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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신화산책]한라산신 미륵으로 내려앉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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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신화산책]한라산신 미륵으로 내려앉다
  • 제주투데이
  • 승인 2020.12.25 14: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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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죽희의 ’제주의 돌에서 신성을 만나다‘⑭큰신머들 새당 하르방당
제주신화산책 동갑내기 친구 작가 홍죽희와 여연. (사진=김일영 작가)
제주신화산책 동갑내기 친구 작가 홍죽희와 여연. (사진=김일영 작가)

50대 동갑내기 두 친구가 제주의 신당을 찾아 함께 걷는다. 제주의 신을 찾는 순례길에 오른 셈. 그 길에서 마을을 지켜준 신들과 만나기도 하고 30년 전 20대 청년의 ‘나‘를 만나기도 한다. 1만8천의 신과 함께 해온 제주인의 삶과 지금의 나 그리고 우리의 삶은 어떻게 맞닿아 있을까. 매주 금요일 ‘제주신화산책’ 코너에서 작가 여연의 ‘한라산의 신들’과 작가 홍죽희의 ‘제주의 돌에서 신성을 만나다’를 돌아가며 싣는다. <편집자주>
 
새해 정초부터 대한민국을 비롯한 여러 나라에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공포로 떠들썩하다. 각종 언론 매체에서는 과거 그 어떤 바이러스보다 큰 피해를 가져올 것 같다며 연일 보도하고 있고, 시시각각 감염 확진자 확산 방지를 위해 협조를 당부하는 안전 안내 문자메시지들이 수없이 날아든다. 

추워진 날씨와 코로나19 소식으로 울적한 마음을 달랠 겸 우리 답사 일행이 찾아 나선 곳은 애월읍 하가리 고내봉에 위치한 ‘큰신머들 새당 하르방당’이다. 이 당은 천연두와 홍역에 효험이 있다고 한다. 

우리 일행은 큰신머들 새당 하르방당에 가기 위해 고내봉을 오르기 시작했다. 고내봉은 부담 없이 산책할 수 있는 나지막한 오름으로 주위에는 피톤치드가 다량 함유된 편백나무들이 많았다. 숲길을 걸으면서 숲이 내뿜는 신선한 향기를 마음껏 즐길 수 있었고, 땅에서 올라오는 풋풋한 흙냄새와 예쁜 새소리는 닫힌 우리들의 마음을 열어주기에 부족함이 없었다. 

큰신머들 새당 하르방당의 입구. 당의 유래를 설명하는 표지석이 보인다. (사진=김일영 작가)
큰신머들 새당 하르방당의 입구. 당의 유래를 설명하는 표지석이 보인다. (사진=김일영 작가)

얼마 걷지 않았는데 고내봉 중턱인가 싶더니 바로 정상에 도착할 수 있었다. 중턱부터 군데군데 무덤들이 보였는데, 정상의 정면에는 큰 규모의 가족 공동묘지가 있었다. 큰신머들 새당 하르방당은 바로 가족묘지 오른쪽에 자리하고 있는데 표지판이 당의 입구임을 친절하게 알려주고 있다.

풍수에 대해서는 전혀 문외한이지만 내 느낌만으로도 이 당은 오름의 정상 가까이에 위치할 뿐만 아니라 따스한 햇볕이 잘 드는 명당자리임이 분명했다. 주변에 산자리를 많이 쓴 것도 그렇고 무엇보다 이 당에서 오름 아래를 내려다보니 하가리 마을 전경이 한눈에 들어왔다. 사후세계를 믿었던 선조들은 이승에서의 주거 공간인 택지 못지않게 저승에서 영생을 누릴 산자리를 정하는데 온 정성을 기울인다는 얘기가 문득 떠올랐다. 

이 당의 울타리는 보기 좋게 돌담으로 빙 둘러 있는데 당 안으로 발을 딛는 순간 기운차게 보이는 바윗덩어리의 기세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쳐다보기만 해도 크기나 규모에서 정말 압도당하는 느낌이었는데 바로 선돌 형태의 미륵신들이다.

