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의회 교육위원회가 제주학생인권조례안 심사를 보류한 뒤 이후 논의가 지지부진하다. 정의당 고은실 도의원을 비롯 무려 22명의 도의원이 발의한 조례안에 대한 논의를 논의를 이어가지 않고 것이다. 학생인권조례는 10년 전인 2010년 경기도가 전국 지자체 중 처음 제정했다. 이후 광주시, 서울시, 전라북도, 충청남도에서 학생인권조례가 제정됐다. 매번 반발이 따랐다. 반발 및 찬반 대립은 제주학생인권조례안이 발의된 순간부터 예고된 수순이었다. 민의의 전당인 제주도의회에서 보다 적극적으로 논의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이에 제주투데이는 제주학생인권조례안에 대한 논의를 촉발하기 위해 찬반 양측의 의견을 이틀에 걸쳐 게재한다.<편집자 주>

☞제주학생인권조례안 반대 의견

신강협/ 제주평화인권센터 인권정책실장
신강협 제주평화인권연구소왓 상임활동가

편견을 넘어 이해로, 이해를 통한 상호 존중 그리고 인권적인 학교교육: 동성애에 대한 지독한 편견에 대하여

-신강협 제주평화인권연구소왓 상임활동가

2020년 12월 1일자 제주투데이 <[이슈 매치]제주학생인권조례 제정-①>를 통해 제시된 의견에 대하여 인권활동가로서 뿐만 아니라 일반 시민으로서도 참으로 이해하기 어려운 점들이 너무 많다. 그래서 한 마디 해야겠다는 생각에 이 글을 쓴다. ‘성적 지향’ 자체에 대한 논쟁은 다른 사회적 근거를 제시하고, 인권의 관점에서 학생인권조례의 의미와 차별금지에 대해 이야기해보겠다. 

해당 글 맨 처음 등장하는 에피소드에는 책 부지런히 읽은 착한 학생이 있고 그 학생의 순진한 행동을 걱정하는 착한 교사가 등장한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를 전해들은 필자의 한숨이 적혀 있다. 
수많은 질문이 떠올랐다. 
“왜 동성애가 갑자기 절대 악과 동일시되는 것일까?”
“왜 선생님이 아이가 동성애 관련 책을 읽거나 읽지 못하도록 하는 결정을 내리는 것일까?”
“정말 동성애가 전염병처럼 번지고 있는 것일까?”
“왜 동성애가 바로 성도덕의 문란으로 비약되는 것일까?”
“‘편향된 인권’이란 무엇일까?”
“‘진리가 붙잡고 있는 사회의 기초가 가정’이라면, 과연 가정을 이루지 않는 사람들은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아이를 어떻게 지켜내야 하는 사람들이 왜 아이들이 아니고 어른들일까?”
결과적으로 이 에피소드 안에서 가치 판단의 기준은 어른으로부터 나온다. 그리고 의사결정을 어른이 한다. 뿐만 아니라 앞으로도 어른이 아이를 보호해야 한다. 아이는 전혀 주체적인 존재가 아니다. 동성애에 대한 지독한 편견이 자리 잡은 어른들의 입장은 ‘동성애’에 관해 아이와 상호 소통을 불가능하게 만들어버리고 있다. 도대체 ‘동성애’가 무엇이기에 이렇게 사람 사이에서 일방적인 소통구조를 가능하게 만들고 있을까? 

문제는 ‘동성애’에 관한 일부 사람들의 지독한 사회적 편견과 곡해이다. 그들에 대한 반대 논쟁과 객관적 근거 제시가 수없이 이뤄졌지만, 잘못된 신념으로 무장된 이들에게 객관적 진실은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객관적 사실을 부정하기 때문에 사회적 논쟁 자체가 무력화되는 것은 정말 큰 문제이다. 상호토론이 안되기 때문에 사회적 합의가 불가능하고, 극단적인 사회적 대립이 발생한다. 따라서 본 글에서는 ‘동성애’ 자체에 대한 논쟁은 웹사이트인 나무위키의 '동성애/논쟁' (https://namu.wiki/w/동성애/논쟁)을 참고로 갈음하겠다. 

다만 나무위키의 내용을 간략하게 살펴보면, 동성애는 어찌보면 자연계의 1500여종에서 실제적으로 발견되는 자연스런 현상 중 하나이다. 또한 동성애는 정신질환이거나 전염병이 아니다, 동성애적 성향은 다른 이성애적 성향과 비슷하게 임신후반기에 결정되며, 동성애가 출생이후 사회적 영향력에 의해 형성된다는 증거는 없다. 따라서 동성애는 자신들이 선택하는 문제가 아닌 본태적인 현상으로 파악되므로 사회적 영향력으로 조장되거나 전파되는 질병이 아니다. 또한 동성애가 HIV를 전파하는 주된 원인이 아니며, 이성애자들 사이에서도 발생한다. 병원균 자체를 예방하는 인식이 필요하다. 이러한 이야기들에 대한 근거는 나무위키를 참조하면 좋겠다. 

