만의 해석을 통해 연주하지만 대중 음악의 경우 나만의 음악을 하는 게 인정받는 분야라고 생각한다. 아마 대부분이 기존의 유명한 곡을 더 잘 연주하는 공연보다 나만의 음악으로 연주하는 공연을 더 하고 싶어할 것이다. 

(익)악보를 보고 단순히 연주하는 건 누구나 할 수 있다. 하지만 예술은 기술과 창작이 모두 필요하다. 음악인이라면 창작 욕구가 더 강할 수밖에 없다. 커버곡으로만 공연을 채운다면 그 공연은 내 것이 아닌 느낌이다. 잘해봤자 본전 아닐까. 진정성도 떨어지게 된다. '오리지널리티'는 간절한 마음에서 나오기 때문이다. 

(철)어떤 좋은 물건이 이미 나와있다고 하더라도 그 재료를 사서 직접 만들어 자신만의 물건을 만드는 사람도 있지 않나. 장인 정신과 같다. 커버 연주를 하면서 당장엔 사람들로부터 큰 공감을 끌어낼 수도 있겠지만 우리가 추구하는 무언가를 잘 전달하기 위해선 우리만의 음악이 필요하다. 

(민)관객의 입장에서 봤을 때 커버곡을 들으면 원곡을 떠올릴 수밖에 없다. 결국 남의 음악을 홍보해주는 것 아닌가. 

인디밴드 '스테이플러'의 기타 유현상. (사진=조수진 기자)
인디밴드 '스테이플러'의 기타 유현상. (사진=조수진 기자)

-라이브 공연을 위주로 활동하고 있다. 공연은 어떤 의미인가.

(익)밴드 멤버들끼리 섞이면서 만들어내는 최종 결과물이다. 처음에 작사 작곡한 노래가 나오면 밴드가 함께 만나 합주를 한다. 답을 정하지 않고 각자의 생각을 나누다보면 노래가 조금씩 바뀌어간다. 그리고 공연에 이르기까지 모든 순간이 노래를 완성시키는 과정이다. 

(민)개인 연주자가 가진 손가락은 열 개이고 손은 두 개, 발은 두 개뿐이다. 혼자 모든 연주를 할 수 없다. 그래서 밴드에서 합이 중요하다. 가끔 음원을 틀어놓는 공연도 있지만 공연 때마다 달라지는 라이브의 묘미가 없다. 

(상)공연에선 피아노를 연주하는 사람과 힙합을 하는 사람도 함께 할 수 있다. 드럼과 베이스, 일렉 기타가 함께 만들어내는 소리가, 조화가 좋다. 

(철)합을 맞추는 게 재밌다. 또 내가 좋아하는 걸 좋아하는 사람과 나누는 순간이 좋다. 행복을 함께 나누는 것 아닌가. 합주나 공연을 하면서 내 삶이 풍부해졌다. 내 역할을 잘 해냈을 때의 성취감이 있고 삶에 대한 활력이 생긴다. 

인디밴드 '스테이플러'의 드럼 강영철. (사진=조수진 기자)
인디밴드 '스테이플러'의 드럼 강영철. (사진=조수진 기자)

-가장 기억에 남는 공연은.

(철)지난 7월에 식당 근처에서 공연을 했는데 리허설 할 때 술 취한 아저씨가 시끄럽다고 난동을 부렸다. 그래서 의기소침해졌었는데 그날따라 관객들의 호응이 좋고 교감이 잘 돼서 오히려 가장 즐거웠던 공연으로 기억에 남는다. 

(민)지난 2018년 서울 홍대 상상마당에서 했던 공연. 다른 지역에서 처음으로 했던 공연이었고 관객들의 호응이 좋았다. 

(상)지난 2018년에 대만 최대 음악 페스티벌인 ‘스프링 스크림’의 참가 그룹으로 선정돼 공연을 갔었다. 비바람이 몰아쳐서 힘들었지만 다른 해외 팀이 공연하는 것도 보고 큰 무대에서 공연했던 게 기억에 남는다. 

(익)지난 2017년 4월 유수암에서 열었던 쇼케이스 공연. 산 속에서 했는데 우리를 축하해주러 어렵게 찾아와주신 분들께 너무 감사했다. 사실 공연하는 매순간이 다 좋다. 사람들 앞에서 노래하는 게 아직도 신기하다. 팬이 조금씩 늘어나는 게 신기하고 감사하다. 

인디밴드 '스테이플러'의 베이스 이승민. (사진=조수진 기자)
인디밴드 '스테이플러'의 베이스 이승민. (사진=조수진 기자)

-요즘 듣는 음악은.

(민)프린스.

(상)최예근과 ‘그리움만 쌓이네’ 원곡을 부른 여진. 

(철)드러머 임용훈.

(익)사람들이 잘 안 듣는 음악을 찾아듣는다. 

-앞으로의 기대.

(민)계속 발전하는 뮤지션이 되고 싶다. 해왔던 걸 계속 반복해서 보여주는 자기복제를 지양한다. 시대에 따라 달라지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 

(상)스테이플러가 개성 있고 기술도 갖춘 견고한 팀으로 오래오래 갔으면 한다. 

(철)다른 밴드들이 부러워하는 팀이 됐으면 한다. (웃음) 인기 많고 지금처럼 화목하게 지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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