나뭇가지만 남아 스산하게 보이는 팽나무와 암석 앞의 멀구슬나무, 그리고 담 주변의 보리수나무들은 이 미륵신들의 신성성을 더욱 극대화하고 있다. 이곳 나무들이 바위 위에 자연스럽게 솟아난 듯 마치 머체(돌무더기;편집자)로 이뤄진 신성스러운 당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큰신머들 새당 하르방당의 내부 모습. 나무 위에 지전과 물색, 그리고 명주실이 걸려 있다. (사진=김일영 작가)
큰신머들 새당 하르방당의 내부 모습. 나무 위에 지전과 물색, 그리고 명주실이 걸려 있다. (사진=김일영 작가)

이 신당은 모두 다섯 개의 바위로 이루어져 있다. 그 바위 아래쪽으로 신령들이 드나든다는 자연 지형인 궤도 볼 수 있었다. 나무 위에는 지전과 물색, 그리고 명주실이 걸려 있었는데 천연두와 홍역에 효험 있는 당이라 근간에 누군가 아이의 건강을 빌기 위해 다녀간 흔적들이겠다.

이 당 이름인 ‘큰신머들’은 제주어로 큰 신들이 있는 돌무더기라는 뜻이다. 거대한 바위들이 당의 신체로서 이곳에는 ‘산신백관, 을서, 병서, 세제동공, 초립동이’라는 다수의 남신들이 좌정하고 있다. 이 당에서는 천연두와 홍역 등 옛날에 사람들이 가장 두려워하는 전염병을 치유하기 위해 비념을 드리는 곳이라 한다.

가운데의 가장 큰 바위가 ‘새당하르방’이라 불리는 산신미륵인데, ‘산신하로백관또’라고 한다. 그리고 을서와 병서는 고려말 장수신으로 장군당 본풀이에 등장한다. 을서, 병서라는 장수는 고려 시절 삼별초의 김통정 장군을 물리친 인물로 이 당에 좌정한 신이고 나머지 세제동공은 천연두와 홍역을 담당하는 신이다.

#큰신머들 새당 하르방당 본풀이

옛날 어느 마을에 초립동이가 가난하게 살고 있었다. 하루는 초립동이가 삼태기를 엮는 정동(댕댕이덩굴)을 걷으러 산에 갔다가 점심밥으로 수수범벅을 먹고 있었다. 어디선가 산신백관이 나타나 초립동이가 먹고 있는 음식에 호기심을 보였다. 산신백관이 무슨 음식이냐 물으며 자신에게 조금 주면 먹어보겠다고 말했다. 

초립동이는 잠시 머뭇거리다 수수범벅을 펼쳐 놓았다. 좋은 음식은 아니지만 한번 잡숴보라고 산신백관에게 권했다. 산신백관은 처음 보는 음식이지만 먹어보니 그런대로 먹을 만했다.

산신백관은 초립동이에게 네가 살고 있는 곳으로 가면 이런 음식을 먹을 수 있겠느냐 물었다. 초립동이는 자신의 마을에 가면 좋은 음식은 먹기 힘들지만 이런 수수범벅은 쉽게 먹을 수 있다고 하자, 산신백관은 얼른 초립동이를 따라 길을 나섰다. 

마을에 온 산신은 마을에서 조금 떨어진 당 동산에 좌정하게 되었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산신백관인 자신에게 나쁜 음식이든 좋은 음식이든 대접하는 사람들이 아무도 없었다. 하루는 산신백관이 초립동이를 불러서 따져 물었다. 

“초립동이야, 네가 살고 있는 마을에 가면 수수범벅 정도는 얻어먹을 수 있다고 해서 따라 내려왔는데, 아무도 내게 음식을 대접하는 이가 없구나.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

이 말을 듣고는 초립동이가 어이없는 표정을 지으며 산신백관에게 큰 소리로 말했다.

