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미애 법무부장관에게 시심(詩心) 있다는 사실에 무척 놀랐다. 다른 시인도 아니고 조국의 독립을 위해 시와 행동력으로 항거하다가 중국 북경 일본 총영사관 감옥에서 순국한 이육사 시를 애송하고 인용했다니 더욱 놀랬다.

12월 15일 오후, 그녀는 자신의 페이스북에 <과천 산책로에서>라는 제목 속에서 "(전략) 이육사의 외침! 겨울은 강철로 된 무지갠가 보다. 그러네요! 꺾일 수 없는 단단함으로 이겨내고 단련되어야만 그대들의 봄은 한나절 볕에 꺼지는 아지랭이가 아니라 늘 머물 수 있는 강철 무지개로 나타날 것입니다."로 맺었다.

이 날은 윤석열 검찰총장에 대한 검사 징계위원회가 열리는 날이었다. 이 시는 이육사의 절정(絶頂)에서 발췌한 내용인데 그 전문은 다음과 같다.

이 시는 이육사의 <광야: 曠野>와 함께 식민지시대의 대표적인 저항시이다. 1904년 4월 경북 안동에서 태어난 그는 독립운동을 하다가 17회나 투옥되었다. 1943년 4월 북경에서 귀국했다가 그해 6월에 체포되어 북경으로 압송되어 그곳에서 옥사했다. 만 40세도 안된 짧은 생애였다.

암울한 일제 식민지시대 민족의 비운을 통감하고 그것을 시로 묘사하면서 독립을 그리던 이 시가 어떻게 윤석열 검찰총장의 징계위원회가 열리는 날, 권력을 잡고 마구잡이로 휘들었던 법무장관의 페이스북에 올랐을까. 이육사는 빼앗긴 조국을 되찾기 위한 억압 받는 억울함을 호소하는 저항시였는데 말이다.

시나 소설이나 음악, 미술 모든 예술이 다 그렇다. 모든 작품은 작가가 의도한 주제가 있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작자의 주관적 생각이고 그 작품을 읽고, 듣고, 본 독자와 시청자들이 전혀 다른 의도로 해석하고 감상해도 무방하다. 그것이 오히려 그 작품의 광의적 해석으로 더욱 빛을 낼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도 한계가 있다.

빼앗긴 나라를 찾겠다고 독립운동을 하다가 요절한 이육사의 처절한 몸부림은 국연(國緣)의 회복이었다. 한국 사회에 뿌리 깊게 박힌 지연, 학연, 혈연의 저차원의 인연이 아니고 그러한 것을 초월한 한민족으로서의 동질성 회복이었고 독립이었다.

이러한 숭고한 차원에서 발표된 <절정>의 시가 국가적 검찰개혁이라는 미명하에 검찰총장 징계를 위한 소도구로 전락했다는 '주객이 전도'된 사실에 필자는 아연실색했다.  

어느 부서보다도 합리적이고 이론적이어야 할 법무부장관의 자리이다. 이 자리의 권력자가 자기 부하라고 단언하고 비하했던 검찰총장을 국가적 개혁이 아닌 더불어민주당의 당연(黨緣)의 당리당략의 차원에서, 국연 회복을 위해 쓴 <절정>의 시를 인용한 것은 비윤리적이고 이 시에 대한 모독 행위이다. 아전인수도 도가 지나쳤다.

식민지 종주국이었던 일본에 살고 있는 필자나 동포들에게 있어서 추미애 장관의 이러한 이육사 시의 왜곡된 인용에 참담한 심정이다. 지난 일년간 그녀의 권력 남용의 자승자박으로 경질의 대상으로서 막을 내리게 된 것은 국가만이 아니고 더불어민주당으로서도 다행스러운 일이다.

올해 1월 25일 설날 때, <엄마 장관과 아빠 차관, 서울소년원에 가다.>라는 제목으로 법무부가 운영하는 유튜부 페이스북에 오른 것을 필자가 보았다. 추미애 장관과 당시 김오수 차관은 소년원생 전원에게 햄버거 교환 쿠폰을 선물하고 재소자 4명에게 큰절을 받고 떡국도 같이 먹는 영상이었다.

설날 아침 가족들과 같이 지내지 않고 소년원을 방문한 장,차관의 영상을 보았을 때, 정답고 따뜻한 분위기를 느끼기 보다는 그와는 정반대로 한겨울의 싸늘함 같은 인상을 받았다. 이것은 아닌데 하는 어색한 부조리의 기억이 지금도 선명하게 필자의 뇌리에 남아 있다.

추미애 장관에게 권하고 싶다. 이제 장관직에서 물러나면 자연인으로 돌아가게 된다. 여러 우여곡절 속에서 재소자의 몸이 된 그들을 진짜 엄마처럼 나 다시 왔다고 해서 그들을 돌볼 수 있는 사회활동 등을 하기 바란다.

추미애 장관은 시심이 넘쳐나고 때로는 자기 성찰을 위해서 산사(山寺)까지 찾아가서 자신을 돌아보곤 했다. 그리고 깜짝 쇼처럼 설날 아침 소년원도 찾아갔다.

이러한 행동들이 위선적이 아니라는 것을 자연인으로서 사회 봉사를 계속했을 때, 역대 법무장관으로서 큰 오점을 남긴 것을 씻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다 보면 추락한 <추다르크>라는 명예가 언젠가 다시 회복될 날도 찾아올 것이다.  

이 기회에 이육사 시인의 저항시 <광야>와 서정시 <청포도>를 다시 읽어 본다.

다음은 <청포도>이다.

 

저작권자 © 제주투데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