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신화산책 동갑내기 친구 작가 홍죽희와 여연. (사진=김일영 작가)
제주신화산책 동갑내기 친구 작가 홍죽희와 여연. (사진=김일영 작가)

50대 동갑내기 두 친구가 제주의 신당을 찾아 함께 걷는다. 제주의 신을 찾는 순례길에 오른 셈. 그 길에서 마을을 지켜준 신들과 만나기도 하고 30년 전 20대 청년의 ‘나‘를 만나기도 한다. 1만8천의 신과 함께 해온 제주인의 삶과 지금의 나 그리고 우리의 삶은 어떻게 맞닿아 있을까. 매주 금요일 ‘제주신화산책’ 코너에서 작가 여연의 ‘한라산의 신들’과 작가 홍죽희의 ‘제주의 돌에서 신성을 만나다’를 돌아가며 싣는다. <편집자주>

광령 마씨 미륵당은 산육과 치병을 관장하는 당으로서, 음력 초이레(7일), 열이레(17일), 스무이렛날(27일)에 주로 광령과 고성 등지의 여자 단골들이 다니고 있다 한다. 아이를 갖지 못하는 여인들이 이곳에 와서 간절한 기도를 하거나, 아이가 아플 때도 치성을 드리는 당이다. 심지어 이 당에 갔다 오면 아들을 낳는다는 소문이 있어 많은 사람들이 찾아온다고 한다. 아들을 낳게 하는 신통한 효험에 대한 일화들은 마씨 하르방과 직접적인 관련이 있다.

마씨 하르방이라는 사람은 살아생전 이 부근에서 작은 초가를 짓고 살며 미륵당을 관리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하르방을 두고 미륵당을 지키는 ‘심방’이라기 보다는 ‘도사’로 불렀다. 

그의 풍채는 대단하여 키가 무려 6척이나 되었고, 크고 단단한 체격으로 남다른 기풍이 보였을 뿐만 아니라, 힘이 아주 장사였다고 한다. 그는 자신을 스스로 ‘한라산 산신령’이라 말할 정도로 단숨에 한 눌(낟가리)만큼의 촐(꼴)을 등짐으로 져 나르곤 했는데, 이를 지켜본 사람들은 그의 큼지막한 등짐을 진 모습이 마치 ‘작은 산 하나를 지고 나르는 것’처럼 보였다고 말한다. 

마씨 미륵당을 조심스럽게 살펴보는 조랑말. (사진=김일영 작가)
마씨 미륵당을 조심스럽게 살펴보는 조랑말. (사진=김일영 작가)

그에 관한 이야기는 끊임없이 이어지니, 그는 누군가 어려운 상황에서 일을 거뜬하게 거들어 주는 해결사 역할을 톡톡히 했다. 옛날에 테우리(목동)들이 소를 잃어버렸을 때 한라산의 산신당을 찾아가서 정성으로 빌면 잃어버린 소를 찾아주었다는 이야기가 있다. 

예를 들어 누군가 방목하던 소를 잃어 상심이 클 때 그를 찾아가서 부탁하면 귀신같이 찾아주었다. 그리고 소 주인마저도 건드릴 수 없을 정도로 소가 갑자기 거칠고 세차게 날뛰면, 마씨 하르방은 대담함과 위력을 발휘하여 소의 양 뿔을 잡은 후 끈으로 꽁꽁 묶어서 주인에게 넘겨주었다는 이야기도 전해져 온다. 
 
사람들에게는 마씨 하르방이 바로 살아있는 한라산 산신과 같은 능력을 갖춘 사람이었고, 앞뒤의 사정으로 볼 때 그를 ‘한라산 산신령’이라 부르는 게 자연스러운 일이지 않았나 싶다. 