지난 23일 제주도의회 앞에서 정당과 시민사회 단체 등이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조수진 기자)
지난 9월 23일 제주도의회 앞에서 정당과 시민사회 단체 등이 학생인권조례 제정을 촉구하고 있다. (사진=제주투데이 DB)

이제 인권의 영역으로 넘어가보자. 제주학생인권조례가 무슨 날카로운 발톱을 감춘 괴물이라도 된 듯하다. ‘성적 지향’에 관한 차별 조항을 직접적으로 넣지 않고, 국가인권위원회법 제2조 3호를 인용함으로서 먹기 좋은 독사과가 되었다는 비판이다. 이 문제를 본격적으로 논하기 이전에, 사실 뒷이야기가 하나 있다. 제주학생인권조례안에서 ‘성적지향’이라는 단어가 삭제된 것은 보수적인 개신교 목사님들의 항의 때문에 그렇게 된 것이다. 전후 사정을 알고 비판하는 것인지 참으로 이해할 수 없다. 어쨌든 국가인권위원회법 제2조를 논하면서, ‘성적지향’, 즉 동성애 문제는 절대악인데 이를 차별의 사유로 포함하는 것을 절대 받아들일 수 없다는 이야기 인 듯하다. 동성애를 포괄하는 인권은 잘못된 진리를 인권으로 포장하기 때문에 ‘편향된 인권’으로서 참된 진리를 가로 막고 있다는 논리다. 그래서 동성애를 기준으로 정치가와 법률가를 교활하고 악한 의도를 가진 세력으로 몰아붙이고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법 제2조는 세계인권선언문 제2조의 원형을 수용하면서, 진전된 사회적 논의를 포괄하고 있다. 세계인권선언문 제2조를 살펴보면, 여러 가지 차별 사유를 제시하면서 인권의 구체적인 실천을 선언하고 있다. 여기에 ‘성’이라는 표현이 나온다. 따라서 굳이 따지자고 한다면 ‘성적지향’과 관련하여 국가인권위원회법에 나와 있는 조항은 세계인권선언문에 뿌리를 두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세계인권선언문 제2조는 어떠한 핵심적 내용을 담고 있을까? 제2조는 어떠한 조건을 두고서라도 차별하지 말라는 것이다. 차별의 사유는 예제로 표현되고 있을 뿐이다. 그래서 선언제정 이후 전세계는 사회적 논쟁을 통해 차별 사유의 예제를 보다 구체화하고 있다.

어쨌든 조항의 핵심은 개별적 사유들에 대한 논쟁이 아니라 차별하지 말라고 하는데 있다. 어떠한 사유를 대더라도 말이다. 종교에 대한 차별을 하지 말라는 말이 종교를 조장한다는 이야기로 해석된다면 이상하지 않은가? 그런데 왜 유독 ‘성’에 관해서만 성에 대한 차별금지 조항을 ‘동성애 조장’으로 이해하는가? 납득할 수 없는 비판이다. 세계인권선언문 제2조가 인종을 조장하고 있는 것인가? 하늘을 보랬더니 손가락만 쳐다보는 꼴이다. 핵심은 사람이 어떠한 사유를 대더라도 다른 사람을 차별하지 말라는 것에 있다.

국가인권위원회법 제2조를 비판하려면 세계인권선언문의 국제 인권규범에 대한 명료한 비판적 근거가 제시되어야 한다. 졸지에 세계인권선언문 제2조를 구성한 세상의 모든 법률가, 학자, 정치가들이 교활하고 악한 의도를 가진 사람이 되어 버렸다. 법치국가를 운운하지만 법에 대해 근거없이 작위적으로 비판하고 있다. 자신의 신념을 근거로 법을 비판한다면, 자신의 신념의 사회적 진리의 기준이라는 말인가? 

학생인권조례가 없어도 별 문제가 없다고 하는데, 그렇다면 지금 학생들이 자신들의 인권침해 사례들을 언론에 발표하고, 시내 곳곳에 대자보로 알려내고 있는 현실은 무엇인가? 나는 그러한 학생들의 주장에 그러한 사례가 없다고 반박하는 교육당국의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심지어 교육의원들의 반론도 들어본 적이 없다. 오히려 학생들의 문제를 왜 학교의 교사들이, 교육청이 해결하지 못하냐는 책임 면피성 발언만 난무하고 있다.(제주도의회 교육상임위 제주학생인권조례 심의, 2020. 9. 23)

또한 학생인권조례 제정 이후 많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다고 하는데, 학력저하 관련해서는 수많은 요인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콕 집어서 인권조례만 원인으로 지목하는 방식의 통계 해석을 이해할 수 없다. 그렇다면 인권조례가 없는 지자체의 학력저하는 도대체 무엇 때문에 발생하고 있단 말인가? 또한 강원지역에서 교권침해상담을 받았더니 교권침해건수가 급격히 상승했다고 하는데, 강원지역은 학생인권조례가 없다. 교육계 현황에 대한 여러 가지 통계가 있는데 자기 편의적으로 해석하여 근거로 삼는 것은 자기 편향성을 더 극대화할 뿐이다. 

