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0월 25일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송악산을 배경으로 기자들 앞에 섰다. 이른바 ‘청정제주 송악선언’을 하기 위해서. 원 지사는 송악산 뉴오션타운 개발 사업에 제동을 걸겠다는 의사를 밝혔다. 원 지사에게서 이와 같은 송악선언을 이끌어낸 인물이 있다. 바로 뉴오션타운 개발 사업을 막기 위해 앞장서온 김정임 송악산개발반대대책위원회 위원장이다.

김정임 위원장은 이날 선언식에 초대받지 못했다. 원 지사는 김 위원장의 자리를 마련하지 않았다. 이날 주민들은 위한 자리는 없었다. 송악선언과 관련한 주민과의 소통 자체가 없었다. 이날 선언식은 원 지사 자신을 최대한 부각하는 방식으로 설계된 선언식이었다. 그뿐만 아니라, 선언식 이후 이어진 실천조치, 즉 송악산 문화재 지정과 관련한 발표 역시 마찬가지였다. 지역 주민들과 논의가 이뤄지지 않았다. 단 한 번의 설명회조차 없었다. 불통은 결국 탈을 내고야 말았다.

송악선언 실천조치 1호는 첫걸음을 내딛자마자 발목을 접질렀다. 송악산의 문화재적 가치를 파악하기 위한 연구용역 예산이 제주도의회를 통과하지 못한 것이다. 원희룡 도정이 해당 지역 주민 및 정치인과 소통조차 하지 않고 추진했기 때문이다. 불통때문이다. 원 지사가 송악산 개발사업과 전면에서 싸워온 김정임 위원장을 비롯해 지역 주민들과 충분히 소통하며 송악선언 실천 계획을 밟아나갔다면 지금과 같은 민망한 상황이 초래됐을까.

송악산 난개발을 막고, 보전을 위한 주민들의 재산권을 크게 침해하지 않고 후세대를 위한 송악산 보전의 방향은 무엇일까. 1980년대 송악산공군기지 건설을 주민들과 함께 막아내고, 그로부터 20년이 더 지난 2020년에 또 한 번 송악산을 보전하기 위한 싸움에서 의미 있는 성과를 올린 김정임 위원장. 제주투데이는 김정임 위원장을 2020년 올해의 인물로 선정했다.

김정임 송악산개발반대대책위원장(사진=김재훈 기자)
김정임 송악산개발반대대책위원장(사진=김재훈 기자)

#주민들과 소통하며 추진해야...

김 위원장의 딸이 운영하는 작은 서점에서 인터뷰를 진행했다. 원희룡 지사가 송악산 문화재 지정 계획을 발표하기 전에 김 위원장이나 주민들을 만나 얘기를 나눈 적은 없었는지 물었다.

“원희룡 지사의 문화재 지정 계획 전혀 몰랐어요. 개발 찬성 쪽도 그렇고, 반대 쪽 주민과도 전혀 소통을 하지 않은 상태로 송악선언도 하고, 문화재 지정 관련해서도 추진한 거죠. 그런 방식으로 일을 진행하면 지역 주민들이 반발할 것이라는 건 기정사실 아닐까요? 주민들을 만나는 과정을 거칠 줄 알았는데, 그런 과정이 없었어요. 송악산을 보전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것은 긍정적으로 평가해요. 하지만 보전 의지가 있다면 주민들과 제대로 소통하면서 추진해야죠.”

김 위원장은 송악산 일대가 문화재로 지정되면 재산권을 행사하지 못할까 우려하는 주민들이 오해하지 않도록 충분히 설명 과정을 거쳐야 했다고 지적했다. 아무런 설명이 없는 상태에서 문화재를 지정한다고 하면 주민들이 놀라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 김 위원장은 천연기념물과 명승지로 가게 되면 주민들에게 피해가 거의 없고, 관광자원으로서의 가치가 더해진다는 점 등을 주민에게 설명해야 했다고 말했다.