#약초를 공부한 수제자가 기억하는 마씨 하르방

마씨 하르방이 운명을 다할 때까지 10여 년간 모셔왔다는 어느 수제자의 이야기를 여기에 조심스럽게 실어보고자 한다. 그이는 내 또래의 연령으로 마씨 하르방으로부터 약초 구분법과 효능에 대하여 배웠다. 물론 사람의 기억에는 한계가 있어 일부의 내용은 황당한 이야기라고 치부할 수도 있다. 그런데 불교신문에 실린 기사들과도 일맥상통한 이야기들이 많이 있었다. 나는 마씨 하르방의 살아생전 일화를 들으면서 그가 죽은 후에도 전설처럼 마을 사람들에게 널리 알려져 미륵불로 좌정한 수수께끼가 풀리는 듯했다. 

마씨 하르방(본명은 마용기이다)의 부친은 전라도 강진 출신으로 의술과 점술, 주력 등에 능통했던 인물로 전해진다. 19세기 중반에 제주에 입도하여 일가족과 함께 제주도 성읍에 와서 생활의 터전을 잡게 되었다. 

한적하게 보이는 목장 주위는 온통 소나무가 병풍 두른 듯 서 있다. (사진=홍죽희)
한적하게 보이는 목장 주위엔 온통 소나무가 병풍 두른 듯 서 있다. (사진=홍죽희)

제주에 정착하기 시작하며 성읍 부근 산굼부리의 일대를 사들였는지는 확실치 않으나 마용기가 그 일대 땅의 소유자였고, 산굼부리 부근에 초가집을 짓고 살았다는 얘기가 전해온다. 아마도 산굼부리 일대의 너른 수풀 속에 약초재배단지를 조성하기 위함이 아니었는가 추정하고 있다. 무슨 사정이 있었는지 모르지만 산굼부리와 그 일대의 땅을 팔게 되었고, 그 돈으로 동회천 화천사와 광령 수덕사, 산방산 부근을 포함하여 다섯 군데에 큰 절을 지었다. 

실제로 동회천 화천사 건립과 관련된 자료를 뒤적일 때 ‘마용기’라는 이름이 보여 어떤 연관이 있을까 궁금했었다. 이 사람의 근본은 원래 스님이 아닌가 싶을 정도로 절 건립에 정성을 쏟은 사람이었다. 불교 신앙이 추구하는 깨달음의 세계를 실천하고 중생들을 바른 길로 인도할 장본인이 바로 자신이라는 진정한 믿음과 진정성을 두루 갖춘 인물이 바로 마용기가 아니었을까 하는 생각도 해 본다.

마용기의 증조부는 원래 중국 남부지역 출신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할아버지 때부터 그 일가의 자손들은 중국에서 의학을 공부했다. 마용기도 일제강점기 때 중국 남부에 있는 마씨 친인척이 사는 마을로 건너가 약초와 침술을 배웠기에 그 분야에서 누구보다 능통했다는 것이다. 

이를 토대로 마용기는 거의 백수를 누렸다 하니 평소 건강을 위한 약초와 침술에 능통했기 때문에 장수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닌가 추측할 수 있겠다. 그는 자신이 공부한 내용을 바탕으로 250여 가지의 약초 처방을 정리하여 책으로 묶었는데 안타깝게도 그 책은 분실되었다고 한다. 누군가 대학원 공부에 필요하다 하여 빌려줬는데 돌려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오월에 다시 찾은 마씨 미륵당. 오름과 한라산 자락이 저만치 보인다. (사진=홍죽희)
오월에 다시 찾은 마씨 미륵당. 오름과 한라산 자락이 저만치 보인다. (사진=홍죽희)

광령리로 생활의 터전을 옮긴 그는 이웃 사람들의 잃어버린 소나 말을 단숨에 찾아주는 등 한라산 산신령으로 소문이 날 만큼 기골이 장대하고 힘과 에너지가 남달랐다는 점에서 마을 사람들의 우상이 되었고 마을의 대소사에 관여하여 해결사 역할을 했다. 