한 버스정류장에 붙여진 대자보. (사진=제주학생인권조례TF 제공)
한 버스정류장에 붙여진 대자보. (사진=제주투데이 DB)

교육은 정치적으로 독립되어야 한다. 맞다. 교육은 정치적 편향성을 극복할 수 있도록 민주주의에 대해 철저하게 공부하고 훈련하는 방향으로 진행되어야 한다. 한편 조례 제정은 거의 대부분 특정정당에서 발의하지 않는가? 국민의 힘이라는 특정 정당 소속의원이 조례를 발의하지 않는가? 민주당이라는 특정정당 소속의원이 조례를 발의하지 않나? 무소속 의원도 있고, 행정부 발의, 도민 발의도 있지만, 대부분 특정정당의 의원들이 조례를 발의하지 않나? 정의당이 발의하면 안되는 이유라도 있을까? 이해되지 않는 비판점이다.

앞서 이야기했지만, 경쟁적인 학교 교육이 빚어내는 비인권적 상황이 점점 더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학생들간의 갈등, 심지어 교사와 학생간의 갈등이 심각한 수준에 이르고 있다. 학교내 주체들 간의 신뢰가 점점 사라지고, 학교내 주체들간의 관계가 비인격적이고 사무적인 관계로 변질되면서 그러한 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그렇게 때문에 지금 현재의 구조와 제도로서 이러한 문제 해결이 어렵다고 판단되어 우리 사회는 새로운 해결방식을 모색하고 있다. 그러한 노력의 하나가 바로 학생인권조례제정이다. 사실 학생인권조례 하나로 학교 교육이 바로 인권교육의 현장으로 순식간에 탈바꿈 하기는 힘들 것이다. 하지만 인권을 지향하는 교육으로 첫걸음으로는 큰 의미가 있다.  

세계인권선언문 제29조를 살펴보면, 조항의 핵심 내용은 자신의 권리와 자유의 행사가 타인의 권리와 자유가 존중되어야 하는 조건이 있음을 선언하고 있다. 인간은 공동체적 존재라는 인식하에 인권이 사회 안에서 어떻게 구체적으로 실현되어야 하는지를 표현하고 있는 것이다.  상호존중을 위해서 법률로서 개별적 존재의 권리와 자유를 규정할 수 있도록 하고 있다. 그렇게 놓고 보면 사실 인권은 개별적 존재들의 무소불위한 권리 행사 보장이 아니라 상호 존중을 통해 모두가 존중받는 공동체적 상을 지향하고 있다고 봐야 한다. 결국 인권과 상호 존중은 사실상 동의어로 볼 수도 있다. 그런데 ‘학생 존중 및 인성에 관한 조례’는 오히려 교사와 학생, 학부모 등 학교 주체들의 관계를 배제하고 학생에게만 집중하여 오히려 학생만을 대상으로 삼는 교육조례처럼 느껴진다. 끝까지 학생만 가르치려고 든다는 점에서 인권적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다. 

한 시민이 14일 오전 제주도의회 앞에서 학생인권조례 심의보류한 교육위원회를 규탄하며 학생인권조례를 직권상정할 것을 도의회에 촉구하는 1인시위를 벌이고 있다.(사진=김재훈 기자)
한 시민이 지난 10월 14일 오전 제주도의회 앞에서 학생인권조례 심의보류한 교육위원회를 규탄하며 학생인권조례를 직권상정할 것을 도의회에 촉구하는 1인시위를 벌이고 있다.(사진=제주투데이 DB)

현재 제주도의회의 구조적 문제, 특히 교육상임위의 구조적 문제로 인해 43명의 의원중 절반이 넘는 22명의 의원이 서명한 제주학생인권조례의 제정이 쉽지는 않겠지만, 학교내 모든 교육주체들이 상호존중에 기반한 인권적 학교교육을 이뤄내기 위한 노력은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현재 제출된 학생인권조례안에 대해서도 사회적 논의를 진행하여 보다 더 인권적으로 진전된 조례로 꼭 제정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다.

동성애에 대한 지독한 편견과 오해가 빚어내는 이런 극단적인 사회적 논쟁이 많이 슬프다. 타인에 대해 연민의 정을 가지고, 우리 이웃들을 조금만 더 따스하게 바라본다면 쉽게 해결될 수 있는 문제로 이렇게 첨예하게 대립한다는 현실이 참으로 안타깝다. 편견을 넘어 상대방을 이해하고, 서로 존중하는 관계로 인권적인 학교교육이 나아갔으면 한다.

(기고는 제주투데이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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