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사람들의 삶의 터전인 오름은 이제 제주를 대표하는 자연경관으로 자리 잡았다.

오름을 매일 그려내는 제주 토박이 김성오(51세) 화가가 있다. 그는 4살 때 제주시 애월읍 소길리 원동마을(4·3으로 잃어버린 마을)에서 애월읍 하가리로 내려와 지금까지 고향을 지키며 그림 작업을 하고 있다.

김성오(1970년생,  제주시 애월읍 하가리) 작가 
12일 오전 10시30분터 중문 제주롯데호텔 내 아트제주스페이스에서 열린 '아트제주 아카데미' 네번째 강의 김성오 작가와의 대화 시간

 

그에게 오름은 이어도다.

어린 시절 생계를 위해 목장에서 테우리로 일하는 아버지를 만나러 반나절을 걸어가야 했다. 360도 사방에 막힘없이 펼쳐진 목장 주변에 볼록 솟은 알오름 같은 언덕꼭대기와 목장에 널브러진 자연석으로 지은 테우리막, 그리고 거기서 바라보는 제주풍광의 아름다움은 어린 그에게 분명 이어도였다.

1997년 제주대학교 미술학과를 졸업한 그는 그동안 바다도 그리고 꽃도 그리고 언젠가는 나무만 그렸다. 나무에 미쳐있었을 땐 ‘낭만파(나무의 제주어인 낭만 파는 놈)’라는 우스개스런 별명도 붙어다녔다.

그러나 청년작가인 그에게 그림은 늘 어려운 숙제였다. 마음이 답답할 때나 그림을 그리다가 뭔가 풀리지 않을 때, 그는 마을 주변의 오름에서부터 머리 떨어져 있는 제주 곳곳의 오름을 오르기 시작했다.

오름을 오르는 일은 어릴 적 삶에 녹아있는 그의 기억과 감성을 깨우는 일이다. 그리고 그것들이 지금의 그가 그려내는 그림의 근간이다. 작품에 고스란히 담겨 있는 테우리의 꿈은 오름 속에 숨겨진 생성의 비밀과도 이어진다. 그가 붉은색으로 칠한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는 이유는 화산섬 제주의 탄생과 새 생명의 강렬한 에너지를 담아내고자 하는 것이다.

그는 붉은색 위로 초록과 파랑, 그리고 땅의 기운을 담은 노랑의 색감이 어우러져 오름을 그린다. 투박한 선으로 그려진 곡선의 연속이 모여, 오름과 대지와 하늘은 춤을 춘다. 그의 작업은 결국엔 대지의 거칠면서 순수한 속살을 담고 있는 제주를 캔버스에 담아내는 일이다.

유성, 2016, acrylic on canvas, 91 x 65cm

또한 그는 우연하게 작업실에서 그리고 있던 그림에 “칼로 한 번 긁어 볼까”라는 짧은 순간의 생각으로 카트 칼로 칠했던 물감을 긁어냈다. 그림은 전혀 다른 느낌으로 그에게 다가왔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이제 그의 작품은 자신만의 독특함으로 자리 잡고 있다.

2008년에 남들보다 늦게 첫 개인전을 시작한 그는 개인전 8회, 단체전 18회, 초대전 3회를 거치면서 나름대로 실력을 인정받는 화가로 알려져 있다.

김성오 작가에 대한 평론에서 “아버지를 따라 다녔던 유년시절의 낯익은 놀이터인 오름은 작가 자신의 존재를 일깨워준 은인으로서의 대지”라고 하면서 “많은 화가들이 새로운 형상을 찾기 위해 씨름하지만, 독자적으로 일구어낸 형상에는 타인이 침범할 수 없는 작가 자신의 삶의 이야기와 꿈이 깃들어 있다. 그리고 오름을 오르던 유년 김성오의 작은 걸음걸이가 지층이 돼 새로운 형상을 만들어간다”라고 평하고 있다.

테우리들, 2020, Arcyilc on canvas , 90.0cm x 65.1cm
황금정원, 2020, Arcyilc on canvas, 162.2cm x 130.3cm

그는 자신의 작업 노트에 “테우리였던 아버지와 함께 생활했던 유년 시절, 오름에서의 생활은 나의 영혼과 육신이 자연의 일부로서 자연과 온전히 교감할 수 있는 통로였다”며 “그곳에서 별의 영롱함을 눈에 담고 오름의 푸근함을 체취로 느끼고 넉넉히 베푸는 풍요로움을 알았으며, 살아 숨 쉬는 강인한 생명력을 느꼈다. 자연과의 교감을 통해 감성적인 정서를 내 마음에 심었다”라고 적었다.

그는 다시 말한다 “나는 오늘도 오름을 오른다. 그 곳에 나의 이어도가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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