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따르라!" 자신을 믿고 얼어붙은 산꼭대기까지 힘겹게 올라온 병사들을 바라보며 나폴레옹이 말한다.

"어라, 이 산이 아닌가벼?"

그 한 마디에 병사 절반이 뒷목 잡고 쓰러진다.

나머지 지친 병사들을 이끌고 간신히 다른 산꼭대기에 오른 나폴레옹이 말한다.

"어라, 아까 그 산이 맞나벼?"

(사진=원희룡 제주지사 페이스북 갈무리)

최근 원희룡 제주지사를 보며 떠오른 '라떼개그'다. 이 옛 개그가 떠오른 이유는 원 지사가 페이스북에서 자기 자신을 사령관에 비유했기 때문만은 아니다. 자신을 ‘사령관’으로 비유하는 것은 부하 직원들이 자신의 명령을 목숨 걸고 따르길 바라는 권위주의자들이 종종 사용하는 낡은 비유일 따름이다. '원 지사가 권위주의적인 정치인스러운 말을 내뱉었구나' 하고 가볍게 넘어갈 수 있는 문제다.

나폴레옹 개그가 떠오른 진짜 이유는 원 지사가 내뱉은 코로나19 대책들 때문이다. 원 지사의 '이 산이 아닌가벼'식 대책 발표가 도민들의 혼란을 야기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원희룡 도정의 방역 대책에 대한 도민들의 불신이 깊어지고 있다.

원 지사는 지난 15일 모든 제주 입도객을 대상으로 코로나19 진단검사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정부와의 협의도 이뤄지지 않은 상태다. 무엇보다 전국 공항에 배치해야 하는 인력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다. 원 지사는 정부에서 인력을 지원하지 못하는 경우 타 지역 공항으로 인력을 파견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그로부터 이틀 뒤 원 지사는 전도민 대상 진단검사를 추진하겠다고 밝혔다. 역시 의료·행정 역량에 대한 검토가 이뤄지지 않은 상황에서 즉, 확정된 내용이 없는 전혀 없는 상태로 내뱉은 전형적인 '이 산 아니면 말고'식 발표였다.

도 방역 당국은 관계자들은 인력이 부족해 초과근무에 시달리는 실정이다. 취재기자로서 방역 관련 공무원들을 접하면서 코로나19 초기에 비해 상당히 예민해진 상태라는 것을 느낀다. 피로 때문일 것이다. 그러나 원희룡 지사는 제주 입도객 검사를 위한 인력을 국내 각 공항과 항만에 파견하고 동시에 전도민 전수검사를 실시할 인력이 충분하다고 보고 있는 듯하다. ‘사령관’치고는 ‘전우’들이 처한 상황을 몰라도 너무 모르는 것 아닌가. 영락없는 저 나폴레옹의 모습은 아닌가.

또한 원 지사는 앞서 집단감염이 우려되는 장소에 대해서는 공개하겠다는 지침을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막상 성안교회에서 확진자가 발생하자 교회명을 공개하지 않았다. 이는 명확한 동선공개 장소 기준을 마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방역은 신뢰가 가장 중요하다. 그러나 원희룡 지사는 '어라 이 산이 아닌가벼, 아까 그 산이 맞나벼' 식으로 불신을 자초했다. 방역을 책임지는 도정의 무게감을 떨어뜨렸다. 원 지사에게 강력히 권고한다. 단 한 달만이라도 대권 행보와 중앙정치는 잊어버리고 오롯이 제주에 집중하길 바란다. 그것이 코로나19 전장에서 백병전을 벌이고 있는 '전우'들에 대한 예의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지금보다 도내 지역감염이 더 심각해지면, 제주에서 육지로 나가는 모든 출도객을 대상으로 한 코로나19 항원검사를 요청하는 이들이 생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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