“아무리 신이라고 해도 가만히 앉아만 있으면 누가 음식을 갖다주고 대접합니까? 가만히 있지 말고 한번 무쇠 활에 무쇠 화살을 걸어서 동서남북 동네 어귀에 쏘아봅서. 그 자손에 병이 나고 살림살이가 불편해야 산신백관을 받들고 잘 모실 것 아니우꽈.”

산신백관이 초립동이의 말을 듣고는 동네 어귀를 향해 무쇠 화살을 쏘니 어김없이 마을에 불길한 일들이 생기기 시작했다. 근심에 쌓인 마을 사람들이 하가리 여신 송씨할망에게 여쭸더니, ‘산신백관이 당 동산에 좌정하고 있는데 조화를 부리고 있다.’라고 말했다. 이에 깜짝 놀란 마을 사람들은 산신백관을 고내오름의 가장 정결하고 양지바른 곳에 모시어 제를 올리게 되었다. 

산신백관님이 좋은 곳에 좌정했다는 소식을 듣고 어느 날, 을서님과 병서님이 구경을 왔다. 을서님과 병서님이 그 장소를 보고 너무 마음에 들어 자신들도 함께 좌정하여 당제에 참여할 수 있게 해달라고 부탁을 했다. 산신백관은 기꺼이 두 신의 부탁을 받아들여 앞쪽으로 좌정하게 했다.

세제동궁도 이 소식을 들어 마찬가지로 산신백관에게 사정하니, 이번엔 세제동궁을서쪽으로 좌정할 수 있도록 허락했다. 뿐만 아니라 초립동이도 산신백관을 좋은 곳에 좌정하도록 인도한 공로를 인정받아 나란히 좌정하게 하였다. 그 후 마을 단골들이 이 당에 와서 메와 술잔 등 제물을 한 그릇에 올려 제를 지내는데 이곳에 좌정한 모든 신들을 위하는 것이다. 
(진성기, <제주도 무가본풀이 사전(민속원)>의 본풀이를 바탕으로 재정리)

홍죽희.
홍죽희.

홍죽희.

제주에서 중학교 영어교사로 30여 년을 재직하다 2020년 2월 명예퇴직했다. 대학 시절 마당극 운동단체인 극단<수눌음>에 가입, 외지 자본에 의한 제주의 토지 잠식을 다룬 ‘땅풀이’와 1932년 제주에서 일어난 항일 해녀 투쟁을 다룬 ‘ᄌᆞᆷ녀풀이’ 등에 출연하면서 제주의 역사와 문화에 관심을 갖게 되었다. 육지와는 달리 제주의 마당극은 신화를 바탕으로 굿에 의해 전개되는 특징이 있어 자연스럽게 제주의 신화를 눈여겨보게 되었고 지금도 틈틈이 신당 기행을 다니고 있다. 독서모임<아랑ᄒᆞ라>와 아코디언 모임<바숨>의 회원으로 활동하면서 인문적 소양과 예술적 감성을 배우려고 노력하는 중이다.

 

사진작가 김일영.

1969년 서울에서 태어나 중학교 2학년 때 집에 있던 카메라를 시작으로 사진에 관심을 가지게 됐다. 여행사 직원으로 근무하면서 전 세계를 여행했다. 2012년 제주로 이주해 ‘여행과치유’ 회원으로 활동을 시작, 회원들과 제주도 중산간마을을 답사하고 기록한 <제주시 중산간마을>(공저, 류가헌 펴냄, 2018)과 <제주의 성숲 당올레111>(공저, 황금알 펴냄, 2020)을 펴냈다. 또 제주 중산간마을 사진전과 농협아동후원 전시를 이어가고 있다. 현재 ㈜탐나는여행 대표이며 ‘여행과치유’ ‘제주신화연구소’ 회원으로 제주의 중산간마을과 신당을 찾고 기록하면서 제주의 삶을 느끼고 이해하려는 입도 8년차 제주도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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