“지금 공원 지정 얘기도 나오고 있어요. 공원으로 지정하더라도 국립공원으로 가는 것이 지역 주민들에게는 이득이에요. 일단 도립공원으로 묶이면 오히려 결국 도지사가 개발하기로 마음 먹으면 개발할 수 있거든요.”

송악산 개발 반대대책위원회는 전문가 초청 토론회와 포럼을 개최해 왔다. 직접 송악산의 가치를 공부하고 개발이 경관과 지역에 영향을 분석했다. 그리고 앞으로 송악산을 보전하면서 어떻게 공동체를 발전시켜나갈 것인지 방안에 대한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다.

김정임 송악산개발반대대책위원장(사진=김재훈 기자)
김정임 송악산개발반대대책위원장(사진=김재훈 기자)

#송악산-알뜨르비행장 일대...유네스코 세계복합유산 등재 가치 있어

김정임 위원장은 송악산이 국내 최초로 유네스코 세계복합유산으로 등재될 수 있는 가치가 있다고 전했다. 송악산의 지질과 경관은 자연유산으로서의 가치와 있고, 더불어 일제 강점기 당시 건설된 동굴진지와 알뜨르비행장 격납고 등은 당시 역사를 보여주는 문화유산으로서의 가치가 있다는 것이다.

실제, 대정 지역은 일제 강점기 당시의 군사 시설 상당 수가 양호한 상태로 남아 있다. 김 위원장은 이런 역사적 공간을 제대로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문화재 지정 등을 거쳐 송악산이 세계복합유산으로 등재되면 지역에 이익이 돌아올 수 있을 것이라고 기대했다.

“그러기 위해서는 국방부 소유인 알뜨르비행장 터가 지역 주민들을 위해 이용될 수 있도록 본격적으로 논의해야 할 시점이에요.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인, 평화대공원을 추진해야죠. 매듭을 풀어가야 할 때예요.”

#군사시설로 피해본 대정 지역..피해의식 정서적으로 풀어나가야"

김정임 위원장은 80학번이다. 20대 초 육지의 대학교에 입학하면서 제주를 떠났다가 졸업 후 1~2년의 직장생활을 끝으로 귀향했다. 학생 시절에는 학생운동과는 거리가 멀었다고 회상한다. 방송부 활동에만 치중했다고. “수도원에 들어가서 수녀가 될 생각을 했더랬어요. 그런데 집에 돌아와 보니 집안 사정이 어려운 상태였어요. 수도원이 가서 수녀가 되는 대신 고향에 남아 고향을 지키는 일을 하게 된 셈이죠.”

고향은 평화롭지 못했다. 정부가 송악산공군기지 건설을 추진했기 때문이다. 이를 막기 위한 주민들의 투쟁이 거셌다. "저도 매일 같이 트럭을 타고 거리 방송을 했어요. 아이도 데리고. 뱃속에도 아이가 자라고 있었고요. 그때 열심히 했던 걸 주민들이 기억해 주시는 것 같아요." 김정임 위원장은 물론 대정읍 주민들은 1989년 송악산공군기지 건설 계획을 백지화시킨 경험을 갖고 있다.

김 위원장은 농민이다. 특작물을 재배한다. 전국여성농민회총연합 제주지부 회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20대 초중반 몇 년을 빼고 고향에서 살아왔다. 송악산 개발을 막아섰지만 군사시설로 인해서 발전이 더진 대정 지역의 현실을 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우리 주민들은 군사 시설로 인해 많은 피해를 감내하며 살아왔어요. 그런 마음을 이해해줘야 해요. 보건소가 들어오기 전까지는 공공건물은 읍사무소 하나가 전부였으니 말 다 했죠. 정서적으로도 어떻게 풀지가 중요해요.”

김 위원장은 원희룡 도정이 주민들과 함께 전문가 초청 토론회도 여러 차례 가지면서 ,소통하며 앞으로 송악산과 지역의 미래를 제대로 그려나길 바란다고 밝혔다. 행정이 하지 않으면, 그 일은 결국 주민들이 알아서 해나갈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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