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 노형동 충혼묘지에 위치한 박진경 대령 추도비. (사진=비짓제주 홈페이지)
제주시 노형동 충혼묘지에 위치한 박진경 대령 추도비. (사진=비짓제주 홈페이지)

제주4·3 당시 “도민 30만을 희생시켜도 무방하다”며 무차별적인 학살을 지시한 박진경 대령 추도비가 처리하기 곤란한 상황인 것으로 알려졌다. 

9일 제주특별자치도 보훈청에 따르면 제주시 노형동 충혼묘지에 있는 박진경 추도비를 지난해 11월 한라산 관음사 육군 특수전사령부 내로 옮길 예정이었으나 무산됐다(☞관련기사 제주4‧3 양민학살 ‘논란' 박진경 대령 비석, 군부대로 이전?). 국가보훈처 측에서 “논란이 되는 인물을 받을 수 없다”는 이유로 거절했기 때문이다. 

박 대령은 지난 1948년 제11연대장에 취임해 취임사에서 “우리나라 독립을 방해하는 제주도 폭동사건을 진압하기 위해서는 제주도민 30만을 희생시키더라도 무방하다”고 밝히며 무차별적인 학살을 예고하기도 했다. 

당시 도민 수가 30만명에 이르렀으니 모든 도민을 희생시키는 한이 있어도 강경하게 진압하겠다는 의지를 표명한 셈이다. 실제로 박 대령은 양민과 무장대의 구별이 힘들다는 이유로 40여 일 만에 도민 3000여명을 막무가내로 잡아들이는 등 4·3 당시 수많은 인명 피해를 가져온 책임자 중 한 명으로 꼽힌다. 

그는 같은 해 6월 대령 승진 축하 행사가 열린 날 강경 진압 지시에 반대했던 부하 문상길 중위에게 암살당했다. 이 같은 양민학살 지시 논란에도 지난 1952년 11월 제주도 내 기관장 등은 “토벌 작전을 성공적으로 이끌었다”며 관덕정 경찰국 청사 내 박 대령의 추도비를 세우기에 이른다. 

1952년 10월 24일자 제주신보 기사. '불멸의 공훈을 추념'이라는 제목으로 박진경 대령 추모비 제막식을 알리는 내용이다. (사진=제주투데이DB)
1952년 10월 24일자 제주신보 기사. '불멸의 공훈을 추념'이라는 제목으로 박진경 대령 추모비 제막식을 알리는 내용이다. (사진=제주투데이DB)

도 보훈청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이라는 입장이다. 현재 추도비가 있는 충혼묘지는 제주시 주민복지과 관할이기 때문에 이곳에 설치된 시설물을 직접 처리할 수 있는 권한이 없다. 

도 보훈청 관계자는 “국립묘지가 내년 12월 31일 준공됨에 따라 그전까지 추도비를 옮길 수 있는 부지를 찾아야 하는데 쉽지 않다”며 “박 대령 유족을 비롯해 마을회 등 총 13군데를 정해서 이설을 시도했지만 모두가 반대했다”고 말했다. 

이어 “충혼묘지가 있는 부지가 제주시 주민복지과 관할이라서 보훈청 마음대로 비석을 철거하거나 파쇄하지도 못한다”며 “충혼묘지는 내년 상반기 국가보훈처로 이관되는데 박 대령 추도비는 받지 않으려고 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다른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제주에 내려온 통위부 고문관들. 오른쪽부터 박진경 11연대장, 김종면 중령, 로버츠 준장, 최갑종 소령, 백선진 소령, 임부택 대위(1948. 5)   <김종면 장군 소장> 4.3 진상조사보고서
제주에 내려온 통위부 고문관들. 가장 오른쪽이 박진경 제11연대장. (사진=4·3 진상조사보고서)

제주시 주민복지과는 지금의 충혼묘지가 국가보훈처로 이관될 때까지 처리를 미루는 모양새다. 

시 주민복지과 관계자는 “지금 조성 중인 국립묘지에 (박 대령) 추도비가 들어가지 않고 보훈청에서 옮기는 걸로만 알고 있다”며 “행정에서 처리해야 할 일이긴 하지만 딱히 저희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고 토로했다. 

실제로 박 대령 추도비는 공공사업 시행에 방해가 되는 지장물(支障物)로 지정돼 철거하거나 다른 장소로 이전해야 하는 시설물이다. 

이와 관련 홍명환 의원(더불어민주당·제주시 이도2동갑)은 “박진경 추도비와 관련해 도 보훈청이나 제주시 주민복지과 모두가 어려워하는 상황이라는 걸 알고 있다”며 “내일(10일) 열리는 4·3특별위원회 회의에서 4·3관련 단체와 부서를 상대로 이에 대한 방안을 질의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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