그는 평소 약초를 구하러 한라산 등지를 누비고 다녔기 때문에 일반인들보다 지리에 밝고 소나 말의 생리를 잘 알고 있었다. 그리고 마을 사람들에게 무엇인가를 퍼 주는 것을 좋아했다고 하니 사람들이 병으로 고통을 받고 있을 때 약초와 침술을 통해 이웃의 고통을 덜어주는 의원의 역할을 수월하게 할 수 있었을 것이다.

마씨 하르방은 죽은 사람들끼리 하는 혼례식인 사혼(死婚)을 해주었다는 일화도 있다. 식에 앞서 인형 대용으로 만들 짚을 어렵사리 구하고 손수 만들어 사혼식을 거행하는데 노랑나비, 흰나비가 나풀나풀 날아들어 놀라웠다는 신기한 경험을 수제자가 웃으면서 들려주었다. 노랑나비가 신랑으로, 흰나비가 신부로 화신한 것이 아닌가 하면서 말이다.

마씨 하르방이 미륵당 옆에 초가를 짓고 살았는데 어느 날 술을 먹고 잠자다가 집에 화재가 나서 불에 타 숨졌다는 얘기는 왜곡된 억측이 아닌가 한다. 왜냐하면 그가 말년에 화병을 앓아 제주시 모병원에서 죽었는데, 그 수제자가 마씨 하르방의 임종을 지켰다고 증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때 그의 강한 정력이 아이 못 낳는 여인에게 아이를 낳게 했다는 소문과 함께 그가 낳은 아이가 오백이 넘는다는 말도 공공연하게 떠도는데, 사실은 마용기가 자신이 잘 알고 있는 약초 처방이나 침술을 발휘하여 아이를 낳지 못하는 여인들을 치료해준 것이 아닐까 한다. 

아무튼 아들을 낳게 해주었다는 소문은 다시 소문을 타고 더욱 신비로운 신화로 재탄생되어 죽어서도 그 사람을 조상신으로 믿고 모시면 신통력을 발휘하는 당신으로 여전히 살아남은 것이다. 살아생전에 그는 의술, 역술, 풍수에 밝을 뿐만 아니라 앞을 내다볼 줄 아는 혜안을 가진 비범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홍죽희.
홍죽희.

홍죽희.

제주에서 중학교 영어교사로 30여 년을 재직하다 2020년 2월 명예퇴직했다. 대학 시절 마당극 운동단체인 극단<수눌음>에 가입, 외지 자본에 의한 제주의 토지 잠식을 다룬 ‘땅풀이’와 1932년 제주에서 일어난 항일 해녀 투쟁을 다룬 ‘ᄌᆞᆷ녀풀이’ 등에 출연하면서 제주의 역사와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육지와는 달리 제주의 마당극은 신화를 바탕으로 굿에 의해 전개되는 특징이 있어 자연스럽게 제주의 신화를 눈여겨보게 되었고 지금도 틈틈이 신당 기행을 다니고 있다. 독서모임<아랑ᄒᆞ라>와 아코디언 모임<바숨>의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인문적 소양과 예술적 감성을 배우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사진작가 김일영.

1969년 서울에서 태어나 중학교 2학년 때 집에 있던 카메라를 시작으로 사진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여행사 직원으로 근무하면서 전 세계를 여행했다. 2012년 제주로 이주해 ‘여행과치유’ 회원으로 활동을 시작, 회원들과 제주도 중산간마을을 답사하고 기록한 <제주시 중산간마을>(공저, 류가헌 펴냄, 2018)과 <제주의 성숲 당올레111>(공저, 황금알 펴냄, 2020)을 펴냈다. 또 제주 중산간마을 사진전과 농협아동후원 전시를 이어가고 있다. 현재 ㈜탐나는여행 대표이며 ‘여행과치유’ ‘제주신화연구소’ 회원으로 제주의 중산간마을과 신당을 찾고 기록하면서 제주의 삶을 느끼고 이해하려는 입도 8년차 제주도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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