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8일 김옥산 수운교청정봉사단장(왼쪽)이 반찬봉사를 하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지난 28일 김옥산 수운교청정봉사단장(왼쪽)이 반찬봉사를 하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봉사는 큰 게 따로 없어요. 내 주위의 작은 것에서부터 봉사를 하다 보면 점점 더 커져서 부메랑처럼 희망으로 되돌아오거든요.”

매년 봉사자 1명에게 주어지는 김만덕상이 올해는 김옥산 수운교청정봉사단장에게 돌아갔다.  김 단장은 지난 1990년 한국부인회에서 자원봉사를 시작했으며 지금은 10년 넘게 수운교청정봉사단을 이끌고 있다. 

어려운 형편에 있는 어르신들을 위해 노력봉사(1600여회)와 급식봉사(3500여명), 물품지원(1400여만원) 등을 해오고 있으며 장애인 가구에도 생활 가구와 생필품 지원, 청소 봉사 등을 이어오고 있다. 

또 도내 청소년 47명에게 장학금(1350만원)을 전달하고 공부방 꾸미기 등 청소년활동 지원과 심장병 어린이 수술비 등을 기부했다. 

지난달 8일 열린 제41회 김만덕상 봉사 분야 수상한 김옥산 단장. (사진=김옥산 단장 제공)
지난달 8일 열린 제41회 김만덕상 봉사 분야 수상한 김옥산 단장이 가족들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김옥산 단장 제공)

30년이 넘도록 봉사를 시작하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김 단장은 “치매가 심하게 앓았던 시할머니와 당뇨병이 있었던 시어머니를 23년간 모셨던 게 시작이었다”고 운을 뗐다.

“시할머니를 4년 꼬박 수발하고 시어머니는 돌아가시기 전 53일을 식물인간으로 사시다 돌아가셨는데 손수 돌봤어요. 그런데 두 분이 가신 뒤로 너무 허망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 허망한 마음을 채우기 위해 봉사를 시작했어요.”

시할머니와 시어머니를 지극히 돌봤던 김 단장에겐 제주시 효부상(1990년)이 주어지기도 했다. 

수운교청정봉사단. (사진=조수진 기자)
김옥산 단장(오른쪽에서 네 번째)이 수운교청정봉사단과 반찬봉사를 하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김 단장은 젊은 시절 경제적인 시련도 겪었다. 남편이 보증을 섰다가 잘못되는 바람에 사업을 접고 빚더미에 앉게 됐다. 당시 김 단장의 자녀(3남1녀)의 나이는 대학교 1학년부터 중학교 3학년까지로 한창 학비와 생활비가 많이 필요할 때였다. 

“돈을 벌어야 해서 보험설계사를 7년 했는데 판매 실적이 내리 1등이었어요. 그렇게 아이들 교육을 다 시킬 수 있었죠. 주변 분들의 도움이 없었다면 그 시절을 이겨내지 못했을 겁니다.”

자녀들이 모두 학교를 졸업하고 어느 정도 여유가 생기자 김 단장은 자신이 받은 도움을 돌려줘야 한다는 생각으로 더욱 봉사에 몰두했다. 

지난달 8일 열린 제41회 김만덕상 봉사 분야를 수상한 김옥산 단장이 원희룡 제주도지사와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김옥산 단장 제공)
지난달 8일 열린 제41회 김만덕상 봉사 분야를 수상한 김옥산 단장(가운데)이 원희룡 제주도지사와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김옥산 단장 제공)

김 단장은 자원봉사자를 비롯해 봉사를 고민하고 있는 이들에게 꼭 전하고 싶은 말이 있다고 했다. ‘나’와 ‘남’을 분리하지 말라는 것. 지금은 30년 베테랑 봉사이지만 처음 요양원에 봉사를 나갈 때만 해도 쉽지 않았다. 

시할머니를 모신 것과 크게 다를 것이 없다고 생각하고 요양원을 찾아갔지만 특유의 냄새 때문에 2년간은 그곳에서 주는 차를 마시지 못했다. 

“요양원 화장실 벽에 ‘나와 노인이 따로 없네’라는 문구가 붙어있더라구요. 젊음과 늙음에 대한 차이점을 두지 말아야 한다는 거예요. 지금 젊은 사람들도 나중엔 늙게 되고 지금 나이 든 사람들에게도 젊은 시절이 있었잖아요. 그렇게 생각하면 요양원에 가서 어르신들을 목욕시키고 하는 봉사는 바로 내 자신에게 봉사하는 것과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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